퇴계 난택(退溪難擇)
퇴계(退溪)선생의 어려운 선택이라는 뜻으로,
엄격한 윤리와 도덕보다 인간의 따뜻한 정(情)이
더 진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퇴 계(退溪)선생의 둘째 아들 채(寀)는 태어 난지 한 달 만에
어머니 김해 허 씨를 여의고 주로 외가(의령)에서 성장하면서
건강이 나빠 퇴 계 가 단양 군수(丹陽郡守)로 있던 때
(48세 2월)에 정 혼만 해 놓은 상태에서 21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채가 세상을 떠난 그 이듬해 풍기 군수(豊基郡守)로
전임 한 퇴 계는 직책을 사임하고 고향에서 학문에 전념하고 있을 때,
둘째 며느리는 자식도 없는 과부가 되었다.
선생은 홀로 된 며느리가 걱정이었다.
'남편도 자식도 없는 젊은 며느리가 어떻게 긴 세월을 홀로 보낼까?
그리고 혹여 무슨 일이 생기면 자기 집이나 사돈 집 모두에게
누(累)가 될 것이기에, 한밤중이 되면 자다 가도
벌떡 일어나 집안을 순찰하곤 했다.
어느 날 밤, 집안을 둘러보던 선생은 며느리의 방으로부터
'소곤소곤' 이야기하는 소리가 새어 나오는 것을 듣게 되었다.
순간 선생은 얼어붙는 것 같았다. 점잖은 선비로서는 차마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며느리의 방을 엿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젊은 며느리가 술 상 을 차려 놓고
짚 으로 만든 선비 모양의 인형과 마주 앉아 있는 것이었다.
인형은 바로 남편의 모습이었다.
인형 앞에 잔에 술을 가득 채운 며느리는 말했다.
"여보, 한 잔 잡수세요." 그리고는 인형을 향해 한참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흐느끼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남편의 인형을 만들어 대화를 나누는 며느리…
한밤중에 잠 못 이루고 흐느끼는 며느리…
선생은 깊이 생각했다. 과연 '윤리(倫理)는 무엇이고
도덕(道德)은 무엇인가! 저 젊은 며느리를 수절 시켜야 하다니…
저 아이를 윤리 도덕의 관습으로 묶어 수절 시키는 것은 너무 도 가혹하다.
인간의 고통을 몰라주는 이 짓이야말로 윤리도 아니고 도덕도 아니다.
여기에 인간이 구속되어서는 안 된다. 저 아이를 자유롭게 풀어주어야 한다.'
이튿날 선생은 사돈을 불러 결론만 말했다.
"자네, 딸을 데려가게." 사돈은 "내 딸이 무엇을 잘못했는가?"
선생은 "잘못한 것 없네. 무조건 데려가게." 친구이면서 사돈 관계였던
두 사람이기에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까닭이 없었다.
그러나 딸을 데리고 가면 두 사람의 친구 사이마저 절 연하는 것이기 때문에
선생의 사돈도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안 되네. 양반 가문에서 이 무슨 일인가?".
선생이 "나는 할 말이 없네.
자네 딸이 내 며느리로서는 참으로 부족함이 없는 아이지만
어쩔 수 없네. 데리고 가게."
이렇게 퇴계(退溪) 선생은 사돈과 절연하고 며느리를 보냈다.
그리고 몇 년 후 선생은 한양으로 올라가다가 조용하고
평화스러운 동네를 지나가게 되었다.
마침 날도 저물기 시작했으므로 아담한 민가 집을 택하여 하룻밤을 머물렀다.
그런데 저녁상을 받아보니 반찬 하나하나가 선생이 좋아하는 것 뿐이었다.
더욱이 간까지 선생의 입맛에 딱 맞아 아주 맛있게 먹었다.
이 집 주인도 나와 입맛이 비슷한가 보다. 이튿날 아침상도 마찬가지였다.
반찬의 종류는 어제 저녁과 달랐지만 여전히 입맛에
딱 맞는 음식들만 올라온 것이다.
나의 식성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토록 음식들이 입에 맞을까?
'혹시 며느리가 이 집에 사는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하며 아침 식사를 마치고
막 떠나가려 는 데 집주인이 버선 두 켤레를 가지고 와서
'한양 가시는 길에 신으시라' 며 주었다.
신어보니 선생의 발에 꼭 맞았다.
'아! 며느리가 이 집에 와서 사는구나.' 선생은 확신을 하게 되었다.
집안을 보나 주인의 마음씨를 보나 내 며느리가 고생은 하지 않고 살겠구나.
만나보고 싶은 마음도 컸지만 짐작만 하며 대문을 나서는데
한 여인이 구석에 숨어 퇴 계 선생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었다.
퇴 계 선생은 이렇게 며느리를 개가(改嫁)시켰다.
이 일을 놓고 유가(儒家)의 한 편에서는
오늘날까지 선생을 비판하고 있다.
"선비의 법 도를 지키지 못한 사람이다.
윤리를 무시한 사람이다"는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한 편에서는 정반대로 퇴계 선생을 칭송 하고 있다.
"선생이야말로 윤리와 도덕을 올바로 지킬 줄 아는 분이시다.
윤리를 깨 뜨리 면서까지 윤리를 지키셨다."
답은 각자의 몫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 어느 것이 맞다고 단정 지울 수는 없다.
그러나 상식과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으면 맞는 답일 것이다.
퇴 계 선생은 엄격한 규범보다 따뜻한 인간미를 택하였다.
당시로는 매우 어려운 선택이었다.
받은 글/청 목
퇴계 난택(退溪難擇)
퇴계(退溪)선생의 어려운 선택이라는 뜻으로,
엄격한 윤리와 도덕보다 인간의 따뜻한 정(情)이
더 진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퇴 계(退溪)선생의 둘째 아들 채(寀)는 태어 난지 한 달 만에
어머니 김해 허 씨를 여의고 주로 외가(의령)에서 성장하면서
건강이 나빠 퇴 계 가 단양 군수(丹陽郡守)로 있던 때
(48세 2월)에 정 혼만 해 놓은 상태에서 21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채가 세상을 떠난 그 이듬해 풍기 군수(豊基郡守)로
전임 한 퇴 계는 직책을 사임하고 고향에서 학문에 전념하고 있을 때,
둘째 며느리는 자식도 없는 과부가 되었다.
선생은 홀로 된 며느리가 걱정이었다.
'남편도 자식도 없는 젊은 며느리가 어떻게 긴 세월을 홀로 보낼까?
그리고 혹여 무슨 일이 생기면 자기 집이나 사돈 집 모두에게
누(累)가 될 것이기에, 한밤중이 되면 자다 가도
벌떡 일어나 집안을 순찰하곤 했다.
어느 날 밤, 집안을 둘러보던 선생은 며느리의 방으로부터
'소곤소곤' 이야기하는 소리가 새어 나오는 것을 듣게 되었다.
순간 선생은 얼어붙는 것 같았다. 점잖은 선비로서는 차마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며느리의 방을 엿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젊은 며느리가 술 상 을 차려 놓고
짚 으로 만든 선비 모양의 인형과 마주 앉아 있는 것이었다.
인형은 바로 남편의 모습이었다.
인형 앞에 잔에 술을 가득 채운 며느리는 말했다.
"여보, 한 잔 잡수세요." 그리고는 인형을 향해 한참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흐느끼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남편의 인형을 만들어 대화를 나누는 며느리…
한밤중에 잠 못 이루고 흐느끼는 며느리…
선생은 깊이 생각했다. 과연 '윤리(倫理)는 무엇이고
도덕(道德)은 무엇인가! 저 젊은 며느리를 수절 시켜야 하다니…
저 아이를 윤리 도덕의 관습으로 묶어 수절 시키는 것은 너무 도 가혹하다.
인간의 고통을 몰라주는 이 짓이야말로 윤리도 아니고 도덕도 아니다.
여기에 인간이 구속되어서는 안 된다. 저 아이를 자유롭게 풀어주어야 한다.'
이튿날 선생은 사돈을 불러 결론만 말했다.
"자네, 딸을 데려가게." 사돈은 "내 딸이 무엇을 잘못했는가?"
선생은 "잘못한 것 없네. 무조건 데려가게." 친구이면서 사돈 관계였던
두 사람이기에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까닭이 없었다.
그러나 딸을 데리고 가면 두 사람의 친구 사이마저 절 연하는 것이기 때문에
선생의 사돈도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안 되네. 양반 가문에서 이 무슨 일인가?".
선생이 "나는 할 말이 없네.
자네 딸이 내 며느리로서는 참으로 부족함이 없는 아이지만
어쩔 수 없네. 데리고 가게."
이렇게 퇴계(退溪) 선생은 사돈과 절연하고 며느리를 보냈다.
그리고 몇 년 후 선생은 한양으로 올라가다가 조용하고
평화스러운 동네를 지나가게 되었다.
마침 날도 저물기 시작했으므로 아담한 민가 집을 택하여 하룻밤을 머물렀다.
그런데 저녁상을 받아보니 반찬 하나하나가 선생이 좋아하는 것 뿐이었다.
더욱이 간까지 선생의 입맛에 딱 맞아 아주 맛있게 먹었다.
이 집 주인도 나와 입맛이 비슷한가 보다. 이튿날 아침상도 마찬가지였다.
반찬의 종류는 어제 저녁과 달랐지만 여전히 입맛에
딱 맞는 음식들만 올라온 것이다.
나의 식성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토록 음식들이 입에 맞을까?
'혹시 며느리가 이 집에 사는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하며 아침 식사를 마치고
막 떠나가려 는 데 집주인이 버선 두 켤레를 가지고 와서
'한양 가시는 길에 신으시라' 며 주었다.
신어보니 선생의 발에 꼭 맞았다.
'아! 며느리가 이 집에 와서 사는구나.' 선생은 확신을 하게 되었다.
집안을 보나 주인의 마음씨를 보나 내 며느리가 고생은 하지 않고 살겠구나.
만나보고 싶은 마음도 컸지만 짐작만 하며 대문을 나서는데
한 여인이 구석에 숨어 퇴 계 선생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었다.
퇴 계 선생은 이렇게 며느리를 개가(改嫁)시켰다.
이 일을 놓고 유가(儒家)의 한 편에서는
오늘날까지 선생을 비판하고 있다.
"선비의 법 도를 지키지 못한 사람이다.
윤리를 무시한 사람이다"는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한 편에서는 정반대로 퇴계 선생을 칭송 하고 있다.
"선생이야말로 윤리와 도덕을 올바로 지킬 줄 아는 분이시다.
윤리를 깨 뜨리 면서까지 윤리를 지키셨다."
답은 각자의 몫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 어느 것이 맞다고 단정 지울 수는 없다.
그러나 상식과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으면 맞는 답일 것이다.
퇴 계 선생은 엄격한 규범보다 따뜻한 인간미를 택하였다.
당시로는 매우 어려운 선택이었다.
받은 글/청 목
퇴계 난택(退溪難擇)
퇴계(退溪)선생의 어려운 선택이라는 뜻으로,
엄격한 윤리와 도덕보다 인간의 따뜻한 정(情)이
더 진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퇴 계(退溪)선생의 둘째 아들 채(寀)는 태어 난지 한 달 만에
어머니 김해 허 씨를 여의고 주로 외가(의령)에서 성장하면서
건강이 나빠 퇴 계 가 단양 군수(丹陽郡守)로 있던 때
(48세 2월)에 정 혼만 해 놓은 상태에서 21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채가 세상을 떠난 그 이듬해 풍기 군수(豊基郡守)로
전임 한 퇴 계는 직책을 사임하고 고향에서 학문에 전념하고 있을 때,
둘째 며느리는 자식도 없는 과부가 되었다.
선생은 홀로 된 며느리가 걱정이었다.
'남편도 자식도 없는 젊은 며느리가 어떻게 긴 세월을 홀로 보낼까?
그리고 혹여 무슨 일이 생기면 자기 집이나 사돈 집 모두에게
누(累)가 될 것이기에, 한밤중이 되면 자다 가도
벌떡 일어나 집안을 순찰하곤 했다.
어느 날 밤, 집안을 둘러보던 선생은 며느리의 방으로부터
'소곤소곤' 이야기하는 소리가 새어 나오는 것을 듣게 되었다.
순간 선생은 얼어붙는 것 같았다. 점잖은 선비로서는 차마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며느리의 방을 엿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젊은 며느리가 술 상 을 차려 놓고
짚 으로 만든 선비 모양의 인형과 마주 앉아 있는 것이었다.
인형은 바로 남편의 모습이었다.
인형 앞에 잔에 술을 가득 채운 며느리는 말했다.
"여보, 한 잔 잡수세요." 그리고는 인형을 향해 한참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흐느끼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남편의 인형을 만들어 대화를 나누는 며느리…
한밤중에 잠 못 이루고 흐느끼는 며느리…
선생은 깊이 생각했다. 과연 '윤리(倫理)는 무엇이고
도덕(道德)은 무엇인가! 저 젊은 며느리를 수절 시켜야 하다니…
저 아이를 윤리 도덕의 관습으로 묶어 수절 시키는 것은 너무 도 가혹하다.
인간의 고통을 몰라주는 이 짓이야말로 윤리도 아니고 도덕도 아니다.
여기에 인간이 구속되어서는 안 된다. 저 아이를 자유롭게 풀어주어야 한다.'
이튿날 선생은 사돈을 불러 결론만 말했다.
"자네, 딸을 데려가게." 사돈은 "내 딸이 무엇을 잘못했는가?"
선생은 "잘못한 것 없네. 무조건 데려가게." 친구이면서 사돈 관계였던
두 사람이기에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까닭이 없었다.
그러나 딸을 데리고 가면 두 사람의 친구 사이마저 절 연하는 것이기 때문에
선생의 사돈도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안 되네. 양반 가문에서 이 무슨 일인가?".
선생이 "나는 할 말이 없네.
자네 딸이 내 며느리로서는 참으로 부족함이 없는 아이지만
어쩔 수 없네. 데리고 가게."
이렇게 퇴계(退溪) 선생은 사돈과 절연하고 며느리를 보냈다.
그리고 몇 년 후 선생은 한양으로 올라가다가 조용하고
평화스러운 동네를 지나가게 되었다.
마침 날도 저물기 시작했으므로 아담한 민가 집을 택하여 하룻밤을 머물렀다.
그런데 저녁상을 받아보니 반찬 하나하나가 선생이 좋아하는 것 뿐이었다.
더욱이 간까지 선생의 입맛에 딱 맞아 아주 맛있게 먹었다.
이 집 주인도 나와 입맛이 비슷한가 보다. 이튿날 아침상도 마찬가지였다.
반찬의 종류는 어제 저녁과 달랐지만 여전히 입맛에
딱 맞는 음식들만 올라온 것이다.
나의 식성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토록 음식들이 입에 맞을까?
'혹시 며느리가 이 집에 사는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하며 아침 식사를 마치고
막 떠나가려 는 데 집주인이 버선 두 켤레를 가지고 와서
'한양 가시는 길에 신으시라' 며 주었다.
신어보니 선생의 발에 꼭 맞았다.
'아! 며느리가 이 집에 와서 사는구나.' 선생은 확신을 하게 되었다.
집안을 보나 주인의 마음씨를 보나 내 며느리가 고생은 하지 않고 살겠구나.
만나보고 싶은 마음도 컸지만 짐작만 하며 대문을 나서는데
한 여인이 구석에 숨어 퇴 계 선생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었다.
퇴 계 선생은 이렇게 며느리를 개가(改嫁)시켰다.
이 일을 놓고 유가(儒家)의 한 편에서는
오늘날까지 선생을 비판하고 있다.
"선비의 법 도를 지키지 못한 사람이다.
윤리를 무시한 사람이다"는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한 편에서는 정반대로 퇴계 선생을 칭송 하고 있다.
"선생이야말로 윤리와 도덕을 올바로 지킬 줄 아는 분이시다.
윤리를 깨 뜨리 면서까지 윤리를 지키셨다."
답은 각자의 몫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 어느 것이 맞다고 단정 지울 수는 없다.
그러나 상식과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으면 맞는 답일 것이다.
퇴 계 선생은 엄격한 규범보다 따뜻한 인간미를 택하였다.
당시로는 매우 어려운 선택이었다.
받은 글/청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