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동학당이 외침
조선학자들의 꿈꾸는 남조선 이상향이 어디인가? 천주교가 들어오고 또 그의 문물을 접촉하게 됨에 우리의 이상향이 여기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대개 머리 깊은 학자들이 천주교를 많이 믿게 되었는데 역대 왕조의 압박이 심함으로 선교사들과 신도들이 많이 참살을 당하고 보니 이상향이 여기 있는 것 같지 않고 또 일편에 약한 나를 집어 삼키려는 야심국가의 이용하는 도구가 아닌가 그런 무서운 화가 있지 않을까 하고 의심도 생겼다.
남조선에 대한 신념과 또 외국으로 오는 세력을 막으려는 정신이 합하여 민중의 마음속에 무슨 불평이 감추어 있다. 순조 이후 헌철 두 시대에 걸쳐 끌 수 없이 자꾸 타고 있었는데 게다가 당국의 정치가 부패하여 민원이 창천한 때라.
이 기분을 이용하여 일어난 자는 곧 경주에 사는 최제우(崔濟愚)이다. 최제우는 경주사민의 좌족(左族)으로 태어나서 자기도 역시 불평 중에 한 사람이고 세상을 개혁하려는 가장 강개한 생각을 가지고 동학(東學)이라는 것을 창시하였다.
조선 사람의 신사상인 천주(天主)를 모시고 게다가 유불선(儒佛仙) 삼교를 가미하여 목적은 남조선 이상에 두고 불평한 공기가 싸여 있는 사회를 향하여 비밀히 전하게 되었다. 어려운 경전은 다 그만두고 간략한 주문에 의하여 여행하는데 서학의 반대로 동학이라 이름하고 그 주문은 시천주조화정(侍天主造化定) 영세불망만사지(永世不忘萬事知)라 하였다.
철종 11년에 이것을 가지고 불평이 많은 민중에 향하여 외친 결과 천주교에 대하여 의심을 가진 학자와 그 외 유지들이 이것이 남조선의 이상향이 아닌가 하고 달려들며 무슨 기회든 찾고 기다리던 일반 민중은 대함에 비와 같이 생각하고 몰려들어 형세가 자못 업신여기지 못할 만큼 커졌다.
근본 비밀히 전하던 것이 차차 드러나게 되어 철종 말년에 혹세무민이란 죄명으로 관헌에게 잡혀 사형을 당하였다. 그러나 그때 사람들의 갈망하는 운동은 차차 지하(地下)로 들어가 잠행운동을 계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