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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지각하면 니 체면도 그렇지만, 장미 체면도 구겨지는 거 알지?”
“알아, 알아.”
“그럼 장미를 위해서라도 내일 절대 늦으면 안 돼, 의길아!”
“난 걱정 말고, 너도 일찍 오셔. 축사해준다는 사람이 늦는 것도 체면 상하니까.”
“알았어! 아, 축사랑 봉투도 섭섭지 않을 테니 기대해!”
“그래~ 석호야, 내일 보자.”
금발이 인상적인 청년, 나의길은 통화를 마치고 스마트폰을 내려놓았다.
“휴~ 이제 5시간만 지나면 내일인데…. 아직도 실감이 안 나.”
벽시계와 달력을 번갈아보던 의길은 봉투 속에서 카드 한 장을 꺼냈다.
「2080년 4월 13일 토요일 오전 11시 30분, 한일예식장 1층 다이아몬드 홀에서
신랑 나의길과 신부 백장미의 결혼식이 치러질 예정입니다.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하고, 백년가약과 가화만사성을 기원하는 이 자리를
하객 여러분께서 더욱 돋보이게 해주시길, 진심으로 바라고 기다리겠습니다.
한일예식장의 약도와 건물 내부는 아랫면에 첨부해 두었습니다.
신랑 나의길, 신부 백장미 및 양가 일동」
“…으아!”
묵독을 끝내자마자 가슴이 벅차오른 의길은 외마디를 질렀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소꿉친구기만 했던 장미랑 연애하고, 대학교까지 같이 졸업하고, 결혼식 날짜랑 장소도 함께 잡은 장미가…. 내 아내가 되는 거야…. 헤헤…. ”
광대뼈가 올라간 의길은 노랑 애벌레 인형을 끌어안고 침대에 누워 얼굴을 비볐다.
“이제부터는 둘이서, 언제든지 뭐든지 다 할 수 있고…, 이거, 저거 다 하고…. 아이도 생겨서 아빠도 되겠지? 아들일까, 딸일까? 태어나면 어떨까? 그리고 또…. 헤헤, 헤….”
한동안 침을 흘리며 황홀해하던 의길은 잠시 후, 무기력하게 널브러져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장미와 결혼하고, 함께할 나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인데….
가슴이 아프고 먹먹해. 아주 크고, 단단한 응어리 같은 것이 짓누르는 거 같아.
이 감각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 그리고 왜 이렇게 아픈 걸까? 또….”
「똑- 똑-」
노크 소리를 들은 의길은 생각을 멈췄다.
“…네?”
“작은형, 이제 나와.”
“준비 다 했대, 작은오빠.”
“알았어, 잠시만.”
침대에서 일어난 의길은 얼굴에 미소를 띄웠다.
‘별 거 아닐 테니 신경 쓰지 말자.’
집에서 가장 넓은 거실에는 의길의 식구들이 둘러앉은 큰 식탁이 있고, 그 위에는 분위기를 살리는 LED 램프와 싱싱한 꽃병, 빛나는 식기에 담긴 진수성찬이 가득해 빈 공간이 없었다.
“자, 주인공! 어서 이리로 오세요!”
남동생과 여동생에게 등을 떠밀린 의길이 식탁에 오자마자 부모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길아, 정말로 축하한다. 어리게만 보이던 네가 컸다는 게 이제야 실감이 나는구나.”
“오늘 여기서 행복한 것 이상으로 너의 인생이 행복하길 진심으로 빈다. 의길아.”
“아빠, 엄마…. 감사합니다. 정말….”
부모와 손을 잡은 의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래도 결혼만은 형이 먼저 할 줄 알았는데, 결혼까지도 의길이가 먼저 해버렸네? 녀석, 너는 항상 내 생각 이상이구나! 너한테는 계속 놀란다니까!”
“그 말, 무슨 뜻이야…?”
형의 칭찬 아닌 칭찬에 얼굴이 빨개진 의길에게 누나가 다가왔다.
“네가 부럽다는 뜻이야, 의길아. 오빠는 올해로 연애한지 3년인데, 의길이는 5년도 넘은데다 장미랑 소꿉친구로 지낸 것까지 합하면 비교할 수가 없으니까 당연한 거지만.”
“그 말이 정답이다, 정답! 그런데 낭만적이지 않냐? 오랫동안 고락을 함께한 소꿉친구와 결혼하고, 평생 사이좋게 사랑하고 이해하면서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가지 이거저거….”
“오빠. 그만 놀려.”
“그러는 세련이 너도 같이 하면서! 정말로 그만하자.”
귀와 손끝까지 새빨개진 의길을 본 형과 누나는 가운데 자리의 의자를 빼줬다.
“어쨌든 의길아. 정말로 축하해. 내 동생이라 그런 게 아니고, 넌 정말 행복한 애야.”
“장미는 정말로 좋은 여자애야. 정말, 정말로 잘 해줘라. 알았지?”
“아, 알았어.”
형과 누나가 의길을 앉히자 자리에 앉아있던 남동생과 여동생이 일어났다.
“작은형, 정말로 축하해! 나중에 결혼식 어땠는지, 얘기 해 줘! 알았지?”
“신혼여행도 어땠는지 얘기해주는 거 잊지 마! 꼭!”
“그래, 그래. 알았어. 아주 흥미진진할 테니 많이 기대해.”
남동생과 여동생에게 미소 지은 의길에게 두 사람이 작은 소리로 덧붙였다.
“그리고 첫날밤도…. 알지?”
“…적당히 밝혀, 임마!”
의길의 몸이 다시 빨개지고, 식구들 모두 웃었다. 다시 아버지와 어머니가 말했다.
“결혼하면 너도 장미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게 되겠지.”
“하지만 오늘은 네가 총각으로 보내는 마지막 날이니, 마음껏 기분 내려무나.”
“…네!”
짧은 바늘이 10, 긴 바늘이 9을 가리켰지만 거실은 아직 흥이 가득한 듯 시끌벅적했다.
“자, 이제 슬슬 정리하자.”
애써 흥을 떨치고 먼저 일어난 형과 누나가 뒤이어 식탁에 손을 뻗는 의길을 막았다.
“의길이 너는 안 도와줘도 괜찮으니까 방에 들어가.”
“가서 준비 못한 거 없나 살펴봐.”
“이번에는 나도 도울게. 아까 파티 준비할 때도, 오늘은 내가 주인공이니까 안 도와줘도 된다고 하고….”
“괜찮아. 이 정도 쯤은 우리끼리 할 수 있어. 그리고 장군이랑 단아도 있잖아?”
“대신 다음에 많~이 도와주면 되니까 들어가. 얼른.”
식구들에게 등을 떠밀린 의길은 마지못해 방 쪽으로 몸을 돌렸다.
“아, 알았어…. 그럼 난 들어갈게.”
「끼익-」
방으로 들어간 의길은 문을 닫았다.
“휴~ 네 번까지 확인했으면 잊은 건 없겠지.”
필요한 짐을 정리하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의길은 스마트폰으로 손을 가져갔다.
“2080년 4월 12일 금요일 23:15….”
스마트폰 화면이 꺼지고 자유를 얻은 의길은 「With Rose」라는 앨범을 꺼냈다.
“장미와 처음 만났던 게…. 유치원 들어갔을 때니까, 한 20년 전이었지?”
앨범을 펼치자마자 유치원생복을 입고 웃는 의길과 장미의 사진이 나왔다.
사진 속 미소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의길은 페이지를 넘겼다.
“이거는 유치원에서 재롱잔치 할 때…. 그리고 저건 야유회…. 초등학교 입학….”
사진 속으로 떠난 의길은 당시의 기억을 찾아내, 회상했다.
“장미의 11번째 생일…. 또 여기는 졸업식이고, 중학교 입학식, 제주도 수학여행….”
웃고, 울던 의길은 페이지의 반을 넘기자마자 다시,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졌다.
가슴이 먹먹한 것을 넘어, 형언할 수 없는 기분까지 느껴진 의길은 앨범을 덮었다.
“휴…. 또 이러네. 내 아내가 될 장미를 생각하면 행복해야 하는데, 왜 이리 착잡하지? 이러니까 꼭 장미랑 억지 결혼을 하는 거 같잖아. 현실은 오히려 정반대인데….”
형언할 수 없는 기분 때문에 새신랑의 기쁨이 흐트러진 의길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똑- 똑-」
노크 소리를 들은 의길은 조건반사적으로 표정과 말투를 가다듬었다.
“누, 누구세요?”
“의길아. 아빠랑 엄마다. 잠깐 들어가도 되겠니?”
“그럼요. 들어오세요.”
의길의 승낙을 받은 부모는 문을 열고 들어왔다. 먼저 들어온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의길아, 준비는 다 했니?”
“네. 네 번까지 확인했으니까 잊는 건 없을 거에요.”
어머니에 이어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그래? 그래도 다시 한 번 확인해보렴. 뭔가 잊고 있거나 느끼고 있는 거 없니?”
아버지의 질문에 동요했던 의길은 다시 표정을 가다듬었다.
“없어요. 정말로.”
“그래? 그럼 다행이구나. 그래도 한번만 더…. 확인해볼래?”
아버지의 미소를 본 의길은 고개를 떨궜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
부모는 가볍게 의길의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래, 지금 네 심정이 그렇구나.”
“…네. 사랑하는 장미랑 결혼하는 거니까 행복하고, 기쁠 텐데 이상하게 가슴이 먹먹하고, 착잡해요. 이런 모습이 꼭 장미랑 결혼하기 싫어하는 거 같아 화도 나고, 우울해지고….”
화가 치민 의길은 말을 잇지 못하고, 어머니는 의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이건 엄마 생각인데, 의길이가 불안해서 그런 거 아닐까?”
“불안하다고요? 제가?”
“그래. 사랑하는 사람과 하나가 되어 평생 함께 지내는 결혼은 멋지고 낭만적이지.”
“하지만 동시에 결혼은 새 가정을 지키고, 배우자만을 사랑하며, 아이를 지키는 것 등 여러 의무가 따르지. 그것이 상황마다 다르고, 적을 수는 있어도 절대 없어지지는 않아.”
“게다가 연애할 때는 언제나 함께 하고 싶을 정도로 애틋해서 결혼하면 행복하기만 할 것 같지만, 어떻게든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되면서 지치기도 하니까.”
의길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하신 맞는 거 같아요. 사랑하는 장미랑 결혼해서 함께 지낼 걸 생각하면 정말 날아갈 거 같아요. 하지만 행복하지 못하고 일이 생겨, 싸우면 어쩌죠?
장미를 사랑하는 건 변함없지만…. 장미랑 사이가 좋기만 했던 건 아니었잖아요.
전에도 장미랑 싸워서…. 마음 상하고…. 정말 힘들게 화해했던 적도 있어 걱정돼요.”
차분하던 의길의 목소리에 근심이 묻어나면서 말소리가 옹알이처럼 변해갔다.
“그리고 사람들이…. 말하잖아요. 결혼은 현실이라고. 그래서 출산과 육아 때문에 서로
한심하지 않아요? 이렇게 걱정할 거 없이 잘하면…. 괜찮을 텐데 겁먹고…. 이상하고 한심하지만…. 그래도…. 좀 불안하고, 겁나는 게 사실이네요…. 헤, 헤헤….”
부모의 시선을 피한 의길의 양손에 익숙한 촉감이 느껴졌다.
“지금 의길이가 느끼는 감정은 당연한 거야. 잘하면 된다고 다짐해도, 결혼하고 나서 하는 일들은 거의 못해본 것들뿐이고, 서툴러서 실수도 하는데다 충돌도 생기기 마련이지.”
“아빠랑 엄마도 그래. 아빠랑 엄마가 맨날 사이좋았니? 우리가 잘 지내기만 했었어?”
“직장하고, 우리들 문제하고 여러 가지 때문에…. 많이 싸우기도 하셨었죠.”
“그런데 의길아. 서로 얼굴 붉히는 나쁜 일이 훨씬 더 많을 거 같고, 힘든 일들이 더 생기는데, 사람들은 왜 결혼하고 싶어할 것 같아? 왜 결혼을 행복한 것으로 생각할까?”
잠시 생각하던 의길은 입을 열었다.
“힘들어도…. 함께 하면서 즐겁고, 행복해서 웃고, 기쁘고 보람찬 게 더 많아서…?”
의길의 대답을 들은 부모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의길의 어깨를 쳤다.
“바로 그거야! 의길아! 아까 말했듯이…. 결혼이 낭만적이고 행복하기만 하지도 않고, 해보지도 않았던 많은 일들을 해야 하고, 여러 의무를 짊어져야 하는 게 사실이야.”
“그런데도 결혼이 행복한 건….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지내기 때문이고, 그 사람과 함께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서로의 모든 것을 나누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해봤던 일이라도 함께하면 어떻게든 특별해지고, 여러 발견과 상상을 할 수 있지. 좋은 일이면 감동을 느끼고, 나쁜 일이어도 교훈을 얻을 수 있으니까 헛된 게 아니고.”
“아빠랑 엄마가 너희를 낳은 것처럼, 아이도 갖게 되면 더욱 잠 못 드는 날도 반복되지.”
미묘하게 올라가는 의길의 입꼬리와 눈썹이 풀린 긴장을 나타냈다.
“의길이 너와 장미는 오랫동안 함께하고, 사랑해서 결혼하는 만큼 서로를 아끼니까 절대로 떨어지지 않을 거야. 또 언제나 서로를 위하고 지켜줄 테니까 행복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너희 앞은 순탄치 않을 테지만, 너희는 쉽게 좌절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한다.”
“아빠, 엄마. 감사합니다. 이제…. 괜찮아요.”
어느새 눈물이 다 마른 의길은 살며시 눈을 감았다.
“의길아, 의길아…!”
“응…?”
의길의 귀에 아주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의길아!”
익숙한 목소리를 들은 의길은 살며시 눈을 떴다.
“여기는….”
몽롱한 듯 눈을 반만 뜬 의길은 빛이 넘치는 예식장과 수많은 사람들이 웅성대고 있었다.
“의길아, 왜 그래? 혹시 어디 아픈 거야?”
새하얀 웨딩 드레스를 입은 장미가 의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 맞다. 나는 지금….’
상황을 파악한 의길이 장미에게 미소를 지어줬다.
“별 거 아냐. 잠깐 생각 좀 하느라 그랬어. 정말 미안.”
걱정스러운 표정이 미소로 바뀐 장미는 의길과 함께 연단 쪽으로 몸을 돌렸다.
연단 위에서 밑을 내려다보고 있던 석호가 둘의 시선을 느끼자마자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음, 음. 이제부터 신랑의 절친인 제가…. 축사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럼 먼저….”
사랑하는 장미와 함께, 친구의 축사를 귀에 담는 의길의 눈은 밤하늘의 샛별처럼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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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접수한 내용 그대로 투고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