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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부터 12월까지
소방 시험을 준비하는 목적 중 하나는
강원도 정착이었다.
지방만의 텃세가 조금 걱정이 되긴 했지만
일단은 복잡한 서울보다
유동인구가 적은 지방이 좋아 보였고,
저렴한 가격에 좋은 집이 가장 큰 메리트로 다가오기도 했다.
그렇게 독서실에서 지칠 때 마다 원주 기업도시 사진을 보고 유튭을 봤다.
꼭 내가 소방 합격해서 저 동네에 가서 사리다.
어쩌면 나의 가장 큰 동기부여는
강원도 정착이였다.
어쩌면 내가 바라는건 소방관이 되는 것이 아닌 강원도에 정착할 수 있게 도와줄
적절한 직업을 갖는 것이었다.
그리고 31살에 시작한 수험은 34살에 7월에 합격장을 받으면서 끝이 났다.
그리고 2024년 1월 진짜로 바라던 기업도시 이사가 이루어 졌다.
간절히 바라고 노력하면 이루어지는구나
또 한번 스스로 증명한 순간이었다.
2024년 2월의 나는 소방학교에 입교했다.
한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소방학교와 난생 처음 받아보는 대우를 받으며
소방학교 생활은 시작 됐다.
뭔지도 모르고 나이 때문에 부학생장으로 임명 됐다
다행히 룸메이트인 예진이와 함께 부학생장이 돼서
서로 의지하며 나름 어찌저찌 버틸 수 있었다.
눈이 많이 내리던 2월.
난생 처음 재설도 해봤다.
이 곳에 있는 내 자신이 새롭고 웃끼고 흥미로웠다.
과연 나는 이 곳에 잘 적응을 할 수 있을까.
첫 날밤이 기억난다.
바닥도 벽도 더러운거 같아 몸을 펀히 눕히기 힘들었던 첫 날밤
집에 가서 편안한 침대에서 자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다
곯아 떨어 졌다.
다행히 그 뒤로는 아주 적응을 잘 하여 누가 자지 말라고 해도 잘 잤다.
구급 수업을 시작으로 소방학교 생활이 시작 됐는데.
오랜만에 고등학생처럼 생활하려니 수업시간마다 졸았던 거 같다.
6개월이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3월의 소방학교도 눈이 많이 왔다.
학교 생활은 만만찮았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달리기는 너무 힘들고
구급 수업도 계속 졸고 앉아있고.
대체가 내가 여기서 잘하는게 뭔가 싶을정도로
잘하는 거도 없었고.
부학생장 역할마저도 어색해서 제대로 못하고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었다.
앞으로가! 이 한마디가 어려워서
앞으로 갈까요! 이러고 있고 말이야
나는 이 학교도 이 공간도 소방이란 직업도 강원도란 동네도
모든 것이 다 처음이라 어색했는데 가만 알고보면
다들 서로 아는 사이인 애들도 많고...
모든 것이 다 새로운 나와 다르게 다들 알게모르게 커뮤니티가 있는 거 같다는
생각에 왜인지 모를 배신감(?)들어버리기.
화재 주가 시작했던 4월.
처음 입어본 방화복과 면체는 공포 그 자체였다.
살면서 그렇게 벌벌 떨어본적이 없다.
방화복, 면체 착용 훈련을 하는데.
어떻게 하는지도 잘 모르겠는데 계속 윽박지르고...
생각보다 방화복은 너무 답답하고 면체는 숨막히고...
모든 장비를 착용 한 후에는 눈물이 날 정도로 공포스럽고 답답했다.
태어나서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소방을 선택한게 후회됐고, 내 적성이 아니라는 생각이 본격적으로 시작 된 달이었다.
수업도 못따라가겠고, 모든 것이 벅차게 느껴지는,
진짜로 어디가서도 느껴보지 못한 힘듦에,
이 직업을 선택 한 거에 대한 개인적인 후회와 동시에
이 직업을 진지하게 선택 한 이들에 대한 미안함으로 까지 번졌다.
내가 너무 가볍게 생각했구나. 내가 너무 오만했구나.
하지만 이대로 포기하는건 더 큰 후회로 남겠구나
어떻게든 그냥 일단 버티자라는 생각으로 임했다.
못하고 하기 싫어도, 잘 안되고 안따라줘도 그냥 일단은 버티자.
하기 싫은거 잘못 온 거 같은 길을 버텨내는게 나에게는 훈련이었다.
이 달엔 광희가 얼리어잡터란 프로그램 엠씨로 훈련에 참여하기도 했다.
가온이가 최연소 소방관이라 방송 촬영을 나왔고.
그 덕에 그 날의 훈련은 방송 위주로 돌아가 다른 날에 비해 편안하게 보낼 수 있었다.
화재 첫 달은 난생처음 과호흡을 느끼게 해주기도 했고.
어떠한 그룹에 이렇게까지 쓸모없는 사람이구나 느끼게도 해준 그런 달이었다.
나조차도 내가 쓸모없다 느껴져 너무 속상한 와중에
알게모르게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들도 굉장히 속상하게 느껴졌다.
나는 이 곳에서 과연 내 쓸모를 찾을 수 있을까.
그게 나의 가장 큰 고민이 될 것이고, 미션이 될 것이다 느꼈다.
이 곳에서 나의 쓸모를 찾는 것이 맞는걸까,
아니면 내가 애초에 쓸모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 현명한 것일까.
나는 어떠한 선택을 해야하는가.
나는 진정으로 이 것을 왜 선택하였는가.
화재 마지막 달이었던 거로 기억하는 5월.
신기하게 점점 적응되는 방화복과 여전히 적응 안되는 공포.
그래도 처음 느낀 거에 비해 점점 공포감이 줄어드는게 느껴졌던 달.
아예 못하는 누나로 찍혀서 애들이 날 싫어하는 거도 대놓고 느껴졌던 나날들.
에구 혜정이 수고했다.
못하는거 하느냐 수고했다.
그런 따가운 눈초리 견디느냐 고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학생장이라고 앞에 계속 나서야 해서 민망했을 텐데
그래도 꿋꿋하게 잘 넘어갔다.
너무 힘들었지?
어디가서 이렇게까지 한심한 취급도 처음 받아보자나.
그런 취급 받는거 너무 속상했지.
너무 민망했지.
하루하루 정말 포기하고 싶었지?
정말 매일같이 울고 싶고 답답했지?
길을 잃은 사람마냥 머리가 멍해졌지?
그런데..이런 거도 결국에 다 이유가 있지 않을까?
이런 감정도 느껴보는 것이 언젠가 도움이 되는 날이 있지 않을까?
이 달에는 아마 동기 중 한명이 내 지시에 따르지 않고
공기통을 발로 차는 사건도 있었던 달이었을거다.
누가봐도 나를 무시해서 한 행동이라는데, 별로 신경쓰고 싶지 않았다.
니가 나를 무시한다 한들 나에게 무슨 타격이 오겠니.
실컷 무시해라. 실컷 뒤에서 욕해라.
그래서 어떻게하라고?
너는 내 인생에 아주작은 포션도 차지하지 못할거다.
이런 생각으로 사실 나도 무시하고 별로 언급도 하기 싫었는데
이건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라는 몇몇 때문에 이슈가 되기도 했던 달이었다.
다 무슨소용이니..
모든 일이든 다 지나가리.
아 또 이달이었나.
내가 뚱땡이랑 헤어진게?
이건..그렇게 기록으로마저 남겨놓고 싶지 않다.
6월 구조 수업
답답한거 지나가니 무서운거 남았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고 깊은 물에서 수영하고.
화재보다 구조수업이 괜찮겠지 했는데 만만찮게 힘들었다.
그나마 군기잡는 기간은 끝나서 교관님들이 덜 무서웠다.
그래도 무서웠다.
제일 기억에 남는건
내 살을 4키로나 빼게해준 수영수업.
수영 수업 이후로 만나는 사람마다 얼굴이 왜 그렇게 됐냐며..
그당시 수영 수업 지도 했던 교수님은 아직도 종종 디엠으로
수영하러 가자고 놀리기도 한다.
등하강 수업도 기억에 남는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거도 무섭고 내가 나를 못믿겠어서 그게 제일 무섭고
그런데 신기하게 등하강 시험을 백점 맞았다.
연습할때 한번도 시간내에 이행을 한 적이 없는데
실수도 하나도 없이 깔끔하게 완성.
화재때도 저렇게 좀 에라모르겠다 과감하게 해볼걸..
그랬으면 좋은 결과를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7월 드디어 관서실습.
집 앞 기업 119센터로 배정이 돼 편하게 왔다갔다 할 수 있었다.
드디어 집에서 자고, 집에 머무를 수 있어서 행복했던 7월...ㅎ
춘천 가서 진솔이랑 같이 술도 진탕 마시고
진상이란 진상은 다 떨고 다니고.
근무복도 처음입어보고, 활동복도 처음 입어보고.
기업센터 근무는 너무 재미있었다.
팀원도 너무 좋았고 다들 너무 잘해주셨고
출동도 생각보다 너무 재미있었다.
처음해보는 당직도 생각보다 체질에 맞는 느낌이랄까.
빨리 일을 해보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었다.
처음 배정 받는 곳도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함께이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7월 마지막 주였나.
소방학교 들어가기 전주에 준호를 소개 받았다.
예슬언니한테 그냥 남자 소개해줘 했는데 바로 소개시켜줘서
얼떨결에 받은 소개.
소개 받기 전에 전화부터 길게 했는데
말도 잘 통하고 전화도 재미있고.
오랜만에 느껴보는 설레임과 흥미로움.
처음 준호를 만나서 얼굴을 봤을 땐
무슨 애기가 서있길래 어머 어쩌면 좋아 왜이렇게 어려보여
어쩌지 너무 내 스타일 아니다. 가 제일 처음 든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돼버렸네.ㅎ
8월 2일 졸업, 8월 5일 준호랑 1일, 8월 7일 발령
이벤트 투성의 8월 초.
드디어 돈을 벌게 돼 행복하고,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하고, 학교를 졸업할 수 있어 행복했다.
영월로 발령을 받아 너무 다행이었다.
말도안되게 고성 이런 곳으로 가게 될 까 너무 걱정했는데
다행히 원주에서 출퇴근 할 수 있는 거리었다.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나던 여름 영월에 있는 모든 벌집을 따러 다녔다.
데이트도 너무 즐거웠고 벌집 따러 다니는 거도 즐거웠고
여러모로 기분 좋았던 달로 기억된다.
여전히 해결이 되지 않은 문제에 힘들기도 했고 마음고생도 많이하고
혼자 많이 울었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시간들과 행복한 날들은
온전히 행복만 했다.
한켠의 슬픔이 나를 지배하게 허락하지 않았다.
여전히 영월에서 벌집을 따러 다녔고, 종종 뱀도 잡으러 다녔다.
벌잡는 건 적응이 됐는데, 뱀음 진심으로 못잡겠다..
어디에 쓰는 건지 모를 공무원증도 받았고
대부분의 시간을 준호와 보냈지만 종종 친구들도 만나러 다녔다.
어느새 만삭인 과장이와 청객이도 만나러가고.
예진이도 만나고.
일하고 비번엔 열심히 놀고
일하고 놀고 일하고 놀고
자기계발이라고는 없이 한맺힌 사람마냥 열심히 놀았다.
10월도 사실 비번에 열심히 놀았다.
10월은 열심히 놀기도 했지만 초과근무도 많이한 달이었다.
사진을 보니 준호랑도 여기저기 많이 간 거 같고
일도 바빴던 거 같고.
준호랑 보내는 시간이 왜이렇게 평안하고 행복한지.
준호 너무 좋다.
자기계발도 하긴 해야하는데
이렇게 노는게 재밌고 준호랑 있는게 즐거워서 어쩌지.
이 즐거움 계속 느끼고 싶은데.
당분간 질릴때까지만 이렇게 놀고 즐거워볼까?
그 뒤에 공부하고 그래도 늦지 않지 않을까?
라는 생각들로 보냈던 10월로 기억한다.
11월엔 이벤트가 많았다.
아빠 생일도 있었고
준호 헬스던전 시즌2 연재를 시작했고
내 생일도 있었다.
아빠 생일쯔음엔 내가 인생 첫 교통사고(?) (심지어 버스랑..)가 나서
차 수리 할 겸 안성에 케이크와 돈봉투 들고가 축하해 주고 왔다.
나름 맞춤 케이크를 해서 간건데 별 관심도 없어보여서 서운했다.
그렇게 축하해 주는데
일죽면 어머님이 자기 자식들이 아빠한테 100만원씩 선물 준 동영상
보여주면서 자랑하는데.
대체 무슨 의도인지 굉장히 무례하다 느꼈고 불쾌했다.
좋은 어른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전형적인 고슴도치 엄마라 자기 자식 관련 된 일 외엔 생각을 깊게 못하는 느낌.
가을이 가버리기 전에 반계리 은행나무도 보러 다녀왔다.
11월 21일 내 생일엔 속초에 가서 1박을 하고 오기도 했고
준호가 헬스던전 시즌2를 시작해서 축하해주기도 하고.
추워지기 전에 가자며 애버랜드도 다녀왔다.
호러메이즈도 하고 왔는데 무서워서 준호 등에 얼굴 박고 다녀서 아무것도 본 것이 없다.
돈아깝다. 다음부터 절대 안해야지.
이렇게 11월도 행복했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지겨운 문제가 있었지만
그 문제는 그 문제대로 생각하되 내 일상의 행복은 지켰다.
9월이후로 출동은 거의 없어서 행정직 처럼 일했다.
어느 순간부터 센터 사람들과 사이가 좋지 않아졌다.
사실 나는 딱히 무언가 한건 없는데 손정아 반장을 만난 이후로
꼬인 거 같은 느낌?
만나자마자 정치질 하길래 무시했더니 어느새 내가 왕따가 된 기분이랄까
근데..뭐 그렇게 냅뒀다.
그냥 그렇게 사는 사람인가보지
손정아를 만난 것이 나에게 무슨 나비효과가 되어 내 소방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겠지만, 그거 또한 내 운명이겠지
굳이 머리아프게 저 여자애와 싸우고 싶지 않았다.
니가 뭐라한들 난 그냥 내 인생 행복하게 사리다.
출동이 거의 없던 달이었는데, 기억에 남는 출동 하나가 있다.
아이가 헬륨풍선을 놓쳐서 전봇대에 걸렸는데 헬륨풍선이 전기랑 만나면 폭발하게 되는거 아니냐며
울면서 신고를 했다고 한다.
이런거 까지 소방에서 처리해야하나? 라는 생각을 했는데
전봇대 올라가서 풍선 날려보내고 왔다.(팀장님이 하셨다)
사안에 비해 위험하게 움직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걸 처리 하지 않았다가 혹여나 작은 확률로 일이 생기면 큰일난다며
처리하고 가야한다 했다.
참으로 이상한 시스템이다.
소희랑 오랜만에 만나서 놀았다.
분장도 많이하고, 아파트 뮤직비디오도 찍고, 슈스케 루그 죄 패러디도 하고
요리도 해먹고 너무 바쁜 하루였다.
너무 재미있게 잘 놀았던 거 같다.
그 날 신나서 올린 인스타 스토리인데 예쁘게 다꾸한 느낌이라
아래 사진 첨부해 보았다.
[새로움]
2024의 키워드이다.
2024년을 새로운 도시, 새로운 집에서 시작했고,
새로운 직업군에서의 새로운 일을 시작했고,
새로운 사람들로 가득 채운 한 해였다.
모든 것이 새로웠던 한 해라 나에대한 새로운 점도 많이 볼 수 있었다.
나는 늘 어디가서 쓸모있는 사람이라 느꼈고 뭘하든 하면 다 잘했고
뒤쳐지는 법이 없었는데. 여기서는 한없이 뒤쳐졌고 쓸모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병따개인데 와인샵에 가있는 느낌이랄까.
아니면 와인오프너인데 포장마차에 놓여있는 느낌이랄까.
아니면 나는 영어 교재인데 국어 학원에 잘못 배달 된 느낌이랄까.
와인샵에 맥주 병이 오는 날을 기다려야하는걸까
포장마차에 와인을 들고오는 손님을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국어학원에 영어를 배우고 싶은 학생을 기다려야 하는 걸까.
나는 할 수 있는데 안한것인가 아니면 하려 해도 못하는 것이었던가.
이거도 사실 잘 모르겠고.
나는 그 곳에가서 도태 된 것일까 아님 성장을 한 것일까.
어떤 단어가 더 어울리다 할 지도 모르겠다.
이상하리 만큼 되는 것이 없었고.
나는 모든 하면 다 된다 모든 하면 다 잘할 수 있다라는 말을 믿고 늘 그렇게 살아 왔는데.
열심히 하려해도 열심히도 안되고 하면 다 된다 했는데 굳게 먹은 마음만으로
되지 않은 것도 있다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나랑 맞지 않는 일인 것일까. 그래서 그런 것일까.
여전히 이 곳에서의 나의 쓸모에 대한 고민이 많다.
내년엔 이 고민에 대한 답이 나올까?
한가지 다행인 점이 있다면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죽지 않았다는 것
미안하고 민망한 마음이 있긴 하지만
내가 이 곳에 안맞는 사람인거지 내가 못난 사람이란 생각은 전혀 들지 않고.
직장에서 힘든 것과 상관없게 비번날은 즐겁게 보낼 수 있다는 것.
이런 부분들에서 혜정이 너 많이 성장했다 라고 느꼈다.
내년엔 내가 나의 쓸모를 찾을 수 있을까.
내년엔 어떠한 행복이 나에게 있을것이며
어떠한 불행이 나에게 있을것인가.
내년에 나는 얼마나 더 성장을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