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나마 적어보는 이 날의 일기.
이 날따라 서무 일도 너무 많고 정신이 없었다.
뭐만 하려고 하면 여기서 불러 저기서 불러
하는거 없이 바쁘고 정신없는 자리가 서무 자리인 거 같다.
이 날은 안전하기좋은날도 나가고 훈련도 나가고.
농수로에 빠진 할머니 찾으러 다니고.
출동에 훈련에 홍보에 서무일에 세상 정신이 없는 하루였다.
농수로에 빠진 할머니 찾으러 갔을 때
사다리가 필요 할 것으로 판단 돼
펌프차에 사다리를 가지러 갔다.
김주성 부장님이 사다리를 위에서 내려주고 아래서 받았는데
별 생각없이 그걸 들고 걸어가려고 하는데
부장님이 너 뭐해? 하더니 사다리를 뺏어서 들고 뛰어 가셨다.
아 들고 뛰어야 했구나..ㅠㅠ
순간적으로 들고 뛸 생각보다 그냥 들고 옮겨가야지 하는 생각밖에 안들었고
몸이 먼저 반응한다거나 그런 일은 없었다.
사다리 들고 뛰어가는 부장님 뒤를 뛰어가는데
농수로 근처에 가서도 뭔가 나 혼자만 딱히 할 일이 없는 느낌
사실 뭘 해야할지도 잘 모르겠는 느낌이었다.
내가 정말 여기서 너무 도움이 되는 사람이 아니다. 라는 생각과
아 진짜 나는 왜 뭘 해야할지도 모르겠지?
나 정말 너무 이 곳과 안어울리는 사람이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무언가 도움이 되고 싶은데...
너무 자괴감이 들더라..
그래도 이게 다 경험이겠지?
이런 경험이 쌓여서 저 사람들도 지금 잘 하는 거겠지?라고
애써 마음을 다독이며 귀소하는 펌프차에 올라 탔다.
다음부터는 정신 똑바로 차리고 무조건 신속하게 움직여야겠다 다짐하고
엄청난 자괴감이 몰려드는 마음을 붙들고 귀소를 했던 거 같다.
이 날의 하이라이트는 이 거 였다.
드디어 첫 화재!
솔직히 방화복 입고 출동하는 중에도 진짜 화재가 아니겠지?
하는 마음으로 갔던 거 같다.
'선착 펌프 제외 전 차량 귀소'
라는 무전이 나오겠지? 하는 생각으로 갔던 거 같다.
그런데 점점 흘러나오는 무전이
진짜로 화재가 발생했음을 누구나 유추 할 수 있게 해주었고,
나 진짜 화재 현장에 가보는 건가? 하는 생각으로 면체착용까지 완료 했다.
도착하니 정말 정신이 없었다.
한상대 주임님이 따라오라고해서 따라 가는데 산 쪽으로 가더라
그런데 따라가다가 산을 미처 못 올라가고 주임님을 잃어버렸다.
아 너무 수치스러웠다 ㅠㅠ
아니 올라가고 싶은데 뭐 잡고 올라갈 거도 없고
발 딛을 곳도 없는 언덕을 방화복에 공기통까지매고 어떻게 올라가냐고
주임님은 대체 어떻게 올라가신거냐고...
계속 올라가려는 도전을 하는데 발이 계속 미끄러지고
주임님도 시야에서 사라지고
옆에서는 다른 모르는 소방관들이 열심히 불을 끄고 있고
정말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너무 창피했다
이 작은 언덕도 못넘는 내 자신이.
주임님 잃어버리고 안되겠다 싶어서 팀장님 쪽으로 갔는데 어느새 팀장님도 잃어버리고
멀뚱멀뚱 서있게 됐다.
멀뚱멀뚱 서 있는데 바로 앞에서 화재진압을 하려 방수를 하니 갑자기 뿌연 연기가 온 세상을 덮었고.
바로 앞도 안보이는 상태가 됐다.
아 차라리 이렇게 아무것도 안보이는 상태가 마음이 편하겠다.
이렇게 방화복에 면체까지 야무지게 착용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 하고 있는 내 자신을 남에게 들키느니
차라리 연기 속에 숨는게 낫겠어.
하지만 연기는 금방 사라졌고 나의 부끄러움은 금방 들어났다.
부족한 실력은 현장에서 그렇게 쉽게 가려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다 산에 있는 한상대 주임님 발견!
이번엔 어떻게든 올라가서 뭐라도 도우리 하는 마음으로
호다닥 올라가 뒤에서 호스를 끌어주는 역할을 했다.
이 작은 거라도 도울 수 있어서 다행이야.
그렇게 호스를 끄는데 공기통이 울리고 공기통 교체하고 온다니까
주임님이 그냥 면체를 벗고 하란다 ㅠㅠ
그 말듣고 면체 벗었다가 실시간으로 건강이 안좋아지는 느낌을 받고...
공기통 갈고 오겠다 하고 공기통 갈고 왔다!
오는 길에 갑자기 속이 너무 울렁거려서 토가 올라왔다.
면체도 쓰고있는 와중에 토를 하면 안되기도 하고 여기 와서 누군가에게 토까지 하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어서
애써 토를 삼켰다.
그날 밥을 너무 많이 먹어서인지
연기를 마셔서 인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2시간만에 화재가 완진이 돼서 나머지 정리는 선착대에 맡긴 채 센터로 귀소를 했다.
뭔가 일을 열심히해서 뿌듯하다? 하는 느낌보다 그냥 아 너무 자괴감 든다
너무 부끄럽다 라는 생각이 몰려들었다.
하 나는 어쩌면 좋을까
그만둬야하나?라는 생각도 들고
내가 이 곳에서 잘하는 것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깊어졌다.
그 와중에 새벽에 한번 더 화재 출동.
아파트 정자에서 전기화재로 추정되는 불이났는데
도착했을 땐 아파트 주민이 소화기로 진화를 해 논 상태라 불꽃은 볼 수 없었다.
잔불 확인만 하고 돌아왔던 거 같다.
심장이 벌렁거려 이 날 잠을 잘 수나 있겠나 했지만
혼란스러운 마음과 깊어지는 고민과는 별개로
잠은 잘 잤다는
나름의 해피엔딩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