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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창수, 드디어 교회를 만나다
- 사춘시기절, 처음 간 교회, 그냥 마냥 슬픈 곳이었다
- 긴긴 방황의 시작, 성당 다니기
- 교회는 내게 악마가 살던 곳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 죽기보다 싫은 교회 다니기
- 삶의 패배, 교회에 조금씩 얼굴 디밀기
- 교회 다니는 사람은 모두 지루하기만 했다
- 내가 하고 싶은 걸 못하게 하는 교회 사람들, 방황은 더 길어지고
- 어쩌다 얼굴 한번 빼꼼, 그리고 아주 먼먼 존재로만 여긴 교회
- 거리에서 찬양하는 사람들은 내겐 피해만 입히는 존재들
-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교회를 거부함으로 인해 이단사이비에도 빠지지 않았다는
- 나를 교회로 부르기 시작한 건, 마음의 아픔
- 위선이 가득했던 교회 목회자에 대한 실망 때문에 또 떠난 교회
- 나를 교회로 다시 부른 건 생각지도 못했던 교회 출판사 입사
- 나의 마음의 병 때문에, 교회에서 강제퇴사당하고, 또 떠나야 했던 교회
- 이리저리 방황하던 나에게 신앙에 대해 깊이 알게 해 준 건 동네 조금만 개척교회
- 신앙은 자라나고 점점 더 신앙심이 깊어질수록 아쉬웠던 교회의 모임
- 교회모임을 하고 싶어서 몇 년을 열심히 다니다 떠나게 되었던 조그만 개척교회
- 코로나가 닥쳐오고 나에게 특별한 문제해결 능력이 생겼다
- 텔레레터의 능력이 점점 더 발전되고 나는 모임이 아닌 텔레레터로 사람들과 소통하게되었다
- 결국, 지금 다니는 교회에 정착하게 되어버린 나
- 모임은 할 수 없고, 교회도 주일예배 가는 것이 다이지만, 매일매일 텔레레터로 세상사람들과 소통한다
- 나는 믿음이 여전히 작은 사람이요, 교회에 정착한 지도 오래되지 않은 작은 성도
- 전창수, 드디어 교회를 만나다
- 오늘도 행복한 신앙생활, 오늘도 행복한 텔레레터
[전창수, 드디어 교회를 만나다]
거리에서 찬양하는 사람들은 내게 피해만 입히는 존재들
거리를 다니다 보면, 예수님을 믿으라면서 천국과 지옥 얘기를 하면서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들이 있다. 일단, 그런 사람들은 나를 불쾌하게 한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나는 완전히 무시해 버린다. 본인도 천국에 갈 수 없으면서, 내게 천국과 지옥 얘기를 하는 건, 오만 아닌가. 그래서, 나는 그런 사람들이 그냥 싫다. 거리에서 찬양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거리에서 찬양하는 마음가짐이 누구가를 지옥에서 건져내고자 하는 오만한 마음가짐이라면 그것은 사람들을 불쾌하게 한다. 또한, 자신의 교회를 다니러 하기 위해서 하는 전도나 찬양도 마찬가지로 사람을 불쾌하게 한다. 진짜 찬양과 전도는 본인이 예수님을 믿는 마음이 정말로 행복해서, 그래서 그 예수님 덕분에 행복해져서 다른 사람들도 예수님을 믿고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해야 마음이 전해진다.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한 마음을 갖는 것이고, 그것이 예수님이 이 세상으로 내려오신 이유다. 행복한 마음을 갖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의 마음이 전해질 때 가능하다. 돈 때문에 행복할 수도 있고 뭔가 큰 것을 이루었을 때도 행복할 수 있으나, 그것 때문에 행복한 마음이 들 수는 없다. 그것은 어느 순간, 그것들이 사라지면, 행복한 마음도 같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의 마음 덕분에 행복한 마음이 든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평생 행복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 찬양을 할 때도 전도를 할 때도 이 행복한 마음이 없으면, 상대가 무시했을 때 화만 나게 된다. 행복한 마음으로 전도를 하고 찬양을 하면, 상대의 어떤 태도에도 긍휼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마음이 생기게 된다. 진짜 찬양과 진짜 전도는 이런 행복한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전도나 찬양은 그냥 내게 피해를 입히는 존재일 뿐이다. 그래서 거리에서 찬양하는 사람들은 내게 피해만 입히는 존재들이 되었다. 진짜 행복하게 행복한 마음으로 찬양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면, 그때는 나도 같이 행복해진다.
[전창수, 드디어 교회를 만나다]
교회 다니는 사람은 모두 지루하기만 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아주 예전에 교회를 다니던 사람들은 항상 충고하느라 바빴고, 조언하느라 바빴다. 지금도 길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천국과 지옥은 꼭 있다면서, 교회를 안 다니면 지옥에 갈 것처럼 얘기하는데, 그렇게 돌아다니는 사람들한테 묻는다. 당신은 천국 가는 방법을 아는가? 당신은 천국에 갈 자신이 있는가? 당신은 천국에 갈 수 있다는 확신이 있는가? 지옥 얘기를 함부로 하는 당신은 결국, 나쁜 사람이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사람이다. 사람을 지옥에 보낸다면, 하나님은 결국 사람을 불행하게 하기 위해서 만들었다는 말인가?
교회 다니는 것이 특권이 아니다. 교회 다닌다고 해서 더 우월한 사람이 아니다. 목사가 정말로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 또한 자만이고 오만이다. 교회를 다닐수록 또 목사일수록 더 낮아져야 하고 더 겸손해야 하고 사람들을 더 섬겨야 한다. 그런데, 당신이 왜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사람들보고 죄인이라고 하고 있는가? 왜, 당신은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사람들을 정죄하고 있는가?
교회 다니는 사람은 모두 지루하기만 했다. 그래서 지루했다. 충고하고 조언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경건한 것만 강조했다. 그래서 다니고 싶지 않았었다. 교회도 좀 재미있어지고 활기차고 즐거워야 교회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전창수, 드디어 교회를 만나다]
교회는 내게 악마가 살던 곳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교회는 악마가 살던 곳이라고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다. 교회를 가면 지루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너무 불친잘하여, 교회를 가기가 싫었던 적도 있었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교회는 내게 악마가 살던 곳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교회를 가면, 많이 친절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불친절한 교회가 있어서 그 교회들은 나를 불편하게 한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중에서, 적어도 교회에서 오래 다녔고, 교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면 행복하게 교회를 다녀서, 그 마음이 그냥 잠깐 방문한 사람에게도 전해질 수 있을 정도의 친절함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번 해본다.
[전창수, 드디어 교회를 만나다]
긴긴 방황의 시작, 성당 다니기
물론, 내가 다른 종교를 욕하거나 또는 다른 종교를 무시할 자격은 없다. 불교든 원불교든 천주교든 모두 하나님의 관리하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다른 종교를 그냥 두시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기에, 하나님이 관여하지 않은 종교는 없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든지 안 믿든지, 모든 종교는 하나님의 관리하에 있기 때문에, 그곳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사람은 교회로 나아와서 예수님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할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계속해서 다른 종교에 남아 있을 것이다. 기독교와 다른 종교와의 차이는 알고 보면 정말로 간단하다.
나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성당을 다녔다. 4년 동안 다니다가 대학교 때 잠깐 더 다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나는 성당에 다니는 것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그냥, 집에 있는 게 힘들어서, 또 갈데가 없어서 그냥 갔던 기억이 난다. 또한, 사춘기 시절 너무도 외로워서 성당에 다녔다. 그러나, 나는 거기서 내 마음을 채울 수는 없었다. 오히려, 더더 긴 방황의 시간이 늘어났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에야 알게 된 가장 중요한 방황의 이유 중의 하나는 성당은 성당의 목사격인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하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자신의 죄를 고백해야 하는 존재는 오직 한분, 예수님 뿐이다. 법적으로 감옥에 갈 수 있는 죄를 짓지 않는 한은,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존재는 사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게다. 그리고 죄를 사하여 주는 것도 사람이 인위적으로 뭔가를 지시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온전히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함으로서 죄를 사하게 되는 것이고, 그것은 하나님과 나와의 온전한 만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 고해성사가 나를 오히려 방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이것을 쉽게 말해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지 못했기에, 나의 방황은 길어졌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중학교 때부터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기도드렸다면, 그래서, 하나님을 중학겨 때 이미 마음으로 만났다면, 나의 인생은 분명 달라졌을 것이다.
비록, 오늘날, 내가 정말 좋은 글을 쓴다고는 하지만, 나는 인생에서 실패한 사람이고, 지금도 돈이 없어서 하루하루가 먹고 살 걱정에 힘든 사람이다. 이 인생이 중학교 때 하나님을 이미 만났었다면, 내 인생은 분명히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그렇게 내 인생의 긴긴 방황은 성당을 다니면서 더욱 더 길어졌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도 교회를 열심히 다닌다. 다시는 내 인생에 후회는 없기를 바라면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다. 그렇게 살아가는 내 인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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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교회로 다시 부른 건 생각지도 못했던 교회 출판사 입사
나를 교회로 다시 부른 건 생각지도 못했던 어떤 대형교회의 출판사에서 일하게 되면서부터다. 학습지 영업교사로 하던 시절에, 너무 힘들어서,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다가 교회의 출판사에서 출판사 직원을 뽑고 있어서 지원을 했는데, 그 출판사에서 일하게 된 것이었다. 물론, 교회 내에 출판사라서 크지는 않았고, 이것저것 잡일들도 많이 있었지만, 나는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그렇게 나는 비록, 2달 조금 넘는 기간 동안만 일하고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그 교회를 떠나게 되었지만, 그렇게 나의 한때는 정말 행복했던 한때였고, 그때부터 나의 신앙생활은 시작되었다. 비록, 그 교회는 그렇게 떠났지만, 나는 그때의 그 입사 덕분에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나의 신앙생활은 시작되었다.
[전창수, 드디어 교회를 만나다]
나를 교회로 부르기 시작한 건, 마음의 아픔
내가 너무 힘들고 삶이 의미없고, 세상이 점점점 싫어져 갈 때, 나는 다시 교회를 찾았다. 그냥, 예배 드리면 조금이나마 삶의 무게를 내려놓을 수 있어서, 등록은 하지 않고 이 교회 저 교회 가고 싶은 곳으로 가서 예배를 드리다가 그러다가 내가 한때, 정말 열심히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던 조그마한 교회를 만났고, 그렇게 나의 신앙생활은 시작되었다. 지금은 나의 특수한 상황상, 인터넷으로 예배방송을 하면서도 우리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교회의 예배를 자주 찾아다닌다. 수요일도 가고 금요일도 가고 일요일도 가고 가끔은 새벽예배를 가기도 한다. 예배시간이 다르다 보니, 한곳의 교회로 가지는 않지만, 내가 정착한 곳은 지금은 한 교회이다. 그렇게 나의 마음의 아픔, 삶의 힘듦은 나를 교회로 안내했고, 지금은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드디어, 교회를 만났다.
[전창수, 드디어 교회를 만나다]
나의 마음의 병 때문에, 교회에서 강제퇴사당하고, 또 떠나야 했던 교회
나는 그렇게 교회를 떠났다. 그리고 나의 신앙적 방황은 그때부터가 본격 시작되었고, 그리고 나는 차츰차츰 하나님이 뜻하시는 무언가를 이룰 준비를 그때부터 하고 있었다는 것을 지금에야 알았다. 그렇게 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태어나고 있다.
[전창수, 드디어 교회를 만나다]
내가 하고 싶은 걸 못하게 하는 교회 사람들, 방황은 더 길어지고
사람은 어렵고 힘든 고비들을 넘기면서 성장한다. 그러나, 교회에 다니다 보면, 항상 안정적인 길만 선택하고 힘든 상황들은 한번도 겪지 않으려 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때로는 여행도 하고 또 문화생활도 즐기고 또한 노래나 춤을 통해 스트레스를 푸는 것도 필요한데, 이 모든 것을 통해 사람은 경험을 쌓아서 세상에 대해서 알고 세상에 적응해 가는 과정들이다. 그러나, 내가 다녔던 어떤 교회 사람들은 아무것도 못하게 하고 그냥 교회, 집, 직장인의 경우는 일터, 학생의 경우는 학교, 이렇게만 하면 된다고 강요를 하기도 한다. 나는 여기서 분명히 얘기하지만, 그것은 잘못되었다. 사람이 교회만 다니고 다른 걸 아무것 안 하고 일만 하는 순간, 사람은 우울증에 빠지고 인생의 의미와 즐거움을 잃게 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전도하라는 사명을 주실 때, 교회에 와서 교회만 살리라고 하지 않으셨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하길 바라셨다. 그렇다는 것은, 사람이 교회, 집, 회사만 다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활동들을 같이 하면서, 많은 사람도 사귀고 다양한 활동들도 하면서, 자신이 다니는 교회를 알리고, 이 세상의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얘기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행도 필요하고, 문화생활도 필요하고, 영화를 보는 것, 또 사람들과 취미생활을 즐기는 것 모두 필요하다. 그것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일구어 가는 것이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교회만 1주일 내내 가면서, 다른 활동은 아무것도 안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무의미한 교회생활이고, 무의미한 전도다.
내가 하고 싶은 걸 못하게 나는 교회 사람은 때문에 나의 방황은 더 길어졌을 뿐이고, 교회로 오기까지 정말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것은 교회에서 전도를 잘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고, 자신의 방식을 강요하기만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그냥 사람 자신의 뜻인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사람들은 진짜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알고, 또한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효과적인 전도를 하는 사람들이다. 그것이 진짜 전도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방법이다.
[전창수, 드디어 교회를 만나다]
사춘기시절, 처음 간 교회, 그냥 마냥 슬픈 곳이었다
중학교 때 처음 간 교회의 분위기는 너무도 우울하고 슬픈 곳이었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랬다. 안 그래도 의기소침해 있는 나에게 그런 분위기의 교회를 다니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몇 번 가다가 가지 않았다.
지금 나는 교회를 정하고 다니고 있다. 물론, 내가 해야 되는 일이 있어서 인터넷 예배를 드리는 경우가 많다. 내 상황과 사정상, 온라인예배를 드리고 현장예배는 이제 조금 힘들 것 같기는 하다. 상황이 조금 어렵다면, 온라인예배라도 꼭 드려야 하는 것이 성도의 임무다.
때로 인생은 어디서 어떻게 바뀌어 갈지 아무도 모른다. 내가 교회를 다닌 것도 마찬가지다. 중학교 때 처음 교회에 갔고, 교회를 다니기 싫어하고, 예배 보는 것을 싫어했던 내가 어느덧 어느 교회의 교인이 되었고, 그리고 일요일마다 예배를 드리는 기쁨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그렇게 내 인생에는 정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인생은 정말 모른다. 내일의 나에게도 어떤 인생이 다가올지 모른다. 기도를 하고 예배를 드리고 찬양을 드리면 더 좋은 날들이 올 거라 믿으며 오늘을 살아간다.
[전창수, 드디어 교회를 만나다]
삶의 패배, 교회에 조금씩 얼굴 디밀기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라고 완벽한 인성을 갖추었다고 할 수는 없다. 사람이기에 언제나 실수는 하기 마련이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삶이 패배했기에, 교회에 조금씩 얼굴을 디민다. 그러다가, 교회에 조금씩 얼굴을 디밀다가 교회를 다니게 되고, 그렇게 삶이 계속된다. 삶은 패배했고, 교회에 조금씩 얼굴을 디밀다가 교회에서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들이 많으면, 그 교회에 완전히 정착하게 된다. 그렇게 정착을 하는 듯 했지만, 나는 결국 인터넷 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내 성격이 누군가와 어울리는 것을 못해서, 그냥 인터넷 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교회에서 현장예배를 드리는 것은 내게 스트레스다. 나의 모든 상황이 조금 그렇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인터넷예배, 즉 가정예배를 드리는 사람으로 평생 남게 되었고, 이미 교회 담임목사님한테 가정예배를 드리겠다고 문자도 보냈다. 답장은 없었지만, 문자는 확인하셨을 거다. 나는 그냥 인터넷 예배를 드리는 교인으로 살아가야겠다는 결심을 해버렸다. 그것이 나의 운명임을 이젠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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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교회를 거부함으로 인해 이단사이비에도 빠지지 않았다는
사실, 전도할 때 경계해야 할 것이 어설프게 전도하는 것이다. 신앙에 대해서 깊지도 않고, 또한 어설프게 지옥갈까봐 걱정하면서 하는 전도는 결국, 사람을 시험에 빠뜨리게 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교회를 거부함으로서 오히려 이단사이비종교에도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교회에 대해서 어설프게 알았다면, 오히려 이단사비이종교의 접근은 쉬워진다. 지옥 얘기를 듣고 이단사이비종교로 넘어오는 사람들은 마음이 쉽게 취약해져 있으며, 신앙심에 대해서 키우려 하기보다는 인생이 불행해서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교회에서 지옥얘기를 하면서, 예수님 안 믿으면 지옥에 간다는 교리가 주된 교리인 교회들에서 이단사이비종교로 빠지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내가 계속 얘기하지만, 지옥갈까봐 걱정하면서 하는 전도는 결코 전도라 할 수 없다. 그것은 사람을 겁을 줘서 하는 어리석은 마음이며, 자신의 우월감에 취해 하는 오만한 전도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는 전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이단사이비종교에 빠져버리게 된다. 우월감을 이용하는 것도 이단사이비종교의 수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나는 천국가기 위해서 선택받은 사람이고, 너는 지옥갈 사람이야. 그러니까, 우리 교회로 와야지, 천국에 갈 수 있어, 라는 게 그들의 주된 수법이다. 우리 교회로 오면, 너도 구원받고, 너도 우월한 사람이 될 수 있어, 라는 암묵적 암시가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자만심을 일으키고 그렇게 이단사비이종교에 빠지게 된다. 그렇듯이, 교회의 교리가 지옥갈 사람을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한다는 교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면, 진짜 믿는 사람보다는 우월감과 자만에 도취되어 전도하는 사람이 많아지기 때문에, 이단사비종교에 빠지는 사람이 많아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전도할 바엔 차라리 안 하는 것이 그 사람을 위한 길이다. 아예, 교회에 관심이 없고, 교회에 다닐 생각, 종교 같은 거 가질 생각도 안 하면, 차라리 이단사이비종교도 빠지지 않게 된다. 전도는 그냥 아무런 전략도 없이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의 인생전체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하는 것이 전도다. 그러기 위해선, 이단사이비종교가 어떤 곳인지도 알아야 하고, 어떻게 접근해 오는지도 철저히 알고 있어야 한다. 그것을 모르고 전도를 하고 있다면, 그것은 제대로 전도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전도를 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것을 먼저 하는 것이 전도의 사명이다. 무작정 전도해서, 그 사람의 인생을 망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 다른 사람의 인생이라고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
[전창수, 드디어 교회를 만나다]
어쩌다 얼굴 한번 빼꼼, 그리고 아주 먼먼 존재로만 여긴 교회
예전에 교회는 마음에서도 멀었고 또 가려고 해도 너무 멀어 보이기만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정말 가까운 곳에 교회가 있고 마음의 거리도 가깝다. 그래서, 나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시간이 좋다. 그렇게 나는 예배를 보는 사람이 되었다.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인생이 의미없어 보이고, 내 자신이 초라해 보이고, 삶을 살아갈 용기도 생기지 않는다. 예배를 드리고 용기를 얻어야, 1주일을 살아갈 힘이 생기고, 또 삶의 의미도 생긴다. 그리고 예배를 드리고 나면 내 자신이 더 이상 초라해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예배는 내게서 정말 중요한 삶의 많은 부분이고,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내 삶은 아무런 존재가치가 없어진다. 그래서, 예배는 내가 행복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나의 삶이다.
[전창수, 드디어 교회를 만나다]
위선 가득했던 교회 목회자에 대한 실망 때문에 또 떠난 교회
지금은 교회에 정착해서 예배를 열심히 드리고 있지만, 한때는 예배를 가다 말다 한 적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목회자에 대한 실망이다. 내겐 그것들이 위선으로 보였다. 섬김을 실천해야 하는 목회자가 섬김이 아니라, 성도들을 무시하고 자신의 의를 내세워서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있어서 인기에 영합하여 그 인기에 도취되어 있는 목사가 있는가 하면, 또한 성도들에게는 자원봉사를 하라고 하면서, 정작 자신은 자원봉사 따위는 안 하고 권위주의에 빠져서 성도에게 뭔가를 시키는 게 일인 목회자가 있는가 하면, 정말 사람이 어려울 때 도와줄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목회자도 있었다. 그렇게 위선이 가득헀던 목회자들 때문에 나는 교회를 나가지 않았던 순간이 있었다. 요즘도 그런 목회자들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목회자들이 있다면, 나는 그분들에게 목회를 이제 그만두라고 권유하고 싶다. 그런 목회자는 성도에게 교회를 떠나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위선 가득했던 목회자에 대한 실망 때문에 교회를 떠난 적도 있었다.
[전창수, 드디어 교회를 만나다]
죽기보다 싫은 교회 다니기
지금은 교회를 다니기 싫어서 안 다니기보다는 나의 여러 가지 상황상, 교회를 갈 수가 없는 상황이 만들어져서, 인터넷 예배로 매주 예배를 대체한다. 인터넷 예배마저 드리지 않을 수는 없어서, 매주 인터넷 예배를 드리기로 하고 교회의 현장예배는 나가지 못한다. 비록, 공공근로로 근근이 겨우겨우 먹고 사는 처지이긴 하지만, 사실상 내가 처한 상황은 너무 복잡해져 버려서, 이걸 다 설명하기는 어럽다. 그러나, 어쨌든, 나는 지금 교회를 다니기 싫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도 한때는 교회를 다니기 싫어한 적이 있었다. 교회를 다니느니, 차라리 죽는 게 더 낫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만큼 교회는 나에게 있어 공공연한 내부의 적이었다. 너무 지루한 설교들, 딱딱한 사람들이 있고, 나같은 것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 듯한 느낌에, 그렇게 많은 실망을 했던 것도 있었고, 또한, 일요일마다 교회에 가기 위해 외출을 하려니, 또 귀찮은 것도 있었다. 그렇게 나는 죽기보다 싫은 교회 다니기였던 나의 예배생활이 어느 날부터, 정말 예배를 듣지 않고는 힘들게 되었다.
인생이 정말 힘들고 앞날이 캄캄하고 매일매일이 지옥 같은 삶일 때, 인터넷으로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으면서 위안과 희망을 얻었고, 점점 더 나는 예배를 가고 싶어하는 사람으로 바뀌게 되었다. 설교는 내게 희망을 주었고, 예배는 내게 기쁨을 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 인생이 바뀌어가기 시작했다.
지금도 예배는 내게 즐거움을 주고 기쁨을 주고 위안을 주고 마음의 평안을 준다. 그래서 나는 인터넷 예배로라도, 예배를 드리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렇게 내 인생의 신앙생활이 시작되었고, 그렇게 내 인생은 또다른 미래를 향해 나아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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