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 영암선(榮巖線) 순직위령제(殉職慰靈祭) 4289년 1월 14일(1956년)
영암선(榮巖線) 개통식을 2일 앞둔 1월 14일 상오 11시 중 영암선(榮巖線) 금수역 중간지점인 관암(冠岩) 제일터널 앞에서 영암선(榮巖線) 철도건설공사도중 순직(殉職) 공병대원(工兵隊員) 1명과 일반 노동자23명 도합 24주(柱)의 합동위령제가 간소하나 엄숙히 거행되었다.
춘양(春陽) 방면에서 두 개의 짧은 터널을 지나 관암(冠岩) 제일터널 직전 바른편 절벽아래 구비쳐 흐르는 낙동강(洛東江) 협곡이 내려다보이는 선로(線路) 바로 옆에 길이 약 2미터 가량의 검은 대리석묘비가 기차 문에서 내다보이기 쉽게 세워져 있다.
가끔 지나가는 기차소리를 빼놓고는 인가하나 없이 오직 산새소리와 산골짜기를 타고 오는 바람소리뿐 적막하기 짝이 없는 산간벽지 절벽위에 세워진 이 비석왼편에는 조국 부흥건설의 흥망을 걸머지고 불철주야로 역사적인 이 건설선(建設線)의 고귀한 초석(礎石)으로 사라진 24주의 성명이 새겨져 있고 한편에는 한문 자(字)로 영암(榮岩) 건설공사 순직용사의 비(碑)라고 새겨져 있다. 이 선로를 타고 가는 승객들에게 얼마나 이 공사가 난공사이었던 것을 짐작케 하고 있다.
상오 11시가 조금 지나 이 비석 전면에 이 교통부장관을 비롯한 각 계층으로부터 보내온 화환으로 마련된 석상에는 7명의 유가족과 함께 교통부 신 건설 소장 김 공사과장을 비롯한 이 공사의 각 공사 부책임자와 공병 대장 및 현지 각 기관장 그리고 아직도 잔여공사 중에 있는 노무자와 그 가족 등 약 일백여명이 영하 13도의 추위를 무릅쓰고 지난날의 동지를 마지막으로 위로하고자 참석하였다.
정각 11시 반에 국민의례와 묵념으로 시작된 식은 멀리 내역의 중대사(臺寺)에서 온 스님의 독경(讀經)이 있은 다음 신 건설소장은 만 3년 반 동안 무엇 하나 흡족조건 없는 가운데 한마디의 불평도 없이 오로지 조국의 부흥재건이라는 숭고한 목적만을 유일한 신념으로 불철주야 대자연과 싸운 끝에 오직 조속한 공사 완료만을 바라며 쓰러진 그들의 고혼을 애절히 추모하여 가며 이제는 완전케 개통이 되어 일분 후에 있을 영예(榮譽)의 개통식에 목메인 음성으로 추도하였다.
계속하며 동(同) 공사를 직접 담당하였던 업자를 대표하여 교통부 중앙 도급자 협동(協働) 이사장 김석근(金錫根)씨의 애끊는 조사(弔使)와 봉화(奉化) 경찰서장의 조사(弔辭)가 있은 후 유가족을 비롯한 참석자들의 분향을 마지막으로 하오 2시 반에 위령제를 차분히 또 엄숙히 끝마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