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시인이 사랑한 ‘생거부안生居扶安’을 찾아서
-「서지말이야기」 2020 기자단 연수기
‘생거부안’은 영조대왕이 어사 박문수를 불러 조선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이 어디냐 묻자 “사람이 살기에는 부안이 최고입니다.”라고 한 지역이다. 부안에는 산과 들 바다가 있어 소금, 어류, 음식이 뛰어 날 뿐만 아니라 특히 사람 인심이 후덕하여 누구나 부자로 살 수 있다는 유래로 인하여 문인과 예인들이 많기로도 예술관과 문학관이 유명한 예향이다.
시인들이 사랑한 부안 먼저「그 먼 나라를 아십니까?」로 잘 알려진 신석정(辛夕汀,1907~1974) 시인을 찾아 신석정문학관(전북 부안군 부안읍 선은 1길 10)으로 향한다. 우리 기자단은 긴 장마 끝에 내리쬐는 햇볕을 안고, 코로나19로 체온 체크와 마스크는 필수로 하고, 유두희 관장의 주간으로 정읍시북부복지관을 나선다. 부안독립신문사에 도착하자 김종철 국장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마침 오늘이 신문편집 마감일이란다. 부안독립신문은 부안 핵 폐기장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생거부안’을 지키기 위한 발 돋음으로, 십시일반 기부로 만들어 졌다니 감히 부안독립이라 할 수 있다. 2004년 창간 이후 쉼도 없이 부안군민의 눈과 귀와 입을 대신해오고 있다하니 박수를 더 보내고 싶다.
김정민 기자의 안내로 신석정문학관으로 간다. 가는 도중 부안 맛집 ‘또와’에서 육회비빔밥에 막걸리 한 주발을 곁들이니 만만 오찬이다. 가기 전 완만한 줄기를 타고 내려온 고성산, 부안읍내를 한 눈에 내려다보고 서있는 시인의 묘소에 들러 시비와 함께 기념사진을 여럿 찍었다. 시만큼이나 훤칠한 키에 파이프를 든 모습에 반할만 한 것은 그의 외모 뿐만은 아닐 것이다. 그 곳에는 시인 신석정의 발자취가 묻혀 있다. 이어 10분 거리에 있는 ‘신석정문학관’은 어떤가. 2층 규모로 문학관 전시실에는 1939년 간행된 첫 번째 시집 《촛불》부터 2007년 탄생 100주년에 맞춰 출간된 유고 시집이자 여섯 번째 시집 《내 노래하고 싶은 것은》까지 석정 문학의 변모를 볼 수 있다. 신석정은 1924년 11월 조선일보에 첫 시 〈기우는 해〉를 발표한 이래 한 세기의 절반을 교육자이자 시인으로 살았다. 그 해 서울 생활을 접고 낙향해 선은리에 집을 짓고, ‘청구원靑丘園’이라 명명하고 여기에서 첫 시집 《촛불》(1939)과 두 번째 시집 《슬픈 목가》(1947)를 탄생시겼다.
그 후 《문장》에 게재될 예정이던 시가 검열에 걸리고 《문장》이 강제 폐간되는 등 일제의 압박이 심해지던 차에 친일 문학지 《국민문학》에서 원고 청탁이 들어오자, 석정은 청탁서를 찢고 창씨개명도 끝까지 거부한 채 해방을 맞이할 때까지 절필을 선언한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청구원 시대를 마감하고 전주로 이사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살았다. 그 와중에 5·16군사정변과 군사정권을 비판하는 시를 발표해 고초를 겪기도 했으며, 고혈압으로 쓰러진 지 7개월 만인 1974년 6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가을날 노랗게 물들인 은행잎이 바람에 흔들려 휘날리듯이…’로 시작하는 「임께서 부르시면」 자연을 사랑한 노래, 석정(辛夕)의 시 한수를 다 읊을 새도 없이 우리는 떠나야만 했다. 날씨는 뜨거웠지만 마스크를 했다. 연수를 마치면서 아쉬움이 남는 것은 무엇일까. 마스크 때문일까 아니면 연수가 뜨거운 감자-기행이 될 수도 있구나, 여한을 ‘라떼’ 커피 한 잔으로 달랜다. 마스크를 벗을 즈음에 ‘이화우梨花雨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라’로 읊는 이별가의 절창 조선시대의 예인 이매창(李梅窓,1573~1610)을 그리며, ‘매창공원’에서 그 한 많은 여인의 시와 거문고 뜯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박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