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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규
序
길다란 소나무 한그루
뒷동산
꼭대기에 걸려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지금
그가 되려 한다
새
절 규․1
스스로 날 수 있는
자유를 갖고 싶다
버 릇
절 규․2
난 네가 아냐
시간 흘러
버릇이다
접촉의 느낌 간직하고픈
모성적 본능
너의 어깨에 손.
올리고 싶다
1997년 5월 13일 평택대학교 커피하우스
절 규․3
스승의 날 행사라고
스승의 날도 아닌데
준비는 분주하다 커피 한 잔
보이는 테이블 그저 앉아 있는
아이들과 커피를 나르는
아이들 행사의 시작은 아직 멀다 끝없는 커피
비우고 나면 아직도 주위의 누군가
이상한 눈빛 저마다의 위선들 보여
사람들에게서 도망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아직도
떠나지 않은.
不 在
절 규․4
끝없는 삶의 생동감
현장에 있으면
나는 아직 살아 있다
熱 情
절 규․5
비인 컵 위에
물 가득 부어
기름 한방울
나는 여기에
불을 질렀다
空 虛
절 규․6
살짝 건드리면 키의 두배를 훌쩍 넘어
추락의 기쁨으로
살짝 내 손을 건드리는
현상은
공을 튀기고 있는 것이다 휘이익-
얌체 같은 고양이 한 마리 날아와
내 공을 채어간다 허탈하게 웃어버리는
얼굴엔 주름만 잔뜩 늘었다
4층 계단
절 규․7
카 운 트
1
2
3
4
카운트끝
숨이 차다, 그러나
계단의 꼭대기는
?
황무지
절 규․8
술에 취한 벌판 술에 취한 새들
술에 취한
걸인 하나가 잠을 잔다
벌판 오른쪽 기차의 굉음이 지나고
벌판 아래 자동차 경적음 위
술취한 사람들의 행진이 시작된다
시작된다 구호들
잠은 달아나고, 행진의 앞줄에 선
사람들의 세력이 힘을 쓴다
함성, 퍼부어라
술취한 걸인 하나
잠을 깬다 술취한 새
술취한 벌판을 날아오른다
시작된다 구호들
비,
쏟아진다
평택대학교 본관 4층 복도,
1997년 4월 1일 만우절 오후 네시 사십분
절 규․9
보인다
학생들의 잡담섞인 행렬 어미개
새끼강아지의 회색빛 싸움 별로 외롭지 않은
창틈으로 스며드는 바람소리
보인다
복도 끝 터엉 빈 흡연실
어렴풋한 미소 끝에 걸어다니는
내 얼굴
보인다
아 기
절 규․10
손가락 빨지 말고 딸랑이를 움직여
낯선 사람 두려워 말고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어
그렇게 보채지 말고 천천히 말해
서두르지 마 너는 아직
배울 게 많다는 걸 알고 있지?
狂 亂
절 규․11
하
하 하
하 하
하 하
하 하
하 하
하 하
하하하하하하하하 (여기가 나다)
하 하
하 하
하 하
하 하
하 하
하 하
하
자 유
절 규․12
떠나는 건 정말 쉽다
이제 그만 헤어져
하고 말하면 그만이다
말없이 눈물 흘리며
너는 그냥 돌아선다
나도 네 앞에 눈물짓지만
돌아서 웃어버리면
자유는 시작된다
?
절 규․13
어디가 끝인가
여기가 끝인가
어디가 시작인가
여기가 시작인가
어디에도 시작은 없다
어디에도 끝은 없다
오 늘
절 규․14
오늘 바람이 불었던가요?
오늘 비가 왔었나요?
오늘 해가 떴었나요?
오늘 밤이 왔었나요?
오늘 꿈 꾸었던가요?
오늘 집에 들어왔었나요?
오늘 별이 보였나요?
그럼 오늘
뭘 했었죠?
고 백
절 규․15
나… 저기… 나…
나… 저기… 나…
그게… 저… 그게…
그게… 저… 그게…
그러니까… 그게…
그러니까… 그게…
아휴 답답해
번개같이 고개 돌리더니
너는 밤 너머 사라져버린다
복 수
절 규․16
피흘리지 않기 위해
피의 보복을 일삼는다
정형의 세계
삼각형의 콤파스 구도
보복은
시작과 동시에
이미 끝나 있다
왕 자 병
절 규․17
어디에도
내가 있으면
잘 풀릴 때가 있다
어디에나
내가 없으면
풀리지 않을 때
그런 때가
반복될수록
이상한 병이 도지곤 한다
중 독
절 규․18
우리집 뒷동산은
오를 수도
오르지 않을 수도
없는 마약 같다
가 난
절 규․19
배 고프다
돈이 없다
밥 굶는다
배 아프다
빛의 절규
절 규․20
하늘의 끝에선
언제나 어둠이 온다
초라한 내 팔들이
힘없이 움직여
하늘을 바라보고
어둠은 곧
빛을 잡아먹고 있다
이 별
절 규․21
무덤가에 갔다
그녀가 울고 있었다
나도 울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돌아왔다
질 문
절 규․22
그렇게
생각하면 되지
더 뭘바래
그게 이유야
바 다
절 규․23
그곳을 바라보면
사람들이 있다
아무도 살지 않으면서
아무나 사는 것이
참으로 신기로웠다
나는 거기에
살고 싶지 않아
고개 돌려
하늘 올려다본다
영 원
절 규․23
끝은 없다
살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다
끝은 없다
거 리
절 규․24
닳고 닳아 걸레가 된 수건처럼
쉬지 않고 쓰여지는 거리
저 스스로 세척하는 하늘을 닮아
아무도 빨아주지 않아도
저 스스로 자위(自慰)할 줄 아는.
성 장
절 규․25
詩 속에는 내가 없다 없는데도 나는 있다 있으면서 말을 한다 하면서도 하지 않는다 나는 영원토록 소멸하는 불로장생(不老長生)의 난초인가 촛불처럼 그렇게 타면서 있다가 없는 나는 어디에서 어떻게 자라나고 죽어가는가 죽으면 알 수 있을 것 같은 나는 죽지 않고 살아서 詩를 쓰는 나는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완벽한 무지(無智)가 나도 모르는 나를 자라나게 한다
첫 발
절 규․26
아직은 덜 익은 열매들이
지상의 삶으로 강제 出監되었다
떫다.
未完의 大吉.
낙 서
절 규․27
정말
할 일 없는 인간들의
가장 안일한 휴식처
가장 숭고한
배설을 하면서 베풀고
가장 어리석은
공부를 하면서도 배설하는
그는 어디에나 있다
때로 그가 파놓은 함정
백만분 일초의 시간에도
全 세계가
파․괴․될․지․모․른․다
숨바꼭질
절 규․28
속전속결
1분간의 정차
순간이 1분에 숨어
영원으로 간다
새가 지저귄다
완 성
절 규․29
노을이 지다
그녀 속에서 내가
자라나다
숭고한 욕망으로의 질주.
노을이 진다
숨 턱턱 막혀
비집고 나갈 틈 없는
내 방에서.
욕망이 자라나다
비로소
우리가 되다
노을이 지다
변 화
절 규․30
팬티 속(續) 감추어둔 내 방이
두 개의 알을 까고 뿜어대는
새벽, 기차소리 화들짝 놀란
절정(絶頂)의 여인숙(旅人宿) 정적(靜寂)이
지나간다, 벌려진 틈 사이
세상이 보인다 둥글지만은 않게
신축력 있는
飛 翔
절 규․31
한 낮의 微風이
맨 하늘 스미고 지나갔다
그렇게 졸고 있는 사이
비둘기 한 마리 퍼뜩
地上의 꿈 속으로 날아들어
나의 단잠을 깨우고 지나간다
저 울 질
절 규․32
나를 적절히
뉘울칠 걸 그랬나?
괜한 잘못 저지르고
이성적 판단 아래
잘못 없다 적당히 우겨대고
잘못 없어도 때론
고개 숙여 뉘우치면
그래도 나는
적절하지 않을까?
봄 지는 노을처럼
어느 쪽에 무게를 두든
아름답기만 하면 된다(?)
속 도 위 반
절 규․33
술의 힘을 빌려서라도
너에게 가고 싶다
별빛 외치는 세상 등지고
떨리는 마음 하나만으로 슬쩍
네 맘에 들고 싶다
너의 마음으로 들어가
달리고 싶다
빛보다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사랑
너에게 가고 싶다
아 쉬 움
절 규․34
절망의 깊이 뼈속까지 스며
분출된 욕망 벽돌을 실어나른다
키 작은 포플러나무 가지 떠받치고
기억의 저편에 떠있는 봉홧가루
한 밑천 잡아 벽화 한번 그려보면
새벽의 어스름 밝아오는 술잔
하늘로 날아오르는 추위
벽돌로 뻐끔뻐끔 기어오르는
담배연기
修 行
절 규․35
오오-
플라타너스 짙게
깔린 하늘 굽어 우러르는
내 생애 하안… 중간쯤?
지친 개미 한 마리
조약돌 지고 간다
굳게 잠긴 도시의 문
열리지 않는다
오오-
뿌옇게 흐린 하늘
세상 밖에 갇힌
내 생애 하안… 서른쯤?
여태껏 지고 있던
수천억개의 감정들이 다
소용없는 짓이로구나!
도서관에서
절 규․36
남자의 눈빛
창문 뚫고 달려드는 햇살 밑에서
번들거렸다 스쳐가는 냄새
킁킁거리는 사이
고독은
그가 꿈꾸던 미래를
샤넬이란 향수로
벌겋게 바꾸어버렸다
인 물 화
절 규․37
하늘의 무게 짓눌러 축 처진 어깨
삐죽이며 튀어나온 이빨, 시간의 덧없음으로
그렇게 살아온 인물. 그러나 울부짖는…
테이프 한 조각
절 규․38
텅, 터엉, 텅, 텅텅, 터엉, 터엉 -
터덩, 텅, 터덩, 텅, 텅, 터엉, 텅 -
(테이프 한 조각)
交 感
절 규․39
아무리 웃고 울어도
내 자신을 내 맘에 맡겨도
사회와의 交感은 생겨나지 않는다
아무리 웃고 울어도
내 자신을 내 맘에 맡겨도
사회는 나를 내몰지 않는다
아무리 웃고 울어도
내 자신을 내 맘에 맡겨도
살아갈 이유는 생겨나지 않는다
아무리 웃고 울어도
내 자신을 내 맘에 맡겨도
사회와의 交感은 이루어져 있으므로
그러므로, 그러므로.
오 뚜 기
절 규․40
신음소리, 아침을 알리는 신호처럼
매쾌한 연기를 딛고 나는 일어선다
뱃속으로 가득 들어찬
溫氣가 나를 괴롭히듯
어둠은 바닷가 건너 깊숙이에
매쾌한 신음소리를 딛고
분홍빛 물든 속옷바람
아니
땀에 젖은 빛으로 온통 가려진
선명한 도시
신음소리, 긴 밤을 이어지는
매쾌한 신음소리를 딛고
나는 일어선다
사 랑
절 규․41
너는 너로
시
였나 보다
눈 물
절 규․42
밥을 먹으면
괜히 눈물이 난다
밥은 입을 통해
식도를 타고 흐른다
하얀 쌀밥이다
나는
하얀 쌀밥이 아닌 건
먹지 못한다
저녁이 되면 형광불빛
눈으로 들어오고
안경 너머 고시생 친구
그만 가라 한다
나는
밖으로 나간다
별빛은 아름답다
라고 말하는 것은
어감이 좋지 않다
별빛은 빛난다
라고 말하는 것도
의미가 통하지 않는다
별은 아름답다
별은 빛난다
나도 내가 되고 싶다
눈
절 규․43
탄다
담배꽁초의 필터
벌겋게 익은 흰자위
밤새 눈 내리고
바라보는 하늘
어둠으로 비춰지는 눈동자
담배 피는 내 얼굴에
이글이글 타는 세개의 눈동자
한개는 연기를 뿜어내고
나머지는 눈동자를 보고 있다
거꾸로 불을 붙이다가 문득
힘없는 눈동자도 있었다는 걸 발견한다
눈을 감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도 발견한다
그러나 지금
세개의 눈동자는 이글이글
타고 있다
탄다
벌겋게 충혈된 흰자위 세개
서울, 대도시, 가을
절 규․44
이 땅에 내렸을 때
비로소 알게 된 한가지
터벅터벅
오른쪽에 섰던 그림자
왼쪽으로 서고
다시, 나의 앞으로 선다
빌딩과 주택 사이
전철역과 찻길 사이
하늘과 땅 사이
어중간하게 걸친 그림자
스물 몇 해에 걸쳐 있던
해가 기울고
어둠은 온다 도시의 빛들
새로 밝으면 움직이던 그림자
우뚝 멈춰서 고개 갸우뚱
이 땅에 내렸을 때
비로소 알게 된 한가지
서울, 대도시, 가을
전기 충격
절 규․45
벼락에도 끄떡없는 나는
그․리․움.
사람들 접근금지.
감전 위험 있음
발 톱
절 규․46
스-윽 스-윽 토오오옥 - 톡
지독한 냄새에 묻힌 살의 한 부분이
하나도 아프지 않게 떨어져 나간다
토-옥 토-옥 튀익 튁튁튁!
매니큐어
절 규․47
그는 잘 다듬어져 보관되었고
무럭무럭 자라
다른 손톱의 선망(羨望)의 대상이 되었다
.
性 善 說
절 규․48
가엾어라!
저 끔찍하게 착한 人間들.
…… 기 싸 움!
절 규․49
눈뜬 아이 얼러보기
우는 아이 달래보기
기는 아이 세워보기
걷는 아이 괴롭히기
뛰는 아이 넘어지기
촐싹 아이 공부하기
모범 아이 연애하기
차인 아이 달래주기
아픈 아이 일시키기
잘난 아이 밟아보기
죽은 아이 혼자두기
홀로 서서 바라보기
미친 보모 돈줘보기.
원 죄
절 규․50
은빛 물결 서성이는 도사림 속에
고장난 몸매 드러낸 여인들
저마다의 구조신호 보내며
질퍽이는 모래사장 위에 기름을 깔고 누웠다
사내의
원초적 본능이 꿈틀거린다.
새로운 정치
절 규․51
국가경제난의 타계와
극심한 취업난의 해결을 위해
국가는 마지막으로
불평정책을 내놓았다
절대!!
불평하지 말 것!!
사형수
절 규․52
힘없이 돌아선다,
죄가 많은 그 사람.
설레던 가슴,
더는 뛰지 않는다.
잘못 선택된 길,
영혼에 파묻힌다.
슬프게도
절 규․53
슬프게도 하루해가 또 뜬다,
슬프게도 하루해가 또 진다.
슬프게도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해변가에서
절 규․53
젖은 살갗을 더듬으며 모랫벌로 기어나오는
여자의 상기된 얼굴에 보조개 핀 웃음이 번진다,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의 비명이
그녀의 웃음처럼 바다로 실려나갔다.
(나는 당하고 싶어요, 나는 하고 싶지 않아요)
비명 속에 웃음이 번져나갔다,
바람 부는 모래벌판을 지나면
뜨거운 햇살이 바다로 드나들었고 퐁당-
소리에 우는 사람들이 파도와 같이 출렁인다
한 방을 쓰는 파도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의 다리에 도취한 二重性,
(나는 벗고 싶어요, 나는 하고 싶어요)
햇살이 흔들린다
한나절을 지낸 사람들의 물가
노을이 살갗을 애써 태우려 안간힘을 쓰며
토막난 진실의 조각들이 텐트 안으로 스민다
(남자가 그렇게 힘이 없어요?)
출 근 길
절 규․54
信仰은 깊게 잠들다
뒷골목 피리 빠는 소녀
제 몸매 드러내며 웃는
한밤중 사람들의 거리
기적소리 바삐 지나고
홀로 나는 새처럼
담배 연기 슬피 울었다
어느 세기말의 질문
절 규․55
간다 마냥
가기만 한다
오기로 한
가는 것은
오지 않는데
마냥 가기로 한
것만은 간다 언제나
가기만 한다
오지 않는 것을 왜
온다고만 하는 것일까
어느 세기말
기후(氣候)는 심난(心難)하다
사물놀이
절 규․59
사물의 흐름에 너를 맡겨
북-- 징-- 꽹과리-- 장구 --
북- 징- 꽹과리- 장구-
북-징-꽹과리-장구-
북징꽹과리장구
북징꽹과리장구
북징꽹과리장구
북징꽹과리장구
북징꽹과리장구
북징꽹과리장구
북징꽹과리장구
북징꽹과리장구
북징꽹과리장구
나의 흐름에 너를 맡겨
너의 흐름에 나를 맡겨
- 그리고 이어지는 판떼기?
농 악
절 규․60
꼬리 흔드네
꼬리 흔드네
꼬리 날리네
꼬리 날리네
-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이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조지훈의 “승무” 인용
네 -
신바람났네
신바람났네
악기들들이
신바람났네
- 북. 징. 꽹과리. 장구.
짝사랑
절 규․61
OO야,
너는 여자가 아닌 듯한
내가 제일로 사랑하는 (?)
여자!
마마보이
절 규․62
어릴 적 마마보이
어른이 된 마마보이
초등학생
엄마 100원만
20대
엄마 100만원만
중학생
엄마 1,000원만
30대
엄마 1,000만원만
고등학생
엄마 10,000원만
40대
엄마 1억원만
대학생
엄마 100,000원만
50대, 의 파파
HuK!
화 재
절 규․63
‘아빠는 죽고 엄마는 화상을 입고
단란한 가정은 깨져버렸다‘ 오세영의 “욕정” 인용
- 그러나, 아이는 웃고 있었다
측은한 마음에 동전 하나를 건네었더니
쏜살같이 구멍가게로 달려간다
까맣게 탄 세상이 씁쓸한 웃음을 짓고 있다
金 言
절 규․64
잘못된 말 한 마디,
천냥 빛에 던져진다.
침묵이,
이 세상을 지배한다.
길의 나라
절 규․65
그 곳에선
길이 살지 않는다
길에 의한
꿈만이 살고 있다
꿈의 나라
절 규․66
그 곳에는
꿈이 살지 않는다
꿈에 의한
길만이 살고 있다
겉치레와 고집
절 규․67
- 실례지만, 누구세요?
- 실례지만, 말씀 드릴 수 없는데요?
- 그럼, 돌아가시죠.
- 그럼, 들어가지요.
이상으로 중계방송을 마치겠습니다
무료 영화 카드
절 규․68
회사를 짤린 후
6개월을
한결같이 사랑해오던
극장 앞 매표소.
“손님, 이 회사와의 계약이 끝나서
이제 더 이상 이 카드의 서비스는 안 됩니다.“
- 아니, 공짜가 안 된다구?
허탈한 마음으로 되돌리는 발걸음.
사형선고를 받은 듯 우울해지는 마음.
숫총각
절 규․69
공중변소 수세식 변기
떡 걸터 앉아 고개 푹 숙이는
굵은 똥 같은 저것은
내 거기?
머리가 꼿꼿이 서다,
한번도
여자를 위해서는 서 본 적 없는
내 삶의 텅빈 한 구석.
상황 착오
절 규․70
잡으려는 사람과
도망치는 사람이
한데 엉켜 붙었네
……!!!
명 연 설
절 규․71
입에 거품을 물고 연설!
입안 가득 고인 침이 수다의 원천이다.
성심성의를 다해 열심히 떠든 그에게
친절하게도 사람들은 사랑스런 눈길로 야유를 퍼부었다.
우우우우우우우우우!
기다림
절 규․72
나를 기다린다.
끝이 없다.
추상화
절 규․73
태양의 빛이
그림자를 드리웠다
나는 구름이 되어
태양의 그림자에 매고 돈다
초록빛 세상
절 규․74
산사람은 조용히 등불을 켜고
머리에는 초록색 띠를 두른다
산사람은 무엇인가에 눈을 집중하고 있다
그리고, 소리친다.
“야, 성공이다!”
산사람은 초록색 나무를 들고 나온다.
산사람은 산삼에 눈을 집중하고 있다
산삼은 자꾸 익어갔다
급기야는 초록색 빛이 났다
산사람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그리고, 산사람은 사라졌다.
산사람이 사라지자,
세상이 온통 초록빛으로 물들었다.
질 문
절 규․75
당신은 한 여름에
하얗게 쌓인 눈을 생각하오?
길
절 규․76
술고프면 고픈대로
배고프면 고픈대로.
음주는 절대금물이지만
때론 음주운전 가능할지 몰라
바람불면 으슥힌 기운이
대책없는 거리에 나뒹구는 조각들.
막노동 하루만에 이틀치의 음주량
포만감에 사로잡히면
또또
바람이 분다.
사 랑
절 규․77
자신만의 생각에 갇혀있다는 이유로 사람들 모두 나를 떠났지
그때 외로움이 나를 찾아왔어 그만은 나를 떠나지 않았어 심심할 때면 외로움을 불러내어 언제든 그와 함께 놀았어 점점 더 외로움과 노는 게 즐거워지던 어느 날 그는 내게 말했어
: 너를 버려야 할 것 같아
나는 문을 활짝 열어 버렸어 그가 떠나든 말든 상관 않기로 했지 그리움이란 새 친구가 찾아왔어 그는 언제나 내 눈을 촉촉이 적셔주었어 그러나, 나는 그 친구를 견뎌내지 못했지 어느 날, 나는 그에게 말했지
: 다시 문을 닫아야겠어
내가 있는 곳은 正門 밖이었어
나는 그리움을 가두고 외로움을 찾아
머나먼 여행을 떠나려 하고 있었지
그때, 풍경화가 나를 찾아 와서 말했어
: 추상화는 이제 그만 버려
- 나는 외로움이란 친구를 찾는 대신 그리움이란 친구와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했어 그 친구가 내게 미소를 보이더군 나는 그의 미소에 하루종일 웃기만 했어 그리움이 밀려들었어 세상은 처음으로 내게 웃음을 주더군. 나, 너를 찾을 수 있을까?
갈 망
절 규․78
너의 입술을
너의 가슴을
너의 사랑을
이성적으로
이성적으로만
느끼고 싶다
망할 亡
절 규․79
여자의 가슴은 아기를 위해 있다
아기의 방뇨를 위해 여자의 젖꼭지는 아기가 차지한다
남자의 열손가락이 여자의 가슴을 풍만하게 만들고,
모든 것이 일어선다 그러나
인류의 巨事는
이성적으로 이루어진다
性 慾
절 규․80
권태를 모르는 너는
지옥에서 왔느냐?
한 하늘 짐을 지고 가는
그들의 완벽함은 시들 줄 모른다
달 빛
절 규․81
철저하게
희미해진 불빛
흔들린
하나의 고독
바람조차
멈춰진 어두움.
해
절 규․82
하늘을 기듯
땅이 흔들리고
거리는 스산한
소용돌이
온통
물드는 노을에
사라지는 너.
나
절 규․83
도시 한복판에
궁상을 떨고 앉은
너의 모습은 늘 고독
동전을 탈탈 털어
구걸하는 아저씨의
차비를 대고
마지막 남은 동전 하난
자판기 커피 한잔.
내 손엔 차표 한 장
끝내 한 가치의 담배
그들 모두
어둠으로 흐르는
별 속의 이별
아무도 다가서지 않는
너의 모습은 여전히.
침묵에게 (1)
절 규․84
말이 없다
없으면 없다 그래
할 말이 없다
없으면 없다 그러라니까
답답해 미치겠다
말 좀 하라니까
너는 언제나 그렇게
소리가 없다
아마도 그건
세상이 싫은
너만의 까닭.
침묵에게 (2)
절 규․85
싫으면 싫다 그래
싫지도 않다
그러면 좋다 그래
좋지도 않다
정말로 미치겠다
입 좀 열라니까
너는 나를 슬프게 한다
언제나
더 이상
너를 괴롭히지 않겠다
“아마도 그건
용기가 없는
너만의 까닭”
그 순간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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