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아끼는 쥐똥나무 열매 지갑
세상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지갑이다.
저 안에 짤랑거리는 동전 같은 봄날
쥐똥나무 꽃향기도 가득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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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왕노
갈무리했다가 몇 년 묵혀버린 꽃씨를 화단과 여기저기 뿌렸다.
꽃씨가 잊히어져 가는 동안 슬픔도 있었겠으나 언젠가 피리라는 희망으로 더 단단히 여무는 시간이었던 것, 갈무리했지만 씨앗 껍질 안에는 무엇에도 다치지 않는 꽃잎과 가지로 잎으로 가는 꽃의 노선이 분명 있었던 것, 꽃씨를 아파트 화단과 여기저기 정성스럽게 뿌리는 사이, 조금씩 부풀어 오르던 그렇게 멀기만 하고 오지 않던 꽃 시절의 기대, 내가 꽃씨를 갈무리하므로 꽃의 주인이었으나 꽃씨를 뿌리므로 꽃을 주인으로 섬기는 꽃의 충복으로 살아도 좋은 일. 꽃이 나를 데리고 저 굽이굽이 세월을 넘어갈 페르시아 전차 같은 것
꽃씨 하나를 뿌린 일뿐인데 나의 노선도 생기고
해빙기의 아침이 오듯 어디서 얼음장 깨지듯 어둠이 쩌정 금가는 소리 들렸다.
[출처] 지갑 -김왕노|작성자 웹진 시인광장 디카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