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투척(投擲)의 변천사, 1962-1992
박기동.김용수*(강원대학교)
The Changing History of Wight Throwing Events in Gangwon Province
Park, Ki-DongㆍKim, Yong-Soo(Kangwon National Univ.)
요 약
본 연구는 강원 투척의 종목별 발전 과정을 질적 연구방법인 구술사를 통해 재조명함으로써 강원 투척 변천사에 나
타난 체육사적 의미를 알아보는 데 목적이 있다. 이와 관련하여 연구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강원 투척의 태동
은 김종태의 기술 연구와 신성휴, 김기춘 등의 전국대회 입상, 한동시의 1966년 제5회 방콕 아시아 경기대회에서 투
원반 동메달 수상을 출발점으로 시작되었다. 둘째, 강릉여자중.고등학교에서 한동시 그리고 태동 시기 선수들의 기술
전수와 최상희, 심재칠, 정옥자, 김봉주, 이은미, 김태형, 임상훈 등의 부단한 노력으로 강원 투척의 성장을 마련하게
되었다. 셋째, 성장 시기 선수들 중심으로 체계적인 지도와 학교별 투척 선수를 발굴하고 육성하여 각종 대회를 석권
함으로써 강원 투척이 도약하게 되었다.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meaning in the history of athletics appearing in the changing history of
wight throwing events in Gangwon province by reconfiguring developing aspects of wight throwing events in
Gangwon province and developing history of each event through oral history which is one of qualitative research
methods. The conclusions are as follows. First, with Kim Jongtae's skill and technique research, the quickening
started when Han Dongsi won bronze medal in discus throwing in the fifth Bangkok Asian Games in 1966. Second,
the growth of Gangwon throwing events started due to skills and techniques handed down by Han Dongsi in
Gangneung girls' middle and high school and sustained efforts by Choi Sanghee, Sim Jaechil, Jeong Okja, Kim Bongju
Lee Eunmi and Im Sanghoon etc. Third, Gangwon Throwing took a leap by carrying out systematic training to
growth period throwers, hunting every school throwers, training them, and dominating all sorts of games.
Key words : Gangwon province, wight throwing events, changing history
* kimys1655@hanmail.net
강원 투척(投擲)의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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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론
강원도는 수도 서울과 가까운 경기, 인천과는 달
리 스포츠가 도입되고 전파된 시기가 다소 늦은 것
은 사실이다(강원도체육회, 2004: 71-73). 지역적으로
불리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강원이라는 토양이 길러
낸 선수가 우리나라 투척사 연구의 중심에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가 매우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사건
이었다.1) 물론 세계적ㆍ아시아적이 아니더라도, 불
모의 지역이었고,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던 투척
종목(원반던지기ㆍ포환던지기ㆍ창던지기ㆍ해머던지
기)에서 조금이나마 史적인 의미를 찾아서 기록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어 ‘강원 투척(投擲)의
변천사’ 연구를 시도하였다.
1960년대의 어려운 시대적 여건 속에서 이뤄낸
강원 출신 한동시의 투원반 메달이 갖는 史적인 의
미가 매우 큼에도 불구하고 그 가치가 제대로 밝혀
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오늘의 투
척 발전과 세계 대회에 메달을 기대하고 있지만 메
달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분명
한 역사적 발전 과정이 있을 수밖에 없으며, 이에
대한 고찰은 현재나 미래의 스포츠 발전에 꼭 필요
한 작업이다(손천택ㆍ조준호, 2009: 119).
강원 투척의 산증인인 허봉원(1940년생) 김종태
(1942년생), 한동시(1945년생), 강석구(1946년생), 신성
휴(1948년생), 김기춘(1949년생), 엄금순(1949년생), 최
상희(1951년생) 등의 원로들이 생존해 있고, 김진묵
(1953년생), 심재칠(1953년생), 김봉주(1954년생), 임상
훈(1956년생), 김태형(1957년생) 등이 활동하고 있음
1) 한동시는 강릉여자고등학교 시절 10종 경기 출신 김종태의
지도로 투원반과 포환선수로 활약하다 1964년 제45회 전국체육
대회에서 투원반에서 1위, 투포환 2위를 하여 국가 대표 선수가
되었다(강원도체육회, 2004: 76). 태능 선수촌에 입촌하여 안영한,
김병기의 지도를 받게 되면서 1966년 제5회 방콕아시아대회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투원반 3위로 입상하였고, 1968년 멕시코 선발
대회에서 44m 51로 투원반 한국 신기록을 수립하였다(대한육상
경기연맹; http://www. kaaf. or. kr/).
에도 불구하고 史적 기록은 고사하고 구술 연구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왜 지금
체육인 구술사를 해야 하는가? 박기동ㆍ김명권(2008:
59)은 “얼마 전 구술 자료 구축 및 채록을 위해 원
로 체육인 한 분을 면담하고 있었다. 이후, 그 원로
참여자와 관련하여 나는 강원도체육회 (강원스포츠
저널, 2007: 16)를 통해 ‘시간이 많지 않다’라는
주제로 구술사의 필요성과 연구자의 안일한 타성에
대해서 작은 지면으로 나마 제시한 바 있다”라고
기술하면서, 이는 격동의 시절 근현대를 겪어온 체
육인들의 삶과 자료의 한계성을 함축적으로 의미하
는 내용이라고 덧붙였다.
본 연구는 강원 투척의 발전 과정을 질적 연구
방법인 구술사를 통해 재조명함으로써 강원 투척의
올바른 이해를 돕고 강원 투척 변천사에 나타난 체
육사적 의미를 알아보고, 더 나아가 한국 투척의 史
적 체계 정립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그러나 강원 투척의 태동 시기부터 역
사적인 특성과 변천 과정을 고찰하기 위한 당시 신
문 기사와 잡지, 정기 간행물, 문헌 자료에서 투척
(投擲) 관련 내용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따라서 문헌
상의 미비한 점을 보충하고, 그 때의 상황을 보다
심도 있게 파악하고자 당시 활동한 주요 육상 인들
의 인터뷰를 통한 심층 면담을 시도하였다.
본 연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강원 투척
(投擲)의 발전 모습은 1966년 한동시가 제5회 방
콕 아시안 게임 여자 투원반에서 한국 최초로 동
메달을 획득하는 시기를 강원 투척 발전사의 시
점으로 보고 역사적으로 검토하였다. 이 시기를
중심으로 태동, 성장, 도약으로 구분하여 전승과
흐름을 알아보았다.
먼저 태동은 각종 경기 단체가 성립되는 시기
로, 김종태2)의 기술 연구와 한동시의 1962년 전
2) 김종태는 10종 경기 선수 출신으로 1960년대 강릉여자중.고등
학교 육상부 지도자로 출발하여 1980년대까지 전국소년체육대회
와 전국체육대회 강원도 대표 육상선수 총감독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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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체육대회 활약 시점으로 하였으며, 성장은 태
동 시기 선수들이 기술을 전수함으로써 투척 종
목 선수들이 전국대회에 입상하는 시기로 분류하
고, 강원 투척 도약은 성장 시기 선수들 중심으
로 체계적인 기술 지도와 학교별 투척 우수 선수
들이 발굴되고 육성되어 각종 대회를 석권하는
시점으로 구분하였다.
Ⅱ. 강원 투척(投擲)의 태동
(1962.1968)
1945년 9월 25일 대한 육상경기연맹이 창립되
고, 강원 육상경기연맹은 그해 10월 20일 사단법
인 대한체육회에 가맹되었다. 강원 육상경기연맹
은 1955년에 발족하여 초대 정봉덕 전무이사(1955.
01∼1957. 12)가 연맹을 운영하였다. 제2대 김영재
(1958. 01∼1958. 12), 3대는 第54會 보스턴 마라톤
대회 金메달 출신 咸基鎔(1959. 03∼1960. 12)을 전
무이사로 하고, 1959년 초대 남일남(1959. 01∼
1959. 12)이 회장으로 취임하게 된다. 제2대 회장
은 농림부 장관을 지낸 함인섭(1960. 01∼1962. 12)
을 추대하여 명실상부한 연맹으로 발돋움하였다
(강원도체육회, 2004: 177~178).
강원 투척의 태동은 1953년 6.25 전쟁이 끝나
고, 각종 체육 프로그램 운영을 주관하는 경기
단체가 발족된 시기보다 훨씬 후부터이다.
강원 투척 태동의 주역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강릉의 투원반 선수 한동시는 1962년 강릉여자
고등학교 1학년 재학시절 체육교사 심덕순에게
발굴되어 김종태의 지도를 받게 된다. 한동시는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훈련 지도는 받지 못했으나
천부적인 소질과 체력, 끊임없는 노력으로 1962년
제43회 전국체전에서 투원반 2위를 하였으며,
1963년 제44회 전국체전 투원반 2위, 1964년 제45
회 전국체전 원반던지기 1위, 포환던지기 2위를
하였다. 졸업 후 경희대학교로 진학하여 1965년
제46회 전국체전 원반던지기 1위, 포환던지기 2
위, 5종 경기 1위를 하였다(강원도체육회, 2004:
76). 한동시는 국가 대표로 선발되어 1966년 제5
회 아시아 경기대회에 출전하여 한국 최초 여자
투원반에서 3위(41m 08)로 입상하였다. 그는 1967
년 강릉시청 소속으로 전국체육대회에 투원반 1
위, 투포환 2위, 투창 3위로 입상하였으며, 1968년
멕시코 선발대회에서 투원반 한국 신기록(44m51)
을 수립했다(대한체육회; 2009, 대한육상경기연맹;
2009). 한동시(투원반·투포환)는 송교식(투해머),
백옥자(투포환·투원반), 박수권(투창), 이복순(투
창)과 함께 우리나라 투척사에 큰 획3)을 그었다.
1966년 제5회 방콕 아시안 게임에서 투척 선수
로 참가하여 투원반에서 대한민국 최초로 동메달
을 획득한 한동시는 그 당시 운동 경험을 다음과
같이 회고하였다.
내가 투원반 종목에서 우리나라 최초였지요. 아
시안 게임에서……백옥자(포환)는 후배지요. 복잡해
요. 고 2때부터 투척을 했어요. 그 당시 학교나 강
원도에는 투척을 아는 사람이 없었어요. 고 3때, 선
수촌에 가서 안영한선생님 하고, 김병기4)선생님한
테 제대로 던지는 기술을 배웠지요(한동시 인터뷰,
2009년 4월 1일).
강릉제일고등학교(前 강릉상업고등학교)의 권
오원은 특별한 지도자 없이 포환, 원반, 창 선수
로 활약하였다.5) 강릉여자고등학교의 5종 경기
3) 송교식, 1954년 제2회 마닐라 아시아대회 투해머 3위. 한동시,
1966년 제5회 방콕 아시아대회 투원반 3위. 백옥자, 1970년 제6회
방콕 아시아대회 투포환 1위, 투원반 3위. 박수권, 1970년 제6회 방
콕 아시아경기대회 투창 2위. 이복순, 1970년 제6회 방콕 아시아대
회 투창 3위(대한육상경기연맹; 2009).
4) 백재정의 지도아래 국가 대표가 되어 한국 투원반 기록을 여
덟 번 갱신한 바 있다.
5) 멀리뛰기 선수 출신 조갑환 선생님이 육상에 관심이 많아 선수
강원 투척(投擲)의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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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m 허들, 200m, 투포환, 멀리뛰기, 높이뛰기)
선수 출신 엄금순은 김종태의 지도로 멀리뛰기와
5종 경기 선수로 전국 각종대회에 입상한 실적을
갖고 있으며, 5종 경기 국가 상비군 대표 선수로
활약하였다.
아마 5종경기 선수 출신일거예요. 그래서 투척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 당시 속초에서 육상 코치
했지요(심재칠 인터뷰, 2009년 6월 20일). …맞아요.
원래 멀리뛰기 선수였는데, 5종경기로 국가 상비군
대표했지요, 속초에서 오래도록 육상선수를 지도했
어요(한동시 인터뷰, 2009년 4월 1일).
춘천의 신성휴는 1962년(중2)부터 화천중학교
에서 투척을 특별한 지도 없이 연습하여 중학교
3학년 때 제43회 전국 체육대회(중등부)에서 1등
을 했다(강원도체육회, 2004: 78). 그는 화천 실업
고등학교 2학년까지 다니다 1965년 춘천고등학교
로 스카우트되었다. 1966년 춘천고등학교 3학년
때 투창 청소년 대표로 선수촌에 입촌하여 체계
적인 훈련을 받았으며, 각종 대회에 1위로 입상
하였다.6) 그 당시 국제대회 출전 투창 기준 기록
에 미치지 못하여 국제대회에 출전하지 못했다.7)
원주에서는 원주고등학교의 투창선수 김기춘이
전국대회에 입상하여 향토의 명예를 빛냈다(강원
도체육회, 2004: 76, 강원도 육상경기연맹; 2009).
이와 같이 강릉에는 한동시, 권오원, 엄금순춘
들을 지도했는데, 투척에서는 권오원이 강원도 대회에서…투원반,
투포환, 투창은 늘 1등했지요….전국대회는 3위 수준이었지요. 경희
대학으로 진학했어요(김종태 인터뷰, 2009년 7월 29일).
6) 화천 사람으로 춘천고등학교 나왔어요. 전국체육대회에서 투원반,
투창, 포환 3관왕 했어요. 창으로 대학갔으니 주특기가 창이지요. 제
가 제일고 다닐 때 군생활로 학교 사감했어요. 지금 아마 성균관대
체육과 교수하실 거예요(김봉주 인터뷰, 2009년 4월 4일).
7) …그 당시 선수촌에는 연습할 운동장이 없고, 육사구장에서 연습
했어요. 육사에는 운동장이 여러 개 있었지요. 대표팀 코치는 김병
기라는 분으로 한전 소속 원반선수 출신이었지요. 사실 그 분도 창
에 대해서는 많은 지식이 없었어요. 안영한선생님과…우리나라 최초
의 원반 선수라……그 때, 대표단에 한동시, 박수권선수도 있었지요.
김병기선생이 지도하다 안영한선생님도 지도했지요. 한동시선생이
많이 배웠지요(신성휴 인터뷰, 2009년 5월 22일).
천은 신성휴, 원주의 김기춘 등이 강원도는 물론
전국대회에 두각을 나타내면서 강원 투척이 태동
하기 시작했다.
태동 시기 각 지방의 스포츠는 지역의 특수한
환경 여건에 따라 독특한 형태로 성장, 발전하였
다고 볼 수 있다(손천택ㆍ조준호, 2009: 118). 따
라서 1960년대 강원도는 의ㆍ식ㆍ주 해결을 위한
국가 재건의 경제적인 발전에 모든 초점이 맞추
어져 있었으므로 체육교육 자체가 실제적인 모습
을 갖추기에는 매우 어려운 점이 많았던 시기로,
유망주 발굴과 지도자, 훈련 방법이 미흡했을 것
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걸출한 선수의 출
현은 강원 투척 성장의 기반 조성에 큰 교량적
역할이 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Ⅲ. 강원 투척(投擲)의 성장
(1969.1976)
강원 투척의 성장은 강원 투척 태동 시기의 한
동시, 엄금순 등의 기술 지도와 춘천에서 합숙
훈련 중인 육군 대표 팀의 신성휴, 김해수 등의
도움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한동시는 1969년부터 모교인 강릉여자중학교와
강릉여자고등학교를 중심으로 지도자 생활을 하
면서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으며8), 국가 대표선수
생활을 하면서 습득한 투척 기술과 훈련 방법을
전수하면서 투척뿐만 아니라 강원 육상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또한 향토의 명예를 위해 1975
년 제56회 전국체전까지 투원반, 투포환, 투창,
멀리뛰기, 높이뛰기, 5종경기 등에 출전하여 입상
하였다(강원도청, 1975: 87).
8) 그 당시 지도한 제자는 최상희, 김선화, 전화경, 김춘희, 조미
경, 최정숙, 김숙경 등이며, 간접적으로 지도한 선수는 강릉 지
역의 대부분 투척 선수 출신들이 이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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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강원도청에서 발행한 『鄕土를 빛낸 榮
光의 얼굴』에 ‘鄕土體育에 바친 화사한 靑春
그 崇高한 精神의 後繼’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運動選手의 頂上유지 壽命은 짧다. 女性選手의 境
遇는 더구나 짧은 것이다. 그러나 여기 江原道의 名
譽를 걸고 一人二役을 감당해야 하는 女性의 身分으
로서 十餘年을 한 해도 거르는 일이 없이 力鬪를 계
속한 韓東時 選手를 江原道民은 記憶하지 않으면 안
된다. 韓選手는 빈약한 本道의 女子 一般 體育分野를
마크하기 爲하여 力鬪라기보다 홀로 敢鬪를 계속했
다. 投圓盤, 投槍, 넓이뛰기, 높이뛰기, 포환던지기, 五種競技, 릴레이, 實로 한 몸을 多樣하게 활용했다. 韓選手는 때로는 애기를 뱃 속에 넣고도 뛰었고, 때
로는 産後 3개월 남짓해서도 召命을 거절치 못하고
원반을 던졌다. 江原道의 명예라면 못할 것이 없었다. 江原道民이 韓選手에게 報答할 길은?―. “다른 것 다
必要 없습니다. 運動場에 좀 나와 달라는 예기 좀 傳
해 주십시오. 우선 나와야 박수를 치든지 갈채를 하
든지 할 것이 아닙니까. 나의 競技는 孤獨한 競技입
니다. 觀衆이 있어도 조용히 進行되는 競技지요. 그
러나 우리 道에 點數가 加算되는 마지막까지 뛰어
보렵니다.” 韓選手의 이 崇高한 運動精神을 承繼할
報償子는 없는가?(강원도청, 1975: 86-87).
강릉여자고등학교 최상희는 한동시의 지도를
통해 전국체육대회에 투원반, 투창에 2위로 입상
하여 고등학교 3학년 때 투원반 국가 상비군 대
표 선수로 활약한 바 있다.
강릉제일고의 투창 선수 심재칠은 강릉중학교,
강릉제일고등학교(前 강릉상업고등학교) 재학 시
절 한동시의 도움과 부단한 노력으로 1969년(중
3), 제50회 전국체육대회 출전(중등부)하여 2위를
시작으로, 1970년(고1), 제51회 전국체전 1위,
1971년(고2), 제52회 전국체전에 1위, 한·일 고교
교환경기(일본 동경) 2위, 1972년(고3), 제53회 전
국체전 1위로 3년패를 하여 모교와 향토의 명예
를 빛냈다(중앙일보, 1971년 10월 13일; 강원일보,
1972년 2월 10일; 강원도체육회, 2004: 84). 다음
은 심재칠의 증언 내용이다.
제가 중학교 1968년 중학교 2학년 당시 강릉여
자고등학교 한동시 선생의 지도를 틈틈이 받았지
요. 종목은 달랐지만 그 당시 국가대표 출신이라
서…트레이닝이 뭔지 그 때 들었지요. 한선생은
1964년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태능 선수촌에서 주로
안영한선생님의 지도를 받았지요. 한동시 선생은
1968년 투원반에서 한국 신기록(44m 51)을 수립했
어요(심재칠 인터뷰, 2009년 4월 6일).
그 후 1973년, 그는 제1회 아시아 육상선수권
대회 투창 2위, 1975년, 제3회 아시아 육상선수권
대회 투창 3위로 입상했다.
일반부 투창에서 강원「팀」에 은 「메달」을 안
겨준 심재칠 선수(24.강원대체육과 1년)는 69년이후
고등부 3연패에 이어 일반부 까지 4년간을 투창부분
을 석권했던 기린아. 그는 3년 전에 아시아 육상 선
수권 대회 1위 입상 기록을 갖고 있다. 군 입대, 병역
의무를 마친 뒤 지난 1월 제대 강원체육의 재건을 위
해 후배인 투창 선수 임상훈을 지도해 왔다. 그는 고
교시절 홀어머니 함순남씨(58.강릉시 회산동 136) 슬
하에서 형편이 어려워 작대기를 창으로 대신사용, 뒷
동산에서 홀로 익힌 투창 솜씨로 3년간 계속 전국을
재패했고 졸업 후엔 일반 선수로 체전에 출전 일반부
로 석권했던 것이다(강원일보, 1977념 10월 22일).
춘천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前 춘천 제일고등
학교) 이은미는 여러 종목의 운동을 하다 김종태의
권유로 투척을 시작한 후 고등학교 2학년부터 춘천
에서 합숙 훈련 중인 춘천고등학교 출신 육군대표
투창선수 신성휴의 지도로 1973년 제54회 전국체육
대회 투창에서 2위로 입상하였다(강원도육상경기연
맹; 2009).
김봉주는 중학교까지 높이뛰기를 하다 원덕중
학교를 졸업하고 김종태의 권유로 1972년 춘천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투척 전문
강원 투척(投擲)의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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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교사 없이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투포환과
투원반을 연습했지만 1973년(2학년), 제54회 전국
체전까지 별다른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그러다
1973년 2학년 말 춘천에서 합숙 훈련 중인 육군
대표팀 소속 투원반 선수 김해수, 투창 선수 신
성휴를 만나9) 제대로 된 동계훈련 프로그램으로
기술 지도를 받게 되었다. 그 후 1974년 춘천기
계공업고등학교로 전학하여 3학년 때 서울에서
열린 제55회 전국체육대회에 투원반 1위, 투창 1
위로 입상하였다. 그 당시 기사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제55회 전국체전 육상 필드경기에서 강원의 김봉
주(춘천공고)가 2관왕의 영예를 차지했다. 선수 경력
1년의 ‘집념의 사나이’로 알려진 金군은 10일 서울운
동장에서 벌어진 남고부 투원반에서 45.44미터를 던
져 금메달을 딴 것을 비롯 지난 9일 투창에서도
51.88미터를 던져 금메달을 따냈다. 김군은 지난 54
회 체전에서는 이렇다 할 성적도 올리지 못하다 1년
만에 2관왕의 명예를 차지, 육상 불모지의 강원에
활력소가 된 셈이다(강원일보 1974년 10월 10일).
한편, 강원 투척의 성장 시기에 강릉농공고등
학교 김태형은 육상인 강석구의 지도로 전국체육
대회에 투원반 1위로 입상하였으며, 홍천서석고
등학교 정옥자는 투포환, 투창 선수로 전국체육
대회에서 투창 3위에 입상한 바 있다. 강릉제일
고등학교 임상훈은 모교 선배인 심재칠의 지도로
전국대회에 투창 종목에 입상하였다.10) 그 때의
9) 그 당시 육군 대표팀 원반선수 김해수, 투창선수 신성휴란 분이
지도해 줬어요. 그 분들이 사대부고 옆에 방 얻어놓고 근무하며 훈
련했어요. 강원도에는 지도자가 없었는데, 운 좋게 제대로 배운 거
지요. 3학년 초에 김해수 그 분이 제대했어요. 전역하면서 더 배우
고 싶으면 태능에 가보라 그러더군요. 태능에 들어갈 수가 없고 해
서 카메라 사진기를 들고 가서 담 밖에서 촬영해 가지고와 거울을
놓고, 사진 속의 동작을 보고 연습하곤 그랬어요. 그분이 제 투원
반의 스승이지요(김봉주 인터뷰, 2009년 4월 4일).
10) 이날 투창경기에 출전한 임상훈군(강릉상고)은 유망한 메달
후보로 기대했었는데, 경기도중 뜻밖의 실수로 실격되어 탈락된
것이다. 임군은 지난 5월 육상 종별선수권대회에서 입상하는 등
상황을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1972년 고등학교를 입학하고 단 한 명뿐인 육상
부 선배를 만났는데, 3학년인 심재칠 선배였지요.
중학교 시절 창던지기를 하였지만 운동에 대한 의
욕과 열정도 없이 그냥 하루하루를 대충 보내며 3
년을 운동하였지만 결과는 허무했어요. 고등학교
신출내기인 내가 본 재칠 선배는 늘 자신있고 당당
하게 생활하고.. 철저하게 자기를 관리하는 운동선
수였지요. 전문지도자가 없이 운동하면서 고등학교
3학년 그해 전국대회 전관왕을 차지하면서 스스로
의 진가를 발휘하여…그 당시 거의 없는 실업팀에
스카우트되었고, 군 생활도 운동을 계속할 수 있는
상무로 입단하면서 화려한 선수생활을 했어요. 그
런 선배에게 1년동안 투창을 배우면서 암울했던 시
절 목표없이, 열정없이 생활해 온 나에겐 늘 우상
이었지요.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제대로 투창을
배우게 된 나에겐…큰 행운이었지요. 철저하게 체
계적으로 자상하게 배움을 주었어요. 재칠 형이 졸
업 1년 후에는 내 스스로 혼자 운동할 수 있도록
냉정하고 혹독하게 훈련하는 방법을 전수해 주었지
요. 지금은 교직에서 후학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에게…암울했던 그 시절 나에게는 인생의 나침반
이 되어주었지요(임상훈 인터뷰, 2009년 4월 6일).
이상의 강원 투척의 성장을 살펴보면, 태동 시
기의 한동시, 엄금순, 육군 대표팀 신성휴, 김해수
등의 기술 전수로 최상희, 심재칠, 이은미, 정옥자,
김봉주, 김태형, 임상훈 등이 전국대회에 입상하였
다. 이런 결과는 강원 투척 선수의 저변 확대와
도약으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되었다.
유망선수로 알려졌는데, 체전 출전을 앞두고 실시된 강화훈련
중 팔부분이 탈골되어 치료를 받으면서 도저히 출전이 어려웠는
데도 관계자들이 출전을 강요해 ‘필드’에 나갔다가 경기도중
다시 탈골이 되면서 제자리를 지키지 못해 실격된 것이다(강원
일보, 1974년 10월 9일).
한국체육사학회지 제15권 제1호 The Korean Journal of History for Physical Education, Sport, and Dance 2010,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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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강원 투척(投擲)의 도약
(1977.1992)
한동시11), 심재칠, 김봉주, 임상훈 등이 지도한
전국소년체육대회와 전국체육대회 강원도 대표 선
수들은 대부분 동일한 선수들로 서로 상당한 관련
이 있기 때문에 고등학교를 중심으로 정리하였다12).
심재칠은 1977년 대학 생활과 동시에 후배는 물
론 전국소년체육대회와 전국체육대회 강원도 대표
를 지도하였다. 졸업 후 모교인 강릉제일고등학교
에서 1983년부터 1988년까지 지도하여 대학에 진학
시킨 투척 제자로는 서인석(창), 박영주(원반), 엄재
웅(투해머) 이종태(투해머) 등이 있다. 특히 선수 육
성 중 강원도의 불모 종목인 투해머를 본인이 직접
기술을 익히고 연구하여 육성하는 열성을 보였다.
그의 투해머 제자로는 강릉 제일고등학교에서 지도
한 엄재웅, 이종태 등이 있다.
…맞아요. 역사가 짧아요. …심재칠선생님이 강
릉상고 육상부감독 시절 영월 연당 중학교 포환선
수 출신 엄재웅, …속초 중학교 포환선수 출신 이종
태에게 투해머를 연구하면서 지도했어요. 전국체전
에서 1등해서 동아대학 졸업했지요……그래요. 역사
도 짧고, 선수도 그리 많지 않아요. 현재는 대가 끊
긴 상태고요(김봉주. 2009년 4월 4일). 이종태는 중
학교 때 포환을 하다가 강릉상고에서 투해머를 했
지요. 제가 알기로는 엄재웅선배가 투해머에서 제일
처음이라고 봐야지요. 그 선배도 중학교 때 포환 선
수하다가 강릉상고에서 심재칠 선생님 지도로 투해
머를 했지요(최상백 인터뷰. 2009년 3월 25일).
김봉주는 1978년 대학에 복학하여 전국소년체육
대회와 전국체육대회 강원도 대표를 지도하였으며
11) 한동시는 강원 투척의 태동, 성장, 도약 시기까지 17년 동안 투척
기술 전수는 물론 투척선수 저변확대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12) 1977년∼2000년까지 강원도교육청에서는 전국소년체전과 전
국체육대회가 열리는 전해에 선수들을 선발하여 6개월 이상 장
기적인 집단 합숙훈련을 한 후 출전하였다.
1982년부터 강일여자고등학교(前 영동여자고등학
교)에서 체육교사 겸 투척부 감독을 역임하였다.
그는 1992년까지 10년간 그곳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였으나 결국 팀 해체로 체육고등학교로 전출하
였다.13) 그 당시 지도 실적은 다음과 같다.
강릉여자중학교 출신 김춘희는 1982년 제63회
전국체전에서 투원반 종목에서 1위를 하여 한국체
대를 거쳐 1988년 올림픽 국가대표로 출전한 바
있으며, 속초여자중학교 최규남은 제64회 전국체전
에서 투포환 1위하여 한국체대를 거쳐 국가대표,
제65회 전국체전에서 인제중학교 출신 문순정은
투포환 1위, 문막중학교 출신 원은희는 제66회 전
국체전서 투원반 1위, 강릉여자중학교 출신 조미경
은 제67회 전국체전에서 투원반 1위를 하였다. 강
일여자중학교 출신 이금옥는 제68회 전국체전 투
창에서 1위, 강릉여자중학교 출신 최정숙은 제69회
전국체전 투창에서 1위, 강릉여자중학교 출신 김숙
경은 제70회 전국체전에서 투포환 1위로 입상한
바 있다(강원도육상경기연맹; 2009).
임상훈은 전국 소년체전 강원도 투척부 대표선
수 지도와 원주권을 중심으로 1985년부터 중학교
남녀 투척 선수를 육성함으로서 강원 투척 도약
의 기반을 마련했다.
이와 같이 강원 투척의 성장 시기 선수들 중심
으로 투척 기술이 전수되고, 체계적인 지도와 학교
별로 투척 선수를 발굴하고 육성하여 강일여자고
등학교의 투원반 김춘희, 원은희, 조미경, 투포환
13) 김봉주는 고등학교 2학년 때(1973년) 강원도민체육대회 투척
경기장에서의 첫 만남이었어요. 처음 만난 그의 첫 인상은 어찌나
크던지 경기 시작 전부터 긴장되기 일쑤였지요. 그의 주 종목은
투원반이고, 나는 투창이었는데…투포환경기에서는 우열을 가려야
만 했어요. 나는 늘 투포환에서는 지는 편이었어요. 고등학교 3학
년 때 선수로서는 최고의 황금기를 가졌던 그는 강원대학교를 같
이 입학한 후, 바로 군 입대로 .선수로서의 꿈을 접어야만 했어요.
제대 후, 교직에서의 그는, 선수시절 이루지 못한 꿈을 후배양성
으로 한풀이를 하였으니…많은 제자들이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로
활동하고 있지요. 지금도 열정으로 육상 꿈나무를 육성하고 있어
요. 한 때 급작스러운 병마로 인해 위기가 오기도 했지만…육상경
기장을 떠나지 않고 한결 같은 마음으로 제자들에게 열정을 불태
우는 진정한 육상인이지요(임상훈 인터뷰, 2009년 4월 6일).
강원 투척(投擲)의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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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남, 문순정, 김숙경 투창 이금옥, 최정숙, 강릉
제일고등학교의 투창 서인석, 투원반 박영주, 투해
머의 엄재웅, 이종태 등이 각종 전국대회를 석권함
으로써 강원 투척이 도약하게 되었다.
Ⅴ. 결론
인간의 삶 자체는 항상 현재에 이루어지지만,
지나온 삶을 이야기할 때는 과거, 현재, 미래가 상
호 작용하여 현재의 삶이 과거를 해석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데 영향을 끼친다(박기동ㆍ김용수, 2009:
55). 이와 같은 맥락에서 사장(死藏)되었던 강원 육
상의 변천사를 사라져가는 이 시점에서 하나하나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어 그 시절 체육 선배들이
걸어 온 발자취, 다시 말하면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그들의 삶을 이해함으로써 희망을 갖도
록 하는 작업은 보람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와 같은 맥락에서 몇 년 전 세상을 떠나신 안영
한14)은 강원 투척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투척사에
길이 남을 공헌을 하였다. 그러나 한국 투척의 대
부인 안영한의 생애사가 기록되지 않은 현 시점에
서 너무나 아쉬운 부분과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
라도 강원 투척에 대한 심층적이고 폭넓은 연구가
14) 안영한은 강원도 원주에서 출생하여 1940년대 일본에서 선수
생활을 하였으며, 그곳에서 대학을 졸업했다. 원주에서 초, 중고
등학교를 졸업했으며 일본 와세다 법정대학 재학 시 투원반에서 全 日本 육상경기대회 1위를 비롯하여 투창, 포환 종목에서도 각
종대회에 입상함으로써 한국인의 긍지과 명예를 드높였으며, 해
방 이후 1960대부터 1984년까지 김병기 등과 함께 투척에 대한
기술연구와 국가대표 선수들을 지도했다(심재칠, 2009년 2월 11
일; 신성휴, 2009년 5월 22일). 안영한은 한국체육대학 교수와 국
가 대표 감독을 하면서 과학적인 트레이닝(웨이트 트레이닝, 서
킷트 트레이닝 등)을 최초로 도입하여 투척 부분에서 한국 기록
이 큰 폭으로 갱신하기에 이르렀고(한동시, 2009년 4월 1일), 안
영한은 선진 투창 기술을 도입하였으며, 여자 투원반에서 1966년
제5회 방콕 아시아대회에서 한동시가 우리나라 최초로 동메달,
1970년 제6회 방콕 아시아 경기대회에서 남자 투창에서 박수권
이 우리나라 최초로 은메달, 투포환에서 백옥자가 금메달을 획득
하는 쾌거를 올렸다(심재칠, 2009년 2월11일)고 증언하고 있다.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1955년에 발족한 강원 육상경기연맹은 장거리
종목 중심이었으나 1959년부터 투척에 대한 관심
이 생기면서 변화가 일기 시작하였다. 그 동안
강원 육상계는 강원 투척사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이번 기회에 강원 투척에 대한 기본적
인 사적 자료를 적립해야 한다는 생각에 본 연구
를 하게 되었다.
이 연구는 강원 투척의 올바른 이해를 돕고 강
원 투척 변천사에 나타난 체육사적 의미를 알아보
고, 더 나아가 한국 투척의 史적 체계 정립에 조금
이나마 도움을 주고자 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연구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강원 투척의 태동은 김종태의 기술 연구
와 신성휴, 김기춘, 권오원의 전국대회 입상과 한
동시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국가 대표가 되어
1966년 제5회 방콕 아시아 경기대회에서 대한민
국 최초로 투원반에서 3위를 하면서 부터이다.
둘째, 한동시, 신성휴, 엄금순 등은 향토를 위
한 선수 생활뿐만 아니라, 기술 전수와 후배 양성
을 위한 지도자로써 활동하면서 강원 투척의 성
장을 위한 기반을 조성함으로써 최상희, 심재칠,
정옥자, 이은미, 김봉주, 임상훈, 김태형 등을 발
굴하는 투척 성장 시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셋째, 강원 투척의 성장 시기 선수들 중심으로
기술이 전수되고 학교별로 체계적인 지도와 투척
선수를 발굴하고 육성하여 투포환 최규남, 문순
정, 김숙경, 투원반 김춘희, 원은희, 조미경, 박영
주, 투창 이금옥, 최정숙, 서인석, 투해머의 엄재
웅, 이종태 등이 각종 전국 대회를 석권함으로써
강원 투척이 도약하게 되었다.
역사 연구는 어떤 사건이 언제, 어디서, 왜 일
어났고, 그 때의 시대적 상황은 어떠하였으며, 주
로 누가 혹은 어떤 집단이 영향을 주었으며 역사
적으로 왜 중요하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연구한다(성태제, 2003:
한국체육사학회지 제15권 제1호 The Korean Journal of History for Physical Education, Sport, and Dance 2010,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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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투고일 : 2009년 12월 28일
심사완료일 : 2010년 2월 17일
게재확정일 : 2010년 2월 19일
245). 이러한 맥락에서 기록되지 않은 부분을 찾
아내어 이를 구술 사료로서 채워야 할 뿐만 아니
라, 한 인생의 생애 주기를 중심으로 이들을 재
조명하여 주된 자료로 삼아 역사를 다시 인식하
고 서술해야 한다. 이에 대한 구술 자료 수집은
간과할 수 없는 과제가 아닐 수 없다(박기동ㆍ유
근직ㆍ김명권, 2007: 46). 따라서 이제 더 늦기 전
에 기록되지 않은 스포츠 문화의 원류를 찾는 노
력에 많은 땀과 인내가 절실히 요구되는 때이다.
그 중 비인기 종목으로 음지에서 활동했던 이들
의 체육사적 유산을 찾는 것은 잃어버린 체육인
으로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중요한 시
도이며, 시대적 요청이자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이 연구를 토대로 차후에는 안영한과 한동시의
생애사, 강원 투척의 종목별 시원을 연구하여 자
료 검증과 보완이 필요할 것으로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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