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 믿음의 집 이영락 목사 수필
♡ 내 마음의 앨범 속 스승의 날에 떠오르는 사진 하나 ♡
지난해
대구에서 무슨 일을 끝내고 마침 어린 시절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앞을 지나게 되어 차를 세워놓고 그 학교로 들어갔다 오십 년 전 내가 이 학교를
다닐때만 해도 주위에 온통 논밭들이었는데 지금은 하도 많이 변해 그 지역이라고는 상상할수도 없고 학교 건물도 고급스러움
자체였다
정문에 들어가니 경비하시는 분이 어떻게 왔느냐고 물었다 어릴 때 이 학교를 다니다가 옆에 학교가 하나 새로 생겨 이
학교에서 졸업을 못했는데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사학년 때 선생님이 생각나서 졸업 앨범이라도 볼까 싶어서 지나가다가 들렀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 경비는 단호하게 안된다고 했다 얼마 전에도 미국에 산다는 어떤 사람이 자기 자녀들을 데리고 왔는데 되돌려 보냈다고
했다 아니 학교 다니던 어린 시절이 생각나서 찾아 왔으면 환영을 해야지 그게 무슨 국가기밀이나 대기업의 영업 비밀도 아닐텐데 어이없고 야박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쉬운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육십 년대 마지막 해 봄에 나는 시골에서 할머니와 살다가 재혼하여 대구에서
새어머니와 사이에 여동생을 하나 낳아서 이제 걸음마 정도하는 아버지와 살기 위해 문경에서 기차를 타고 대구역에 첫발을 내디뎠다 대구역은 그때만
해도 일제시대 건물 그대로였으나 내가 살던 시골과는 완전 다른 세상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사는 것은 어린 내가보아도 말이 이니었다
전학 수속을 밟고 그 학교에 처음으로 가던 그날의 상황은 내게 황당하기 이를데가 없었다 내가 때어나서 사학년 초까지 살던 유명한 석탄 탄전
지대인 문경 가은의 학교는 삼천명이 넘는 큰 학교였는데 잘사는 몇명은 가방을 들고 다녔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책보를 들고 다녔다
그런데 대구의 그 학교는 책보를 들고 다니는 이이들은 전교생 이천명 중 하나도없었다 시골에서 학교 다니던 모습 그대로 책을
보자기에 둘둘 말아서 질끈 묶어서 옆구리에 끼고 검정 고무신을 신고 나타난 내 모습을 애들은 신기한듯 쳐다 보았다
그래도 내
성격이 무던해서 그랬는지 가방과 운동화를 사달라고 조르지도 않고 두달 정도를 그렇게 다녔다 형편이 이 정도였으니 학교에 내야하는 육성회비를
제때에 낼리가 없었다 .
당시에는 학교에 내야 할 돈들을 못내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러면 나중에 남아서 선생님에게 꾸중과 윽박지름을
통해 재촉을 당하는 것은 학교의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그때 담임 선생님은 지금 생각해보면 사십대 전후의 나이였는데 비만한 체격에
고혈압이 있으신 분으로 아이들이 소란해서 통제가 않되면 스트레스를 받아 얼굴이 붉어져 혈압이 오르는 것을 아이들이 다 알수 있을 정도로 건강에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유머 감각이 뛰어나고 마음은 한없이 따뜻한 분이셨다
시골에서 전학 온 나의 클래식한 패션에 나의 사정을 이해를
하셨는지 나를 불러놓고 육성회비 걱정은 하지 말고 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학교에 이야기를 해서 육성회비를 면제를 받게 해 주셨다
한번은 수업 종료 벨이 울릴 때 선생님은 내게 서무실에 잠시 들렀다 가라고 하셨다
왜 그러실까 싶어 들렀더니 한쪽만 사용한 문서
이면지를 모아서 송곳으로 구멍을 뚫어서 끈으로 두툼하게 묶은 것을 건네주면서 연습장으로 사용하라고 하셨다 그 연습장을 건네 받으면서 자기 제자에
대해, 인간에 대한 진정으로 배려하는 그 마음은 오십 년이 지난 지금도 따뜻하게 느껴진다
어느날 학교가 파하고나서 대명동의 한
시장부근 도로가에서 혼자서 놀고 있었다 그때 뒤쪽에서 갑자기 "내 지갑을 들고 튄 놈이 요놈입니다" 라는 찟어지는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뭔가싶어 뒤돌아 보는 순간 화가 잔뜩나 험악한 표정으로 거친 숨을 몰아쉬는 어떤 아줌마가 손가락으로 나를 가르키고
동시에 따라온 순경이 투박한 손으로 내 머리를 냅다 때리더니 멱살을 잡아채서 계명대학교 대명동 캠퍼스 앞에 있는 파출소로 끌고 갔다
아마 시장부근에서 내 또래의 아이들에게 그 이줌마는 지갑을 소매치기 당했는데 그 아줌마는 나를 그 그룹의 하나로 생각하는듯 했다
파출소로 끌려간 나는 내돈 내놓으라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대는 그 아줌마의 일방적인 말만 듣는 순경들에 의해 서너 시간을 자백하라고 협박과
윽박지름을 당했다
아무리 내 결백을 주장해도 그들은 믿어주지 않았다 경찰들은 학교에 연락했다 당시는 서민들에게는 전화가 거의
보급되지 않은 시절이어서 집에는 연락을 할수없었다
한참을 지나 선생님이 자전거를 타고 파출소에 들어오셨다 선생님은 이 아이는 집은
가난해도 공부도 잘하고 정직하여 절대로 그럴 애가 아니라고 극구 나를 변호했다 선생님의 손을 잡고 파출소 문을 나서니 날씨가 어두워지고 있었다
선생님은 나를 자전거 뒤에 태워 집에까지 데려다 주셨다
뒤에 탄 내게 무슨 말씀을 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선생님의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말씀에 그날 당했던 그 억울함이 다 풀렸다 그래서 지금까지 계명대학교 대명동 캠퍼스 앞을 지날 때마다 그 때가 회상되고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육학년이 되어 그 지역에 새로 학교가 신설되어 학군이 갈려 나는 그 신설학교로 갔다 몇년이 지나 그 선생님이
떠올라 잘 계시는지 알아보았더니 그 선생님은 벌써 수년 전에 혈압으로 쓰러져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셨다고 한다
내게 사람에 대한
진정한 배려와 따뜻함을 느끼게 해주신 선생님, 많은 사랑을 받았음에도 철이없어 고맙다고 인사도 못드린 참 스승이셨던 선생님, 오늘 스승의 날
아쉬운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