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전 1:13)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벧전 1:14)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벧전 1: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베드로는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편지를 쓴다. 흩어졌다는 것은 고난을 당한다는 뜻이고, 나그네라는 것은 고향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이주하는 중이라는 뜻이다.
저 멀리뵈는 나의 시온성 오 거룩한 곳 아버지집
내 사모하는 집에 가고자 한밤을 새웠네
저 망망한 바다 위에 이몸이 상할지라도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 주 복음 전하라
아득한 나의 갈길 다가고 저 동산에서 편히 쉴때
내 고생하는 모든 일들을 주께서 아시리
빈 들이나 사막에서 이 몸이 곤할 지라도
오 내 주 예수 날 사랑하사 날 지켜 주시리
"마음의 허리를 동이라"는 뜻은 무엇인가?
1. 준비이다.
어느 낯 선 곳으로 여행을 가고자 할 때는 어디로 갈 것인가, 어떻게 갈 것인가, 누구와 갈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을 먹을 것인가, 어디서 잘 것인가, 비용은 어떻게 할 것인가 등의 계획을 세우는 것이 번거롭고 힘들다. 계획을 세우고 나면 준비가 필요하다. 함께 가기로 한 사람들과 이것 저것 준비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는 것은 더 힘들다. 결혼하고 나서 증평에 정착하기 전까지 5년 동안 우리 가족은 서울에서 김포로, 김포에서 제천으로, 제천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대구로 낯 선 곳을 전전하며 살았었다. 그것도 젊은 날의 추억이라면 추억이다. 젊은 날에 그렇게 해 보는 것도 괜찮은 경험이었다. 한 번 이사할 때마다 짐을 싸고 옮기고 살던 곳을 정리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사를 해야 할 때가 되면, 일단 머리 속이 복잡해진다. '어떻게 짐을 쌀 것인가' 먼저 여기 저기 널려 있는 박스를 눈여겨보고 모은다. 철물점에 가서 빨간색 끈도 사가지고 온다. 제일 힘든 것은 책을 싸는 일이었다. 학교 다니면서 책이 아주 많았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없는 시대에 학교를 다녀서 책을 사서 공부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책은 박스에 넣거나 빨간 끈으로 끈으로 묶는데, 옮기는 것이 더 힘들다. 무겁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김포에서 제천으로 올 때 새롭게 신학교를 들어간 집사님에게 책을 다 줘버렸다.
이사짐을 쌀 때는 팔을 걷어 부친다. 달리기를 하려는 사람은 운동화 끈을 단단히 묶는다. 통으로 된 옷을 입고 있다면 허리띠를 단단히 묶어서 옷이 걸리적 거리지 않게 해야 된다.
출애굽기 12장에 보면 탈출하는 날 밤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밥을 먹으면서 허리에 띠를 띠고 급히 양고기를 먹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탈출하기 위하여 밤에 급하게 밥을 먹고 바로 출발한 것이다.
무엇이든 마음을 단단히 먹고 시작해야 한다. 한 번 달리기 시작하면 끝까지 달려야 한다.
한 번 달리기 시작하면 중간에서 포기란 없다.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천국으로 이주하기 위해서 이 세상을 빠져 나온 성도들은 나온 세상에 미련이 없이 천국을 향해서 달려간다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천국에 들어가려고 하는 무리이다.
(벧전 1:13)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라는 말의 의미는 천국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세상을 떠나 새로운 세상으로 이주하는 것이다.
이주하려는 척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로 이사하지 않는다.
정부에서 진천에 혁신 도시를 세우고 국가 기관을 서울에서 이전한 것은, 공무원들을 많이 이주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주 정책은 정부의 정책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그런데 서울에서 일하던 공무원들은 서울에서 일하다가 옮겨진 일터에서 일하기 위해 진천으로 이주하지 않고, 서울에서 고급 리무진 버스를 대절해서 타고 출퇴근을 하고 있다.
세종시도 마찬가지이다. 서울에서 세종시로 KTX를 타고 출퇴근을 한다. 공무원들을 이주 시키려는 정부의 계획이 무색하게 되었다.
저녁에는 공무원들이 서울도 다 퇴근해서 황량한 분위기의 도시가 된다. 공무원들이 출근하지 않는 주말에는 거리에 사람 찾아보기 힘들다. 평일 점심 시간에나 음식점에 북적거리며 떠드는 사람들은 다 공무원들이다.
우리는 세상에서 천국으로 출퇴근하려는 사람들이 아니라 천국으로 이주하려는 사람들이다. 출퇴근 하는 사람들은 준비할 필요가 없다. 저녁에 다시 집으로 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주라는 것은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나는 것이다.
3절에 보니 산 소망이라는 말이 나온다.
(벧전 1: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산 소망이란 이미 지나간 소망이라든가, 포기한 소망, 죽은 소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나 자신을 움직이고 있는 소망을 말한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다면 소망이 있기 때문에 가고 있는 것이다.
당시 예수님의 사람들에게는 소망이 필요했다. 왜냐하면 현실의 고난이 극심했기 때문이다. 베드로의 편지의 분위기가 어두운 이유가 거기에 있다.
2015년에 벤츠 사건이 있었다. 어떤 사람이 벤츠 사무실 앞에서 골프채로 자신이 구입한 벤츠 자동차를 부수는 장면이 방송에 나온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나? 그는 평생의 소원이 벤츠 자동차 한 번 구입해서 타보는 것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벤츠 승용차를 모는 것은 인생의 꿈과 소망이었다. 그는 자신이 오래 동안 모은 돈과 빚을 얻어서 벤츠 승용차를 샀다. 그런데 가족을 태우고 가다가 벤츠가 갑자기 서버려서 가족이 위험할 뻔 했다. 그는 벤츠 회사에 항의를 했지만, 벤츠 회사는 그의 말을 성의 있게 들어주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벤츠를 부순 것은 자신의 꿈이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런 소망이 죽은 소망이다.
떠나온 사람들은 돌아갈 곳이 없다. 여행을 가는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온다. 산책을 하든 하이킹을 하든, 백패킹을 하든 트레킹을 하든, 해외 여행을 하든, 해외 배낭 여행을 하든 집으로 다시 돌아온다. 그러나 이사, 이주라는 것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길을 떠나는 것이다. 이런 일에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2. 긴장이다.
(벧전 1:13)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어떤 일이든 긴장을 놓으면 문제가 생긴다.
소망과 긴장은 사람의 생명을 연장시키기도 한다. 한 어린 아이가 어떤 암에 걸려 고생하고 있었다. 그 아이를 치료하던 의사들은 그가 가망이 없다고 판단하고 치료를 중단했다. 그러나 그 소년은 자신이 걸린 병을 잘 고치는 유명한 의사에 대하여 들었고, 그 의사 선생님을 만나기로 날을 잡았고, 그 의사에게 진찰받고 치료 받으면 낳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의사가 오기로 한 날 날씨가 매우 안좋아서 의사는 올 수 없었다. 아이는 희망의 끈을 놓아버렸고, 며칠 후 죽었다. 긴장이 없어지면 위험해 진다.
죽음을 앞둔 어른신이 "지금은 우리 아들이 추수할 때인데 추수가 다 끝나기 전에 내가 죽으면 얼마나 번거롭겠는가. 그러면 안되지. 그 때까지는 내가 버텨야지."라고 말한다. 그리고 정말 아들이 추수가 다 끝난 다음 날 세상을 떠난다. 아들이 추수를 다 할 때까지 정신을 바짝 차리고 긴장했던 것이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고 있으면 살 수 있다고 했다.
봄에 어른신들이 많이 돌아가신다고 한다. 겨울에는 바짝 긴장했다가 봄이 오면 긴장을 끈을 놓으시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나라는 긴장의 끈을 놓을 때가 아니다. 코로나도 이겨야 하고 쓰러지는 기업들도 일으켜 세워야 한다. 경제적으로도 최고의 위기를 겪고 있다. 현대, 효성, 한진 같은 대기업들도 픽픽 쓰러지고, 삼성도 일거리를 줄이고 있다. 대기업에 물건을 대던 중소기업들은 더 일찍 쓰러졌다. 일거리도 없고, 일자리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지금 젊은 세대 이후에 나타나는 세대 후손들은 우리나라의 60년대나 70년대처럼 어려운 경제 생활을 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도 있다.
긴장을 놓으면 사고가 난다. 목적지를 향해 이주해 가는 사람들은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3. 겸손이다.
(벧전 5: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겸손의 자세가 없이는 분쟁이 일어난다.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도, 사람과 하나님 간의 관계도 겸손이 필요하다. 자녀도 부모에게, 부모도 자녀에게 겸손의 관계가 있어야 가정이 평화롭고, 직장에서도 동료들끼리 상하를 불문하고 서로 겸손하지 않으면 고통스러운 직장이 된다.
못 배우고 무식한 사람들은 말과 행동에 겸손이 없다. 타인을 비판하고 험담하는 사람들은 천국에 갈 수 없다.
(막 4:24) 또 이르시되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며 더 받으리니
이집트를 탈출해서 모세를 따라 하나님이 주시기로 한 새로운 땅으로 이주해 가던 1세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왜 광야에서 망했는가? 그것은 겸손을 잃어버리고 서로 원망하고 질투하고 시기했기 때문이다.
(고전10:10)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함께 이사하는 사람들, 함께 이사하는 가족들은 서로 마음이 맞아야 이사를 원활히 할 수 있다. 서로 눈빛만 봐도 뭘 하라는 것인지 알아 차릴 수 있어야 이사를 할 수 있다. 이주 한다는 것은 큰 스트레스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직장 생활도 마찬가지이다. 미국 사람들은 코로나 사태를 맞아 '굶을 것이냐, 죽을 것이냐'로 논쟁한다고 한다. 코로나 때문에 서로 만나지 말라고 하자니 경제가 안돌아가서 굶어 죽을 것 같고, 자유롭게 만나서 경제 활동을 하라고 하려니 병 걸려 죽을 것 같아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다니는 직장이라는 것은 굶어 죽지 않기 위해서 다녀야 하는 것이다. 그런 중요한 직장 안에서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지 않으면 원망하고 불평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험담하게 된다. 그러면 그 직장은 지옥이 되는 것이다. 반대로 서로 겸손하고 이해하고 칭찬하고 도우려고 한다면 직장은 천국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