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옴노트 선택시
쉬옴노트 선택시
1. 가을 땡볕 아래서
2. 절망의 꽃·1
3. 절망의 꽃·2
4. 거짓증언·1
5. 나는 네 잎 클로버를 손에 쥐고 있었다
6. 에필로그 · 나는 잊혀져 가는 눈물에 대해서 썼다
가을 땡볕 아래서
할아버지 멍하니 하늘 보고 계신다.
지나간 사람들을 보면서 지나간 사람들을
추억하고 계실지도 모른다
가을 땡볕 아래서
할아버지 졸고 계신다
꿈을 꾸면서 며느리랑 손자랑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계시나 본데.
할아버지 갑자기
눈물은 왜 글썽거리시는지
가을 땡볕 아래서
꼬마애들 소꿉장난 하고 계신다,
여보당신 하면서 재미있는 장난을 치시나 본데
할아버지 연신 갸우뚱하며 쳐다보시다
문득 얹어지는 입가의 미소
하늘을 지나가는 구름이
자꾸만 햇살을 가려내신다
절망의 꽃 ․ 1
- REPEAT
R - 희망을 읊으며 절망하는 것
E - 절망하는 데에 다시 절망하는 것
P - 절망을 희망으로 옮겨 놓는 것
E - 옮겨놓은 절망에 희망을 부여하는 것
A - 부여한 희망에 다시 희망을 부풀리는 것
T - 부풀린 희망에 다시 절망하는 것
(그러므로, REPEAT는 REPEAT인 것)
(그러므로, 반복되는 것은 다시 반복되는 것)
(그러므로, REPEAT는 반복되는 것)
(그러므로, 반복되는 것은 REPEAT인 것)
그러므로
사랑하는 것.
절망의 꽃 ․ 2
- 자만(自慢)에 대하여
컴퓨터 조각의 불러오기, 디스켓을
A:
B:
에 꽂고
디스켓 한 조각을 야금야금 먹으며
아, 詩
를 쓰다
C:
무한대의 용량,
기억된 걸 모두 잊어버리다
야금야금 갈아먹는 C:
에
아, 詩
가 있었다
디스켓 한조각을 야금야금 먹는
A:
B:
그리고
C:
아, 詩
를 썼다
거짓증언․1
- 반항 (反抗)
1
나 이제 꿈
꾸지 않으려 한다
- 수도 없이 상처받은 사람들이 대인기피증 혹은 대인공포증에 걸릴 때가 있다 그런 사람들은 폭넓은 이해심을 지녔을 것이라고 나는 한번 생각해 본다 때로 상처 없이 병에 걸린 사람들 자기 안에 갇혀 자기만의 슬픔이 최고라는 생각을 한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문득
역겨워진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이런 생각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거울 속에 내가 있다
문득, 그가 역겹다
흉터 하나 없는 고운 얼굴이다
2
햇살이 언제나
따스한 기억으로 남는 것은 아니다
- 따가운 손 위에 내 손을 얹었을 때 때로는 차가운 손이 따가운 손을 시원하게 해주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쩌면 더욱더 큰 상처
차가운 마음으로 치료할 수 있으리라
(상상(想像) : 원형(圓形)의 탁자에 1,2,3,4 가 놓여있다
눈물 흘리는 1번 앞에 2번
차가운 눈길로 3번 쏘아보고 웃음 머금은 3번
4번의 차가운 손잡고 4번의 다른 손
1번의 눈물을 훔친다)
이제 더 이상
손이 차가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3
도망가자
이 바쁜 한숨 속에서
울렁이다 토해내는
오염된 땅
이제 그만 벗어나자
- 고개 푹 숙이고 땅만 보며 걷는다 기운 없어 보이고 싶지 않지만 고개 들고 싶지 않다 세상을 바라보는 게 그저 부끄러워 고개 푹 숙이고 땅만 보며 걷는다
나는 왜 오염된 땅이라고 하면서
오염된 땅만 바라보는 것일까
그게 다시 부끄러워
하늘을 쳐다보았더니
구름 한점 없는 맑은 날씨다
4
답답한 가슴 눌러앉고 하늘 바라보면
고요한 세상은 숨 막힐 지경이다
- 포용력을 지닌다는 것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고 나는 한번 생각해 본다 그러므로 노인은 공경하고 봐야한다 이것이 신세대의 약점이라면 약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때로 포용력은 사람을 지치게도 하지만 그런 포용력이 없다면 세상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아직까지도 나는
내 생각을 확실히 알 수 없다
확신할 수 있다면)
이제 더 이상
이따위 시는 쓰지 않으리라
똑바로 서려 해도
결코 설 수 없는
오뚝이는 되지 않으련다
증언대에 서서
거짓말하는
그런 옹졸한 인간은
되지 않으련다
나 이제 꿈
꾸지 않으련다
나는 네 잎 클로버를 손에 쥐고 있었다
행운을 부를 수 없다던 너의
세 잎 클로버를 손에 쥐고서
하늘을 바라본다, 푸른 세상이
야위어만 구름 위에서
두둥실 두둥실 두리둥실 떠다니고
주머니엔 없다던 엽전 한 닢,
새의 꿈을 꾸면서 노을 저편에
함박, 웃음을 짓고 걸려 있다
손바닥을 펴 흘린 한숨, 다시
스러져가는 지평선을 바라보면 이어지는 고요,
세상은 침묵 속에서도 흘러간다고
두 눈을 깜박이며 네가 말했던
세계는 지금 어둠에 잡혀가고 있다
아침이 오면 달라질 것들.
어둠은 떠나지도 않았는데,
햇살은 어딘가에서 내리쪼이고
나는 두 손에 네가 가졌던
네잎 클로버를 손에 쥐고서
꿈을 꾼다, 잠이 들면 꿈을 꾸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나는 두 손을 불끈 쥔다.
에필로그·나는 잊혀져 가는 눈물에 대해서 썼다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진심으로 닿으면
멋진 글도 자연스럽게 나올 것이라며
너무도 당연한 충고를
모모박사는
진심을 가득 담아서
내게 총알같은 비수를
꽂아주었다, 나에게는
우울증에 걸린 환자들이
문득 떠올랐고
모모박사의 눈을 쏘아보면서
시 쓰는 그 자체가 진심이지요,
진심이 아닌 진심이 있다면
그것은 진실이 아니겠지요,
라며 그녀에게 상처를 주기 위한
또 다른 충고를 했고
지나친 감상은 시 쓰기에 해로울 것이라며
모모박사는 또. 한. 번.
날카로운 지적을 했지만 나는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고
자꾸만 흘러내리는 눈물 속에서
모모박사의 눈물도 선명하게 글썽거리고 있었고
내가 떠올린 환자들에 대해서 물어보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고
자꾸만 잊혀져가는 눈물에 대해서 나는 자꾸만
자꾸만 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