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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국훈독경 (天一國訓讀經)
제4권 참부모와 나 - 제1일
하나님은 종적인 참부모
날짜 : 1988. 4. 16(토)
장소 : 한국 본부교회
1. 존재하는 모든 것은 부모가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생물들 가운데 부모를 갖지 않은 존재는 없습니다. 식물을 보더라도, 미물인 곤충을 보더라도 태어나게 한 근본이 있습니다. 차원은 다르지만 부모를 갖고 태어납니다. 이와 같이 새로운 생명이 연결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부모가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60억 인류가 있지만 어느 누구를 보더라도 부모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 유식하거나 무식하거나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사람에게는 반드시 부모가 있습니다. 그런 부모 위에 또 부모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계속 올라갑니다. 그래서 그 수많은 선조들을 거쳐서 오늘날 60억 인류가 번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부모의 심정을 두고 볼 때, 동양 사람의 부모의 심정과 서양 사람의 부모의 심정이 다를 것이냐? 다르지 않습니다. 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부모의 심정과 역사시대에 있어서 최초의 부모의 심정이 다를 것이냐? 만일 다르다면 행복의 기준도 달라지고 선의 기준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과거 우리 선조들이 가졌던 부모의 사랑이나 현재 살고 있는 우리 부모의 사랑이나 그 사랑은 같은 사랑이어야 합니다. 부모의 사랑은 같아야 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사랑은 같다고 할 때,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사랑은 어떠해야 하느냐? 이것은 일반 사회에도 적용되는 말입니다. 역사를 초월해서 이 말은 언제나 같다고 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이것이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175-144)
부모라는 말은 사랑을 기반으로 하여 생명이 연결된 데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거기서부터 부모가 생겨나고 자식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면 부모와 자식의 관계, 즉 부자지간은 무엇을 매개로 하여 인연되어 있느냐? 생명만이 아닙니다. 사랑과 생명이 매개체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사랑이 먼저냐, 생명이 먼저냐? 사랑이 먼저입니다. 왜 사랑이 먼저냐? 태어난 나를 놓고 볼 때, 어머니 아버지의 생명이 먼저가 아니었습니다. 무엇을 통해서 내가 연결되어 태어났느냐 하면 사랑으로 연결되어 태어났습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이 어땠는지, 누가 먼저 좋아했는지 모르지만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그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을 뿌리로 해서 생명이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생명의 역사를 더듬어 올라가서 들추어 볼 때 뿌리 중의 뿌리가 무엇이겠느냐? 생명이겠느냐, 사랑이겠느냐? 사랑입니다. 이렇게 올라가서 우리 인간의 종지조상(宗之祖上)인 아담 해와까지 찾아 들어가게 되는데, 아담 해와가 있게 된 것도 하나님의 창조력이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먼저였습니다. (175-147)
2. 왜 하나님이 사람을 지었느냐
하나님이 모든 것을 통일하실 수 있는 내용으로 무엇을 결정하셨느냐? 만국의 진리는 남자와 여자의 이상이 없습니다. 참된 남자와 여자의 사지백체가 진리입니다. 글이 진리가 아닙니다.
그러면 아버지 중의 아버지, 참된 진리의 아버지는 어떤 아버지냐? 참된 사랑을 가진 아버지입니다. 그리고 참된 부부는 참된 사랑을 가진 부부이고, 그들이 하나될 때 참된 진리의 전당이 됩니다. 사랑으로 형제와 하나될 수 있고 부모와 하나될 수 있게 될 때, 그러한 사람이 바로 진리체입니다.
그러한 진리체를 만드는 것은 생명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하나되게 만든 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 사랑의 동참자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절대시하고 천지가 공인하는 절대적인 사랑 가운데 동참한 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뿌리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뿌리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뼛골과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으면 본연의 선한 조상, 참부모가 되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 참부모는 종적인 사랑을 대표한 부모입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한 것은 사랑의 대상을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창조주와 피조물은 상관관계를 맺을 수 없다고 합니다. 창조주는 거룩한 것이고 피조물은 속된 것이기 때문에 상관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속된 인간과 하나님이 어떻게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에 대해서 어떻게 아버지라는 말을 할 수 있습니까? 그렇게 주장하는 자체가 모순입니다.
왜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셨느냐? 창조하신 그 출발의 동기가 무엇이었느냐? 사랑의 대상을 찾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은 혼자이시기 때문에 종적으로 계시면 하나의 점밖에 안됩니다. 그러므로 횡적인 부모인 참부모를 통해서 번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부부가 필요하고, 부부가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딸을 천지에 꽉 채우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사랑을 중심 삼은 종적인 부모이시기 때문에 종적인 부모 앞에 90도로 설 수 있는 부모, 수평으로 설 수 있는 횡적인 부모가 필요합니다. 그 횡적인 부모가 남자와 여자입니다. 그러면 남자와 여자가 어디서 만나야 되느냐? 동쪽과 서쪽의 중심에서 만나야 됩니다. 그 중심에서 하나되면 누구도 뗄 수 없습니다.
그 종적인 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 축을 하나님과 인류의 조상,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조상이 하나되어서 이어놓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못했기 때문에 복귀해야 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 참부모라는 말을 합니다. 그 참부모는 하나님의 종적인 참사랑을 중심 삼고 횡적인 참사랑의 자리에 선 분입니다. 참아버지와 참어머니가 하나되는 자리에는 하나님도 내려오고 천지운세도 내려옵니다.
그리고 참부모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뼈와 마찬가지가 되어야 하고 참부모의 사랑은 몸과 마찬가지가 되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혈통과 심정권을 이어받으면 종교라는 것이 필요 없습니다. 종교는 사랑을 만들 수 없고 사랑의 길도 닦을 수 없습니다. 종교가 찾아가는 것은 사랑의 길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사랑의 길을 배워서 가려고 하는 것이 종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세계에서는 종교가 필요 없고 기도도 필요 없습니다. 또, 절대적인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이 절대적인 참사랑과 일치될 수 있는 이상권은 영원합니다. 그런 입장에서 영생의 논리가 형성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의 대상으로 지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참사랑에서만 영생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182-82)
우리 조상이 출발할 때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생겼다, 돈에 의해서 생겼다, 지식에 의해 생겼다 하는 말들은 합당치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 조상의 출발은 어디였느냐? 그 뿌리가 무엇이었느냐?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야, 너 왜 태어났어? 무엇을 자랑할 거야?” 할 때 자랑하고 싶은 것이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사람에게 왜 태어났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우리 부모로부터 할 수 없이 태어났기 때문에 주장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모두 다 주장할 것이 뭐냐? 여성이 “나는 남성의 것이니까 멋지다.” 하고, 남성은 “나는 여성의 것이니까 멋지다.” 하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남성과 여성이 왜 생겨났느냐? 서로 좋아하기 위해서입니다. 참사랑이 우주의 이상적인 공통분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우주의 공통분모인 참사랑에 뿌리를 박고 살 수 있다고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175-150)
아무리 미천한 초목이라고 해도 수그루와 암그루가 있어서 서로 좋아하면서 씨를 만들어 후대를 남깁니다. 그럴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존재는 생명의 공통법에 있어서 합격자라고 당당히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런 법을 만들게 되면 “그거 틀렸소!” 할 존재가 없습니다. 개미새끼를 보고 물어 봐도 “문 선생의 말이 맞지!” 하고, 풀을 보고 물어 봐도 “그렇지!”라고 대답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랑할 것은 힘도 아니요, 조화도 아니고 보이지 않는 사랑입니다. 사랑밖에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그것을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존재는 우주에 없습니다. 그것은 자기 생명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175-152)
하나님처럼 욕심쟁이가 없습니다. 선생님도 하나님을 닮아서 욕심쟁이입니다. 욕심쟁이 중의 욕심쟁이 독재자입니다. 그런데 독재자라도 만세에 통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사랑을 중심삼은 욕심쟁이 독재자는 만세에 통합니다. 참사랑을 중심삼은 독재자는 만세가 영원히 보전하고 옹호하며 찬양합니다.
험상궂은 할아버지라고 하더라도 그 집안에서 사랑의 독재자라고 할 때는 할머니도 나빠하지 않습니다. 아들도 좋아하고, 며느리도 좋아합니다. 또한, 손자 손녀도 좋아하면서 영원히 같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러한 자리에 계시려고 합니다. 사랑의 독재자의 자리가 하나님한테 제일 맞는 자리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무슨 사랑의 독재자냐? 나를 위하라는 독재자가 아니고 상대를 위하겠다는 독재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통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자기를 위하는 사람과는 상관없습니다. 자기를 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하려고 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과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볼 때, 하나님은 위해주려고 하시는 사랑의 독재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해주려는 사랑의 본질로서 유아독존(唯我獨尊)의 자리에 계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참된 사람을 모르고는 참사랑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생기셨을까요? 올려다보면 남자를 닮으셨고, 내려다보면 여자를 닮으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를 같이 닮으셨다고 하면 큰일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절대적으로 위하여 살려고 하시는 분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또한, 위하여 살겠다는 하나님입니다. 위하여 살겠다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 하나님이 영원토록 독재자가 되시더라도 반대할 자가 없습니다. (175-157)
3. 우주사적인 하나님의 창조의 소망
사랑의 본체인 하나님은 사랑 때문에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사랑은 혼자로써 성립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절대로 필요로 하시는 오직 한 가지는 그 사랑을 베풀 수 있는 대상, 즉 하나님이 사랑하실 수 있는 대상입니다. 반드시 상대가 있어야만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과 심정의 본체인 하나님은 그 사랑이 동기가 되어 우주를 창조하셨고, 특히 창세기 1장 27절의 말씀대로 하나님을 닮은 실체대상으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만민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무형의 내적인 부모요, 완성된 아담 해와는 유형의 외적인 부모가 될 것이었습니다. 최대의 사랑은 주체와 대상이 영원한 사랑을 주고받아 완전히 하나가 될 때 나타나고 결실됩니다. 진정한 사랑 속에서는 자동적인 통일이 벌어지고, 또 생명이 연결되며, 이상이 실현됩니다.
흔히, 창조주와 피조물은 대등한 자리에 설 수 없다고 말하여 왔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창조주는 사랑의 실천이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상은 자녀인 아담 해와를 유형실체대상으로 세우셔서 영원히 그들과 합일되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의 말씀대로 하나님은 인간 속에 거하기를 원하십니다.
무형적인 하나님의 사랑이상이 실체 인간을 통하여 실현되는 기점은 인간이 하나님의 대상체로 완성되는 순간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중심삼고 인격적으로 성숙하여 마음과 몸이 완전히 하나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과 이상 그리고 생명의 영원한 대상으로 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지상에 지으셨으니 천국은 지상에서 먼저 이루어지게 되어 있었고, 그들이 지상에서 이상적인 생활을 하다가 영인체로 천상의 영원한 천국에 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인간은 주체와 대상, 즉 상대적인 쌍으로 지은 바 되었고, 또 인간을 위하여 존재하는 온 만물세계도 사랑의 원리 아래 조화를 이루고, 또 인간의 사랑으로써 생명과 이상을 실현하게 되어 있습니다. 만물세계는 자라나던 아담 해와에게 사랑의 교과서요, 사랑의 진수가 무진장으로 진열된 박물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성(一性)을 각각 대표한 아담 해와가 하나님이 허락한 사랑의 교과서인 자연 속에서 사랑을 터득하면서 완전히 자라 가지고 횡적으로 일체 되는 상대이상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소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과 인간이 주체와 대상으로서 종적인 사랑의 관계를 완성하는 것만을 목표로 하지는 않았습니다. 종적인 사랑을 완성하여 아담 해와가 자신들의 횡적인 사랑의 결실을 이루어야 했습니다. 그 순간이 바로 내적 부모인 하나님이 외적 부모인 아담 해와와 완전한 일체를 이루어 사랑의 이상을 성취하는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무형의 부모인 하나님이 아담 해와의 형상을 쓰고 유형세계에 영존하는 부모가 될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아담 해와는 참부모, 참조상이 되었을 것입니다. (135-10)
4.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할 때, 오늘 우리가 육신을 통해서 태어난 부모와 하나님은 어떠한 차이가 있느냐? 이게 막연합니다. 신비스러운 체험을 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우주의 근본이 무엇인가를 궁금해할 것입니다. 우주의 근본은 사람입니다. 그러면 인간의 근본은 무엇이냐? 인간의 근본은 생명입니다. 생명의 근본은 무엇이냐? 그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생명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사랑의 근본은 무엇이냐? 여기서 인간 이상의 것으로 올라갑니다. 그것은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다.” 할 때, 하나님 자신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해서 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상대가 있어서 그 상대와 절대적인 사랑의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상대적인 여건을 마련한 입장에 서지 않고는 사랑이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데는 상대적인 여건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상대가 필요하다면, 하나님의 상대가 누구냐? 그 상대가 동물 혹은 만물 중의 어떤 것이 될 수 있느냐? 그건 사람 이외에는 다른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어떤 동물이든지 하늘을 추앙하거나 하늘을 숭배하는 종교형식을 가진 동물은 없습니다. 인간만이 고차적인 하늘을 추구합니다.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하나님이 사랑의 근원자라면 그 사랑의 상대가 될 수 있는 자격을 갖고 나타날 수 있는 존재는 인간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려면 어떤 격위(格位)에서 사랑해야 하느냐? 주종관계(主從關係)의 자리에서 사랑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절대적인 사랑의 주체라면 절대적인 사랑의 상대를 가져야 합니다. 그런 입장에서 사랑해야 절대적인 사랑이 성립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인간을 종의 자리에 두고 하나님이 사랑하려고 하셨느냐? 사랑은 정서적인 내용입니다. 그 사랑의 중심으로 설 수 있는 핵이 무엇이냐? 하나님은 우리 인류의 아버지가 되는 것이고, 우리 인간은 그분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그 이외의 길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명사를 두고 볼 때, 하나님과 우리 인간은 주종관계가 아니라 절대적인 내용을 같이하고, 운명을 같이하고, 목적을 같이하고, 환경을 같이할 수 있는 관계입니다. 그런 관계가 어떤 관계냐?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고, 우리는 아들이 되는 관계입니다. (48-205)
원래 하나님은 종적인 우리 아버지입니다. 다시 말하면, 참사랑을 중심삼은 종적인 내 아버지가 하나님입니다. 이건 틀림없는 말입니다. 위대한 발견입니다. 그 종적인 하나님 앞에 백 퍼센트 90도를 갖출 수 있는 본연의 참사랑을 중심삼고 완성해야 했던 인류의 참부모가 아담 해와였습니다. 종적인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생명, 하나님의 혈통에 횡적인 참부모의 사랑, 참부모의 생명, 참부모의 혈통이 하나되어 나타난 것이 나입니다. (198-303)
하나님으로부터 지상에 내려오는 참사랑은 최단거리인 수직선으로 내려옵니다. 남녀간의 사랑도 역시 최단거리로 통하여 수평을 이룹니다. 그래서 수직적인 참사랑이 수평적인 참사랑과 만나게 될 때, 그 교차점은 절대적으로 90도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기타의 다른 방법으로는 그 사랑이 교차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과 해와가 참부모로 섰다면 하나님의 수직적인 참사랑과 아담 해와의 수평적인 참사랑이 90도의 교차점을 이루었을 것이고, 우리에게는 종적인 참부모와 횡적인 참부모의 두 참부모가 있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우리는 참사랑과 참생명 그리고 참혈통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참사랑과 완전히 공명되는 하나의 세계를 창조했을 것입니다. (201-212)
하나님이 인류의 조상이 되시기 위해서는 체(體)가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 해와를 창조해서 체를 입고 나오셨습니다. 그 체는 내적인 마음체, 영인체와 외적인 몸체로 되어 있었는데 그 둘이 하나되어야 했습니다. 어떻게 하나되어야 했느냐? 창조주 하나님은 종적인 참부모고, 아담 해와는 횡적인 참부모였습니다. 종적인 참부모인 하나님과 그 창조주의 몸과 같았던 아담 해와는 사랑을 중심 삼고 하나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인간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이 어디서 하나되느냐? 남자 여자가 결혼하는 자리에서 하나됩니다.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지으신 것은 첫째로 체를 입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둘째는 하늘나라의 백성을 생산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은 종적인 기준입니다. 종은 축 하나밖에 없습니다. 한 점밖에 없기 때문에 면적이 없으므로 횡적인 기준을 중심 삼고 전개되어야 합니다. 종적인 것은 면적이 없지만 횡적인 것은 면적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나라의 백성을 생산하기 위한 생산공장이 부부이고, 생산활동이 부부생활입니다. 그러므로 부부가 사랑을 하는 것은 아들딸을 낳기 위해서입니다. 자기가 좋아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223-236)
5. 하나님과 참부모에 대해 확실히 알아야
만일 하나님이 영적으로만 번식하셨다면 종적인 자리에만 계시게 되었을 것입니다. 종적인 자리에서는 실체적인 번식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종적인 길을 통해서만 왕래하실 수 있지 마음대로 움직이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참사랑을 중심 삼은 종적인 아버지입니다. 참사랑은 종적인 아버지인 하나님의 사랑에 우리가 하나되지 않고는 생겨날 수 없습니다.
그러면 횡적인 아버지가 왜 필요하냐? 구형을 이루려니까 필요합니다. 구형이 이루어져야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주는 축을 중심삼고 돕니다. 그 축은 하나여야 됩니다. 둘이 될 수 없습니다. (182-143)
6. 하나님의 종적인 참사랑은 인간을 통해 세계화된다
참사랑이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느냐? 참사랑이라는 말은 하나님과 참부모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종적인 참사랑을 중심 삼은 부모입니다. 그리고 아담 해와가 성숙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더라면 횡적인 참부모가 되었을 것입니다. 횡적인 참사랑을 중심 삼고 부모가 되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그 참부모가 어디서 하나되었겠느냐? 종적인 하나님과 횡적인 참부모는 사랑을 중심 삼고 90도가 되는 교차점에서 하나됩니다. 거기서 하나되면, 그 다음에는 세계화시켜야 합니다. (183-104)
생육하고 번성하기 위해서 합하는 것이 남자와 여자의 결혼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식은 부모가 주례를 해야 됩니다. 자기 마음대로 결혼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원래 아담 해와의 결혼식은 하나님이 해 주시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어야 했느냐? 아담 해와는 부처(夫妻)가 되어 자녀를 낳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종적인 기준과 횡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사랑의 구형을 이루어서 세계로 확대시켜야 했습니다. (183-111)
참가정을 근원으로 하여 번성된 종족, 민족, 국가, 세계는 하나님의 사랑과 선이 충만한 세계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와 같은 세계가 곧 천국이요, 하나님의 창조목적인 그 천국이 지상에 이루어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19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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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참부모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주
하늘부모님 천지인 참부모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주
감사합니다 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