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칭(南偁) - 충경공 충간공 부정공파 8세
▲ 충간공(忠簡公) 남지(南智)의 차남 – 남칭(南偁)
남칭(南偁, ?~?) 조선 전기 문신으로 본관은 의령(宜寜)이며 부정공(副正公)파 파조이다. 증조부는 조선개국 1등 공신이며, 영의정을 지냈고 충경(忠景)의 시호를 받은 남재(南在)이시다. 조부는 병조의랑 남경문(南景文)이고, 부친은 좌의정 지냈고, 충간(忠簡)의 시호를 받은 남지(南智)이다. 모친은 전의 이씨(全義 李氏) 이문간(李文幹)의 딸이다. 부인은 연안송씨(延安宋氏)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 송희경(宋希瓊)의 딸이다.
남칭의 생몰년도는 기록이 없으며 1455년(세조 1년) 승(丞)으로서 좌익원종공신(佐翼原從功臣) 3등에 녹훈되었다. 1462년 좌랑을 거쳐 1467년 형조정랑을 지냈다. 1474년(성종 5년) 의빈부경력을 지냈 으며, 이듬해에는 선농단(先農壇)의 선농제에서 알자(謁者)를 맡았다. 1478년에는 수원부사를 지냈으며, 『족보』에는 내섬시부정을 지내고 호조참의를 추증 받았다고 기록되어있다. 묘는 광주군 세촌면 음촌촌 에 있었으나 광주시 직동으로 이장하였다.
1467년(세조 13년) 12월 17일 명나라에 사은사(謝恩使)로 간 남윤(南倫)이 10월 30일에 병(病)으로 회동관(會同館)에서 급서(急逝) 하여 임금은 그 아들 남흔(南忻)에게 명하여 그 아우 형조 정랑(刑曹正郞) 남칭(南偁)과 더불어 역마(驛馬)를 달려 의주(義州)로 가서 영구(靈柩)를 맞이하게 하였다.
1473에는 임금의 전지로 성종의 부친인 덕종(德宗)의 묘 조성을 관여했던 의묘조성낭청(懿廟造成郞廳) 행 부사직(行副司直)에서 문관인 동반(東班)으로 서용(敍用)된 바 있으며, 1475년 55세에는 선농제 알자(謁者)로서 임금에게 아마(兒馬) 1필(匹)을 하사 받으셨고, 의빈부 경력(儀賓府經歷)을 지내셨다.
58세인 1478에는 수원 부사(水原府使)로 계시면서 아전(衙前)의 역사(役事)를 면제하여 주고 함부로 들깨인 임자(荏子)와 지지(紙地)를 받았다 모함을 받아 징계를 받으셨다가, 60세인 1480년에 직첩(職牒)을 돌려받고 벼슬로 서용(敍用) 되었다.
5세 충경공(忠景公) 남재의 배위(配位) 변한국대부인(卞韓國大夫人) 파평 윤씨(坡平尹氏) 묘표(墓表)에는 중국 명나라 8대 황제 성화(成化, 1464년-1487년) 연간에 증손인 부정공 남칭(南偁)이 송도 판관(松都判官)으로 있으면서 표석을 세웠다는 기록도 있다.
◆ 남칭(南偁)의 가계도 - 충경공 충간공 부정공파 8세
영의정 재(在) 충경공 | 5세 |
경문(景文) 의랑공 | 6세 |
휘(暉) 의산위공 | 간(簡) 직제학공 | 지(智) 충간공 | 7세 |
| | 동 | 의(儀) | 휴(休) | 구(俅) | 칭(偁) | 윤(倫) | 8세 |
| | | 참판공 | 별좌공 | 간성공 | 부정공 | 감사공 | 파 |
◼ 증조부 : 남재(南在, 1351년~1419년)-조선의 개국공신, 영의정
◼ 조부 : 남경문 (南景文, 1370년~1395년/1403년) - 병조의랑, 영의정부사에 추증
◼ 조모 : 숙녕택주(淑寧宅主) 온양 방씨(溫陽 方氏) 방순(方恂)의 딸,
판전교시사(判典校侍事), 참의(參議) 고려의 문신, 호 만송당(晩松堂)
◼ 부 : 남지(南智) 1392년~1454년 좌의정
◼ 모 : 전의 이씨(全義 李氏) 이문간(李文幹)의 딸
차남 : 남칭(南偁) 내섬시부정
부인 : 연안송씨(延安宋氏)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 송희경(宋希瓊)의 딸
장자 : 남변(南忭) 삭령군수 1454년~1499년
며느리 : 한산이씨(韓山李氏) 한성군 이훈(李塤)의 딸 (목은 이색)
모친 효령대군 이보의 딸
• 장남(손자) : 남세웅(南世雄) 병조참판
• 차남(손자) : 남세형(南世衡) 부사
• 3남(손자) : 남세평(南世坪) 안성군수
• 4남(손자) : 남세준(南世準) 이조참판
• 5남(손자) : 남세칙(南世則) 병절교위
• 6남(손자) : 남세건(南世建) 예조참판
• 7남(손자) : 남세언(南世彦) 인천부사
◆ 세조, 성종실록의 기록 - 남칭(南偁)
1467년(세조 13년) 12월 17일 사은사가 통사를 보내 사신 남윤이 회동관에서 졸하다.
사은사(謝恩事)가 먼저 통사(通事)를 보내 와서 아뢰기를,
"사신(使臣) 남윤(南倫)이 10월 30일에 병(病)으로 회동관(會同館)에서 졸(卒)하였습니다. (중략) 임금이 그 아들 남흔(南忻)에게 명하여 그 아우 형조 정랑(刑曹正郞) 남칭(南偁)과 더불어 역마(驛馬)를 달려 의주(義州)로 가서 영구(靈柩)를 맞이하게 하였다. 또 승정원(承政院)으로 하여금 평안도(平安道)·황해도(黃海道)·경기(京畿)의 관찰사(觀察使)에게 치서(馳書)하여 시체(屍體)의 영구를 호송(護送)하게 하였다.
1468년(세조 14년) 2월 12일 승정원(承政院)에서 전지를 받들어, 유도 승지(留都承旨)에게 치서(馳書)하기를, "중국인 함승(咸勝) 등 8인을 해송(解送)하는 문서(文書)와 압해관(押解官) 을 차정(差定)하는 등의 일을 시기에 미쳐서 마련(磨鍊)하여 보내고, 또 남윤(南倫)의 시구(屍柩)059) 가 오는 데는, 아우 정랑(正郞) 남칭(南偁)과 아들 남흔(南忻)에게 역말을 주어 보내어 호위하여 돌아오게 하라." 하였다.
1473년(성종 4년) 9월 22일 이조(吏曹)에 전지하기를, "의묘 조성 낭청(懿廟造成郞廳) 행 부호군(行副護軍) 김작(金碏), 행 부사직(行副司直) 윤해(尹垓)·남칭(南偁)·이계정(李繼楨)은 동반(東班)에 서용(敍用)하라." 하였다.
1475년(성종 6년) 1월 25일 선농제 알자(謁者) 남칭(南偁) 아마(兒馬) 1필(匹)을 하사 받았다.
1475년(성종 6년) 6월 29일 이조(吏曹)와 병조(兵曹)에 전지(傳旨)하기를, "궁궐 수리 도감(宮闕修理都監)의 관직제수에 의빈부 경력(儀賓府經歷) 남칭(南偁) 등을 동반(東班)에 있는 자는 개만(箇滿) 되기를 기다려 승직(陞職)하고, 서반(西班)에 있는 자는 결원에 따라서 동반에 서용할 것이며, 전함(前銜)은 서반에 서용하라.
1478년(성종 9년) 12월 22일 수원 부사(水原府使)를 지내셨다.
의령남씨 남칭, 부정공 남칭, 남칭, 충간공 남지 남칭, 좌의정 남지, 남칭, 연안송씨 송희경, 남윤의 동생 남칭
형조정랑 남칭, 남재 남칭, 수원부사 남칭
<참고문헌>
문종실록
단종실록
세조실록
예종실록
명종실록
성남문화원
성남인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