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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의 주제는 하나님의 섭리이다.
이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되고 있다. 이 세상에서 변화되지 않는 것은 죽은 것이다. 한 편으로 보면 이 세상의 변화가 우연과 운명처럼 보이지만, 신앙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의 의지에 의하여 변화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섭리하신다는 것만 믿지, 앞으로 어떻게 세상을 이끌어 가실지 알지 못한다. 에스더서의 가장 유명한 구절이 있다. 에스더가 한 말이다.
“죽으면 죽으리이다.”
즉 자신이 어떤 일을 할 것인데 이 일로 죽게 될지, 살게 될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인간의 삶은 불확실한 삶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일이 닥쳐오고 그 일이 자신에게 득이 되는 일인지 해가 되는 일인지 잘 알지 못한다. 앞으로 자신과 이 세상이 어떻게 될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우리가 믿는 것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지금까지 인도해 오셨고 인도하고 계시며 앞으로도 끝까지 인도하신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 뿐 아니라 세상 모든 백성들도 다 하나님의 백성이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다.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이라는 말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일에 관여하신다는 것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에]1:1 이 일은 아하수에로 왕 때에 있었던 일이니 아하수에로는 인도로부터 구스까지 백이십칠 지방을 다스리는 왕이라
고레스 캄비세스 다리우스 아하수에로 아닥사스다 다섯 왕은 포로기 이후에 나온 성경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 매우 중요한 왕들이다. 캄비세스 왕에 대한 이야기는 성경 역사서에서는 빠져 있다. 포로 후기의 성경 역사는 페르시아의 역사를 배경으로 일어난 일이다. 유대인들은 여전히 페르시아의 한 국민으로써 살았었다.
페르시아 왕들은 유대인들에게 특별히 잘해 주었다. 다른 민족들에게도 잘해 주었지만, 특히 유대인들에게 잘 대해 주고 고향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서 예루살렘에 성전과 성벽을 만들게 해준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가나안 땅 남쪽 이집트에서 곡물을 실어 나라오는 길목에 있는 곳이 가나안이었기 때문이다. 이 지역이 정치적으로 안정되지 않으면 이집트에서 이모작을 해서 생겨나는 그 곡식들을 제대로 페르시아로 실어올 수 없었기 때문에 가나안 지역은 페르시아 황들에게는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었다. 오죽했으면 유다 지역의 총독의 재임기간이 겨우 평균 3년 정도였다고 한다. 느헤미야는 8년이나 총독으로 있었으니 대단히 오래 버틴 것이었다.
페르시아 이후에 나타난 제국들도 북아프리카에 있는 이집트를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집트에서 빼앗아 올 수 있는 곡식 때문이었다. 바울이 로마로 압송되어 갈 때 탔던 배도 이집트에서 곡물을 로마로 실어 나르는 배였다.
[행]28:11 석 달 후에 우리가 그 섬에서 겨울을 난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떠나니 그 배의 머리 장식은 디오스구로라
알렉산드리아는 이집트의 항구도시였다. 거기로 곡식을 실어와서 배에 싣고 로마로 가지고 왔던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를 이해할 때도 대통령들의 이름 정도는 외울 수 있어야 한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들은 어떻게 보면 같은 시대를 이어간 대통령들이다.
페르시아는 자신의 영토를 20개의 행정구역으로 나누어 통치했다. 세금을 더 원활히 거두어 들이기 위해서 지역을 더 세분해서 127개의 지방으로 나누었던 것 같다. 동쪽 끝이 인도, 서쪽 끝이 구스(에티오피아)라고 기록되어 있다.
페르시아는 세계 최초의 제국이었다. 그 후 그리스 제국, 로마 제국 같은 대제국들이 나타났다.
[에]1:2 당시에 아하수에로 왕이 수산 궁에서 즉위하고
[에]1:3 왕위에 있은 지 제삼년에 그의 모든 지방관과 신하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니 바사와 메대의 장수와 각 지방의 귀족과 지방관들이 다 왕 앞에 있는지라
잔치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역사를 살펴보면 그의 아버지 다리우스가 그리스와의 전쟁에서 패배했다. 그것이 1차 페르시아 전쟁이었다. 그리스를 정복했으면 서쪽으로 더 영토를 넓혔을 것이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그리스의 한 도시국가인 아테네와의 전투에서 패했다. 페르시아 군대가 아테네로 향하는 도중 마라톤에 도착해서 소규모의 아테네 군대와 싸웠지만 패하고 말았다. 이 패배로 페르시아는 본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다리우스가 죽고 그의 아들 아하수에로가 왕이 되었을 때 아버지가 그리스를 정복을 하지 못한 것을 만회하기 위하여 다시 정복전쟁을 했다. 그 전쟁을 일으키기 전에 페르시아 군대의 사기를 높이기 위하여 크게 잔치를 벌였다. .
[에]1:4 왕이 여러 날 곧 백팔십 일 동안에 그의 영화로운 나라의 부함과 위엄의 혁혁함을 나타내니라
잔치는 180일 동안 지속되었다. 각 지방으로부터 워낙 많은 세금을 받았기 때문에 왕이 통치하는 수산궁에는 매우 많은 재물들이 있었다. 혁혁하다는 것은 매우 크고 아름답다는 것이다.
[에]1:5 이 날이 지나매 왕이 또 도성 수산에 있는 귀천간의 백성을 위하여 왕궁 후원 뜰에서 칠 일 동안 잔치를 베풀새
신하들과 180일의 잔치를 벌인 뒤에 다시 일반 백성들과 7일간 뒤풀이 잔치를 벌였다. 유적을 살펴보니 백성15000명이 동시에 잔치를 벌일 수 있는 뜰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수산궁이 있었던 터가 유적으로 남아 있다. 흔적으로 남은 기둥들의 웅장하고 궁궐터가 매우 넓다고 한다.
[에]1:6 백색, 녹색, 청색 휘장을 자색 가는 베 줄로 대리석 기둥 은고리에 매고 금과 은으로 만든 걸상을 화반석, 백석, 운모석, 흑석을 깐 땅에 진설하고
잔치에 참여하는 백성들에게 햇볕을 피하게 하려고 천막을 쳤는데 천막의 색깔이 매우 다양했다. 마치 나이트클럽에서 각종 조명이 색깔을 달리하여 번쩍이는 것과 같다. 천막에는 천막을 고정하는 끈이 있어야 하는데, 그 끈이 자색 베 줄이라고 한다. 자색이라는 색은 고대 시대에는 매우 만들어내기 힘들고 비용이 많이 드는 색이었다. 자색 옷은 왕만 입을 수 있는 옷이었다.
천막 줄을 기둥에 박은 은고리에 매고, 잔칫상은 금과 은으로 만들어 진열했다. 궁궐의 바닥은 흙바닥이 아니라 각양 귀한 돌을 깔아 놓았다.
[에]1:7 금 잔으로 마시게 하니 잔의 모양이 각기 다르고 왕이 풍부하였으므로 어주가 한이 없으며
금잔을 한 사람에게 하나씩 주어서 술을 마시게 했는데, 기성품이 아니라 예술품이었다. 또한 술도 소주 같은 평범한 술이 아니라 황제가 먹는 술이었다. 황제만 먹을 수 있는 고급 술이 아주 많이 저장되어 있었고, 황제는 그것을 풀어 백성들에게 먹인 것이다.
[에]1:8 마시는 것도 법도가 있어 사람으로 억지로 하지 않게 하니 이는 왕이 모든 궁내 관리에게 명령하여 각 사람이 마음대로 하게 함이더라
고대 페르시아인들이 술을 먹는 방법은 큰 대접에 가득 술을 따른 뒤 한 번에 들이키는 것이었다. 한 번에 마시지 못한 사람에게는 다시 술을 가득 따른 뒤 마시게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때 만큼은 왕은 관대한 마음을 보이기 위해서 억지로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하고 자유롭게 술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그의 호탕함과 호기를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남자들이 모인 곳에는 사람들이 모이는 사람이 있다. 남자들은 그 사람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하고 그를 형님이라고 부르면서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말한다.
[에]1:9 왕후 와스디도 아하수에로 왕궁에서 여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니라
요즘 대통령 선거를 준비하면서 후보들의 부인들에게 대하여 말이 많다. 누구 부인은 영부인 될 자격이 없다, 국모가 될 자질이 부족하다는 등의 말이 많다. 누구 부인은 어떤 비리가 있다는 말도 많다. 이것은 리더의 배우자가 그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왕의 부인의 역할은 왕이 하지 못하는 부분에 있어서 조용히 채워주는 역할이다. 후보의 부인들도 남편을 돕기 위한다고 너무 튀게 행동하면 오히려 안 좋다. 대통령은 남편이지 영부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남자들과 노는 방식이 다르다. 술에 취해서 여자들과 노는 것이 아니라, 맛 있는 거 먹고 수다 떨며 놀기 때문에, 왕후 와스디는 여자들과 따로 잔치를 벌였던 것이다.
[에]1:10 제칠일에 왕이 주흥이 일어나서 어전 내시 므후만과 비스다와 하르보나와 빅다와 아박다와 세달과 가르가스 일곱 사람을 명령하여
주흥이 일어났다는 것은 술이 취해서 비몽사몽간에 있었다는 것이다. 잔치의 끝날이었으니 더 많이 술을 마셨을 것이다.
[에]1:11 왕후 와스디를 청하여 왕후의 관을 정제하고 왕 앞으로 나아오게 하여 그의 아리따움을 뭇 백성과 지방관들에게 보이게 하라 하니 이는 왕후의 용모가 보기에 좋음이라
남자들은 이런 자리에서 자신이 가진 것을 자랑하고 싶은 것이다. 특히 자기 아내가 예쁘고 자신의 말을 잘 듣는 여자라는 것을 알리고 싶어 한다. 그래서 사람들 보는 앞에서 일부러 아내에게 이것 해라 저것 해라 이것 가지고 와라 저것 가지고 와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자 입장에서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존중 받고 싶은 것이다.
어떤 학자는 아하수에로가 왕후에게 머리에 관만 쓰고 아래는 나체로 잔치에 나올 것을 명령했다고 주장하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에]1:12 그러나 왕후 와스디는 내시가 전하는 왕명을 따르기를 싫어하니 왕이 진노하여 마음속이 불 붙는 듯하더라
왕후가 왕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 것은 왕이 이미 백성들과 함께 술에 취해서 건전한 놀이를 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룸살롱 같은데서 사람들이 노는 것을 영상으로 몇 번 보았는데, 온갖 난잡한 짓을 다 한다. 그런 곳은 왕후가 가면 술 취한 사람들 앞에서 위신이 깎이고 모욕을 당할 수도 있었다. 이것은 왕후의 판단이 맞는 것이었고, 왕은 경거망동한 것이었다.
이전 구절까지는 아하수에로에 왕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지 구구절절이 설명했지만 이 대목에 와서는 아하수에로 왕은 한 낱 평범한 남자로 전락해 버린다. 그 엄청난 제국의 백성들을 다스리는 신적인 왕이었지만, 여자 하나도 움직이지 못하는 그런 사람으로 드러난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착각하며 살기도 하지만, 사실은 이 세상에 대단한 사람은 없다. 내가 나를 대단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도 자신을 대단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왕에게 굽실거리는 신하들도 그 중에 왕을 죽이고 자신이 왕이 되려는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그래서 왕은 항상 암살 위험에 있었던 것이다.
와스디는 황제들이 보낸 내시들을 따라가지 않았다. 왕은 위신이 깎였다는 것을 느끼고 크게 화가 났다. 모든 싸움과 마찬가지로 부부싸움은 자존심 싸움이다. 아무리 대단한 황제라고 해도 여자 한 사람의 자존심을 건드리면 안 되는 것이었다.
[에]1:13 왕이 사례를 아는 현자들에게 묻되 (왕이 규례와 법률을 아는 자에게 묻는 전례가 있는데
[에]1:14 그 때에 왕에게 가까이 하여 왕의 기색을 살피며 나라 첫 자리에 앉은 자는 바사와 메대의 일곱 지방관 곧 가르스나와 세달과 아드마다와 다시스와 메레스와 마르스나와 므무간이라)
오늘날에는 법이 잘 발달되어 있지만, 예전에는 법이 그렇게 발달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법과 전례를 아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는 관습이 있었다는 것이다.
[에]1:15 왕후 와스디가 내시가 전하는 아하수에로 왕의 명령을 따르지 아니하니 규례대로 하면 어떻게 처치할까
왕은 자신의 최측근 7명의 신하들에게 왕명을 어긴 왕후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물었다.
[에]1:16 므무간이 왕과 지방관 앞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왕후 와스디가 왕에게만 잘못했을 뿐 아니라 아하수에로 왕의 각 지방의 관리들과 뭇 백성에게도 잘못하였나이다
그 일곱명의 신하들이 의논한 뒤 므무간이 발표했다. 그런데 그 일곱명이 낸 결론은 왕후가 잘못했다는 것이고 죄를 물어야 된다는 것이었다.
[에]1:17 아하수에로 왕이 명령하여 왕후 와스디를 청하여도 오지 아니하였다 하는 왕후의 행위의 소문이 모든 여인들에게 전파되면 그들도 그들의 남편을 멸시할 것인즉
[에]1:18 오늘이라도 바사와 메대의 귀부인들이 왕후의 행위를 듣고 왕의 모든 지방관들에게 그렇게 말하리니 멸시와 분노가 많이 일어나리이다
그 잘못한 부분이라는 것은 왕후가 그런 행동을 보였기 때문에 그 일을 듣는 페르시아 모든 백성들은 자기 남편을 대할 때 왕후처럼 하고 남편을 존경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몹시 잘못된 결론이었던 것 같다.
남자들이 부인에게 존경받으려면 강압적이거나 허세를 부려서는 안 된다. 진짜 존경은 강요가 아니라 마음에서부터 자연스럽게 우러나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남편은 자기 아내와 가정에 대하여 헌신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그렇게 하면 자연스럽게 존경을 받게 된다. 그런데 남편이 시키는 일을 하지 않았다고 위신이 깎였다고 평가하고 왕후를 쫓아내고 이혼하고 평민으로 만들어버려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에]1:19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실진대 와스디가 다시는 왕 앞에 오지 못하게 하는 조서를 내리되 바사와 메대의 법률에 기록하여 변개함이 없게 하고 그 왕후의 자리를 그보다 나은 사람에게 주소서
[에]1:20 왕의 조서가 이 광대한 전국에 반포되면 귀천을 막론하고 모든 여인들이 그들의 남편을 존경하리이다 하니라
그들은 그런 결론을 내어 왕에게 들려주면서 그렇게 하면 여자들이 남편을 존경할 것이라고 했다.
[에]1:21 왕과 지방관들이 그 말을 옳게 여긴지라 왕이 므무간의 말대로 행하여
[에]1:22 각 지방 각 백성의 문자와 언어로 모든 지방에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남편이 자기의 집을 주관하게 하고 자기 민족의 언어로 말하게 하라 하였더라
그들의 말대로 왕은 왕후를 쫓아내어 평민을 만들고, 페르시아 전 지역에 조서를 내려서 여자들은 남편에게 무조건 복종하게 하고, 혹시 남편의 언어와 여자의 언어가 다르거든 남편의 언어로 대화할 것을 명령했다. 페르시아는 워낙 넓은 곳이라 언어도 다양했고, 서로 언어가 다른 남녀가 결혼해서 가정을 이룬 일이 많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큰 잔치를 벌리고 전쟁에 나선 왕과 페르시아 군대는 그리스로 가서 싸웠지만 아버지 때처럼 패하고 말았다. 30만 대군이 갔지만 돌아온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쓰라린 패배를 안고 돌아온 아하수에로는 마음을 잡지 못하고 자기 직분을 감당하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자기가 예전에 예쁜 왕후 와스디를 쫓아내고 자기를 만나지 못하게 법으로 정한 것에 대하여 후회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