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묵상 / 2022년 1월 7일 금요일
교우 여러분께 오늘도 주님의 평안과 위로가 함께 하기를 빕니다.
우리 주님을 모시고 하루하루 기쁘고 즐겁게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 신앙생활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 방법 중에 하나는 기도와 말씀묵상입니다.
오늘은 함께 시편 9편을 묵상해 봅시다.
본문: 시편 9편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드리는 기도
1.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전하리이다
2.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지존하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
3. 내 원수들이 물러갈 때에 주 앞에서 넘어져 망함이니이다
4. 주께서 나의 의와 송사를 변호하셨으며 보좌에 앉으사 의롭게 심판하셨나이다
5. 이방 나라들을 책망하시고 악인을 멸하시며 그들의 이름을 영원히 지우셨나이다
6. 원수가 끊어져 영원히 멸망하였사오니 주께서 무너뜨린 성읍들을 기억할 수 없나이다
7. 여호와께서 영원히 앉으심이여 심판을 위하여 보좌를 준비하셨도다
8.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결을 내리시리로다
9. 여호와는 압제를 당하는 자의 요새이시요 환난 때의 요새이시로다
10.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11. 너희는 시온에 계신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행사를 백성 중에 선포할지어다
12. 피 흘림을 심문하시는 이가 그들을 기억하심이여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아니하시도다
13.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나를 사망의 문에서 일으키시는 주여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서 받는 나의 고통을 보소서
14.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찬송을 다 전할 것이요 딸 시온의 문에서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15. 이방 나라들은 자기가 판 웅덩이에 빠짐이여 자기가 숨긴 그물에 자기 발이 걸렸도다
16. 여호와께서 자기를 알게 하사 심판을 행하셨음이여
악인은 자기가 손으로 행한 일에 스스로 얽혔도다 (힉가욘, 셀라)
17. 악인들이 스올로 돌아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이방 나라들이 그리하리로다
18. 궁핍한 자가 항상 잊어버림을 당하지 아니함이여 가난한 자들이 영원히 실망하지 아니하리로다
19. 여호와여 일어나사 인생으로 승리를 얻지 못하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이 주 앞에서 심판을 받게 하소서
20. 여호와여 그들을 두렵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이 자기는 인생일 뿐인 줄 알게 하소서 (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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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9편을 쓴 시인은 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주님이 하신 기이한 일을 전하겠다고 노래한다. 시인이 주님께 감사하고 노래하는 이유는 주님이 하신 일을 보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시인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보고 그 일이 얼마나 감사한지 노래하기 시작한다.
시인이 노래하는 하나님의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시인의 원수를 하나님이 물리치시고, 하나님이 시인의 권리를 되찾아 주시는 재판장이 되어 주셨기 때문이다. 시인을 괴롭히던 원수들은 이방나라들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당했고 완전히 그 이름이 지워져 버리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 이유로 시인은 하나님이 일하고 계심을 노래한다. 특히 7절부터는 혼잣말로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노래한다:
그러나 여호와는 영원히 앉아계시지.
심판하시려고 마련해 두셨지, 여호와의 임금자리를!
여호와가 심판하시지, 세계를 올바르게.
여호와는 보호소가 되시지, 짓밟히는 사람에게.
보호소가 되시지, 어려울 때마다.
(시편 9:7~9, 새한글성경)
시인은 하나님의 법정이 지금 하늘에 펼쳐져 있음을 확신한다. 그래서 악한 자를 심판하시고 짓밟히는 사람들을 돌보신다고 굳게 믿고 있다. 이런 확신 때문에 시인은 10절에서 이렇게 기도한다:
주님 의지합니다. 주님의 이름을 아는 사람들은.
주님은 주님 찾는 사람들을 버리지 않으시거든요!
오, 여호와님!
그리고 나서 시인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권면한다. 11절과 12절이 그것이다. 새한글성경으로 읽어보자:
여러분은 찬송하십시오, 여호와께,
시온에 앉아 계시는 하나님께!
백성들 가운데 널리 알리십시요,
여호와 하신 일들을요!
남의 피를 흘리는 것을 살피시는
여호와가 그들을 기억하셨거든요.
잊지 않으셨거든요, 불쌍한 사람들의 부르짖음을.
시인은 이어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를 드린다. 13절부터 16절이 그 기도다: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나를요,
오 여호와님!
봐 주십시오, 미워하는
사람들에게서 내가 겪는 괴로움을,
오, 죽음의 문에서 나를 끌어내
높여 주시는 주님!
그러면 널리 알리겠습니다,
주님 찬양할 모든 일을,
딸 시온의 성문에서요.
기뻐하겠습니다, 주님의 구원을.
민족들이 빠졌습니다,
스스로 파 놓은 구덩이에.
스스로 쳐 놓은 그물에
걸렸습니다, 그들의 발은.
여호와가 스스로를 알리셨습니다.
판결을 내리셨습니다.
제 손으로 한 일에 얽힙니다,
그릇된 사람은. 셀라.
시인은 이어서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이렇게 보면 시편은 감사의 찬양으로 시작해서(1~6절), 혼잣말로 중얼거리다가(7~9절), 다시 기도하고(10절), 사람들에게 호소하다가(11~12절), 간절히 부르짖고(13~16절), 또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다짐하다가(17~18절), 기도로 마무리한다(19~20절).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과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신다는 고백과 함께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것으로 마친다.
근래에 나온 말 가운데 ‘정신승리’라는 말이 있다. 인터넷을 보니 사전에는 다음과 같이 그 뜻이 나와 있다:
정신승리(精神勝利):
경기나 경합에서 겨루어 패배하였으나 자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자신은 지지 않았다고 정당화하는 것을 이르는 말.
신앙생활은 ‘정신승리’일까? 기도는 패자의 자기합리화일까? 전쟁에서 패배하고 가난에 찌든 나라의 백성이 재기의 의지를 잃어버렸다면 그럴 수 있다. 현실의 어려움 속에서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남 탓만 하고 있다면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열악하고 초라해 보여도 미래를 준비하고 다시 일어서야 한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면 그것은 정신승리가 아니다.
신앙생활은 역경과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다시 일어서려는 사람의 의지적 분발이다. 그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이유는 재판관이 계시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기도하다 혼잣말을 하고 사람들에게 권면의 말을 하다가 다시 기도를 반복하는 이런 기도를 드릴 수 있다.
빌립보서는 사도 바울이 감옥에서 쓴 편지라고 한다. 그 편지에서 바울은 이렇게 성도들을 향하여 권면한다:
주 안에서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다시 말하겠습니다, 기뻐하십시오!
(빌립보서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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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자:
나는 하나님이 만민의 재판장으로 지금도 일하고 계심을 믿는가?
나는 신앙생활을 정신승리로 여기고 기도를 소홀히 하지 않았는가?
나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기도를 드리면서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나의 삶은 기도와 더불어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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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도:
주님, 지금도 하늘에 재판의 자리를 펼치시고 만국과 만인을 다스리심을 잊지 않겠습니다. 주님이 돌보아 주시니 주님을 의지하고 역경과 난관을 견디고 이겨보겠습니다. 주님, 주의 백성을 돌보시고 죽음의 문에서 건져주십시오. 하나님이 엄연히 살아 계셔서 만국을 통치하심을 우리의 삶이 증거하게 하여 주십시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