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계와 회복 (옵 1:17-18)
17 오직 시온 산에서 피할 자가 있으리니 그 산이 거룩할 것이요 야곱 족속은 자기 기업을 누릴 것이며 18 야곱 족속은 불이 될 것이며 요셉 족속은 불꽃이 될 것이요 에서 족속은 지푸라기가 될 것이라 그들이 그들 위에 붙어서 그들을 불사를 것인즉 에서 족속에 남은 자가 없으리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음이라
오늘은 “징계와 회복”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는 앞의 15~16절에서 에돔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는 말씀을 배웠습니다. 에돔에 대한 심판날은 좀 특이합니다. 에돔에게는 형벌의 날이지만 이스라엘에는 구원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이 그 말씀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우리의 육성은 날로 죽어지고 영성만이 날로 증가합니다. 징계의 효과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징계를 통해서 믿음의 사람 만들어 하나님을 의지하게 됨으로 받는 성령의 은혜입니다.
그럼 징계의 효과는 어떤 것입니까?
1. 믿음의 회복입니다.
17절 “오직 시온 산에서 피할 자가 있으리니 그 산이 거룩할 것이요” 지금은 이스라엘이 심판을 받아 예루살렘이 텅텅 비었지만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그날에는 오히려 시온 산으로 피할 자가 있을 것이라. 그런데 그 산이 거룩하게 된다는 것은 먼저는 성의 회복을 말합니다.
누구를 통해 성이 회복되지요? 느헤미야입니다. 느헤미야(Nehemiah)는 유다지파 하가랴의 아들로 바사 궁전에서 아닥사스다 I세(B.C.465-424)의 신임 받은 술 맡은 관원이었습니다. 그는 B.C.445년에 성을 건축하라는 왕의 허락을 받고 유대 총독에 임명되어 예루살렘 성곽을 52일 만에 중건했습니다. 그리고 또 바사로 갔다가 다시 돌아와 악당 도비야를 성전에서 쫓아내고 이방풍습을 제거하고 종교개혁을 이루었습니다.
징계의 효과가 그렇습니다. 회개하여 예수 믿게 합니다. 세상에서 행복한 사람은 예수 믿지 않습니다. 성도 역시 고난을 당할 대 세상 풍속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고 합니다. 탕자처럼 하나님께 돌아오게 됩니다. 벧전4:3에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했습니다. 마음의 성 튼튼히 쌓으시기 바랍니다. 불신과 비 진리와 세속이 들어오지 않아야 합니다.
2. 예배의 회복입니다.
주의 날이 오면 예루살렘 성만 회복되는 것이 아닙니다. 17절 “그 산이 거룩할 것이” 라는 말씀은 성전도 회복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성전은 누구를 통해서입니까? 선지자 예수아와 학개와 스가랴 그리고 스룹바벨 총독입니다.
스룹바벨은 파사에서 B.C.538년에 제 1차로 49,897명을 이끌고 나온 총독입니다. 그는 종교지도자 예수아와 손을 잡고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부흥시켰습니다. 7월 1일 나팔절도 지키고 7월 10일 대속죄일도 지키고, 7월 15일 초막절도 지켰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돌아온 지 2년, B.C.536년 시브월(양력 5월)에 성전의 지대(地坮,기초)까지 놓았습니다(스1:2 3:6, 10-13, 5:16).
그러나 사마리아의 대적들로 인해 어려움이 봉착하지요. 대적들이 바사왕 에게 온갖 모함을 하여 다리오 왕 제 2년까지 무려 16년간 공사가 중단됐습니다(스 4장). 이것을 본 선지자인 학개, 스가랴 등이 일어나 백성들의 믿음 약함을 책망하고 다시 스룹바벨과 성전건축을 시작할 때 또 다시 수리아의 총독들이 파사의 다리오 왕에게 이의를 제기합니다. 그랬지만 왕은 고레스 왕의 칙령을 발견 적법성을 확인하고 도리어 만방에 조서를 내려 성전 재건을 허락했고 세금 면제와 더불어 건축경비까지 원조해 주었습니다(스6:6-12).
이처럼 징계는 예배회복을 줍니다. 히12:12에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그 말씀이 그 말씀입니다. 그동안 얼마나 온갖 핑계로 회했습니까? 방해하는 이스라엘의 원수들이 바로 잡생각입니다.
그러나 광야의 학교에서 연단을 강하게 받게 되면 주일성수 바로 하고, 십일조 생활 제대로 하고, 기도생활 넉넉히 하고, 봉사생활 힘써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믿는다는 이름이 부끄러운 사람들 많습니다. 직분 가졌다는 이름이 부끄러운 사람 많아요. 문제는 부끄러워 할 줄 모른다는 것, 그러면서도 축복은 따불로 해달라고 합니다. 마음의 성전에 회복이 있으시기 바랍니다.
3. 열심의 회복입니다.
18절 “야곱 족속은 불이 될 것이며” 예루살렘만 회복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날에 야곱 족속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업을 회복합니다. 온 땅이 돌아옵니다. 기업만 회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이 됩니다. 강성함을 뜻하는 말입니다. 아무도 이스라엘을 건드리지 못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불은 열심입니다. 이처럼 징계는 우리를 열심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고후7:11에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진실로 깨닫고 달라졌다는 말입니다.
4. 사명의 회복입니다.
다시 18절 “요셉 족속은 불꽃이 될 것이요” 온 지파가 다 강성하지만 요셉 지파가 더욱 영향력을 떨칠 것이라는 말입니다. 산불을 번지게 하는 것은 불이 아니라 불꽃입니다. 불이 붙었어도 바람만 불지 않으면 번지지 않지요. 그러나 바람이 불어 불꽃이 생기면 퍼져나갑니다. 요셉족속이 그렇다는 말입니다.
창49:22에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야곱이 요셉을 축복한 말입니다. 그 영향력이 국내만 아니라 국외까지 미칩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요셉 족속은 에돔 족속을 사르는 불꽃이 됩니다.
이것을 적용하면 사명 회복입니다. 내 신앙이 회복될 때 전도로 이방인을 구원하고 부흥의 운동으로 성도들이 신앙을 회복합니다. 이단에 넘어간 자는 고약한 이방인입니다. 일곱 배나 더 악하게 되었습니다. 잘못을 깨닫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깨달아도 교회에 대한 편견 때문에 돌아오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단의 교주는 갈 데까지 간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두 번 다시 못 박은 사람들입니다. 오직 멸망만이 그들 앞에 있을 것이요, 그들은 전도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러나 미혹 받아 떠난 사람들은 다시 해산의 수고로 데리고 와야 합니다.
불이 되고 불꽃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불, 사명의 불이 타오르시기 바랍니다. 세월 아깝고 인생 아까운 줄 아시기 바랍니다. 제일 고통스러운 것은 그 무엇도 아니고 현실에만 안주하는 사람들과 같이 한다는 것이 가장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너무 인생이 아깝고 세월이 아깝습니다.
5. 성결의 회복입니다.
다시 18절 “에서 족속은 지푸라기가 될 것이라 그들이 그들 위에 붙어서 그들을 불사를 것인즉 에서 족속에 남은 자가 없으리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음이라”에돔이 이스라엘의 남은 자가 없도록 애쓰지만 이스라엘을 없애지 못합니다.
반대로 에돔은 남은 자조차 없습니다. 에돔이 끝까지 남아서 이스라엘을 해치려고 하지요. 누굽니까?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의 왕 헤롯입니다. 헤롯은 이두매 사람이라 했는데 이두매가 구약 명칭으로 에돔입니다. 헤롯이 성전 지어 백성들 마음을 혹하게 하더니 얼마나 잔악하게 학대했습니까?
예수님을 죽이려 하고 베들레헴 아이들을 학살하고, 다른 헤롯은 세례 요한을 목 베어 죽이고, 또 다른 헤롯은 야고보의 목을 베고 베드로도 죽이려고 가두었습니다. 끝까지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했습니다. 그러나 에돔은 나중 로마에 끝까지 저항하다가 죽거나 다른 민족과 동화되어 역사 속에서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징계를 통해 성도는 세상과 옛사람의 잔재를 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히12:10에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하셨습니다. 성결의 회복입니다.
계시록 7장을 보면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계7:14에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했습니다. 즉 연단을 통해 성결함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바로 우리들이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베드로는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 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벧전4:12-13), 바울도 말했습니다.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히12:11). 우리 모두 지금 광야의 학교에서 신앙훈련 받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주어진 환경에서 신앙 성징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