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리즈 주제: 십자가, 새 시대로 안내하는 하나님의 표지판
설교1.
이 표시로 승리하리라
설교 목적:
새 시대를 위한 하나님의 그루터기라는 교회 모토를 가진 우리, 새 시대는 하나님의 나라요, 그루터기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하나님이 택하시고 남겨놓으신 언약백성이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온 지금, 그 그루터기에 새 순이 돋고 죽은 자가 살아나서 군대를 이루어 하나님의 경륜에 동참하는 시간이다. 그것이 우리들의 본분이며 사명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일어난 우리들이 갈 길이다.
그런데 우리가 나아갈 길을 보여주는 표지판과 깃발이 필요하다. 그 표지판은 우리에게 푯대가 되며, 마음을 묶어주는 목표가 되며, 동시에 그것은 우리가 싸우는 전략을 보여준다. 그 표지판은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다. 이 설교는 새로운 시리즈의 첫번째 설교로서, 나는 이 설교에서 시리즈 전체의 주제를 소개하며 동시에 앞으로 전개될 이 시리즈가 우리에게 줄 유익과 도전, 그리고 목표가 무엇인지를 가늠해 볼 수 있게 할 것이다.
설교 개요:
1. 새 시대와 하나님 나라
2. 그루터기와 언약백성
3. 이 표시로 승리하리라
4. 표지판으로서 십자가의 역할
…………………………
1. 새 시대와 하나님 나라
우리 교회의 모토는 ‘새 시대를 위한 하나님의 그루터기’입니다. 저는 5년 전인 지난 2017년 4월 23일 주일설교에서 공식적으로 이 모토를 선포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이전인 2015년 3월 15일에 저는 우리 교회의 로고를 그루터기로 정하고 디자인을 결정했습니다. 이제 돌아보니 제가 새소망교회에 부임한 초창기 어느 주일날 설교하러 강단에 앉아서 대기할 때, 제 마음에 그루터기 형상이 떠올라 얼른 설교안 여백에 그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모토를 가지고 지난 7년을 살아온 셈입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 교회의 모토에서 ‘새 시대’란 무슨 의미입니까? 사람들은 언제 새 시대를 말합니까? 정권이 바뀌고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을 때 새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제가 우리 교회의 모토에 ‘새 시대’라는 말을 넣은 이유는 제가 새롭게 담임목사로 부임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지금부터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다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처음에는 2017년 기준으로 생각해 볼 때 우리 교회의 지난 36년의 역사가 마치 우람한 그루터기와 같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그 그루터기에 새 순이 돋고 다시 우람하게 성장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고 설교를 하면서 ‘새 시대’라는 말에 다른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새 시대, 즉 새로운 시대는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개막 선언이며 사도들이 전한 메시지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저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회개하라,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느니라!’고 선포하심으로 이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외치셨습니다. 예수님의 그 새 시대 선포는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날 것이라(요 12:31)는 의미였으며,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죄 사함을 받으며 자유와 해방을 누리며 다시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 하나님 앞에서 살게 될 것이라는 선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새 시대 선언은 특히 나사렛 회당에서 처음으로 설교하실 때에 인용하신 말씀에 더욱 분명하게 나타났습니다. 그 설교에서 예수님은 이제 주님의 은혜의 해가 시작되었다고 선포하셨습니다(눅 4:19).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다스리는 새로운 시대이며 새로운 세상입니다. 그 새로운 시대가 이제 시작되었다는 선언입니다.
사도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할 때, 새로운 시대가 이미 시작되었다고 선포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라고 선언함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새 시대가 시작되었고 그 새 시대에 동참하는 주역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새롭게 지음을 받은 새로운 피조물, 즉 새롭게 지음을 받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사람들이라고 가르쳤습니다(골 3:10, 엡 4:24).
사도 베드로도 교회에 편지하기를,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 4:7)고 교회에 권면했습니다. 여기서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다는 말은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반복한 것입니다. 앞에서 인용한 것처럼, 예수께서는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면 이 세상을 다스리던 권세자들과 통치자들의 시대가 종말을 고하게 됩니다. 그들의 시대는 이제 마지막이 가까이 왔습니다. 이 말은 이제 새 시대가 열린다는 말입니다.
이로 보건대 예수님과 사도들은 자신들의 시대에 하나님이 이미 낡은 시대를 청산하시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 주셨고 새로운 세상인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려고 사람들을 부르신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런 확신이 그 소수의 무리에게 감격과 용기를 주었고 그들의 복음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교회가 세워졌고 확산되었습니다.
2. 그루터기와 언약백성
이처럼 모인 교회는 마치 그루터기에서 돋아난 새로운 순과 같습니다. 그루터기는 예언자 이사야의 글에서 처음 나타납니다. 이사야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이 그 언약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배반함으로 그 땅에서 쫓겨날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고난을 겪은 후에 하나님은 이 세상을 새롭게 하시는 일을 이어갈 사람들을 다시 일으키시려고 그루터기를 남겨두신다고 예언자 이사야는 말했습니다.
이것은 예언자 이사야가 선지자로 처음 부르심을 받았을 때 최초로 받은 예언입니다:
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10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11 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였더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
12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13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이사야 6:8~13
성경 이야기에 따르면, 하나님은 많은 사람들과 많은 재물이 모여야 일을 하시는 분이 아니라 경건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실한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도리어 그 백성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저버리면 그들을 다 흩어 버리시고 그들 가운데 거룩하고 순전한 사람들이 일어설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공의와 진리, 그리고 사랑과 자비 위에 세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런 곳에서 비로소 생명이 자라고 풍성해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황폐한 땅에 많은 나무들이 베임을 당해도 그 그루터기는 남겨두셨습니다. 그들은 거룩한 씨앗처럼 다시 새로운 시작을 할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그루터기입니다. 그 그루터기는 비록 베임을 당하여 도끼에 찍힌 흉터가 곳곳에 남아있지만 그 안에는 생명의 기운이 숨쉬고 있습니다.
금년 3월 4일 발생한 울진 삼척 지역의 화재는 213시간 45분이라는 국내 산불 중 최장시간의 기록을 냈습니다. 그 산불은 9일간이나 지속되었습니다. 그 지역에서 자라는 금강송이라는 귀한 나무들이 불에 타서 큰 손실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화재가 지난 후 6개월이 된 지금도 많은 나무들이 불에 그을려 시커먼 숯을 두르고 흉하게 서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그을린 나무들 사이에서 송진을 눈물처럼 흘리는 금강송이 발견되었습니다. 어떤 소나무는 시커멓게 탄 줄기 사이에서 파란 새싹을 내고 있었습니다.
한국일보 관련 기사: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090817510005885?did=DA
그 기사를 읽으면서 저는 '하나님이 남겨두신 그루터기에도 저렇게 새 순이 돋아나겠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우리들은 새 시대를 위한 하나님의 그루터기입니다. 우리 안에는 뜨거운 기도의 호흡과 간절한 염원의 눈물이 있습니다. 우리 영혼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성령의 인(印)으로 선명하게 찍혀 아로새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사도들의 뒤를 이어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열어 주시는 새로운 세상과 새 시대를 향하여 기지개를 켜는 그루터기이며 용사들입니다.
3. 이 표시로 승리하리라
우리는 예언자 이사야가 말한 거룩한 씨앗이며 하나님이 남겨두신 그루터기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새 시대를 위한 주역이 될 사람들입니다. 그 주역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다시 시작된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의 모든 교회는 하나님이 남겨두신 그루터기입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싸우는 용사에 비유했습니다(엡 6장). 용사들은 전쟁에 임하는 사람들입니다.
전쟁에 임하는 부대에는 지휘하는 장수가 있고 그 장수를 따르는 용사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각 부대는 그 부대 고유의 표시를 나타내는 깃발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청룡표시는 해병대제2사단을 나타내며, 입을 벌리고 포효(咆哮)하는 호랑이는 맹호부대로 알려진 수도기계화보병사단 표시입니다. 백마표시는 제9보병사단이며, 해골표시는 백골부대로 알려진 제3보병사단을 상징합니다. 각 부대표시는 그 부대의 특징과 목표를 나타내며 그 부대원들을 하나로 단결하게 하고 그 부대가 나아갈 방향을 알려줍니다.
전쟁에서 부대표시와 관련하여 가장 유명한 이야기 중에 하나는 로마의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꿈에 본 부대표시입니다. 콘스탄티누스는 황제로 등극했지만 그의 정적들이 자신들도 황제라고 주장하는 바람에 18년 동안이나 내전을 치러야 했습니다. 그렇게 내전을 치르던 어느 날 꿈에 하늘에서 어떤 그림을 보았는데 그때 이런 음성이 들렸다고 합니다: ‘이 표시로 너는 승리할 것이다!’
꿈에서 깨어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즉시 부대 마크를 새롭게 제작하고 군대를 이끌어 전쟁에서 마침내 승리하고 로마의 유일한 황제가 되었다고 합니다(324년). 콘스탄티누스가 꿈에 본 그 표시는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상징이었습니다:
교회가 새 시대를 위한 하나님의 그루터기이며,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세상을 위해 싸우는 용사라면, 교회에게도 바라보고 그 아래로 모여야 할 표시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용사들이며, 어린 양의 군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속한 부대의 지휘관과 대장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용사들로서 십자가를 굳게 붙들고 살았습니다. 예를 들면,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갈라디아서 6:14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용사라고 스스로를 이해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용사로서 사도 바울이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긴 부대 표시는 십자가였습니다. 십자가는 사도 바울에게 자신이 누구에게 소속했으며, 얼마나 강력한 군대인지를 보여주는 상징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십자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골로새서 2:15
이 메시지에서 사도 바울은 모든 사람들을 그 권세로 제압한 원수들을 통치자들과 권세들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이시며 대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그 원수들을 무력하게 하시고 포박하여 구경거리로 삼으셨다고 교회에게 편지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군대의 표시인 십자가가 모든 권세와 모든 대적을 이기는 가장 강력한 권세가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 십자가는 자랑거리이며 권세와 능력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자부심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십자가의 표시를 수치와 무능력의 상징이라고 이해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 보낸 글에서 이 사실을 가장 극적으로 묘사했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린도전서 1:18
그뿐 아닙니다. 사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탄생하실 때부터 어떤 사람들에게 미움의 표시가 되리라는 예언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출생 후 8일만에 마리아와 요셉은 아기를 성전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거기서 경건한 사람 시므온을 만났습니다. 시므온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시므온은 그들을 축복한 뒤에,
아기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 가운데 많은 사람을
넘어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도록 세우심을 받았으며,
비방을 받는 표징으로 세우심을 받았습니다.”
누가복음 2:34, 표준새번역성경
우리나라의 여러 부대들에게는 그 고유한 부대표시가 있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용사들에게도 바라보고 따라야 할 부대표시가 있습니다. 그 표시는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비방의 대상이며,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미련한 표시가 되겠지만, 구원을 받는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모든 통치자들을 제압하는 그리스도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새 시대를 위한 하나님의 그루터기로 살기를 다짐한 우리들은 오늘 다시 한번 하늘로부터 들려오는 새로운 음성을 들어야 하겠습니다. 그 음성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겠습니까?
“이 표시로 너희는 승리하리라!”
4. 표지판으로서 십자가의 역할
저는 오늘부터 7주 동안 십자가에 대하여 설교할 예정입니다. 십자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붙들고 흔들어야 할 깃발이며, 새 시대로 우리를 안내하는 표지판과 같습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십자가를 자랑으로 여겼으며 십자가의 권세가 얼마나 큰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번 시리즈 설교의 주제를 ‘십자가, 새 시대로 안내하는 하나님의 표지판’으로 잡았습니다. 십자가는 단지 교회가 여기 있다는 표지가 아닙니다. 십자가는 우리가 목에 달고 다니는 장신구로서만이 아니라 우리들을 하나님이 열어 주시는 새로운 시대로 안내하는 표지판과 같습니다. 십자가의 도는 우리들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사도 바울은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십자가라는 표지판을 바르게 읽고 그 방향을 따라 바르게 나아간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새 시대로 성큼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배운다는 것은 예수님의 죽음을 이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으며 그것이 왜 이 세상에 복된 소식이 되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십자가의 깃발 아래 모인 우리는 어떤 사람들인지 성경을 통해서 명확하게 공부하고자 합니다.
이 일곱번의 설교를 통해서 우리 교회는 새 시대를 위한 하나님의 그루터기 교회로서 우리의 정체성과 임무를 조금 더 분명하게 파악하게 될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우리의 소임을 감당할 수 있는 길을 찾게 될 것입니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