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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만 해도 이곳은 호랑이가 으르렁 대는 깊은 산골이었지, 시내에서 이곳에 오려면 아마도 한나절은 더 걸렸을 것이다. 겹겹 산중 너머 안개가 자욱한 그 옛날 내가 의정부 중앙초등학교시절이니 참으로 많은 세월이 흘렀다. 그때 여기로 소풍을 왔었다. 아직도 어렴풋이 머릿속에 아련히 그려져 있는 것은 입구에서부터 릉까지 아람 들이 나무들과 숲이 일열 종대로 빽빽이 서있고, 주위에선 새들과 특히 크낙새 일명 딱따구리들이 나무를 쪼는 소리가 산에 메아리를 쳤으며, 철없는 시절이고 그때만 해도 문화재 관리국이 허술했으니, 교육 또한 그랬다. 그래도 그러면 안 되지만 세조 능위에 올라 상자 박스를 엉덩이에 깔고 저 밑에 까지씽씽 미끄럼 타던 생각들이 미소 짓게 한다. 그리고 나서 이번이 처음이다.
감회가 새롭다, 나는 이곳이 세계 자연 유네스코 생물권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어 일반인이 통제돼 들어가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친구들과 수목원을 관람하다 일반인들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서야 그때 알았다. 의정부 친구들도 시내에 살면서 이곳에 여태 한번도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광릉은 세종의 둘째 아들 그러니까 알고 있는 단종을 몰아낸 수양대군인 것이다. 세조대왕을 모신 묘로서 좌측에 자리 잡고 있고, 우측에서 정희왕후의 능이 있다. 그런데 예를 지내는 정자각 앞에 향도가 없다 그리고 정자각이 왕을 향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한 가운데 있었다. 이해가 안가 해설문을 읽고 있었는데 해설사가 다가오더니 아주 상세히 질문에 대하여 설명을 해주어 궁금증이 다소 풀렸다.
향로는 1930대는 있었는데 1945년 광복이 후에 이찌된 일인지 없어졌다는 것이다. 있었다는 사실은 미국 선교사가 찍은 사진이 있고. 정자각은 세조가 죽기 전에 가운데 세우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때 양성평등을 주장한 것인가?
계유정란으로 단종을 몰아낸 권력에 무서운 임금이지만 그가 행한 왕권의 위치를 단단하기 위한 6조 연계 및 조선의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을 편찬 시작하였다고 한다. 또한 직전법 과 힘든 백성과 국방력을 위해 많은 업적을 남긴 분으로 알고 있다.
우리의 문화 재산은 있는 그대로 풍화 작용에 의하여 변하는 대로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고 커다란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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