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데에는 인류문명의 인위적 요소가 전혀 필요치 않다. 가축도, 사륜마차도, 길도 필요 없다. 산책자는 자유롭고, 아무런 구애도 받지 않는다. 순수한 자기 사랑이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루소처럼 걷는 법 p91
걸으면 좋다하여 걷기 시작한 걸음이 아니었다. 어릴 적 우리는 집이 아닌 골목에서 뛰어 놀며 자랐다. 학교에서 소풍을 갈 때도 걸어서 갔던 세대다. 어려서부터 그랬으니 걷는 것에 별 거부감이 없는 삶이었을 것이다.
걷기의 내 첫 기억은 중학교 때다. 당시에는 회수권이라는 것이 있어야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아침 등굣길에 회수권이 딱 한 장 남아있었으니, 하굣길 회수권을 사야 했으나 그냥 나왔다. 아침에 돈을 달라고 하기 애매한 분위기였기에 학교에서 친구에게 한 장 얻을까 싶었던 거다. 그렇게 별 생각 없이 하루가 지났다. 편하게 회수권 한 장 빌려주라 말할 아이는 어느새 가버리고 머뭇거리다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 집까지 그냥 걸어가 볼까 싶었다.
학교에서 집까지는 버스로 1시간이 걸렸다. 학교가 외곽에 있었는데, 버스는 시내를 돌아서 가기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 길을 질러가면 충분히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교복 입은 채로 가방 들고 걷기 시작했다. 아무리 질러간다 해도 꽤 먼 거리라서 2시간 가까이 걸었는데, 시골길을 걷고 안개꽃밭을 지나고, 인적 드문 공단을 지나기도 했다. 힘들다기보다 걸으며 지나는 모든 풍경이, 모든 시간이 신기했다.
그 날을 시작으로 나의 걷기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걷기 시작하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머리가 맑아진다. 생각이 정리되고, 새로운 생각이 자라기도 한다. 걸으며 만나는 생각들은 나쁜 것이 없다.
그렇게 돌아다니는 것을 역마살이라 하는데, 흔히 역마살이라 하면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신영복 선생이 하신 말이 좋았다. ‘역마살은 꿈을 좇는 일이다’라는. 나는 여전히 꿈을 좇을 것이다. 꿈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로, 그럼에도 걷기를 사랑한다. 걷는 나를 사랑한다. 나는 오늘도, 걷는다.
급하게 쓴다고 마무리가 안 된 듯하지만, 숙제를 한다는 데 의미를 두고 앞오로 찬찬히 다시 불 지피겠습니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