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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 : 고통 중에도 기뻐하는 바울(빌립보서 1:12~21)
* 본문요약
바울은 자신이 감금된 일로 인하여 낙심하는 자들에게
자신이 감금된 일로 인하여 오히려 복음의 진보가 이루어졌다고 말합니다.
그 예로 예루살렘에서 그를 심문하던 모든 자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를 가졌고,
로마에 갇혀 있는 지금도
로마 궁에 상주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또한 자신이 투옥된 일로 인하여 더욱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이도 있고,
반대로 바울의 투옥됨을 이용하여 투기와 분쟁의 태도로 복음을 전하는 이도 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하든 간에 자신의 투옥으로 복음이 전파되고 있으니
이를 인하여 기뻐하고 기뻐하리라고 말합니다.
바울의 간절한 소망은 자신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는 것도 주를 위한 것이요, 죽은 것도 주를 위한 것입니다.
찬 양 : 252장(새 518) 기쁜 소리 들리니
543장(새 491) 저 높은 곳을 향하여
* 본문해설
1. 바울이 당한 고난이 복음의 진보를 가져왔다(12~14절)
12)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을 전파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을
너희가 알리를 원하노라.
13) 이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해서 감옥에 갇혀 있다는 사실이
온 시위대(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14) 형제 중 다수가 내가 갇힌 일로 인하여 주님을 더욱 확실히 신뢰함으로
두려움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하게 전하게 되었느니라.
- 시위대(13절) :
로마 황제나 그 가족들, 황제가 거느리는 사람들을 경호하는
최정예 병사들로 이루어진 궁정 수비대(황제의 친위대)를 가리킵니다.
이들은 로마의 다른 병사들보다 급료가 두 배나 더 많았고, 근무 조건도 달랐습니다.
-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13절) :
로마의 궁에 상주하고 있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가 로마의 궁에 붙어 있는 ‘셋방’에 갇혀 있었기에
로마의 궁에 있는 시위대 군인들과 귀족들,
그 밖의 로마 궁에 상주하는 인구의 1/3이 바울에게 찾아와 복음을 들었습니다.
2.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기뻐하는 바울(15~18절)
15) 어떤 이들은 시기와 다툼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16) 착한 뜻으로 전하는 사람들은
내가 복음을 변호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사랑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
17) 시기와 다툼으로 전하는 자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고 생각하여
순전치 못하게(순수한 동기로 하지 않고, 불순한 동기에서)
다툼으로(경쟁심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그래서 갇혀 있는 자를 더욱 괴롭게 하려는 생각을 품고 있습니다.
18) 그러면 무엇이뇨(그러나 그것이 무슨 상관이 있느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겉치레로 가식으로 하든 진실로 하든)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 인하여 내가 기뻐하고 또 기뻐하리라.
- 다툼으로(15절) : 에리데이아스
다툼으로 번역된 ‘에리데이아스’는 당파, 분열, 당파심, 당쟁을 의미하는 단어로
당파심을 위해 돈을 받고 일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당파, 분열, 당파심, 당쟁’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되며,
여기에서는 이기적인 목적과 욕심으로 분열과 싸움을 일으키는 것을 뜻합니다.
-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17절) :
바울이 옥에 갇히자 바울을 미워하던 자들이
더욱 신랄하게 혹평하며 온갖 험한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옥에 갇힌 것을 이용하여 자기들의 세력을 확장시키려 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들의 정치력을 동원하여
무려 18개월 동안이나 바울을 미결수 상태에서 그 샛방에 감금되도록 했습니다.
-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18절) :
바울을 괴롭게 하는 분쟁과 투기의 방식으로 복음을 전하나,
바울의 행동에 감동을 받아 선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나
오직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를 인하여 기뻐하리라는 것.
3. 살든지 죽든지 오직 주를 위하여(19~21절)
19) 이것이 너희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를 구원에 이르게(내가 감옥에서 풀려나게) 할 줄 아는고로
20) 나의 간절히 기대하고 소망하는 것은 내가 어떤 일에도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항상 그랬듯이) 지금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 구원(19절) : 소데리안
‘구원’에 해당하는 ‘소데리안’은
직역하면 ‘옥에 갇혀 있거나 노예 된 자가 해방되는 것’,
혹은 ‘질병 등의 환난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19절에서 말하는 구원은,
옥에 갇혀 있는 바울을 주께서 곧 석방시켜 주시리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 부끄럽지 아니하고(20절) :
유대인들에게는 복음이 이방인에게 전하여진다는 점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었고,
헬라인들에게는 하나님이 사람이 된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어디를 가든지 늘 조롱과 멸시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서만
사람이 구원받게 된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그러므로 조롱하는 자들을 향하여 담대히 복음을 전합니다.
-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20절) :
그리스도께서 기뻐하시는 영역이 넓혀지기를 바라는 것,
이 땅에 주를 찬송하는 자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바라는 것을 뜻합니다.
* 묵상 point
1. 기뻐할 수 없는 환경에 있었던 바울
고된 노역의 고달픔에 시달리고 있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어떠한 환경에서든지 기뻐하라’는 주제의 편지를 쓰는 바울은,
사실 자신의 지금의 처지야말로 결코 기뻐할 수 없는 처지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빌립보서를 쓸 때 다음과 같은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1) 비겁한 예루살렘 교회
바울이 기뻐할 수 없는 첫째 이유는
바울의 옥살이가 예루살렘 교회의 비겁한 행동으로 인하여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는 예수님의 육신의 동생 야고보였습니다.
야고보는 바울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이고,
이방인에게 할례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는 이유로
유대인들 사이에 큰 분노가 있다면서 그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에서 7일간의 정결예식을 행하라고 말합니다.
그 과정에서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붙잡혀 그 길고 긴 옥살이를 하지만,
예루살렘 교회는 바울을 위해 그 어떠한 도움도 주지 않습니다.
모든 일을 바울 혼자 다 감당했습니다.
여기에서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2) 억울한 옥살이
바울의 억울한 옥살이는 야고보의 조언에 따라 행한 정결예식이 다 끝나갈 무렵
이방 지역에서 온 유대인들이 바울을 알아보고는
바울이 이방인을 예루살렘 성전 안에까지 데리고 들어왔다고 거짓으로 고발하여
이를 지켜보던 유대인들을 잔뜩 흥분시켜서 시작된 일입니다.
바울은 이방인을 예루살렘 성안에까지만 데리고 들어왔지,
성전 안으로는 데리고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확인도 해 보지 않고
단지 바울이 밉다는 이유로 바울을 고발하여 감옥에 가둔 것입니다.
3) 이유 없이 계속되는 옥살이
거짓된 고발로 옥에 갇혔고 그 심문 과정조차도 정상적이지 않습니다.
나중에는 바울에게 죄가 없는 줄 모두가 다 알게 되었지만
각자의 정치적 입장을 생각하느라 바울을 풀어주지 않습니다.
가이사랴의 총독 벨릭스 역시 바울에게 돈을 받을까 싶은 생각에
별 이유 없이 바울을 감금하여둡니다.
그렇게 해서 죄 없는 바울이 예루살렘과 가이사랴에서 2년 동안 옥살이를 합니다.
4) 로마에서도 지루한 옥살이는 계속되고(17절)
로마로 압송된 후에는 빌립보 교인들이 보내준 돈으로
로마 황제의 궁궐 근처에 있는 소위 셋방에서 감금된 채 지냈습니다.
그러나 이때에도 아무런 이유 없이 재판도 받지 않은 채
18개월 동안 감금되었습니다.
로마에서 미결수가 재판도 하지 않고
18개월이나 지나는 일은 아주 드문 일이라고 합니다.
길어야 6개월 안에 재판이 끝나 기결수가 되어 감옥에 가든지
아니면 무죄 방면이 되든지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유 없이 18개월이나 미결수 상태로 있습니다.
17절은 이때 바울이 이유 없이 오래 감금된 것이
바울을 경쟁상대로 여긴 시기와 다툼으로 하는 자들이 바울을 괴롭게 했다고 하여,
이 일이 바울의 경쟁자들이 고의로 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 자신을 철저히 복음의 도구로만 여기는 바울
바울이 이런 고통스러운 환경 속에서도 그가 기뻐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갇혀있지 않으면 할 수 없었던 일을 그가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1) 예루살렘의 귀족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두 명의 총독들과 아그립바 왕, 산헤드린 공의회 회원들과
그들을 지키는 군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방법은
바울이 죄인이 되어 그들 앞에 심문을 받는 방법 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심문을 하는 과정에서 바울에게 자신을 위한 변론의 기회를 주었고,
바울은 변론의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복음을 전하였던 것입니다.
2) 로마 황실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루살렘과 가이사랴에서의 2년의 투옥 기간이 지나고
로마에 압송되어서도 거의 2년 가까운 감금 생활은 계속되었습니다.
로마에서는 소위 ‘셋방’이라 불리는 곳에 감금되었는데,
감금된 죄인은 밖으로 나갈 수 없지만
다른 사람은 자유롭게 들어올 수 있었기에 셋방이라 불리웠습니다.
그가 그곳에서 감금되어 있는 동안 로마의 궁에 있던 약 6000여 명의 상주인구 중
1/3이나 되는 사람들이 바울에게 복음을 들었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갇혀 있었기에 할 수 있는 일들이었습니다.
3) 오직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기뻐하는 바울(17~18절)
바울은 자신을 미워하는 자들이 바울의 갇힌 일을 이용하여
분쟁과 투기의 방법으로 자기의 세력을 확장 시키려는 세력들을 향하여도,
그 일을 인하여도 증거되는 것은 복음이니
그를 인하여 기뻐하고 또 기뻐하리라고 말합니다.
●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오직 복음을 전하는 일에만 집중하는 바울
자신을 오직 복음의 도구로만 여기는 바울,
자유할 때나 옥에 갇혀 있을 때가 그의 오직 한 가지 소원은
그의 입을 열어 복음을 전하는 일이었습니다.
바울은 언제 어떤 상황이 닥쳐오든 항상 이런 정신으로 살아갔습니다.
루스드라에서 돌로 맞아 거반 죽게 된 상황에서도
그는 일어나자마자 곧바로 자신이 돌을 맞았던 그 현장으로 나갔습니다.
3.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바울이 기뻐할 수 있었나
1) 삶의 목표와 관심이 다르다
바울의 관심은 오직 복음을 증거하는 데 있습니다.
비록 자신이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고,
자신을 경쟁상대로 여기고 있는 시기와 질투에 사로잡힌 자들로 인하여
더욱 고통스럽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자신으로 인하여 복음이 전해지니 오직 그것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또 기뻐합니다.
2) 기쁨의 주제가 다르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의 손에 무엇인가 주어져야만 기뻐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손에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있다고 할지라도 죽으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또 내가 갖지 못한 새로운 것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그 새로운 물건이 나에게 주는 기쁨은 고작 한 달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 물건으로 인한 기쁨이 사라지면 사람들은 또 새로운 것을 찾습니다.
이렇게 끝없이 새로운 것만 찾다가 멸망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우리를 영원토록 기쁨의 세계로 인도하는
복음의 말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전하는 사역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비록 지금 고통을 당하고 있지만
그 일로 영원한 기쁨을 전하는 복음이 전해지고 있으니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 묵상 : 내가 바울처럼 주를 위해 살아갈 수만 있다면
만일 우리가 주를 위해 살아가려는 간절한 마음을 품고 살아간다면
우리가 얼마나 더 놀라운 일을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놀라운 은사들이
내가 이 세상 것을 더 얻으려고 마음을 쓰는 동안에 내 안에 그저 쌓여만 있습니다.
바울처럼 주를 위해 일하는 것을 기뻐하는 자가 된다면
우리도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는 자가 됩니다.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주를 위해 일하려는 간절함이 없는 것입니다.
4. 바울의 소망 :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것
1) 바울의 믿음 : 성령께서 자신을 자유하게 하실 것이다(19절)
바울은 비록 자신을 경쟁 관계로 알고 시기와 질투로 행하는 자들이
그를 더욱 괴롭게 한다고 할지라도,
빌립보 교인들이 기도하고 있고 성령께서도 자신을 돕고 있으니
조만간 감옥에서 풀려날 것이라고 말합니다.
2) 그러나 바울이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것(20절)
그러나 바울이 이제 곧 감옥에서 나가 자유를 얻게 될 것이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그가 진짜 바라는 것은 감옥에서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그가 옥에 갇혀 있단 자유를 얻어 밖으로 나가든 상관없이
오직 자신으로 인하여 그리스도께서 존귀하게 되는 것만을 바랄 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존귀하게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기뻐하시는 영역이 넓혀지는 것과,
이 땅에 주를 찬송하는 자들이 더욱 많아지는 것을 뜻합니다.
주의 이름을 높이는 자가 많아지는 것이 곧 주께서 존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주님의 이름이 존귀하게 되는 일이라면
자기가 옥에 갇히는 일이라도 감사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 묵상 : 이런 사람들을 통해 복음은 증거됩니다.
바울같이 자신의 몸이 복음 증거의 도구로 활용되는 것을 소원으로 삼고,
실제로 그것이 이루어졌을 때 그것을 가장 기뻐할 일로 여기는 자들로 인하여
지금도 복음은 증거 되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말로 전도하고,
어떤 이들은 주변 사람들을 오래 섬김으로 복음을 증거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상대의 말을 잘 들어주는 일로,
또 어떤 이들은 직장과 같이 자신이 속한 곳에서
변함없이 성실하게 일함으로 복음을 전합니다.
이 중에서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어떤 일이든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지금 시작하십시오.
당신도 그 일로 인하여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습니다.
* 기도제목
1. 어떤 환경에서도 기뻐하고 또 기뻐하게 하옵소서.
2. 우리도 바울처럼 우리 자신을 복음의 도구로 여기고,
또 그렇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3. 악한 시대에 생명을 구하는 능력을 가진
참되고 신령한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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