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하늘 저 위에서 별이 내려온다면
여기 내려왔다면 누굴까?
빛깔이 참 곱겠지. 반짝반짝이겠지.
밝게 빛이 날 거야 별처럼.
나도 그 빛 가졌으면 별처럼 빛이 날 거야.
마음에 별빛으로 물이 들면 나도 별이 될 텐데.
사랑하는 아이야 너는 별이었단다.
밝은 별이었단다 별빛 아이.
지금도 그렇단다. 너는 빛이 난단다.
너의 눈망울에서 빛나요.
언제 언제까지나 너는 빛이 날 거야.
너의 고운 꿈에서 빛나요.
곡/사 김희동 [별빛 아이]
아, 얼마나 오랜만이던가, 노래를 듣다가 눈물이 핑 돌아버린 것이.
귀에 익은 곡조에 따라 스토리나 화면이 떠오르는 영화음악도 아니고, 성령을 받아 찬양이 절로 나오는 성가도 아니었다. 별, 아이, 빛, 꿈같은 흔하디 흔한 낱말 몇 개로 이루어진 동요였다. 아니, 곡을 만드신 선생님의 표현으로는 '청요', 푸른 노래다.
음반을 여러 번 반복해 들으면서 아이들과 노랫말을 써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좋아하는 노래를 골라 곡조에 맞게 개사를 해보는 것은 시쓰기와도 비슷하겠지. 하얗다 못해 푸르스름한 빛을 발하고 있는 아이들의 눈망울만큼이나 고운 노랫말이 비단실처럼 뽑아지겠지. 새로운 노랫말을 붙여 노래를 부르고, 잘하면 리코더 반주에 맞춰 합창을 할 수도 있을 거야. 우리가 부른 노래를 녹음 했다가 글쓰기 시간마다 틀어 주면 쑥스러워하려나? 입으로는 곡을 흥얼거리며 노랫말을 찾으려 열심히 연필을 굴릴 아이들 모습을 떠올리니 가슴이 설렜다. 빨리 수업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너희 좋아하는 노래 하나씩 생각해 봐."
"노래요? 저 아는 노래 없는데요?"
첫 질문에서부터 망했다. 3학년도, 4학년도, 5학년도 약속이나 한 듯이 똑같았다. 아는 노래가 단 하나도 없단다. 학교에서 노래를 배우지 않느냐고 했더니 음악 시간 자체가 별로 없단다. 음악 시간에는 노래보다 악기를 배운단다. 조금 아는 노래는 옛날에 배워서 가사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단다.
그래도 잘 생각해 봐라, 노랫말을 외울 수 있는 노래가 어떻게 하나도 없을 수 있니, 어릴 때부터 불러온 노래나 교과서에 나온 노래도 좋으니 기억해 보자고 구슬렸다. 난감해하기도 하고, 키득거리기도 하면서 골랐다는 노래는 이런 것들. 유치원에 들어가기도 전에 들었을 '곰 세 마리' '비행기' '애국가' '아리랑' 혹은 나는 전혀 들어본 적이 없는 아이돌 그룹이 부르는 가요.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아니, 충격을 넘어 분노가 일었다고 해야 하나.
아이들의 삶에 노래가 없어졌다, 흔적도 없이! 누가 아이들에게서 노래를 빼앗아간 것일까? 먹고살기도 힘들었던 70년대, 콩나물시루보다 빽빽한 교실에서 공부하면서도 노래는 배웠더랬다. 노랫말을 외우고 있는 대부분의 노래는 국민학교 시절에 배운 것들이다. 그런데,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학원에 리코더, 우쿨렐레, 칼림바까지 돈 들이고 시간 들여 각종 악기까지 배우게 하는 이 풍요로운 시대에 아이들의 입에서 노래가 사라지다니. 부를 줄 아는 노래라고는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현란한 춤과 함께 부르는 영어 섞인 가요들, 혹은 엄마 앞에서 재롱떨 때나 어눌한 발음으로 말 배울 때 부르던 곰 세 마리가 전부라니. 아니면, 변기 속에서 튀어나와 공격하는 캐릭터가 주인공인 유튜브 애니메이션 주제가 따위밖에 없다니. 너무나 속이 상했다. 심한 표현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아무 노래나 듣고 따라 부르는 아이들이 마치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을 뒤지고 다니며 아무 음식이나 주워 먹는 강아지들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노랫말을 웃기게 바꿔서 부르는 것은 아이들 사이에서 흔히 있는 문화의 단면이다. "밥 먹을 때 생각나는 프라이 똥튀김, 설사에다 비벼 먹는 카레라이스~"처럼 '똥, 방귀'를 좋아하는 버전도 있고,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세 마리. 한 마리는 구워 먹고, 한 마리는 삶아 먹고, 한 마리는 도망갔네. 아이고 아까워."처럼 해학적으로 바꾼 버전도 있다. 그 정도까지는 귀엽다고 치자. 그런데 아이들이 재미있다고 흥얼거리는 노랫말이 너무도 공격적이고 섬뜩하다. "창밖을 쏘라, 창밖을 쏘라. 적군이 보인다. 다 죽여버리자"라든지 "연쇄살인범, 감옥에서 튀어라."든지 하는 말로 바꿔 부르면서, 재.미.있.어.한.다!
아는 노래를 찾게 하는 게 첫 번째 난관이었다면, '재미'와 '창작' 사이에서 불러도 좋은 노랫말을 만들어 내도록 만드는 것이 두 번째 난관이었다. 1절 가사와는 전혀 다른 내용으로 쓰되, 제목과는 연관이 있는 내용으로 만들라는 미션을 주었다. 3학년 중에서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를 끝내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도 있었다. 1절에서 단어만 살짝 바꾼다거나, 글자수에 맞지 않게 산문식으로 써온다거나.
앞의 두 가지 어려움은 아이들이 넘어야 할 산이었다면, 세 번째 난관은 내가 넘지 못했다. 주로 5학년 아이들의 경우, 이미 아이들은 내가 생각한 동요의 세상과는 너무 멀어져 있었다. 성장판이 열려 있을 때 골고루 잘 먹여서 키를 자라게 해야 하는 것처럼, 어른이 노래를 골라 먹여 줄 수 있는 나이도 얼추 초등학교 4학년(만 10살 정도)까지인 것 같다. 이 아이들이 부르고 좋아한다는 노래(예를 들어 'Celebrity' 'Dangerously' 'Bubble' 등)를 내가 알지 못했다. 심지어 한 아이는 노랫말을 영어로 적어 왔다. 노랫말을 적어 부르는 수업을 5학년들은 더 하지 않기로 했다.
3, 4학년은 한 주간 더 시도해 보기로 했다. 지난주에 썼던 것, 쓰다 말았던 것을 다시 읽었다. 새 노래에 해도 되고 지난주에 고른 노래를 계속해도 된다고 했다. 거기에 한 가지 미션을 더 주었다. '동생들이 따라 부른다고 해도 좋을 가사'로 쓰라고 했더니, 나름 자신만의 검열 기준을 세우고 써나간다.
"다 썼어요!"
아이들의 마음이 들어간 노랫말이 하나씩 둘씩 나오기 시작한다. 아이들이 쓴 노랫말로 다 함께 합창을 해본다. 처음 부르는데도 박자가 잘 맞는다. 함께 부르는 목소리도 낭랑하다. 나도 큰소리로 같이 부른다. 속상했던 마음이 조금씩 녹기 시작했다.
'그렇지, 이래야 아이들이지. 누굴 탓하겠나. 아이들이 아이들의 노래를 부르지 않는 건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노래를 들려주지 않았기 때문인 것을...'
[반짝반짝 작은 별]
어둑어둑 구름이 많이 많이 끼었네
하느님이 도와서 구름이 없어졌네
다시 위를 봤더니 작은 별이 있었네(3학년 우진)
[개구리와 올챙이]
원래 오~늘 6교시하는데 올챙이가 나타나서
시간표를 뚝, 4교시로 뚝
바꿔줬어 너무 좋았어
아싸, 신난다, 4교시한다, 올챙이야 정말 고맙다
네 덕분에 4교시한다
올챙이야 진짜 잘했어(3학년 시현)
[하얀 나라]
창밖을 바라보니 밖에 눈이 보이네
창밖이 모두 하얀 나라였지, 지금, 이 세상!
옷 갈아입죠, 양말도 신죠, 장갑과 모자도 예쁘게 입죠!
너무너무 추워서 집에 가려는데
눈이 모두 녹았어 햇살 때문에 눈이 모두 녹았어(3학년 재윤)
[파란 마음 하얀 마음]
천사들 마음은 파랄 거고요
요정들 마음은 하얄 거예요
천사들도 요정도 착한 마음이
스며들었지만 색은 달라요
천사도 요정들도 착하답니다(4학년 은희)
[징글벨-흰 눈 사이로]
추운 겨울에 아이 네 명이 내리막길에 썰매 준비해~
아이 네 명이 썰매 타더니 일이삼사 외치면서 내려가네요
종소리 울리네 어디서 날까
엄마가 종 흔들면서 우리를 부르네
종소리 울리네 이유가 뭘까
엄마가 저녁 먹으라 우릴 부르네(4학년 단우)
동요는 일찍 아이들이 떠나고
가요는 사랑 노래로 기운 세상에서
동요와 가요 사이의 빈 들을 가꾸어 주는 노래가
있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자연과 사람과 자신을 사랑하는
푸른 노래 청요(靑謠), 맑은 노래 청요(淸謠).
청요를 부르는 동안 마음이 나날이 푸르러지고
세상은 한결 맑아지기를 바랍니다.
- 김희동
첫댓글 여기에 실은 글을 같이 올려두어요.
https://brunch.co.kr/@8a872392b235415/1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