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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 : 중보자이신 그리스도(요한일서 2:1~11)
* 본문요약
요한은 그의 성도들로 하여금 죄를 짓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 편지를 씁니다.
우리가 혹시 죄를 범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를 대언하여 주시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려고 친히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며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주님의 사랑이 온전히 이루어지며,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은 구약에서부터 있었으므로 옛 계명이지만,
예수님에 의해서 새로운 계명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빛 가운데 있다고 말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는 자들은
거짓말쟁이이고, 그 속에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없습니다.
찬 양 : 183장(새 283) 나 속죄함을 받은 후
377장(새 449) 예수 따라가며
* 본문해설
1. 대언자이며 화목제물이신 그리스도(1~2절)
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변호해 주시는 이)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2)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2. 두 가지 유형의 사람(3~6절)
3)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4) 그러나 ‘그를 안다’라고 말하면서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5)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6) 그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3. 옛 계명과 새 계명(7~11절)
7)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의 들은 바(너희가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던) 그 말씀이거니와
8)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이 새 계명은 그에게도 참되고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두움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침이니라.
9) 누구든지 빛 가운데 있다고 말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요,
10)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올무가, 장애물이) 없으나
11)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
-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9절) :
미워한다는 말은 ‘자기 뒤에 놓는다, 무관심한 태도를 취한다’는 뜻입니다.
형제가 어떤 일을 당하고 있는지, 어떤 아픔이 있는지 무관심한 태도를 취하는 사람은
그가 입술로 어떤 신앙고백을 하든 그 고백은 거짓이라는 뜻입니다.
- 거리낌이 없으나(10절) :
형제를 사랑하는 자들은
그들의 앞길에 걸려 넘어지게 할 만한 걸림돌이 없다는 뜻입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자들은 악한 영들이 그 어떤 장애물을 만들어놓는다고 할지라도
결코 방해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 묵상 point
1. ‘우리가 죄를 짓는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대언자(변호사)가 있습니다(1절)
1) 이 말씀은 죄를 마음 놓고 지어도 좋다는 말이 아닙니다.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이 말씀은 자칫하면 우리가 아무리 죄를 지어도
주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다는 뜻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예수님이 우리 죄를 용서해주실 터이니
마음 놓고 죄를 지어도 좋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요한은 이미 1:6에서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말하면서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쟁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죄와 대항하여 싸우다가 죄를 범하게 되는 경우를 두고 한 말입니다.
2) 죄에 무감각 한 자는 용서받지 못합니다.
가령 공무원 중에는 잘못을 범하면 질책을 당할까 두려워
몸을 사리며 도무지 일을 하지 않으려 하는 자와,
실수를 범하는 한이 있더라도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도무지 일을 하지 않는 자가 잘못을 범하면 용서받기 어려우나,
열심히 일하다 범한 실수에 대하여는 관용을 베풀 수 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저 예수께서 용서해주실 것이라 여기며
영지주의자들처럼 죄에 대한 아픔도 감각도 없이 무시로 죄를 범하는 자들은
그 죄를 용서받지 못합니다.
이런 자를 ‘짐짓 죄를 지은 자’라고 말하고,
이런 죄가 바로 예물로도 용서받지 못하고,
그 어떤 것으로도 용서받지 못하리라고 하신 고범죄입니다.
그러나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에 힘쓰는 자가 어쩌다 죄를 범하였을 때,
주님 앞에 죄를 범하였음을 가슴 아파하며 회개하는 자들은
주님의 변호를 받아 그 죄를 용서받게 되는 것입니다.
3) 죄에 애통한 자의 대언자가 되시는 예수님
세상의 변호사는 돈을 주고 고용합니다.
그러면 내가 죄가 있든 없든 나에게 고용된 변호사는 오직 나를 위해 변호하지만,
우리의 변호사이신 예수님은
이렇게 주님을 열심히 섬기며 자기 죄와 대항하여 싸우려 애쓴 자들이
어쩌다 범하게 되는 죄에 대하여 주께서 친히 변호사가 되어주십니다.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하여 애통해하며
죄를 용서해주실 것을 구하는 자의 대언자가 되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의 죄가 모두 용서받고 죄를 하나도 짓지 않은 자로 여김 받게 됩니다.
● 묵상 :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말씀을 묵상(큐티)하며
우리의 영에 낀 죄의 때를 벗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예수님의 보혈의 피의 도움을 받아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2. 두 가지 유형의 사람
위와 같이 사람마다 죄에 대한 감각이 다르므로,
교회 안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유형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1) 순종 없는 신앙고백(4절)
요한은 ‘하나님을 안다’고 말은 하면서도 계명은 지키지 않는 사람은
거짓말쟁이고, 이런 자들에게는 진리가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모르는 자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말씀에 대한 지식만으로는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들은 사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이들에게는 진리가 없습니다.
이들처럼 신앙고백을 그저 예배 때에나 하는 요식행위로만 여기는 사람들은
믿음을 전혀 가지지 않은 자로 취급받아 결국 심판대에 오르게 됩니다.
2) 순종하는 자의 신앙고백(5~6절)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께 대한 지식만 갖고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 바로 그분을 아는 것을 말합니다.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일을 통해 하나님과 친교를 맺으면서
하나님 알아가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아는 자들은 점차로 계명을 지키는 자들로 변해가게 됩니다.
누구든 하나님을 알게 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점차 의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을 점차 사랑하게 되면서
계명을 지키기를 즐거워하는 자로 변해가는 것입니다.
3.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순종
1) 죄에 무감각한 자들의 거짓된 평안함(4절)
영지주의자들은 항상 하나님을 안다고 떠벌리고 다닙니다.
자기들은 죄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늘 당당합니다.
그리고 세상일로 힘겹게 살아가는 자들을 향하여
당당하지 못한 자들이라며 평가하고 정죄합니다.
그렇게 남에게 상처를 주면서도
그런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전혀 깨닫지도 못합니다.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큰 죄 가운데 있으면서도 마음이 평안하고 당당합니다.
그러나 결국 주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니 거짓된 평안입니다.
2) 사랑에서 나오는 순종(5~6절)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순종을 하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을 안다고 떠벌리고 다니지 않습니다.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그만큼 순종하지 못하기 때문에
늘 하나님 앞에 부족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늘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 묵상 : 내 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지 늘 살피십시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순종에 대한 열정이
내 안에 있는지의 여부를 통해
내가 하나님의 백성인지의 여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만일 내가 죄를 짓고도 아무런 아픔이 없고,
말씀에도 관심이 없으며,
남들처럼 나도 그냥 그렇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내가 아무리 열심히 교회에 나온다고 하더라도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다.
그러나 내 마음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고,
그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순종의 삶을 살고 있다면
나는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4. 옛 계명이며 동시에 새 계명 : 자녀들아 서로 사랑하라
‘자녀들아 서로 사랑하라’하는 계명이 옛 계명인 이유는
그 계명이 구약에 이미 있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6:5에는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고,
레위기 19:18에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계명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새 계명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표준이 되었고,
보다 넒은 범위를 가진 계명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1) 예수님 안에서 ‘사랑’이 새로운 계명이 되었습니다(8절)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사랑이
내가 믿는 믿음이 구원을 받을 만한 것인지 아닌지를 구별하는
새로운 표준이 되었습니다.
만일 누가 스스로 자신을 가리켜 빛 가운데 있다고 말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면
그 사람은 거짓말하는 것이고, 진리가 그 사람에게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형제를 사랑하면 그는 빛 가운데 있는 사람이고,
악한 영이 그를 훼방할 만한 그 어떤 올무나 걸림돌도 없습니다.
2) 예수님 안에서 사랑은 보다 넓은 범위를 갖게 되었습니다(9절)
전에는 가족이나 친지, 친구들과 같은 한정된 집단이나,
가장 넓다고 해봐야 국가의 범위를 넘지 않았습니다.
그때에는 이방인을 개나 돼지로 여길 정도로
구약의 성도들의 사랑의 범위는 지극히 제한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방인들도 구원받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의 친구가 되셨으며, 멸시받는 자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이 이 세상 사람들을 구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사랑의 범위가 국가를 넘어 이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까지 넓혀진 것입니다.
3) 예수님 안에서 사랑은 더 큰 능력을 갖게 되었습니다(10절)
사랑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훼방하는 모든 방해물을 제거합니다.
사랑은 얼음같이 차가운 사람의 마음도 녹입니다.
무엇보다도 예수께서 사랑의 계명을
모든 계명을 완성하는 최고의 법으로 정하셨으므로,
누구든지 하나님과 형제를 사랑하며 섬기면
그는 모든 계명을 지킨 것으로 인정되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사랑을 주시기를 힘써 기도하십시오.
5. 사랑이 없는 신앙고백 : 개인주의적 신앙의 위험(11절)
스스로 자신을 가리켜 빛 가운데 있는 자라고 말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형제를 미워한다’는 말은 형제를 자기 뒤에 놓는다는 뜻으로,
형제의 일에 도무지 관심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오직 자기의 개인적인 신앙에만 관심이 있을 뿐,
이웃의 아픔에는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을 ‘개인주의적인 신앙’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완벽하다고 할 만큼 율법도 잘 지켰고,
예배나 예물이나 경건의 삶이나 그 어떤 것에도 전혀 흠이 없었지만,
단 하나 이웃에 대한 사랑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향하여 가장 무서운 말로 저주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사랑하는 성도, 사랑하는 교회가 되기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 기도제목
1.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내 마음에 낀 죄의 때를 벗기게 하옵소서.
2.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기에
힘쓰게 하시고,
3.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순종을 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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