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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순애(姜淳愛) - 뜻길에 서서 2. 입교하자 병이 낫다 1 이러한 때에 강정원(美貞遠)씨 모친과 이모님이 우리 집의 수양 며느리를 보러 오셨다가 나의 모습을 보고는 염려하시면서도 한편으론 기쁨을 나타내는 것 같았다. 정원 씨 이모님은 몸이 몹시 쇠약했었는데 건강해 보였고 얼굴에선 광채가 비쳤다. 2 나는 나도 모르게 그들이 가려고 할 때 ‘기도해 주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었고 ‘내일 꼭 통일교회에 가야지’ 하는 마음이 샘솟듯 하였다. 그리하여 사람을 보내어 내일 같이 통일교회에 가자고 부탁하였다. 3 그 이튿날 아침이 되어 좀 가볍게 일어나 앉아서 세수하고 나니 희봉씨가 와서 수양 며느리와 모포로 허리를 싸매고 택시를 타고 청파동 교회로 갔다. 현관에 들어서니 이화 동창생들의 얼굴이 나타났다. 이소담( 李小淡)씨, 최원복(崔元福)씨의 빛나는 모습이 몹시 아름다웠다. 4 2층에 올라가 난로가에 앉아서 유효원(劉孝元) 협회장님의 강의를 열심히 듣기 시작하니 아픈 것을 잊게 되었고, 그런 중에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하여 머릿속을 청수(淸水)로 싹싹 씻어 내는 듯 하더니 온 몸이 깨끗해지면서 구름을 타고 있는 것 같이 가볍고 기쁨이 충만해지면서 공자님이 ‘아침에 도(道)를 깨닫고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고 하신 말씀을 체휼할 수 있는 경지에 들어가게 되었다. 5 강의가 끝나고 선생님을 만나 뵈었는데 보시자마자 “문과(文科)에 소질이 있는데 무슨 과를 했느냐?”라고 물으셔서 “보육과를 했다”라고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처음 뵈었으나 낯 익은 분 같았으며 청렴하신 분으로 보였다. 집에 갈 때는 완전히 회복된 몸으로 갔다. 집안 식구들은 모두 놀랬다. 그 이튿날 후편 강의를 들으러 갔다. 6 그때가 1957년 1월 29일 나의 부활일이었다. 강의는 역사의 시발과 과정과 귀추였다. 역사를 시발하신 분도 하나님이시요, 역사를 이끌고 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깨달았으니 역사도 공식에 의거해서 돌아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인생문제와 역사문제가 해결되며 불안과 공포와 고민이 사라지고 기쁨이 충만하여 구름을 타고 다니는 것 같았다. 7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나도 모르게 유효원 협회장님의 강의에 부활됨을 감사하여 헌금을 하였다. 그리고 희봉씨의 인도로 원효로에 있는 윤보살〈윤청정심(尹淸淨心)〉을 만났더니 “통일교회의 원리를 유 선생한테 들으셨지오. 당신은 5대 조상이 좋아서 통일교회에 왔으며 통일교회에 와서도 고생않고 자동차만 타고 다니게 된다”라고 하면서 처음에는 남쪽으로 전도 나가게 된다고 하였다. 8 그가 가지고 있는 불경책에 ‘문왕’이 있고 유 씨(刻氏)와 안 씨(安氏)의 강사 성(姓)도 나와 있음을 보고 놀랬다. 그리하여 43세까지는 사바세계에서 나의 행복만을 위해서 살았지만 지금부터는 하늘과 뜻을 위해서 남은 여생을 보내기로 결심하고 매일의 생활을 교회에서 하라는 대로 하였다. 9 그런 가운데 선생님을 매일같이 몽시에서 보았다. 선생님의 주위는 항상 금색의 광채가 나고 있었으며 금관을 쓰시고 횐 옷을 입고 나타나셨다. 어떤 때는 하나님이시라고 나타나셨는데 선생님이셨다. 그러므로 의심할래야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10 내가 입교한지 2개월 지난 후 어떤 식구가 ‘선생님이 재림주님이시다’라고 하여서 2일 간을 밤 늦게 기도하여 해답을 얻었다. 다음날 꿈에는 국회의사당 강단 앞에 선생님이 서 계시고 옆에는 조그만 사람이 서 있었다. 나는 의석(議席)에 앉아 있는데 내 좌우편에는 전 법무부장관 부인과 김원규(金元圭) 전 교육감 부인이 나보다 납작하게 앉아 있었다. 11 그런데 선생님 옆에 서 있던 조그만 사람이 선생님을 지적하면서 “이 분이 바로 생명나무이십니다. 이 분이 바로 생명나무이십니다” 하고 강조하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생명나무 찾는 놀음이니까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12 또 어느 행사일에는 모두 인왕산에 올라가기로 했는데 나는 좀 늦어서 길을 몰라 못 가고 본부교회에서 낮잠을 잤었다. 저녁 늦게야 돌아오신 선생님께서는 “교회에서 낮잠 잤지” 하셔서 또 놀랐다. 선생님은 육안으로는 못 보셨을 것이니 영안으로 보실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13 또 내가 몽시 본 날은 그 내용을 미리 아시고 물으시는 데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날 주일 예배시간에 선생님께서 “하나님의 심정”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하셨는데 나도 모르게 하나님의 쓰라리시고 안타까웠던 심정을 느끼게 됐다. 14 척추신경에 전기가 통한 듯 내가 놀랄 정도로 찌르르 하는 것을 느끼고 나자 흐느낌이 나오는데 가슴 속에 불이 타는듯이 후끈후끈하고 더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하여 통일교회에 가면 ‘전기가 온다’라는 등 ‘불이 온다’라는 등 해서 무엇을 말하나 하였다가 내가 경험하고 나니 하나님과 심정일체가 되면 기적과 같은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을 체험했다. 15 그런 후로는 더욱 더 인간적 신앙 생활을 떠나 직접 하늘과 통하는 것을 느끼게 되니 사생활은 소홀히 생각되고 하늘에 대한 심정이 간절해져 더욱 뜻 생활에 도취되어 기도생활을 열심히하고 성별생활까지 하게 되었다. 16 어느날 몽시에 영계에 있는 대궐 앞에 가서 대문 안을 들여다 보니 선생님께서 금관을 쓰시고 녹색관복(錄色官服)을 입고 앉아 계셨고 뒤에는 채색관복을 입은 사람이 앉아 있었다. 시녀는 옥색 웃옷을 입고 있었다. 내가 “저 대궐 안에 좀 들어가게 해 달라”라고 말하니 그 시녀 말이 “다시 가서 성별하고 오라” 하여서 들어가지 못하고 온 일이 있었다. 17 이 몽시를 선생님께 이야기하니 “그러한 몽시는 아무한테나 말하지 말라”라고 하셔서 나는 또 기도로 해결하기 위해 기도를 하고 잠을 자는데 동시에 음성이 들려오기를 “너는 하늘의 딸이니 혼자 있으라” 하여서 곧 깨달았다. 18 그 후 나는 독방생활을 시작하기 위하여 남편한테 100일 기도를 하겠다고 하여 양해를 구하였다. 그러나 얄궂게도 우리 교회를 비관하는 잡지가 나오자 반대하며 방해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부부생활을 하였다. 19 그런데 며칠 안 되어 노상에서 넘어져 왼손을 쓰지 못하게 되었다. 수개월간 전기치료를 받아도 낫지 않아서 고통을 받던 중 우리 식구 침술가에게 침을 두 번 맞고 완치되었다. 나는 이제 세상적으로 살면 안 되겠다 하는 것을 느꼈다. 20 그러나 날이 갈수록 남편은 이해를 못하고 나를 죽이겠다고까지 하여 나는 공포에 사로잡혀 도저히 동거 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다행히 일본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
姜淳愛 - み旨の道に立ちて ② - 入教を通じて治った病気 ある日、姜貞遠さんのお母さんとおばさんが我が家の養女を見に来ましたが、私の姿を見ては気づかいながらも、一方では希望を表していました。貞遠氏のおばさんの身体はいたって衰弱していましたが、顔には輝きがあり、健康そのものに見えました。 私は彼女たちが帰るとき、我知らず「お祈りしてほしい」という思いと、「明日はぜひとも統一教会に行かなくては…」という心がわき溢れてきました。そこで私は、人に頼んで統一教会に連れて行ってくださいとお願いしました。その日の朝になると、少し楽に起きれたので、座ったままで洗面していると、フィボンさんが来てくれたので、養女の毛布で腰を包まれて、タクシーに乗って青坡洞の教会に行きました。玄関に入ると、梨花同窓生たちの顔が現れ、李小淡さん、崔元福さんの光り輝く姿がとても美しく見えました。 私は二階に上がり、ストーブのところに座って劉孝元協会長の講義を熱心に聞き始めると、体の痛みを忘れるようになりました。そうするうちに奇跡が起こり始め、頭の中を清水でサーッと洗い流すように、体全体が清くなり、雲に乗っているかのように軽く、喜びが充満し、孔子「朝に道を聞かば夕べに死すとも可なり」と言った言葉を体恤できる境地に入るようになりました。 講義が終わってから私は、先生にお会いしたのですが、先生は私を見られるや否や、「文科に向いているが、何を学んだのか?」と問われ、「保育科をしました」とお答えしました。私は先生に初めてお会いしたのですが、見慣れた方のようであったし、とても清廉潔白な方に見えました。 家に帰ると、私の体は完全に回復しておりましたので、家族たちは皆驚きました。 講義の後編を聞きに行ったのは、それから二日後のことでした。一九五七年一月二十九日、その日は私の「復活日」となりました。講義は歴史の始まりと過程と帰着でした。歴史を始められた方も神であり、歴史を導いて行かれる方も神であることを悟ったので、歴史も公式によって運行していることを知るようになりました。人生問題と歴史問題が解決され、不安と恐怖と苦悩がなくなり、喜びが満ち、雲に乗っているようでした。 三日目になると、劉孝元協会長の講義に我知らず復活するのを感謝し、献金をしました。そしてフィボンさんの導きで、元暁路にある尹菩薩(尹清浄心)に会うと、「統一教会の原理を劉先生から聞かれたでしょう。あなたは先祖五代が良くて統一教会に来たのです。統一教会に来ても苦労せず車に乗って通うようになる」と言いながら、「初めは南の方に伝道に行くようになる」と言いました。そして彼の持っている仏教書を見ると、『文王』という文字があり、劉氏と安氏の講師名も出ているのを見て驚きました。また「四十三歳までは娑婆世界で自分の幸福のためだけに生きたのだが、これからは天のみ旨のために残った余生を送ることを決心して毎日の生活を教会でせよ!」と言われたので、その通りにしました。そんな中で毎夜のように先生の夢を見ました。先生の周りはいつも金色の光で輝き、先生は金の冠をつけ、白い衣を着て出てくるのでした。それゆえ、疑おうとしても先生を疑う余地がありませんでした。 入教して二カ月後、ある食口が、「先生は再臨主である」と言うので、二日間、夜遅くまで祈ると回答を得ることができました。次の日の夢には、国会議事堂の講堂の前に先生が立っておられ、横にはやや小さい人が立っていました。私は議席に座っていたのですが、その左右には前法務部長官夫人と金元圭前教育監の夫人が私よりもゆったりと座っていました。そして先生の横に立っていたやや小さな人が先生を指しながら「この方こそ生命の木です。この方こそ生命の木です」と、強調したのです。私たちは生命の木を求める罪人だから疑う余地がありませんでした。 ある行事の日のこと、皆で仁旺山に登ることにしたのですが、私は少し遅れてしまい、道が分からなかったので行くことができず、本部教会で昼寝をしました。夕方遅く帰って来られた先生に、「教会で昼寝をして」と言われ、私は驚きました。先生は肉眼では見えなくても、霊眼で見ていられたのでした。また、私が夢を見た日は、その内容をすでに先生は知っておられてお聞きになることがあり、本当に驚かざるを得ませんでした。 ある聖日礼拝に先生が「神の心情」という題目でお話されましたが、我知らず神の痛く辛かった心情を感ずるようになりました。また脊椎神経に電気が通うように、私が驚くほどビリビリするのを感じ、むせび泣き、心の底に火が付くようにカーブとほてり熱くなるのを感じました。統一教会に通い始めたとき、「電気が来る」とか、「火が来る」とか言うので何のことだろうと考えていましたが、自ら経験してみると、神と心情一体になれば奇跡と同じことが起こるのを体験しました。 その後は、さらにいっそう人間的な信仰生活を離れ、直接天と通じるのを感じるようになり、私生活はなおさりにされ、天に対する心情が切になって、いっそうみ旨の生活に陶酔し、祈祷生活を熱心にし、聖別生活までするようになりました。 ある日夢で、霊界にある王宮の前に行って大門の中をながめてみると、先生が金の冠をつけ、緑色の官服を着て座っておられ、後には色とりどりの官服を着た人たちが座っていました。侍女は薄い水色の衣を着ていました。私が「あの王宮にどうか入って行けるようにしてください」と言うと、その侍女が「戻って聖別せよ!」と言ったので、入って行けずに戻ってきたことがありました。この夢を先生にお話しすると、「その夢は誰にも話してはいけない」と言われました。また私は解決するために祈り、眠ると同時に声が聞こえ、「あなたは天の娘であるから一人でいなさい」と言われたので、すぐに悟ることができました。 その後、私は一人の生活を始めるために、夫に百日祈祷をすると言って了解を求めました。しかし統一教会を批判する雑誌が出るや夫は反対し、妨害を始めたのです。そこで、そうでないことを見せるために夫婦生活をしました。ところが、何日も経たないうちに路上で転んで左腕が使えないようになってしましました。数カ月電気治療を受けても治らず苦しんだ末、食口の鍼専門家から鍼を二回受けてやっと完治したのです。私はもうこの世的に生きてはならないということを痛感しました。しかし、日が経つにつれ、夫は理解できずに私を殺してやるとまで言い出したので、私は恐怖にとらわれ、とうてい同居生活はできなくなりました。そうしたときに、幸いにも日本に行ける機会が生したのです。 |
첫댓글 감사합니다 아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