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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 : 바울이 사도가 된 경위(갈라디아서 1:11~24)
* 본문요약
바울은 자신이 갈리디아 교회의 성도들에게 전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자기에게 나타나셔서 전해주신 것임을 강조하여 말합니다.
바울은 자기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교회를 박해하던 자였는데,
하나님께서 그를 직접 택하셔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널리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메섹에서 예수님의 계시로 믿는 자가 된 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않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3년 후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게바(베드로)와 15일 함께 지냈고,
그 후 곧바로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갔다고 말합니다.
바울이 이런 과정을 자세히 밝히는 것은
그가 복음에 대하여 사람에게 배운 적이 없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찬 양 : 101장(새 80) 천지에 있는 이름 중
415장(새 292) 주 없이 살 수 없네
* 본문해설
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받은 복음(11~12절)
1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사람이 고안하여 만들어 내 것이 아니라.)
12) 그 복음은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나타나셔서 나에게 전해주신 것이라.)
2. 교회를 핍박했던 지난날의 바울(13~14절)
13)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그때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여 잔해하고(아예 없애버리려고까지 하였고)
14) 그때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더욱 앞장서서)
내 조상의 유전(내 조상들의 전통을 지키는 일)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 조상들의 전통(14절) :
조상들의 전통은 모세의 율법이 아니라
그 율법에서 파생된 여러 규칙들을 말합니다.
이 규칙들은 유대교의 전통에서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 연갑자(14절) :
연갑자는 자신과 나이가 같은 또래의 사람, 혹은 동시대인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는 그 시대의 어떤 유대인보다
유대교를 믿는 데 열성적이었다는 뜻입니다.
3. 주님의 계시를 받은 이후의 바울의 여정(15~24절)
15)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16) 그의 아들을 이방인에게 널리 전하게 하시려고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
내가 내 혈육(내 주변 사람들)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17)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오직 (곧바로)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18) 그 후 삼년 만에 내가 게바를 심방하려고(베드로를 만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15일을 지낼 때
19) 그때 나는 주의 형제(예수님의 육신의 동생)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20) 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라.
21) 그 후 나는 수리아(시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으로 갔으나
22) 유대 지방에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들에게는 내 얼굴이 잘 알려지지 않았고
23) 그들은 다만 “전에 우리를 박해하던 자가
지금은 그가 없애버리려고 했던 그 믿음을 전하고 있다”라는 소문만 듣고
24) 나로 말미암아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니라.
-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16절) :
의논한다는 말은 점쟁이에게 의견을 묻는 것을 나타내는 동사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예수님의 계시를 통해 복음을 전달받은 후
그 누구에게도 교육을 받거나 협조를 받은 일이 없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 아라비아(17절) :
다메섹 동남쪽에 있는 나바티아 왕국으로, 오늘날의 요르단에 해당합니다.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아라비아 광야에서 3년을 지냈습니다.
- 게바를 심방하려고(18절) :
바울이 게바(베드로)를 만난 것은 복음에 대하여 교육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친교를 위한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15일간 있었다고 말한 것은
15일은 복음을 교육받기에는 너무나도 짧은 기간이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 길리기아 지방(21절) : 길리기아 다소는 바울이 자란 그의 고향입니다.
* 묵상 point
1.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쓴 이유
1) 거짓 교사들이 바울은 사도도 아니며 바울이 전한 복음도 가짜라고 했으므로(20절)
바울은 갈라디아에 살며시 들어온 유대주의 기독교인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한 바울의 말을
가짜 복음이라며 사람들을 미혹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는 것만으로는 안 되고,
할례나 제사 의식과 같은 구약의 의식도 지켜야만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이런 주장을 믿도록 하기 위해
바울은 사도도 아니며 바울이 전하는 복음도 가짜 복음이라고 사람들을 미혹했습니다.
2) 바울은 자신을 위한 변호가 아니라
주님의 복음의 말씀을 변호하기 위해 갈라디아서를 씁니다(11~12)
바울이 서둘러 갈라디아 교회의 성도들에게 편지를 쓴 것은
그들이 바울을 비난하고 다니는 것 때문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잘 믿던 자들이 할례받는 일을 두려워하여
교회를 떠나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정하신 복음의 말씀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자들이
예수께서 이미 폐기 처분하신 구약의 의식을 지키지 못해
신앙을 포기하는 일이 일어나자 서둘러 편지를 한 것입니다.
2. 사람이 고안해 낸 복음이 아니다
갈라디아에 살며시 들어온 유대주의 기독교인들은
자기들이 전하는 복음이 진짜이고 바울이 전한 복음이 가짜라고 말했습니다.
그 증거로 바울은 예수께서 세우신 사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예수께서 자신을 직접 세우셨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증명합니다.
1) 나는 예수께서 직접 세우신 사도이다(15~17절)
유대주의 기독교인들이 바울의 사도직을 의심하고 나오자,
곧바로 바울은 자기는 사람들이 뽑아서 세운 사도가 아니고,
누가 임명하여 세운 사도도 아니며,
예수께서 직접 택하여 세우신 사도임을 강조합니다.
바울이 자기의 사도직을 변론하고 나온 것은
그들이 자기의 사도직을 의심한 것으로
자신의 마음에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도직을 인정받는 문제는 바울에게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바울의 사도직을 의심받으면
그가 전하는 복음의 말씀까지 의심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전하는 말씀이
예수께서 주신 참된 복음의 말씀임을 강조하기 위해
바울은 자신이 주께서 직접 세우신 사도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2)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이 고안해 낸 것이 아니다(11~12절)
기독교를 공격하는 사람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기독교는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자기들이 믿는 바를 정리하여 만들어 낸 인간의 작품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또한 자기가 전하는 말씀은 자신을 포함하여
그 어떤 사람이 고안해 낸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기독교가 만일 어떤 종교적인 천재가 고안하여 만들어 낸 것이라면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하는 것을 마음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구원도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전한 복음은 주께서 주신 복음과 일치합니다.
그것을 주님의 사도들이 인정하고 확증하였습니다.
세상에 그 어떤 사람도
자기가 고안하여 만들어낸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목숨을 버리지는 않습니다.
만일 기독교가 정말 종교적인 천재 몇 사람이 만든 것이라면,
바울 당시 사람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도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렇게도 많은 사람이 순교를 당했을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주 초기 시절부터 엄청난 순교자들이 있었다는 것은
그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3. 자신이 전한 복음이 예수께 직접 전달 받은 복음임을 증명하는 바울
• 기독교는 결코 바울이 고안해 낸 종교가 아닙니다.
세상에서는 바울을 기독교의 실질적인 창시자라고 말합니다.
가말리엘에게 유대교의 교리를 배우고,
길리기아 다소에서 헬라 철학과 학문을 두루 익힌 바울이 있었기에
기독교의 교리가 체계화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목수의 아들로 배움이 없는 자였는데
학문에 능한 바울이 기독교를 세계의 종교가 되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결코 바울에 의해 만들어지고 체계화된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예수께서 자기의 피로 세우신 교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교회에서 전하는 복음의 말씀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세우신 구원의 말씀입니다.
바울은 그저 주께서 주신 이 복음의 말씀을 전했을 뿐입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바울 역시 주께서 주신 말씀을 전한 전달자에 불과합니다.
1) 바울은 예수님의 교회를 핍박하던 자였습니다(13~14절)
바울이 기독교의 창시자도 아니고
기독교를 체계화시킨 종교적인 천재도 아니라는 첫 번째 증거는,
바울은 본래 기독교를 아주 싫어했던 자였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싫어했는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핍박했던 자였고,
심지어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붙잡아서 죽이기까지 했던 자였습니다.
2)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15~17절)
바울이 예수님을 처음 만난 다메섹도 그가 예수님을 만나러 간 것이 아니라
바울을 피하여 다메섹으로 도망한 성도들을 붙잡아 일망타진하기 위해 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다메섹에 거의 도착했을 때
대낮에 길에서 하늘로부터 강하게 비치는 빛을 보았고,
그때에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예수님을 믿는 자가 됐습니다.
3) 그 후 바울은 곧바로 아라비아 광야로 갔습니다(17~18절)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바울은 곧바로 아라비아 광야로 갔습니다.
고린도후서 11:32을 보면
바울이 아라비아에 있는 나바티아 왕국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아레다 왕에게 쫓겼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사도들을 포함하여 아무도 만난 일이 없는데,
그가 이미 복음의 말씀을 완전히 알아서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됐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아라비아 광야에서 3년을 지내는 동안
본문 12절에서 그가 고백한 바와 같이 예수께서 바울에게 직접 나타나셔서
바울에게 단독 선생님이 되어 복음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어떤 사람에게 배웠거나 자기가 고안하여 만들어 낸 교리가 아니라,
이렇게 예수께로부터 받아서 전하는 것임을 강조하여 말합니다.
4) 그 후 3년 만에 베드로를 만났으나 15일간 함께 있었을 뿐입니다(17~18절)
아라비아에서 3년을 지난 후 베드로를 만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복음을 전하려면 사도들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베드로와 15일을 지냈습니다.
이것 역시 베드로에게 무슨 말씀을 배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베드로와 친교를 나누기 위해 방문한 것이었습니다.
5) 그 후 다시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갔습니다(21절)
그리고 예수님의 육신의 동생 야고보만 만났을 뿐 다른 사도들을 일절 만나지 않고,
곧바로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갔습니다.
그리고는 그 수리아와 길리기아에서 전도여행을 하며 14년을 보냅니다(갈 2:1).
➠ 그 후에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사도들과 만난 후
그가 전한 말씀이 참되다는 것을 인정받습니다(갈 2:7~8).
14년 후 바울이 1차 전도여행을 마쳤을 때
바울이 전한 복음 때문에 예루살렘 총회가 열려 예루살렘에 왔다가
사도들로부터 그가 전한 복음의 말씀을 점검받습니다.
이때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이
그들이 주께로부터 직접 들은 말씀과 차이가 없음을 확인하고,
바울을 이방인을 위해 세운 주님의 사도임을
예루살렘 총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합니다.
● 묵상 :
이것은 바울이 예수님에 대한 복음의 말씀을 누군가로부터 배우지도 않았고,
그 자신이 고안하여 낸 교리도 아니며, 오직 예수께서 바울에게 나타나셔서
직접 가르쳐 주신 말씀이라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울의 이 말이 참된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가 전한 말씀이 복음서의 말씀과 같고, 주님의 성령도 그와 함께 하심으로
그가 전하는 말이 참된 것임을 증거 하셨기 때문입니다.
4.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1) 예수께서 굳이 바울을 따로 세우신 이유 : 그가 다소 출신이므로(21절, 2:7~8)
이미 예수께서 직접 세우신 사도들이 있었음에도 굳이 바울을 따로 세우신 이유는,
기존의 사도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주의 기독교인들의 눈치를 살피느라
도무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교회를 핍박하던 바울을 직접 만나셔서
그의 잘못을 깨닫게 하신 후에,
그를 이방인을 위한 전도자로 세우신 것입니다.
바울이 이방인을 위한 전도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길리기아 다소 출신이어서 헬라 철학과 학문에도 능한 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방인에게도 상당히 열린 마음을 가진 바울이었기에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장애가 없었습니다.
2) 바울이 만일 사도들과 의논했다면 그는 이방지역으로 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바울이 예수님을 만난 후에 예루살렘의 사도들과 의논하였다면,
예루살렘의 사도들은 틀림없이 이방지역을 가더라도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하라고 했을 것입니다.
만일 그랬다면 오늘 우리에게까지 복음이 전해지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바울이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즉 주변 사람들과 의논하지 않고
오직 주님의 말씀에만 순종하여 곧바로 이방 지역으로 가서 복음을 전했기에
세상 끝까지 복음이 전해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 묵상 : 의논해야 할 일과 의논하지 말아야 할 일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변 사람들과 의논하여 해야 할 일이 있고,
의논하지 않고 오직 주님의 말씀에만 순종해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가령 주일 예배를 드리는 것은 의논해서 할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가령 이번 봄에 신도회에서 가기로 한 야유회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의논해서 해야 할 일입니다.
때때로 이것이 뒤바뀌어서 혼란이 일어납니다.
‘예’해야 할 일에 ‘예’하고, ‘아니오’ 해야 할 일에 ‘아니오’ 하십시오.
또 의논해야 할 일은 반드시 의논해서 하고,
오직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야만 하는 일에는 의논하지 말고 말씀에만 집중하십시오.
이 일을 바르게 하도록 지혜를 주시기를 구하십시오.
* 기도제목
1. 복음의 말씀을 믿지 못하게 하려는 자들의 말에
미혹되지 말게 하옵소서.
2. 의논해서 해야 할 일과
의논하지 않고 오직 말씀에 순종해서 해야 할 일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