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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7일 주일 설교
시리즈 제목: 땅을 위한 하늘의 대리인들 1
설교 제목: 하늘의 뜻을 땅에 펼치는 사람들
부제: 영원의 좌표
설교 본문: 사도행전 10:33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는데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설교 목적:
영원의 좌표를 설정하고 다시금 점검하면서 살 것을 다짐하면서 한 해를 시작해 보자. 땅을 위한 하늘의 대리인들이라는 좌표를 다시 마음에 그리면서 성경의 인물 고넬료를 따라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자.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 보자. 그렇게 우리의 만남은 하늘의 뜻을 이루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설교 개요:
1. 10년 전의 노래-Lost Stars
2. 영원의 좌표를 잡아라
3. 하늘의 뜻을 땅에 펼치는 사람들
4. 우리가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 새로운 성전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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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0년 전의 노래-Lost Stars
지금부터 10년 전, 저의 아이들은 십대였고 저는 40대였습니다. 그때 아이들과 영화도 보고 노래도 부르고 했습니다. 그때 한 편의 영화가 우리 자녀들을 들뜨게 했습니다. 비긴 어게인(Begin Again, 2014)이라는 영화인데 거기에 나오는 주인공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 노래의 제목은 Lost Stars였습니다. 우리말로는 길 잃은 별들이라고 하겠습니다.
영화의 한 대목에서 주인공은 자기가 만든 노래를 소개합니다. 그 노래를 맘에 들어 하는 사람이 그 제목이 뭐냐고 묻는데 주인공은 약간 우쭐대면서 ‘Lost Stars’라고 말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그 장면을 따라했습니다. 한 사람씩 주인공이 되어 그 대사를 말해 봅니다. 그러면 다들 웃으면서 즐거워합니다. 그런데 둘째 딸 찬송이가 그 대사를 말할 때면 모두들 그야말로 박장대소를 터트렸습니다. 능청맞게 말하는 것이 주인공과 묘한 대조를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지금도 그때 일을 떠올리면 웃음이 나고 가끔 이야기합니다. 자녀들과 함께했던 소중한 추억 중에 하나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꿈을 먹고 살고, 노인들은 추억을 먹고 산다는 말이 있는데 제가 지난 추억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제가 지나간 일을 말씀드리는 이유는 바로 그 노래 Lost Stars가 어떤 노랫말이었는지를 조금 소개해 드리기 위함입니다.
I'll be damned, Cupid's demanding back his arrow
큐피드가 화살을 돌려달라네요, 난 어찌해야 할까요
So let's get drunk on our tears
그러니까 우리 눈물에 한번 취해봐요
And God, tell us the reason youth is wasted on the young
하나님, 왜 젊을 때는 젊음이 소중한 걸 모를까요
It's hunting season and the lambs are on the run
사냥철이 왔고, 양들은 살기 위해 뛰네요
Searching for meaning
참 의미 없지 않나요
But are we all lost stars, trying to light up the dark?
우리는 어둠을 밝히려고 애쓰는 길 잃은 별들인가요?
Who are we?
우린 누굴까요?
Just a speck of dust within the galaxy?
그저 이 우주의 작은 먼지의 불과한 걸까요?
Woe is me, if we're not careful, turns into reality
슬프네요, 애쓰지 않으면 그게 현실이 된다는 게
Don't you dare let our best memories bring you sorrow
우리 행복했던 기억들 때문에 울지 말아요
이 노랫말은 청춘들의 사랑과 고민을 보여줍니다. 특히 우리가 누구인지, 그저 이 우주의 작은 먼지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하는 탄식을 보면 청춘은 언제나 인생의 의미를 찾아 이리 저리 헤매는 존재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청춘이니까 그럴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사실 우리 아이들이 웃고 떠들면서 이 노래를 불렀는데 그 후로 저마다 길 잃은 별처럼 삶의 의미를 찾아 어둠을 밝히려고 애를 정말 많이 썼던 것 같습니다.
사람은 청춘의 시절에 영원히 머물러 있을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직장을 얻고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고 늙어갑니다. 그렇게 자리를 잡습니다. 전에 길 잃은 별들은 이제 자기 자리를 잡고 일정한 궤도를 돌면서 빛을 발합니다. 그리고 그 빛이 점점 희미해 가는 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마지막 빛을 깜박인 후에 사라지겠지요.
청춘들이 삶의 의미를 찾아 헤매는 길 잃은 별들이라면 중년과 노년을 보내는 사람들도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또는 어디로 가는지 헤맬 때가 있습니다. 며칠 전에 병원에 갔다가 지하 주차장에서 자기의 차를 어디에 주차했는지 몰라서 이리저리 헤매는 노부부를 보았습니다. 우리들도 때로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청춘들이 길 잃은 별이라면 노년들은 기억을 잃어가는 별들입니다.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를 잊어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요?
2. 영원의 좌표를 잡아라
제가 존경하는 교수님이 쓰신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의 제목은 ‘현대문제와 영원의 좌표’(장국원)였습니다. 신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글을 모은 것입니다. 교수님의 의도는 오늘날의 문제가 영원의 좌표와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영원에 좌표가 있습니까? 영원은 끝없는 과거이며 끝없는 미래입니다. 영원은 끝없는 우주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우리는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이 우주에서 한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인생에 대하여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시편 90:3~4).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라 천년이 어제처럼 짧고 어쩌면 밤의 한 순간 같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아마 노년에 느끼는 인생이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렇다면 인생은 청춘 때에도 길을 찾아 헤매는 별과 같고 노년의 때에도 인생의 의미가 무엇이었던가 하고 방황하는 별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청년의 때에나 중년이나 노년의 때에도 사람에게는 좌표를 명확하게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그 좌표를 중심으로 인생과 세상을 이해하고 거리를 잡으며 길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 좌표의 중심을 사람에 두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부귀나 성공에 두기도 합니다. 그래서 믿고 의지하던 사람이 흔들리면 그의 인생도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릴 것입니다. 부귀나 성공을 인생의 좌표로 삼고 살던 사람들도 결국 인생이 덧없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그런 것은 사람에게 영원의 좌표가 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시편을 보면 인생의 좌표를 든든히 잡은 사람의 고백이 나옵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시편 16:8). 오늘 우리들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굳게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사실 영혼의 닻을 튼튼하게 내린 배와 같이 세파에 흘러 떠내려가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은 우리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는 것이며 우리 영혼의 닻을 든든하게 내리는 것입니다.
주중에 기도하면서 새로운 찬송을 배웠습니다. 그 찬송을 부르면서 외워서 불러보기도 합니다. 그렇게 찬송을 하면서 우리는 아침에 깨어나면 이 찬송을 부르자고 다짐합니다. 찻속에서도 함께 불러봅니다. 찬송을 외우고 말씀을 외우는 것은 우리의 일상에서 하나님께 소망을 두려는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으려는 우리의 노력입니다.
여러분과 함께 부르고 싶은 찬송을 소개합니다. 찬송가 203장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말씀이라 / 광야 같은 세상에 길 잃고 방황할 때 / 절망 중에 빠진 이 몸 하나님 보호하사 / 생명샘이 솟아나와 새 힘이 넘칩니다.’ 오늘 이 찬송을 부르면서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그리고 휴대폰을 켜기 전에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제가 지금 주님 앞에 있습니다!’ 이런 노력을 하면서 우리는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고 영원의 좌표를 분명하게 잡습니다.
그러면, 삶의 좌표를 분명하게 잡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까요? 오늘부터 이 주제에 대하여 성경말씀을 살펴보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3. 하늘의 뜻을 땅에 펼치는 사람들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을 우리는 신앙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을 배웁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우리는 하나님을 더 굳게 신뢰하게 되며 우리 영혼의 닻은 더 튼튼해집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고 그 계획에 자신을 맞추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언자 호세아가 백성을 권면하면서 했던 말씀을 생각해 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호세아 6:3). 하나님을 알자고 말하는 호세아, 그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자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그 뜻을 배우고 거기에 맞추어 살아가자고 권하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배우고 묵상하고 연구하면서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하나님의 경륜이라는 이름으로 정리하여 마음에 간직하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저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깨닫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계획에 대하여 사탄 마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사탄 마귀가 하나님을 모르는 이유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얼마나 좋은 분인지 결코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려면 하나님의 계명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배우는 사람은 하나님의 의도를 이해하게 됩니다. 즉,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그것에 자신을 바치게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제대로 사랑하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께 소망을 두려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주의깊게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이 세상과 우리를 향하여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지를 먼저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계획에 자신을 맞추어 나가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부르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보여주시고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펼치십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경륜이 이 땅에 펼쳐지는 것을 가리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고 부릅니다.
성경은 이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그 능력을 힘입어 순종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하늘의 부르심을 받아 하늘에 새겨진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마음에 담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 중에 사도 바울은 이렇게 자신이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을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아니하고
먼저 다메섹과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 전하므로
사도행전 26:19~20
앞에서 소개해 드린 10년 전의 노래 Lost Stars를 쓴 애덤 르빈(Adam Noah Levine)은 청춘들에 대하여 설명하기를, 하늘을 빛나게 하려고 애쓰는 길 잃은 별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신앙은 사실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땅에 펼치는 것입니다. 전도지에 자주 등장하는 문구가 있습니다: ‘예수를 만나면 인생의 방황이 끝나고, 좋은 교회를 만나면 신앙의 방황이 끝난다.’ 예수님을 만나면 인생의 방황이 끝난다는 말은 결국 삶의 의미를 찾았다는 뜻이겠습니다. 즉, 인생의 좌표를 분명하게 정했다는 의미도 되겠습니다.
소설가로 널리 알려진 김홍신 씨가 삶의 지혜가 담긴 글(겪어보면 안다)을 썼습니다:
굶어보면 안다 / 밥이 하늘인 걸
목마름에 지쳐보면 안다 / 물이 생명인 걸
일이 없어 놀아보면 안다 / 일터가 낙원인 걸
아파보면 안다 / 건강이 엄청 큰 재산인 걸
잃은 뒤에 안다 / 그것이 참 소중한 걸
이별하면 안다 / 그이가 천사인 걸
지나보면 안다 / 고통이 추억인 걸
불행해지면 안다 / 아주 작은 게 행복인 걸
죽음이 닥치면 안다 / 내가 세상에 주인인 걸
이 글을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감동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질문이 생깁니다. 그러면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것 아닌가? 우리는 경험하지 않고는 삶의 지혜를 알 수 없을까요? 겪어본 사람만큼 절절하게 깨닫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른 사람의 경험을 듣고 다른 사람이 했던 일에 귀를 기울이는 까닭은 그것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배우려는 것입니다. 그 배움을 통해서 우리의 방황을 줄이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찾으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배우는 목적도 이와 같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만나서 인생의 방황을 끝내고 삶의 좌표를 정한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도 예수님을 만나는 길을 찾으려는 것입니다. 오늘 제가 소개하려는 고넬료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4. 우리가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 새로운 성전의 삶
금년도 우리 교회 표어는 고넬료가 한 말에서 왔습니다. 고넬료는 베드로를 집으로 초청하여 온 가족을 불러 모으고 그 앞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는데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사도행전 10:33). 고넬료는 하나님의 분부를 따라 예수님의 제자이자 사도인 베드로를 초청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를 통해서 말씀하실 것을 기다렸습니다.
베드로는 고넬료의 집에 와서 비로소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 지를 보았습니다. 전에 베드로는 자신이 이런 일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방인은 자신이 만나서는 안 될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이방인의 집에 와서 지금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는 것을 보고 더욱 놀랐습니다.
그때 비로소 베드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세우실 사람들은 단지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인도 포함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뜻은 고넬료와 베드로의 순종을 통해서 이 땅에 펼쳐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유대인보다 더 많은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아브라함의 언약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받고자 그 앞에서 기다릴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뜻을 펼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그런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사실 하나님이 거룩한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속 마음을 헤아리고 그 뜻을 받을 수 있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뜻을 헤아리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교우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이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생각해 봅시다. 전에 성령은 사사나 예언자들에게 임했습니다. 삼손과 다윗을 보십시요. 예언자들을 생각해 보십시요. 전에 하나님은 거룩한 성전에 계셨습니다. 거기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만나고 그 만남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펼쳐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가르치고 펼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이제 성령은 우리 믿는 사람들 안에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계시고 역사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로마서 8:14~17
전에 하나님이 성령으로 함께하신 장소가 있습니다. 그리고 거룩한 선지자들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성령이 계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인도하시며 우리의 영과 더불어 말씀하시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함으로 상속자가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성령으로 우리 가운데서 우리를 통하여 일하십니다. 이제 우리가 성전이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나님의 성령이 하늘에 새겨진 하나님의 꿈을 우리에게 보이시고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는 고넬료처럼 주님의 뜻을 따를 것을 결심하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금년도 표어는 이런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