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멸치를 꼭꼭 씹어 먹어야 이가 튼튼해 진다구요?
- 크랙치아 (균열치아)
살림치과 원장 박인필
제 어머니는 제가 치과의사가 된 후에도 “마른 멸치(칼슘이 든, 단단한 음식)를 꼭꼭 씹어 먹어야 이가 튼튼해진다” 라고 주장하셨습니다. “아니에요! 딱딱한 음식을 많이 먹으면 치아에 금이 갈 수 있어요” 라고 말했지만 귓등으로 듣곤 하셨죠. 그러던 어느 날, 신경치료 후 금니로 씌웠던 치아가 아프다고 치과로 오셨습니다. 이런 저런 치료에도 반응이 없어, 발치하기 전에 눈으로 확인이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잇몸을 절개해 열어보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치아 뿌리에 금(crack-크랙, 균열-龜裂)이 좌악~ 가있지 뭡니까. 치아 뿌리에 금이 간 경우에는 치료법이 없고, 예후가 좋지 않아 발치를 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 이후로 어머니는 제 말을 믿고, 치아가 깨져서 치료 받으러 오신 이모에게도 딱딱한 음식을 먹으면 안된다고 훈계를 하시기에 이르렀습니다.
미국에서 2년간 진료를 하고 오신 한 선생님께서는 그 때 본 크랙 환자보다 귀국 후 한 달 동안 한국에서 본 크랙환자가 더 많았다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서양의 빵과 고기위주의 식사에 비해 한국인들이 딱딱한 음식을 많이 씹어 먹는 것이지요. 치아가 깨져 조각이 떨어져 나가서 오신 환자분들은 대게 마른 누룽지, 마른 오징어, 게 껍데기, 오돌뼈, 얼음 등을 씹다가 이가 깨졌다라고 표현하십니다.
우리 치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많은 잔금들을 볼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죠. 치아 표면에 금이 있다고 해서 모두 크랙환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증상이 있어야 합니다. “음식을 물었다 뗄 때 시큰 (찌릿)해요” “씹는 순간 깜짝 놀랄 만큼 시큰할 때가 있어요” “며칠 전 딱딱한 것을 잘못 씹은 후로 계속 그 치아가 불편해요” 라는 증상을 호소하게 됩니다. 기존에 신경치료가 되어 있던 치아라면 시큰하지는 않고 “씹을 때 마다 아파요. 우리하게 아파요, 씹기 싫어요” 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치아에 있는 금이 씹는 순간 벌어지면서 통증을 보내주는 것이지요. 씹지 않을 때는 다시 금이 벌어지지 않으니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금이 어디까지 퍼져 있는지 알 수 없고, 또 금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경우도 많아 진단이 까다롭습니다. 간혹 “x-ray 로 보면 되지 않냐, 확실하냐” 하고 물어 보시는 분들이 계신데 x-ray 에 금이 보일 정도 이면 항상 벌어져 있는 것이니 발치를 해야합니다. 진단이 까다롭고 치료도 환자의 증상에만 의존하게 되어 분쟁의 소지도 많습니다. 의심스러운 금을 발견하는 순간 미리 미리 치료해 드리고 싶지만, 분쟁의 소지가 있어 증상이 나타날 때 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더 빨리 개입할수록 더 예후가 좋음에도 불구하고 의료계-환자 사이 신뢰가 깨진 작금의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원인으로는, 단단한 음식을 즐겨먹는 식생활 습관, 씹는 힘이 강한 사람, 충치가 너무 큰 치아는 전체를 씌워야 하는데 떼우는 것으로 치료를 끝낸 경우, 신경치료 후 치아 전체를 씌워야 하는데 방치한 경우가 있습니다.
크랙 치아의 치료는 대게 치아가 벌어지지 않게 잡아주는 것 (치아를 씌우는 것)부터 시작됩니다. 그래도 증상이 사라지지 않으면 신경치료를 하게 됩니다. 신경치료 시 뿌리까지 금이 진행된 것이 확인되면 발치를 해야 합니다. 각 단계에서 최선의 치료를 하는 거지요. 그런데 유리창에 생긴 작은 금이 조금씩 조금씩 커져 끝까지 가는 것처럼, 치료한 치아도 점점 금이 더 진행될 수 있고, 치료를 다 끝냈지만 발치해야 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치료 시작부터 발치 가능성을 고지하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막상 발치를 하게 되면 실망이 이만 저만이 아닐 겁니다.
기억하세요! 딱딱한 음식은 치아를 망가뜨린다는 사실!
(이 글은 은평시민신문에 기고했던 글을 수정한 내용입니다.)
<사진 출처: American Dental Assoication>
1) 금이 치관 (치아머리쪽)을 넘어 치근 (치아뿌리) 으로 가면 치료의 예후가 좋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치아 뿌리의 어디까지 금이 진행되었는지를 모르는 상태로 치료에 들어가게 됩니다.
2) 완전 균열(금이 벌어져 있는 상태) 이 생기면 보통 발치하게 됩니다.
3) 예전에 떼웠던 재료 아래로 금이 진하게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 발견이 어렵습니다. 발견하고 진단하기 위해서는 떼웠던 재료를 제거해 보아야 하는데 다시 떼우는데 비용이 드니 치료를 권하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첫댓글 왜 가족 말은 잘 듣지를 않는 걸까요. 웃으면 안 되는데 왠지 영상이 그려지네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