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코스 : 문수산성 남문 → 애기봉 입구(조강 철책 길)
조강은 파주 교하 오두산 전망대 앞에서 북한강과 남한강을 합쳐 흘러온 한강과 한탄강을 이끌고 흘러온 임진강이 합쳐지는 곳에서 7km를 더 서쪽으로 흐르다가 강화도 유도를 지나 예성강을 안고 서해로 합류하는데 할아버지 강이라는 뜻이다.
한반도의 등줄기인 백두대간의 가운데 태백의 검룡소에서 발원한 한강은 조국의 심장인 서울을 지나는 아비이고, 함경남도 두륜산에서 발원한 임진강은 남북의 아픔을 감싸 안은 어미이며, 개성을 지나온 예성강을 손자라고 하면 아비와 어미와 손자를 모두 품에 안았으니 할아버지(다음 백과사전에서 퍼옴)가 아니겠는가?
한강, 임진강, 예성강을 하나로 안은 평화스러운 곳, 서해에서 한강을 거슬러 올 때의 첫 번째 포구, 하지만 오늘날에는 조강의 한가운데로 군사 분계선이 지나가는 분단의 상징이 되어 바라볼 때마다 가슴을 아프게 하였는데 오늘 걸어가는 경기 둘레길 2코스가 조강을 따라 걸어가는 조강 철책 길이다.
하지만 우리가 걸어가는 조강 철책 길에는 조강도 철책도 없다. 아니 없는 게 아니라 군부대가 주둔하여 민간인 통제 구역이 되어 하는 수없이 문수산으로 우회하여 걸어가야 하기 때문에 애석한 마음을 달래며 지나칠 수밖에 없다. .
2코스 출발지는 문수산성 남문이다. 남문 아래의 성벽의 주위는 잡초들로 무성하여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병인양요 때 무너진 성벽과 문루를 새로이 복원하여 산성의 문루는 그 옛날의 모습을 되찾았지만, 주변은 관리하지 않아 폐허의 성으로 변하였다. 하루빨리 정리되기를 바라며 문수산 등산로 입구로 향했다.
아쉬웠다. 보구곶리, 용강리의 길을 이용하면 조강 철책 갈 따라 갈 수 있는 길을 군부대가 소재하여 민간인을 통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에게 출입을 허용하고 도보로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출입을 금지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잘못된 것이 어디 이것뿐인가! 자신을 달래며 문수산성 등산로 입구에 이르니 평화 누리길에서 대문을 활짝 열어 놓고 어서 오라 손짓한다. 경기 둘레길 2코스는 평화 누리길과 같은 길을 가고 있었다.
인심이 좋은 집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이 길이 경기 둘레길이며 평화 누리길이라면 하나의 길로도 인정받기 어려운데 2관왕을 차지하였으니 분명 명품 길임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수산의 등산로에 접어드니 ‘ 土地之神 ’ 비석이 세워져 있다. 고대에 국가와 민생의 안정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고자 사직단을 설치하였는데 이곳에서도 토지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있으니 민초들의 사직단이라고 말하면 어떨까?
이곳의 관례대로 제단 앞에서 서서 오늘 무사히 목적지에 이를 수 있기를 기원하며 문수산 남아문으로 향했다. 등산로는 점점 가팔라 진다. 삼거리 이후에는 등산로는 다소 평탄하였지만, 또다시 경사각을 이룬다.
산길의 등산로는 믿을 수 없다. 인생이 어떠한 일이 닥칠지 알 수 없는 것처럼 가파름과 완만한 경사는 예측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만큼 고생하여 오르면 그 고통보다 갑절의 아름다움 광경을 선사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산에 오면 반드시 정상에 오르려 하는 것이 아닐까 ?
등산로는 지난주 비로 인한 탓인지 길이 이리저리 파헤쳐 있었다. 김포의 명산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은 문수산이었지만 등산로를 정비하지 않아 걸음마다 불편하게 하였다. 더욱이 무너져 내리기 쉬운 곳조차도 정비하지 않아 하나의 길이 두 길이 된 곳도 있었다.
다소 힘들게 그러나 가벼운 마음으로 팔각정에 이르렀다. 아름다운 꽃을 상징하는 강화도의 풍광이 펼쳐졌다. 지난번 김포해협의 염하 철책 길에서 가장 낮은 지역에서 강화도를 조망했다면 오늘은 산 중턱에서 바라다본다.
강화의 산들은 해발 500m가 되지 않은 그리 높지 않은 산들이지만 산줄기가 서로서로 하나 되어 장쾌하게 뻗어 있어 그 높이로 국한하여 산을 바라보거나 평가해서는 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다.
언제 어디서 바라보아도 평화스러운 강화의 산과 들을 바라다본다. 강화해협 건너편에는 길상산, 마리산, 남산, 혈구산, 고려산, 봉천산 등 힘차게 뻗어 있고 강화의 곡창 조산평의 너른 들에는 푸른 기운이 생동하고 있다.
강화의 산과 들이 가슴을 뛰게 하는데 오늘은 봉천산 너머 창후리 한쪽에 외로이 솟은 별립산의 나 홀로 우뚝 솟은 기상은 군계일학群鷄一鶴이었다. 별도로 독립하여 솟아 있다 하여 별립산이라 이름하였는데
정상에 군부대가 있어 근처에 이르고도 오르지 않았던 지난날이 후회로 다가왔다. 이제까지 볼 수 없었단 별립산의 기상에서 산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는 사실을 또다시 실감할 수 있었다.
강화의 산과 들은 가슴을 벅차게 하는 대명사이지만 강 건너 올망졸망 솟은 북녘의 산들과 삼남 지방의 조운선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장관을 이루어 강화부 10경의 하나로 그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던 곳에 군사 분계선이 그어져 있는 것은 비극이었다.
그 비극을 극복하고 우리는 평화전망대에서 시작하여 김포의 월곶면 조강리를 거쳐 강 건너 북녘땅의 상 조강리, 하 조강리를 잇는 둘레길인 평화의 길을 조성할 수 없을까? 저 산 아래 텐트를 치며 야영하며 고기를 잡는 즐거움을 누릴 수는 없는 것일까?
모두가 이루어질 수 없는 망상에 조강의 아름다웠던 때를 노래한 화남 선생의 ‘연미 조범‘이란 시를 떠 올리며 남아문으로 향했다.
燕尾漕帆
燕尾停高二水中 연미정 높이 섯네 두 강물 사이에
三南漕路檻前通 삼남지방 조운 길이 난간 앞에 통했었네
浮浮千帆今何在 떠다니던 천 척의 배는 지금은 어디 있나?
想是我朝淳古風 생각건대, 우리나라 순후한 풍속이었는데
팔각정에서 점심을 먹고 성곽길을 따라 남아문에 이르렀다. 더운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고 올라온 박찬일 사장님은 마침 아이스크림을 판매하는 것을 보고 3개를 사서 나누어 주었다. 시원하였다.
이제까지 남아문은 동문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를 확인하고자 장사를 하는 사장에게 동문이지요 한즉 등산객이 듣고서 홍예문이라고 하고 사장은 남아문이라고 하면서 이정표를 가리킨다.
홍예문은 성문 모양을 무지개 모양으로 만들어서 홍예문으로 불리는 것을 이해할 수 있지만 남아문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암문으로 추정하였지만, 비밀 통로인 암문으로 보기에는 성문이 너무 컸다. 분명 동문일 텐데 왜 사람들은 모두 남아문으로 이야기 할까 ?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일까?
문수산성은 사적 139호이다. 김포에서 가장 높은 문수산의 험준한 산줄기에서 시작해 해안지대를 연결하고 있다. 강화도 갑곶 진과 마주 보면서 강화도 입구를 지키던 산성으로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침입해 격전을 벌였던 곳이다. 이때의 전투로 해안 쪽의 성벽과 문루가 모두 파괴되었으나 최근에 이르러 거의 복원되어 원형을 이루고 있었다.
남아문에서 고스락까지는 왕복 40분 거리이다. 모처럼 산에 왔으니 정상에 갔다 올까 생각해 보았지만, 모두가 문수산을 여러 번 다녀왔기에 오늘은 둘레길 걷기에 충실하여지자고 의견이 일치되어 하산하였다.
한남정맥 최 북서쪽에 있는 문수산은 높지는 않지만, 인천 월미도, 서울 삼각산, 개성 송악산까지 조망할 수 있는 명산이다. 정상에 오르면 강화해협과 한강이 유유히 흐르고 맑은 날에는 강건에 손에 닿을 듯 북녘의 산하가 펼쳐 지어 다른 산에서 볼 수 없는 분단 역사의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고 강화도 방어를 위해 쌓은 문수산성이 있어 구한말 외세 침략에 저항한 옛 조상의 숨결을 느끼며 산에 오를 수 있다. (다음 백과에서 퍼옴)
하산의 등산로는 김포 조각공원 가는 길인데 구름다리에 이르니 경기 둘레길은 구름다리에 이르기 직전(이곳에 이정표 있음) 좌측으로 방향을 전환하여 청룡회관으로 진입하여야 했다.
청룡회관에서 경기 둘레길은 평화 누리길에서 세운 대문 안에 설치된 계단으로 진입한다. 이제는 산길을 벗어나 일상적인 도로를 따라 걸어간다. 어쩌다 자동차가 지나간다. 놀이터를 지나 아늑한 포장도로가 펼쳐졌다.
어린 시절 시골에 사시는 외할머니 댁에 갈 때 매시간 운행하던 버스를 기다리기 싫어 걸어가다 버스를 만나면 돌아 나오기를 기다려 타면 요금도 절약되고 기다리는 지루함도 해소되어 걸어 다니던 그 길과 너무도 흡사한 길이었다.
그 옛날 우리네 농촌 마을을 가던 그 길은 오늘날에는 4차선 도로가 되었지만, 이 길은 아마도 마을의 샛길과 같은 길이었기에 비록 차선의 구분이 없이 포장되었을지라도 평화 누리길, 경기 둘레길로 지정되어 걷기 좋은 명품 길로 되살아 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가막리의 도로는 그런 길이었다. 이제 조강 1리 입구에 진입하였다. 갈수록 깊은 산골 속으로 들어간다. 자동차가 없으면 생활할 수 없을 것 같은 예전의 시골 마을로 느껴졌다. 입구는 비포장도로였고 마을 안은 포장도로였지만 길가에는 깻잎, 고추밭이 있고 밤나무도 있어 밤송이가 여기저기에 떨어져 있다.
밤나무 그늘에 설치한 평상에서 땀방울을 잠시 식히고 평화의 쉼터를 지나 조강저수지에 이르렀다. 한 눈으로 저수지 전체를 바라볼 수 없는 방대한 저수지 여기저기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
몇 가구 되지 않는 동네인데 저수지에 설치한 좌대는 어느 저수지보다 많았다. 저수지 물을 보니 푸른 하늘에 구름이 떠가는 맑은 하늘을 보여주는 청정지역인데 예상보다 저수지의 물은 혼탁하였다.
낚시, 좋은 취미라고 생각된다. 성질이 급한 사람들은 십 분을 참지 못하는데 고기가 입질을 할 때까지 어쩌면 몇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는 시간을 묵묵히 자리도 불편한 좌대에 앉아 기다리는 여유와 인내는 사람의 주요한 덕성으로 여겨지지만, 불행히도 낚시를 배우지 못했다.
물고기 잡는 데 집중 말고 세월을 기다리는 강태공의 지혜를 배우는 것이 진정한 낚시꾼의 자세가 아니겠냐는 생각으로 진행하는데 조강 평야가 펼쳐진다. 어린 시절 보았던 황금 들녘은 아니지만, 벼 이삭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고개를 들면 애기봉이요 뒤를 보면 문수산이 고개를 내민 조강1리를 지나 개곡리에 이르렀다. 목적지 애기봉 입구까지 1km 정도 추정되는데 개곡리에 세워진 이정표에는 목적지와 방향은 표시되어 있지만 남은 거리는 기록해 놓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남은 거리를 표기해 놓으면 이 만큼 걸어왔는데 아직도 몇 km가 남았어! 하며 기가 꺾인다고 하지만 목적지에 다 왔다는 자부심과 함께 새로운 힘이 생기기 때문에 거리 표기는 반듯이 표기하여 놓은 것이 좋다고 여겨진다.
이제 개곡리의 이름 없는 산을 넘으면 목적지에 이를 것 같았다. 더위는 더한층 기승을 부리었지만, 개곡리의 이름 모를 산을 넘어가는데 안부에 이르니 돌탑이 세워져 있다. 민초들이 고개를 넘어가며 하나, 둘 던져 놓은 돌이 탑을 이른 것 같았다.
주변의 돌 하나를 주워 던져 놓으며 목적지에 즐겁게 이를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며 고개를 넘어 조선 전기의 학자 한재 이목의 사당에 이르렀다. 한재 이목 선생은 고려에 충절을 지킨 절의파들이 양성한 신진 사대부들이 기득권 세력들에게 참살을 당한 무오사화 때 28살의 젊은 나이에 죽임을 당했다. 선생께서 지으신 시를 읊조리며 두 손을 모은다.
하늘의 性이 바로 나의 性이고
하늘의 마음이 바로 내 마음이며
하늘의 道가 나의 道요
하늘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바가
바로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바이니
내 마음 안에 하늘의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 일 시 : 2022년 8월 20일 토요일 맑음
● 동 행 : 박찬일. 김헌영
● 행선지
- 10시45분:문수산성 남문
- 11시40분:팔각정. 점심
- 12시25분:남아문
- 13시05분: 청룡회관
- 14시10분: 조강저수지
- 14시40분: 돌탑. 개곡리 안부.
- 14시55분: 한재당
● 총거리 및 소요시간
◆ 총거리 : 9.1km
◆ 소요시간 :4시간1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