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들린 책 「네 몸이 꿈을 해석하게 하기」 번역자의 서언:
-몸의 지혜가 인도하는 꿈의 길이 생의 온전성을 누리길 바라며-
나는 비폭력 평화 실천을 알아가면서 다양한 서클 모델을 한국에 도입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많은 변화를 경험했다. 처음에는 「삶을 변혁시키는 평화 훈련(AVP)」이나 「평화지킴이(HIPP)」 같은 평화 감수성 서클에 몰두했다. 이내 갈등 전환을 위한 「회복적 서클」을 만났고, 세월호 사건 이후에는 근원적 민주주의 실천을 위한 「스터디 서클」을 도입하기도 했다. 이 모든 서클은 관계 대화의 중요한 모델이었으며, 각각은 수업, 중재, 그리고 사회적 문제 해결과 기획에 대한 능동적인 태도와 적용 능력을 길러주었다.
그러다 개인적인 정신외상의 사건에 있던 몇 사람을 각각 단순히 경청해 준 인연으로 그들이 회복되는 것을 보고 진지한 관심 주제로 트라우마 치유 영역에 서서히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내면 가족 체계(IFS)」 모델과 서클의 작동 방식에서 유사한 연관성을 발견하며 내면 대화에 본격적으로 몰입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2010년대 후반부터였다. 여기에 더해 코로나 시기를 통과하면서 주변에서 신체적 질병과 심리적 고통, 그리고 노화의 현실이 급속도로 보편화되는 것을 목격하며 내면 대화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더욱 증대되었다. 그리고 2023년부터 새롭게 훈련 과정을 시작한 것이 바로 「포커싱」이다.
포커싱은 간결하고 즉각적인 결과를 스스로 목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명료함과 효능성을 지닌다. 이는 데이비드 봄이 말한 사고와 가정의 파편화, 그리고 (공통된) 의미의 흐름에 대한 대화 방식의 원리가 개인의 이슈에 있어서 사고 대신 몸의 감각, 즉 느낌 감각(felt sense)이라는 의미 형성을 통해 극복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고보다 몸의 감각이 주는 전체성과 형성적 과정의 전일성(wholeness)은 사고의 역기능을 넘어설 수 있게 한다. 포커싱은 단순한 심리 치유 모델로 시작했지만, 그 가능성은 자기 인식에 대한 내적 분별(inner discernment), 외적 도전과 갈등에 대한 적절한 대응, 그리고 종교적 언어 없이도 가능한 영적 실천 영역 등에 포괄적인 적용 가능성을 열어주는 효과를 보여준다.
전통적인 꿈 해몽 방식들이 외부의 상징 사전이나 전문가의 해석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했던 반면, 젠들린의 접근은 꿈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가는 방식을 혁신적으로 변화시킨다. 기존 방식들이 꿈을 고정된 상징의 집합으로 보고 분석적인 사고를 통해 그 의미를 ‘풀어내려’ 했다면, 포커싱은 꿈을 살아있는 경험으로, 몸이 지닌 지혜의 암묵적 소통으로 바라본다. 이는 꿈의 의미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몸의 펠트 센스를 통해 꿈의 메시지를 ‘느끼고’ ‘경험하는’ 체험적 과정이다.
젠들린은 왜 전통적인 꿈 해몽 방식들이 때때로 길을 잃거나 피상적인 해석에 머무는지 명확히 보여준다. 그것은 분석적인 사고가 꿈이라는 비합리적이고 다차원적인 현상을 완전히 포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꿈은 논리적 언어보다는 상징과 이미지, 그리고 깊은 감각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를 이성적인 틀로만 이해하려 할 때 우리는 꿈이 진정으로 전하려는 메시지, 즉 우리 존재의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목소리를 놓치기 쉽다. 포커싱은 이 간극을 메운다. 꿈이 주는 직관적인 감각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것이 우리 몸에 어떤 펠트 센스를 일으키는지 인지함으로써, 우리는 꿈이 지닌 생생한 지혜와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꿈을 안다’는 것을 넘어 ‘꿈을 경험한다’는 차원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여기서 더 나가보면 전체로서 암묵적인 실재가 나를 안내한다는 절대적 긍정성의 실존적 신뢰라는 감각도 살아나게 된다. 포커싱의 마지막 단계가 ‘수용하기’, 즉 다른 말로 말하면 ‘선물을 받기’라는 말이 허튼소리가 아님을 자각하게 된다.
어떤 이들은 현실의 복잡한 고민을 해결할 시간도 부족한데, '환상'에 불과한 꿈에 시간과 노력을 들일 필요가 있는가 하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꿈을 단순히 비현실적인 환영으로 치부하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유진 젠들린은 꿈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전체성을 더 깊고 온전히 이해하는 통로임을 역설한다. 우리는 깨어 있는 동안 경험하는 모든 것을 의식적으로 인지하지 못하며, 우리의 몸은 의식 너머의 수많은 정보를 담고 처리한다. 꿈은 바로 이 무의식적이고 암묵적인 지혜의 보고이며, 우리가 감지하지 못했던 현실의 측면들을 상징적 언어로 드러내 보여준다.
꿈은 현실의 문제를 외면하게 하는 환상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 문제의 근원적인 뿌리를 보여주고,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해결책이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심오한 안내자이다. 몸이 지닌 내면의 지혜가 꿈을 통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꿈을 이해하는 것은 단순히 개인적인 영역을 넘어,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현실적 도전과 관계 속에서 더욱 온전하고 지혜롭게 반응할 수 있도록 돕는 필수적인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포커싱은 강한 감정, 갈등, 문제적 상황(예: 중독, 전문적 일에서의 무력감)을 제거하거나 억압하지 않고 연결하여, 그것들이 각각 전하는 메시지가 있다는 관점에서 부정적인 경험들을 극복하거나 배제하지 않고 통합하여 온전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 이는 성장과 변화의 일관된 에너지를 제공한다.
특히, 꿈도 하나의 잠재적 가능성의 정보로서 실재에 대한 통전적 자각과 실존적 결단에 중대한 상징적 지혜와 힘을 가지고 있음은 구스타프 융의 꿈 해석을 통한 '온전성(wholeness)'으로의 연금술적 변형 자원이 되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융의 접근 방식 또한 사고와 해석의 오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었다. 여기에 젠들린은 꿈에 대한 포커싱의 원리를 적용함으로써 훨씬 더 직관적이고 실존적인 차원과의 연결을 통해 인식론적이고 존재론적인 영역의 즉각적인 직접성의 길을 연다. 이는 소수 엘리트들의 전문적 능력의 한계와 권력 문제를 넘어, 꿈에 의한 안내에 있어 보다 평등한 대중화의 길을 여는 획기적인 접근이다. 즉, 꿈의 메시지를 이해하기 위해 굳이 전문 심리학자가 될 필요 없이, 자신의 몸의 지혜에 귀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유진 젠들린의 이 책은 이론적인 학문적 배경의 전문성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포커싱을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일상에 쉽게 적용할 수 있는 실용적이고 실천적인 가이드를 제공한다. 현실에서 보고 듣는 경험적 세계만큼이나 꿈의 상징과 메시지는 단순히 무의식의 발로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몸이 지닌 지혜의 암묵적 소통을 의식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실제의 전체성과 그 안내에 대해 더욱 살아있는 감각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깊이 있는 감각은 우리가 흔히 겪는 ‘성취’나 ‘소유’에 중독된 삶을 벗어나, ‘존재’의 풍요로움과 자유를 실존적인 의미의 영역에서 가능하게 해 준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일상에서 겪는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겉으로 보이는 논리적 판단을 넘어 우리 내면의 깊은 지혜가 제시하는 진정성 있는 길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는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상대방의 말 너머에 있는 미묘한 감각들을 포착하고, 갈등의 본질을 더 깊이 이해하며, 표면적인 문제 해결을 넘어선 진정한 화해와 연결을 이끌어내는 효능으로 이어진다. 또한, 전문적인 직업 환경에서 마주하는 소진과 무력감 속에서도, 자신의 몸이 주는 신호를 통해 회복의 통로를 찾고, 창의적인 영감을 얻어 업무의 질과 만족도를 높이는 유익성을 경험할 수 있다.
우리는 꿈의 상징과 메시지를 포커싱을 통해 알아갈 때, 단순히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넘어 보다 영적인 터득에로까지 진화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이는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상과의 관계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상호작용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하며, 개인의 치유를 넘어 더 평화롭고 온전한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데 기여할 것이다. 젠들린의 이 책은 우리가 잃어버렸던 내면의 나침반을 되찾고, 삶의 모든 순간을 지혜롭게 항해할 수 있도록 돕는 진정한 안내서가 될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래서 일반 심리학계에서도 잊혀져 있던 이 모델을 평화활동과 서클대화 실천가들 그리고 사회복지나 교육활동에 있는 분들의 소진과 무력감의 돌봄을 위해 이 책을 번역하게 된 것이다.
2025.7.27.
박성용 (Ph.D in Relig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