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체크인 신청을 해 두었는데, 출발 전에 자동으로 체크인이 완료되고, 모바일 탑승권을 받았다.
보조배터리 때문에 한 바탕 밖으로 나갔다가 스티커를 붙인 후 출국 검사 완료.
14a 김포 8:10 ⇒ 간사이 9:50 (GMP ⇒ KIX)
14a 간사이공항역 ⇒ 신 오사카역 ⇒ 교토역; (KIX ⇒ Kyoto, per HARUKA)좌석권
-호텔 교토 타워 호텔 아넥스 (Kyoto Tower Hotel Annex)
-교토 관광 (귀 무덤)京都耳塚,
-교토 국립박물관 평성 지신관 京都国立博物館(平成知新館), 렌게오인(산주산겐도)
간사이공항에 도착한 후 우선 eSIM을 개통했다.
QR코드로 입국한 뒤, 공항에서 간사이 와이드 패스 티켓을 JR 티켓 오피스에서 직원에게 실물 패스 표를 바꿔달라고 한 후, 하루카 좌석권과 17일 이용할 신칸센 열차 표와 좌석 예약도 부탁해서 모두 받아냈다.
하루카 열차로 신 오사카를 거쳐 교토로 갔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가끔 서행 하던 하루카 열차는 예정시간 보다 30분 더 늦게 도착했다. 열차 내에서의 전광판에는 한글로 역 이름이 나타나고 방송도 해 준다.
호텔에 도착하여 보니 이미 두 에스페란티스토 MORIKAWA Kazunoro, YAMAUCHI Toshiro 씨가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체크인 시간이 아직 안 되어서, 직원에게 짐을 맡기고(이미 미리 메일로 부탁해 두었음) 두분의 안내로 가까운 곳에 있는 귀무덤과 린게오인을 관람했다. 국립박물관은 새로 전시할 준비 관계로 들어갈 수 없었고, 지나는 길에 건물 사진만 찍었다.
교토 귀 무덤, 코무덤(京都耳塚) 朝鮮人耳塚
일본의 국가 지정 사적.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전리품을 확인하기 위해 목 대신 베어갔던 조선인 약 2만 명의 귀와 코를 묻은 무덤이다. 무덤 위에는 불교에서 말하는 만물의 구성요소인 지(地)·수(水)·화(火)·풍(風)·공(空)을 상징해서 쌓아 올린 고린토[五輪塔]라 불리는 석탑이 세워져 있고, 둘레는 돌로 둘러쳐져 있다. 높이는 약 7.2m, 석탑의 높이는 약 9m, 가로 폭은 약 49m이다.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휘하 무장들이 부피가 큰 목 대신 가져갔던 것으로 본래 이름은 코무덤[鼻塚]이었으나 하야시 라잔[林羅山]이 『도요토미 히데요시보(豊臣秀吉譜)』에서 코를 자른 것은 야만적이라며 귀 무덤이라고 쓴 이래로 귀 무덤으로 바뀌었다.
1597년 9월에 축조되었으며, 이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측근인 사이쇼 쇼타이[西笑承兌]는 코 공양 법회의 경문에서 ‘명나라와 조선의 전사자들’을 애도한다고 하면서 무덤 축조는 히데요시가 이들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긴[慈愍] 결과라고 적었다. 그러나 희생자의 대부분은 비전투원이었기 때문에 이 법회는 허구의 공양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납치되었던 유학자 강항(姜沆)은 히데요시의 자민(慈愍)에 대해 비판한 바 있다. 에도시대 조선통신사 환영연회가 조선인이총 앞의 호코지[方広寺] 대불 앞에서 거행되었는데, 유학자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州]가 진언하고 아라이 하쿠세키[新井白石]가 중개하여 조선인이총에 대나무 울타리를 쳤다고 전해진다. 1625년에는 조선통신사 부사 강홍중(姜弘重)이 조선인이총을 방문하였다.
1898년 히데요시 사망 300년 때 대규모 개수가 이루어졌는데 일본 제국주의화의 분위기 속에 히데요시를 국가의 위신을 신장한 인물로 재평가함으로써 조선인이총은 일본 국위 위신의 증표로 여겨졌다.
1915년 황폐해 있는 조선인이총 둘레를 공교롭게도 히데요시를 존경하는 우익 인사 오바타 이와지로[小畑岩次郎]에 의해서 돌울타리로 둘러치고 무덤을 정비하는 등의 수리가 이루어진 이후, 1968년 4월 12일, 「호코지(方広寺) 석루(石塁) 및 석탑(石塔)」으로서 일본의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매년 10월에 위령제가 행해지고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교토 국립박물관(京都国立博物館, Kyoto National Museum)
일본 교토부(京都府) 교토시(京都市) 히가시야마구(東山区) 차야초(茶屋町) 527에 있는 일본의 국립박물관이다. 국보 27건, 중요 문화재 181건을 소장하고 있으며 사카모토 료마의 유품과 관련 유물을 집중적으로 소장하고 있기도 하다.
1889년 5월 박물관 설립이 결정되어 1895년 10월 전시관(구관)을 준공하고, 1897년 5월에 정식 개관하였다. 구관과 정문, 매표소 두 곳은 그 자체가 메이지 시대의 걸작으로서 중요 문화재 건조물 제1707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야외 전시장에는 오귀스트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원본 중의 하나가 서 있다.
최초의 명칭은 제국 교토박물관(帝国京都博物館)이었으나, 이후 교토 제실 박물관(京都帝室博物館, 1900)을 거쳐, 1924년 히로히토 황태자가 나가코 여왕과 결혼한 것을 기념하여 명칭을 은사 교토박물관(恩賜 京都 博物館)으로 바꾸었다. 교토 국립박물관으로의 개정은 태평양 전쟁 패전 이후인 1952년 4월 이루어졌다.
본래 이 자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도다이지 대불을 능가하는 불상을 만들고 세운 거대한 호코지라는 사찰과 히데요시를 신으로 모신 도요쿠니 신사의 터였다. 그러나 에도 시대 지속적인 탄압으로 황폐해졌고 대신 그 자리에 천황의 위패를 모신 신사가 있었으나 신불 분리 이후 그 신사가 폐지되면서 박물관이 들어서게 되었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하며 입장료의 경우 일반 700엔, 대학생의 경우 350엔이다. 박물관 관람 시에는 일본어 외에도 한국어, 영어, 중국어, 프랑스어 해설기를 이용할 수 있는데 이용료는 500엔이다. 한국어를 포함한 외국어 안내판 및 해설도 전문 학예사를 통해 제공되기 때문에 번역의 질이 높다.
최초로 건립된 구관은 현재 학예 연구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2014년 이후 한번 특별전 개최 때 사용된 적이 있지만 현재는 사실상 사용되지 않는다. 유물 전시와 상설 관람은 2014년 개관한 신관(平成知新館)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신관은 3층으로 3층부터 1층으로 내려오는 동선으로 되어 있는데, 3층에는 고고 유물과 도자, 2층에는 회화, 3층에는 조각과 각종 공예, 서적들이 전시되고 있다. 전체가 주제별 분류인 편. 특별전이 있으면 신관 전체를 완전히 비우고 상설전은 하지 않는다.
2016년 10월에 특별전으로 사카모토 료마 전을 했었다. 고치현, 나가사키현 등에서 모은 료마 관련의 유물들이 모여 대성황을 이루었다. 2017년 가을에는 국보전을 열어 전국의 국보 200여 점을 모았는데, 개관 시간을 평소 10시에서 9시로 당겼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7시 반부터 줄을 서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한반도 관련 유물 : 이번 조사와 관련된 고구려 유물은 모두 4점이다. 원래 고구려 수막새 8점이라고 보고된 바 있으나 조사 결과 나머지는 낙랑군 와당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4점의 고구려 와당 중에서도 1점은 안학궁 출토품으로 여겨지는데 이것이 고구려 와당인지, 아니면 시기가 좀 더 내려오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들 와당은 1984년에 쿠마가야 나오유키(直之)가 기증한 것으로 확인되나 구체적인 출토지와 입수 경위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고구려 와당은 문양 형태로 보아 모두 평양에서 채집된 것으로 보인다. 쿠마가야가 기증한 다른 와당도 대개 평양에서 출토된 것이기에 그러한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특이한 것은 와당 배면에 콘크리트가 부착된 것이 많다는 것이다. 또한 와당 배면의 곳곳에는 톱질한 흔적이 관찰되는데 이는 부착된 콘크리트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와당을 주택의 벽면 장식 소품으로 이용하다 이를 떼어내어 보관한 것으로 여겨진다.
교통: JR그룹 교토역 중앙 출입구(북측) 앞 버스 승강장에서 교토시 교통국에서 운영하는 교토 시영 버스 206, 208번을 이용하면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철도를 이용하면 케이한 본선 시치조역을 이용하면 된다. 교토 국립박물관이 워낙 독보적이고 주변에 유명 관광지가 많아, 정작 교토의 역사를 전시한 교토문화박물관과 교토부립종합자료관은 거의 아는 사람이 없다.
박물관 주변의 관광지로는 산주산겐도(三十三間堂), 도요쿠니 신사(豊国神社), 호코지(方広寺) 등이 있다. 그 외에도 도요쿠니 신사 건너편에는 임진왜란 당시 희생자의 코를 베어 묻은 귀 무덤(耳塚)이 있다.
렌게오인(蓮華王院れんげおういん, 연화왕원), 또는 산주산겐도(三十三間堂さんじゅうさんげんどう, 삼십삼간당)
일본 교토부 교토시 히가시야마구에 위치한 일본 천태종(天台宗)의 사찰이다.
다른 사찰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긴 법당으로 유명하다. 산주산겐도(三十三間堂, 33칸의 건물)는 별명이며, 33간이고, 기둥이 33개, 문도 33개이다. 부처님의 표정이 33개라는 말의 영향이라고 한다. 정식 명칭은 렌게오인(蓮華王院)이다. 하지만 보통 산주산겐도로 부른다. 1164년에 타이라노 키요모리에 의해서 세워졌다.
길죽한 모양의 긴 건물로, 길이가 약 118m나 되어 세계에서 가장 긴 목조 건물로 인정받고 있다. 그 긴 본당 내부는 1001개의 천수관음들로 채워져 있다. 건물 옆에 있는 뜰에서는 건물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활을 쏘는 행사가 열린다고 한다. 예전에는 이 행사가 산주산겐도 내부에서 열렸다.
건물 중앙에는 거대한 불상이 모셔져 있고, 양쪽으로 각 500구의 십일면천수천안관세음(十一面千手千眼觀世音)이 자리하고 있다. 관음상들은 모두 편백나무로 만든 것이며, 신체의 부분들을 따로 만들어 나중에 조립하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가운데의 중존(中尊)과 800여구의 관음상은 가마쿠라 시대에 만들어졌고, 창건 당시인 헤이안 시대 작품은 124구만 남아 있다고 한다.
교토역 동편 청수사 기요미즈데라나 은각사 긴카쿠지를 가는 길 가까운 곳에 있다. 내부 사진 촬영을 못하게한다. 2018년 오사카 지진 당시 53개의 불상이 쓰러져 파손되었다고 한다.
하루카 열차의 의자 등받이
한글로 나타나는 열차 전광판
귀무덤
국립박물관 담장
렌게오인(蓮華王院れんげおういん, 연화왕원), 또는 산주산겐도(三十三間堂さんじゅうさんげんどう, 삼십삼간당)
산주산겐도(三十三間堂) 내부 천수관음상(구글맵에서 발췌)
카페의 가방 받침
버스 타는 곳을 확인하고 지하상가로
길안내를 해 준 교토의 두 에스페란티스토 MORIKAWA Kazunoro, YAMAUCHI Toshirō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