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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삶의 체취가 물씬 풍기는 절경
남해 바래길
겨울엔 푸르다 못해 쪽빛에 가까운 바다, 그 바다 수평선 위로 나비가 날개를 활짝 펴고 살포시 앉은 듯 좌우대칭을 이룬 섬이 있다. 남해다. 요즘 남해에는 삶과 자연을 고스란히 간직한 길, ‘바래길’이 새로운 매력을 뽐내고 있다.
에메랄드빛 바다, 남해의 길
바래길은 바다를 생활 터전으로 가족의 생계를 위해 소쿠리와 호미를 들고 갯벌이나 갯바위로 해산물을 채취하러 다니던 길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인 남해는 섬 전체 둘레를 연결하는 ‘남해 바래길’ 300㎞를 2015년까지 조성할 계획이다.
현재는 55㎞에 이르는 네 개 구간, 남면 다랭이지겟길, 말발굽길, 고사리밭길, 동대만 진지리길이 문화 생태 탐방로로 지정돼
일반에 공개된 상태다. 바래길 사람들은 이 구간의 잊힌 길을 찾아 안내판을 설치하고 스토리텔링을 준비하는 등 정비 작업을
벌였다.
제1코스 다랭이지겟길은 평산항에서 시작해 사촌해수욕장을 거쳐 명승지 제15호인 가천 다랭이마을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남해의 수려한 자연환경과 더불어 척박한 생활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산비탈을 깎아 만든 들과 산, 논과 밭을 감상할 수 있다. 제2코스
말발굽길은 20여 개의 원시 어업 죽방렴이 장관을 연출한다. 제3코스 고사리밭길은 고사리로 유명한 창선도의 적량성이 있는
적량해비치마을에서 시작해 창선 동대만휴게소까지 이어진다. 마지막 4코스 동대만 진지리길은 창선 동대만휴게소에서 시작되어
삼천포대교까지 이어지는 10㎞의 길로 창선 동대만에 생태계의 지표인 바다풀 진지리(잘피)가 많아 ‘진지리길’이 됐다. 이처럼
바래길은 주상절리 해안 절벽과 사철 푸르른 상록수 숲을 걸으며 쪽빛 바다를 감상할 있는 길이다.
풍부한 수산물이 가득한 곳, 남해…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남해는 수산자원이 풍부하여 연근해 어업은 물론 수산 양식의 최적지로 유명하다. 302㎞의 해안선과 넓은 연안의 양식장은 우럭, 광어, 전복, 우렁쉥이, 피조개, 굴, 미역, 바지락, 보리새우 등의 양식 적지이며 연안에서는 감성돔, 삼치,
멸치, 도다리 등의 일반 어종이 잡히고 있다.
●찾아가는 길 서울을 기준으로 경부고속도로, 대전·통영고속도로, 남해고속도로를 차례로 탄다. 남해대교나 삼천포대교로 들어가 상주해수욕장 방면으로 가면 된다.
●먹을거리 멸치회, 멸치쌈밥, 갈치회, 물메기탕, 털게, 흑마늘
●문의 055-862-1588 (평산항, 경남 남해군 남면 평산리, 평산1리)
팔만대장경의 숨결을 느끼자
해인사 천년역사길
해인사 천년역사길은 예로부터 전란을 피해 은거할 최적의 장소로 꼽히던 가야산 자락으로 난 길이다. 지금이야 팔다리, 허리,
다 잘리고 몸통만 덩그러니 남은 산자락에 불과하지만 깊은 계곡이 십승지지의 옛 자취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천년 고찰 해인사에 구국의 심정으로 민심을 모아 만든 팔만대장경이 있다.
민족의 염원을 담은 팔만대장경
천년 고찰 해인사 입구에 들어서면 저만치 일주문이 보인다. 성철종정 사리탑도 있고, 사명대사와 김영환 장군 등 해인사와 관련된 인물들의 공적비도 여기저기 있다. 해인사는 한국 화엄종의 근본 도량이며 양산 통도사, 순천 송광사와 더불어 삼보사찰 중의
하나다.
해인(海印)이라는 이름은 화염경의 ‘해인삼매’에서 유래한 것으로, 득도한 이후의 청정한 마음을 일컫는다고 한다.
일주문에서 팔만대장경이 있는 곳까지는 108계단이다. 모든 번뇌를 벗어버리고 팔만대장경을 보라는 의미다. 팔만대장경은 237년 (고종 24)부터 16년간에 걸쳐 고려에 침입한 몽고군의 격퇴를 염원하며 만들어졌다고 한다.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32호로 지정 된 팔만대장경은 8만여 판에 8만 4,000번뇌에 해당하는 법문이 실려 있다.
경판 자체가 부패하거나 벌레 먹는 것을 방지하고 나무 재질을 더욱 견고하게 하기 위해 원목을 바닷물에 삼 년 동안 담가 두었다가 꺼내어 판자로 짠 다음, 다시 그것을 소금물에 삶아내서는 그늘에 말린 뒤 깨끗하게 대패질하여 만들었다는 팔만대장경. 그래서인지 75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경판이 썩거나 좀먹거나 뒤틀리는 일 없이 온전히 보전되어 내려오고 있다. 실로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녀들과 함께 팔만대장경의 역사적 의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며 천년의 세월이 흐르는 해인사 천년역사길을 걸어본다 면 상당히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팔만대장경 축제…
2001년부터 매년 4월이 되면 해인사와 가야산을 중심으로 팔만대장경 축제가 열린다. 이는 팔만대장경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 로 지정된 일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다.
축제 기간에는 외국인을 위한 템플스테이와 전통 사찰음식 체험, 팔만대장경 인경·판각·필사 체험, 도자기 체험 등과 가야산 등반대 회, 축제 사진 공모전, 유등 달기, 어린이 사생·백일장, 중고생 백일장, 댄스 경연대회, 정대불사 등 다양한 행사가 진행되며 영화
상영, 각설이 공연처럼 온 가족이 함께 다채로운 볼거리를 즐길 수 있다. 때문에 신자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불교문화에 쉽게
접할 수 있다.
●찾아가는 길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한다면 대구시로 들어가기 전에 고속도로를 벗어나 ‘해인사’ 표시가 돼 있는 88고속도로를
탄다. 30분 정도 운행하면 해인사 IC가 나온다.
●먹을거리 산채정식, 송이버섯, 황토한우, 토종 흙돼지
●문의 055-934-3000 (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10)
산에서 보는 신라 천 년 석불의 역사
경주 남산길
신라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고도 경주 남산엔 신라의 흔적이 곳곳에 서려 있다. 남산은 서울의 북한산과 같이 경주의 진산이다.
북의 금오봉과 남의 고위봉을 중심으로 동서 너비 4㎞, 남북 길이 10㎞의 타원형으로, 한 마리의 거북이 서라벌 깊숙이 들어와
엎드린 형상이다.
신라의 전설이 깃들어 있는 남산
신라의 흥망성쇠와 함께한 남산은 온갖 전설이 남아 있다. 신라시조 박혁거세가 탄생한 나정과 초기 왕궁, 나을신궁, 도성을 지켜온 남산신성을 비롯한 네 곳의 산성과 망국의 한이 서린 포석정지가 있어, 전설과 함께 지나간 역사를 전하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북쪽의 금오산과 남쪽의 고위산의 두 봉우리 사이를 잇는 산들과 계곡 전체를 통칭해 남산이라고 하는데, 불교유적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정상의 높이는 466m이고, 남북의 길이는 약 8㎞, 동서의 너비는 약 4㎞이다. 남산의 지세는 크게 동남산과
서남산으로 나뉘는데 동남산 쪽은 가파르고 짧은 반면에 서남산 쪽은 경사가 완만하고 긴 편이다.
남산은 신라 사영지 가운데 한 곳으로 남산에 얽힌 전설과 영험의 사례가 풍부하고 다양하다. 박혁거세가 태어난 곳이 남산 기슭의 나정이며, 불교가 공인된 528년(법흥왕 15년) 이후 남산은 부처님이 상주하는 신령스러운 산으로 존숭되었다.
불교를 특히 숭상한 신라는 남산에 그 자취를 고스란히 남겼다. 따라서 남산에는 많은 불상과 탑들이 남아 있다. 그 대부분은
석탑과 석불로 특히 마애불이 많다.
남산에 불상이 조성되기 시작한 것은 서기 7세기 초로 추정하고 있다. 이때 만들어진 동남산 부처골 감실여래좌상은 투박한 시골
할머니가 돌로 만든 집 속에서 편안히 쉬고 있는 듯한 모습의 한국 최고 감실불이다. 경주 남산의 솔숲 향기를 맡으며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의 전성기까지의 신라 불교미술을 만나보자.
경주 남산은…
경주 남산은 2000년 12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우리의 귀중한 보물이다. 남산에는 왕릉 13기, 산성지 4개소, 사지 147개 소, 불상 118체, 탑 96기, 석등 22기, 연화대 19점 등 무려 672점의 문화유적이 산재해 있어 역사적 가치가 깊다.
●찾아가는 길 승용차로 경주고속도로 경주 IC에서 나오면 바로 남산이 보인다. 경주 시내 출발 기준으로 35번 국도를 따라 1.3㎞ 거리의 왼쪽에 포석정이 있으며, 2.2㎞지점의 오른쪽에 서남산 주차장이 있다.
●먹을거리 떡갈비, 경주빵
●문의 054-779-6393(경북 경주시 탑동)
최초 인공림 천 년 숲
함양상림 최치원산책로
신라 말 고운 최치원이 함양 태수로 있을 때 조성한 천연기념물 제154호 함양상림과 인근 필봉산을 잇는 ‘최치원산책로’가 천 년의
세월을 넘어 숲과 사색의 길로 거듭났다.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림인 상림은 고운이 약 1,100년 전 천령 태수로 있으면서 홍수 방지를 위해 상림에서 하림까지 둑을 쌓아 물길 을 돌리고, 그 둑을 보강하기 위해 나무를 심어 조성한 숲이다. 지금은 하림은 없어지고 상림만 남아 최치원의 선정을 전하고 있다.
사람의 힘으로 조성한 가장 오래된 숲
‘ 최치원산책로’는 1961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상림과 1,000여 년 전의 신라 최고의 문장가이자, 우리나라 한문학의 시조이며, 동방 18현 중의 한 사람인 최치원을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2010년 5월 함양군에서 조성했다. 함양상림을 구성하고 있는 식물들로는
갈참나무·졸참나무 등 참나무류와 개서어나무류가 주를 이루며, 왕머루와 칡이 얽혀 마치 계곡의 자연 식생을 연상시케 한다.
1993년에 116종의 식물이 조사되었으며, 현재 2만여 그루의 나무가 자라고 있다. 함양상림은 사람의 힘으로 조성한 숲으로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숲이라는 역사적 가치가 있으며,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알 수 있는 문화적 자료로서의 가치도 매우 커 천연기 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필봉산 자락으로 들어서면 참나무가 군락을 이룬 호젓한 산책로가 펼쳐진다. 산책하는 동네 주민들이 가끔 눈에 띄기도 한다.
그 상 큼한 공기 사이로 오색딱따구리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이 길에는 세종의 열두 번째 아들인 한남군의 묘가 자리잡고
있기도 하다.
상림 숲 최상단부에 도착하면 조선 성종의 총애를 받던 문신이자 문장가였던 뇌계 유호인의 비석이 있다. 그의 호를 따라 상림 옆으 로 흐르는 강을 원래는 뇌계천이라 했다. 지금은 위천이라고 부른다. 상림 숲 속을 가로지르는 냇가의 정자가 바로 사운정이다.
‘천년의 숲’을 조성한 고운 최치원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고종 43년(1906)에 후손들이 ‘고운 최치원을 추모하는 정자’라는 뜻으로
건립했다.
최치원은…
9세기 통일신라 말기의 학자다. 중국 당나라에서 ‘토황소격문’으로 문장가로 이름을 떨쳤으며, 신라로 돌아온 뒤에는 진성여왕에게 시무책을 올려 정치 개혁을 추진했다. 유교ㆍ불교ㆍ도교에 모두 이해가 깊었고, 유ㆍ불ㆍ선 통합 사상을 제시했다. 수많은 시문을 남겨 한문학의 발달에도 기여했다.
●찾아가는 길 승용차로는 대전-통영고속도로에서 함양 IC로 빠져나와 함양읍내에서 상림으로 찾으면 된다.
●먹을거리 오곡밥
●문의 055-960-5756(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교산리 1047-1)
태조 왕건이 토끼 뒤를 따라가다 만든 길
문경 토끼비리
문경시에서는 명승 제31호인 토끼비리와 주변 명소를 길로 만들었다. 이 길을 따르면 고모산성과 석현성, 토끼비리 밑으로 흐르는
영강, 진남휴게소, 신현리 고분군 등을 두루 돌아볼 수 있다. 모두 유구한 역사가 서린 곳이다.
재미난 유래가 얽힌 토끼비리
문경의 토끼비리는 길이 약 3㎞ 정도의 천도(遷道: 하천변의 절벽에 건설한 길)다. 문경 가은에서 내려오는 영강(穎江)이
문경새재에서 내려오는 조령천과 합류되는 곳에서 산간 협곡을 S자 모양으로 돌아 흐르면서 벼랑에 생긴 길이다. 고려대 최영준
명예교수에 의해 1980년대에 재발견되기까지 역사의 뒤안길에 내버려져 있던 이 길은 영남대로 중에 가장 험한 길로 유명했다.
토끼비리는 한국의 모든 ‘옛길 역사’가 녹아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가치가 크다. 전체 길이는 길지 않지만 역사, 축대공법, 사연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국가지정 문화재 명승 제31호로 지정될 정도로 가치 높은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문경 마성면의
석현성(石峴城) 진남문(鎭南門) 아래의 성벽을 따라 가다보면 이 길을 만날 수 있는데, 겨우 한 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좁고
험하다.
토끼비리에는 다음과 같은 유래가 깃들어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이 견훤과 전투를 벌이며 남하하다 이곳에 이르렀다. 절벽과 낭떠러 지에 길이 막혀 여기저기를 헤매고 있었던 그때 마침 토끼 한 마리가 벼랑을 따라 달아나는 걸 보고 쫓아가보니 길을 낼 만한 곳이 보였다. 토끼가 지나간 길을 따라 벼랑을 잘라 길을 냈다’. 이렇듯 토끼가 지나간 길, 즉 토끼길이 바로 토끼비리다. 절벽과도 같은
산허리를 따라 굽이굽이 6~7리나 이어져 있다.
태조 왕건은…
고려 제1대 왕(918∼943)이다. 궁예의 휘하에서 견훤의 군사를 격파했고 정벌한 지방의 구휼에도 힘써 백성의 신망을 얻었다.
고려를 세운 후, 수도를 송악으로 옮기고 불교를 호국신앙으로 삼았으며 신라와 후백제를 합병하여 후삼국을 통일했다.
●찾아가는 길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탔다면 문경새재 IC에서 나와 점촌 방향 3번국도로 빠진다. 10분 남짓 달리다 보면 왼쪽으로
진남교반 시작 지점인 진남휴게소가 나온다. 이곳에 차를 세워두고 석현성 토끼비리 등을 둘러보면 된다.
●먹을거리 주변에 식당이 없다. 유일한 식당은 출발지인 진남휴게소다.
●문의 054-552-3210 (경북 문경시 마성면 신현리 산41)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길
안동 퇴계오솔길
조선 성리학의 거두 퇴계가 길에서 다시 태어났다. 퇴계가 아름다운 풍경을 말로 표현할 길 없어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길’이라고
한 낙동강 상류에서 청량산으로 가던 길을 안동시에서 ‘퇴계오솔길’로 단장해 새 코스로 내놓았다.
전망대나 농암종택에서 당일 왕복 가능
퇴계 오솔길의 출발 지점은 도산면 단천교다. 단천교 바로 옆에 ‘녀던길(옛길)’이란 이정표가 있는데, ‘퇴계 선생이 즐겨 다니던
오솔길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퇴계 선생의 시적 감흥 현장을 거닐며 체험할 수 있는 곳’이라고 설명해 놓았다. 맞은편에는
‘녀던길’이라 적힌 비석도 세워져 있다. 강길을 따라 청량산으로 올라간다. 이 길은 순간적으로 감흥은 일어나지만 그리 길게 가지는 않는다. 약 2㎞를 비슷한 길로 계속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2㎞쯤 지나 퇴계의 첫 시비가 나오고 전망대에 이르는 순간 감탄이
절로 나온다.
청량산 깊은 골이 눈앞에 펼쳐지고 그 사이로 곡예를 그리며 빠져나오는 낙동강 줄기는 정말 한 폭의 진경산수화를 펼쳐놓은
듯했다. ‘겸재 정선이 어떻게 이런 멋진 곳에 와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내려선 강둑길은 갈대로 뒤덮였고, 덩그러니 서 있는 커다란 버드나무 한 그루가 운치를 더했다. 낙동강 줄기는 청량산의 깊은 계곡 에서 나오는 물과 합류해 제법 강의 형태를 보이기 시작한다. 길은 오솔길로 변했다. 풀들이 길을 덮은 호젓한 길이다. 퇴계오솔길은 시야가 확 트인 강변을 다시 만나자 외줄처럼 일직선이 된다. 경암을 지나니 곧이어 한속담이다. S자로 휘도는 낙동강이 흐름을
멈춘 듯 담을 이룬 곳이다.
이어 퇴계 오솔길의 마지막 지점인 농암종택. 농암은 연산군 때 문과에 급제해 호조참판·형조참판 등을 지내고 종1품 숭정대부에
이를 정도로 화려한 벼슬을 했지만 이런 이력보다는 무위자연의 삶을 즐기며 강호문학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이른바 한국 ‘강호문학의 창도자’가 바로 농암 이현보다. 그는 퇴계보다 30여 년 앞선 인물로 퇴계가 아버지처럼 모시며 따랐던
것으로 전한다.
퇴계오솔길은…
안동시 도산면 단천리 퇴계오솔길 전망대에서 고산정 앞 외병대까지 약 6㎞의 구간을 말한다. 퇴계 이황은 경북 안동에 도산서원이 세워지기 전 청량산에 ‘청량정사’를 짓고 후학들을 가르쳤다. 그런 인연으로 도산서원에서 청량산으로 가는 낙동강 길이 ‘퇴계오솔 길’로 불린다.
●찾아가는 길 안동시외버스터미널에서 3번이나 67번 시내버스를 타고 농암종택과 도산면 단천교에서 내린다.
●먹을거리 안동찜닭, 안동국시
●문의 054-856-3013(경북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