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차마 오늘 아침 꿈 얘기는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한 채, 우선 새어머니께 자초지종을 좀 더 자세히 여쭈어보았더니 다음과 같은 사연이었다.
친정아버지 생신이 대략 양력으로 5월 무렵이니,
장어가 시장에 나오기 시작하는 계절이었다.
모처럼 생신을 맞아 새어머니는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것을 해드리고 싶어,
장어를 사러 시장에 가셨다고 한다.
그런데 그날따라 장어 구경하기가 힘이 들었는데, 마침 시장 한쪽 구석에서 어느 할머니가 커다란 장어 한 마리를 내놓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일반 장어보다 너무 커서 속으로 조금 꺼림칙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다른 장어가 없었기 때문에 그것을 사올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새어머니가 살아있는 장어를 사오시고, 아버지는 그 시각에 맞추어서 마당에 연탄불을 내어놓고는 큰 양은솥에 물을 끓이며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다. 꿈틀거리는 장어를 사오자마자 아버지는 양은솥 뚜껑을 열어 펄펄 끓는 물속에 처넣고는 얼른 뚜껑을 덮으셨다.
그리고는 뚜껑이 들리지 않도록 솥뚜껑을 꾹 누르고 계셨고,
이윽고 얼마간 지나자 들썩이던 뚜껑이 조용해졌다.
늘 해오던 방식대로 오랜 시간을 푸욱 고아서 베보자기에 장어를 걸러 뼈만 추슬러낸 뒤에, 곰국처럼 뽀얗게 우러난 국물 속에 인삼을 넣고 또 다시 푸욱 다려서 음료수처럼 수시로 마시는 것을 좋아하셨던 것이다.
내 생각컨대 아버지는 누군가의 권유로 몇 차례 만들어 마시고 난 뒤 혈색이 눈에 띄게 좋아져서, 또래의 다른 노인들보다 훨씬 젊어 보인다는 평판을 더 좋아하셨던 것 같았다.
그런데 하필 생일날 삼천포까지 내려가 기분 좋게 생일상을 받을 준비로 먼저 장어육수를 따라 마시자마자, 갑작스럽게 열이 치솟아 얼굴이 벌겋고 머리까지 여기저기 쑤셔대니 그만 한 시도 더 지체 못한 채 곧바로 되돌아오셨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세히 전후 사정을 듣고 나니까 그제서야 아침에 꾸었던 꿈의 의미가 어느 정도 짐작이 되었다.
펄펄 끓는 이마의 종기 때문에 요를 깔고 누워 진땀만 흘리시는 아버지 곁에는 평소 즐겨 사경하시던 『금강경』책과 함께 지필묵들이 어지러이 놓여 있었다.
확실한 건 아니지만 어머니 설명과 꿈을 통해서 갑작스럽게 병이 난 이유를 알아차린 나는 모른 결에 핀잔 섞인 말을 아프신 분께 한 마디 하게 되었다.
“아니, 부처님 경전을 사경하시는 분이 웬 살생을 그리도 좋아하신 대유?”
나도 모르게 불쑥 내뱉어진 말에 눈을 감고 계시던 아버지 이마가 움찔하는 것이 눈에 비쳤다. 아무리 옳은 소리라도 누워있는 환자에게 부담을 주는가 싶어 나는 얼른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나 역시도 별 뾰족한 수가 없었기 때문에, 잠시 동안 병문안만 하고는 바쁘다는 핑계로 저녁때쯤에 다시 집으로 내려왔다.
집에 돌아와 나는 나대로 직장을 다니며 아이들 학비를 조달해야 했기에, 이런 저런 생활이 바빠서 형편이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일주일이 훨씬 지나서야 간신히 틈을 내어 한 번 더 찾아뵈었다.
그런데 두 번째 병문안 갔을 때는 아버지께서 아랫목을 비워두시고 윗목에 누워계셨다. 그동안 음식도 전혀 못 드시고 앓는 바람에, 며칠 새 볼이 훌쩍해지신 아버지 얼굴과 손을 잡으며 내가 궁금해 여쭈어 보았다.
“요즘 아침저녁으론 그래도 쌀쌀하실 텐데, 왜 윗목에 누우셨어요?”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아이고, 말도 마라. 저 아랫목에 누워있는데 글쎄, 시커먼 구렁이 한 마리가 바로 내 요 밑에 서려있지 않겠냐.”
아버지는 당신이 며칠 전에 꾸셨던 꿈 이야기를 하시며, 지금도 그 광경이 생생하시다는 듯이 몸서리를 치셨다. 아버지 말씀을 듣고 나도 짐작 가는 바가 있어서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아버지, 제 생각엔 장어를 산 채로 끓여 드셔서 문제가 된 거 같은데요.
혹시 아는 스님께 한 번 여쭤보면 어떻겠어요?”
아버지도 내 말을 완전히 부인할 수 없으셨던지, 그럼 며칠 후면 태고사의 기도하시는 스님께서 방문하신다 하니까 그때 여쭤보겠다고 받아들이셨다.
태고사에 다니는 신심 깊은 동생 덕에 태고사 스님께서 볼일이 있어 서울에 오실 때면, 약수를 떠가지고 곧잘 아버지 댁에 들러주시곤 하셨던 것이다.
그렇게 병문안을 마치고 다시 집으로 내려온 지 며칠인가 지나서 나는 아버지께서 스님께 상의를 드렸는지, 상의를 했으면 스님은 뭐라고 대답하셨는지가 궁금했다. 그래서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다.
“스님 말씀은 아무래도 장어 49재를 지내줘야겠다는구나.”
“장어 49재요?”
나는 한 동안 입을 못 다문 채 아버지 말씀을 듣고만 있었다. 전화 수화기를 내려 놓으며 나는 생각했다.
‘정말 스님 말씀대로 그렇게 해서라도 아버지가 쾌차하실 수만 있다면,
좀 괴상하고 남들이 희한하게 생각한들 그게 무어 그리 대수이겠는가.’
그렇게 해서 형제들이 십시일반 돈을 마련해 태고사에서 장어 49재를 지내게 되었다. 대둔산 태고사 높은 벼랑 위 법당에서 기도스님께서 장어 영가 위패를 모셔놓고 극락왕생을 축원해주셨다.
재를 지내는 동안 함께 같던 이웃보살님은
스님께서 ‘망亡 장어 영가시여’ 하고 염불하실 때마다,
속으로 웃음이 터져 나와서 혼났다고 하였다.
하여간 그날 장어 49재를 잘 치르고 와서인지 몰라도,
붉게 성난 아버지 이마의 종기가 눈에 띄게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사나흘 지나서는 완전히 자리에서 털고 일어나 식사도 예전처럼 하시게 되었다. 그렇지만 상처 났던 부위가 이제 완전히 나은 것이냐고 전화로 안부를 물으면, 아버지는 상처부위는 가라앉았지만 그래도 만지면 아직도 속이 뜨끔뜨끔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고 몇 해인가 지났다.
그리고 나서 언제인가 친정 부모님을 다시 찾아뵈었다.
아버지는 그 뒤로 살아있는 장어를 사다 끓여드시는 일은 아예 없었고,
또 어쩔 수 없이 생선을 구워드셔야 할 때에도 반드시 시장에서 죽은 고기를 사와서 요리하도록 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뒤늦게 왜 부처님께서 살아있는 고기를 먹지 못하도록 하셨는지를 아시겠다며, 그날 새벽녘에 꾼 꿈에 대해서도 조근 조근 이야기 해주셨다.
“웬 처음보는 사람들이 우리집 문 앞에 떼로 몰려와 있더라.
그래서 내가 나가보니, 나더러 ‘<약값 외상>을 내라’고 야단인 게야.
하지만 나는 평소에도 외상을 잘하지 않거든.
‘<약값 외상>이라니 무슨 말이냐? 나는 <약값 외상> 따윈 없다.’ 라고 말했지.
그랬더니 그 수많은 사람들이 내게 한꺼번에 소리치지 않겠니.
‘우리를 보약으로 먹었으니, 그 약값을 지불해야 될 거 아니요’ 라고 말이다.”
아버지는 아직도 그 꿈이 너무도 생생하여 부담스럽다는 듯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고 계셨다. 그리고는 나지막하지만 단호함이 묻어나오는 어투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제부터는 누구든지 살아있는 생물을 나를 위해 잡아서 요리하지 마라.”
그 뒤로 아버지는 정말 살아있는 생물을 음식으로 만들어 잡숩는 일은 아예 없으셨으며, 부처님께서 산 목숨을 죽이지 못하게 하셨던 의미를 누구보다 몸으로 직접 절절하게 체득하셨던 것 같았다.
그래서 평소에도 원래 붓글씨를 잘쓰셨지만, <약값외상>을 갚기 위해서인지 보약으로 잡수셨던 무수한 생명들의 왕생극락을 기원하며 열심히 사경수행에 몰두하셨다.
그 결과 『반야심경』족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쓰셨고, 『금강경』도 정성껏 쓰셔서 병풍으로 만들어 완성하신 것만 해도 무려 10질이나 되었다.
사찰과 주변의 신심 깊은 분들에게 보시하여 현재 내가 보관하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지만, 참회하는 마음으로 한 자 한 자 써내려간 아버지의 마음만은 언제 어디에서든 청정한 빛을 발하고 있을 것이다.
첫댓글 이 이야기는 1970년대에 있었던 실화입니다. 죽은 고기는 그나마 먹어도 되지만,(삼정육 혹은 오정육에 의해)
살아있는 생물을 직접 죽이거나 남에게 죽이라고 시켜서 음식으로 만들어 먹지 말라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어요.
몸에 좋다고 싱싱하게 살아있는 요리를 회떠서 먹는 걸 좋아하는 이들이 많잖아요...
가까운 분의 실제 일을 글로 옮겼는데, 표현이 서툴러서 별로 감동이 없는가 봅니다.... 제 능력 부족이죠~
생명경시 시대에 꼭 필요한 교훈이 담긴 이야기입니다.
많은 분들이 읽어 보시고 감응 하실겁니다.
저도 친구들에게 이야기로 전할겁니다. 그리고 산 생명에 대한 소중함도 다시 느껴봅니다.
예 실화인것으로 읽었습니다
그렇지요. 그럴수 있겠지요.
살아있는 생명에 귀함을 느낍니다.
읽은 소감은요~~~~~
아하!.평소 회를 좋아했었는데 .정말 끔찍하단 생각이듭니다.
그리고 살아있있는 생명의존귀함,다시한번 반성합니다. 나무이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햐~~~ 1000회 넘는 크릭을 하셨으니
대박입니다. _()_나무아미타불.....
어머나~ 그렇네요♥
정말 덕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