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돌이 인연
물돌이는 강물의 기억을 품고 있다. 낙동강은 태백의 함백산에서 발원하여 남해로 향한다. 긴 여정을 지레 겁먹었는지 안동에서 느릿하다. 하회(河回)하며 흔적을 만든다. 오느라 지쳤음인지 쉬어가고 싶음인지 예천에서 또 한 번 굽이도는 물길을 만든다. 낙동강은 느릿한 걸음으로 지형을 따라 뱀처럼 구불구불 사행(蛇行)한다. 방해물이 있으면 에둘러 흐른다. 가고 싶은 곳과 보고 싶은 것을 향해서 급한 성미를 부리지 않는다. 만나는 것들을 쉽사리 타 넘지 않고 무례하게 건너뛰지도 않는다. 만곡을 그리며 그저 흘러간다.
물돌이는 내게 각별하다. 강은 땅을 감싸고 오랜 시간 흘러 물돌이를 만들었고, 그와의 인연은 끊어질 듯 간간이 이어져 기억을 감싸 안고 굽이 돈다. 도서관 앞 계단을 나는 오르고 그는 내려오며 첫 만남은 스쳐 갔다. 그 후로 몇 차례 기회가 있었지만, 매번 아쉬움을 마음에 남긴 채 묻었다. 둘이서 처음 가 본 곳은 도산서원이었다. 서원을 오르는 길가의 단풍색이 이쁘다며 가자고 했다. 기대를 잔뜩 하고 갔는데 단풍잎은 끝이 말려들고 빨간색은 말라가고 있었다. 길옆에는 떨어진 잎들이 이리저리 나뒹굴다 바람에 몰려 수북이 쌓여 있었다. 아쉬운 마음은 바스락거리며 부서지고 발걸음은 굼떴다. ‘꿩 대신 닭’을 생각하며 부용대에 갔다. 절벽에서 내려다보니 초가집을 감싸 안은 옥색 강물이 물굽이를 만들었다. 시름을 다 싣고 흐르는 듯 민가들은 평온해 보인다. 풀리지 않는 문제들로 명치끝이 얹힌 듯 답답하더라도 그곳에 서면 속이 단번에 뚫릴 것 같았다. 모래 사이를 흐르는 강은 물비늘을 반짝이며 비취색 비단처럼 부드럽게 일렁거린다. 장관(壯觀)이다. 때를 놓친 단풍으로 남아 있던 미련은 삽시에 떨쳐졌다. 그날은 ‘닭’이 오히려 우리에게 많은 것을 보여 주었다.
이듬해 예천 회룡포에 갔다. 옛사람들이 이르기를 회룡포는 용이 날아오르면서 크게 한 바퀴 돌아간 자리에 강물이 흘러 만들어졌다 한다.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 물길이 만들었다. 예천에서 물돌이는 또 한 번 작품이 되었다. 회룡포 모래사장에 놓인 구멍 뚫린 다리를 깔깔대며 건넜다. 웃음이 큰 남자와 쉼 없이 조잘대는 여자는 넓은 모래밭처럼 함께 할 시간이 많을 줄 알았다. 사람의 일이란 중요한 순간에 꼬이고 엉키는지, 사람의 생각대로 원하는 방향으로 술술 흘러가지는 않는가 보다. 구멍 뚫린 ‘뿅뿅 다리’처럼 함께 할 우리의 시간은 쑥쑥 빠져나가고 있었다. 지줄대는 웃음을 그곳에 묻어둔 채, 그는 자기 물길을 따라 올라가고, 나는 나의 물길을 따라 내려왔다. 여울진 감정들은 가장 슬픈 눈물로 물었고 가장 무거운 침묵으로 답했다. 억지 인연으로 묶어 둘 수가 없어 가슴 가득 켜켜이 재만 쌓아 두고 만남은 흐지부지 끝났다.
삶은 고갯길을 넘는 여정이다. 고갯마루의 시간은 우리의 젊음을 야금야금 갉아먹었다. 바야흐로 지천명 언저리에 섰다. 봄날, 언니와 예천으로 나들이 갔다. 뜻밖에도 그곳에서 출장 나온 그를 만났다. 오랜 시간이 둘 사이에 흐르고 있었지만, 장소가 주는 특별함 때문인지 나는 얼굴 소근육들이 긴장되어 멋쩍게 웃었다. 그도 어색한 티를 드러내지 않으려다 뻘쭘한지 겸연쩍게 웃었다. 그 시절의 모습들이 오롯이 남아 있을 것 같아 회룡포는 가지 않았다. 잔잔한 일상에 꽃바람이 일 것 같아 회룡포를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의 마음은 어떠할까? 혼자 점(占)치고 있는데, 그가 인접해 있는 삼강 나루터로 가자고 했다. 세 강이 모여 이름까지 삼 강이라더니 그곳은 회룡포의 추억이 떠내려온 듯 같은 곳을 보는 착각이 일었다. 수량이 줄어서인지 강물은 예전처럼 맑지 못하다며 그는 아쉬워했다. 강가의 모래가 여전히 눈부시리라 생각하고 그곳을 보여 주고 싶었나 보다. 깨끗한 모래가 으뜸이었다는데 고운 모래톱이 있었던 곳은 수풀들이 무지막지하게 웃자라고 있었다. 인위적으로 막아버린 물길과 교량 공사들로 자연은 교란당하고, 반원 모양의 아름다운 모래톱을 유지하던 백사장은 살점이 움푹 팬 모습이다. 강변도 세월 따라 우리만큼 변했나 보다. 하긴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그저 생겼을까. 가만두어도 변할 텐데 ‘손’을 대는데 무슨 수로 버틸 수 있을까.
강 나루터 또한 삼강주막 옆에 들어선 어색한 현대식 건물들로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1900년 무렵의 건축사적 희소가치와 시대상을 보여 주는 자료라며 도(道)의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지만, 주모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방치되었다. 그 후 복원을 너무 현대적 시설로 다듬었는지 시대를 건너뛴 듯 조화롭지 못했다. 마치 ‘개 발에 편자’처럼 보여 나도 모르게 구시렁거렸다. 아쉬운 한숨을 내쉬며 주모 할머니의 작달막한 주막을 둘러봤다. 낮은 천장과 좁은 방이 그때 우리처럼 욕심이 없다. 부엌의 벽마다 빗금으로 그어진 외상값은 홀로 남아 받지도 못할 이자만 달고 있었다. 뱃사람들의 고달픈 일상과 보부상들의 서러운 속마음을 풀어주던 주막을 어슴푸레 그려보았다. 할머니의 일상이 멈춘 곳에 우리의 아련한 기억들도 붙박여 있는 듯했다. 지나간 장면들이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하자 건너뛴 시간은 지도위에서 축(縮尺)적한 것처럼 줄어들고 기억은 일순간 몰려와 현기증이 났다. 그도 나만큼 지난 시간이 생각날까? 물을 수도 없는 질문이 자꾸만 머릿속에 일렁거렸다. 머쓱해진다. 티가 날듯하여 고개 돌려 어정쩡한 자세로 주막을 서둘러 나왔다.
지금의 우리는 웃자라고 있다. 살림을 꾸려오느라 계산은 밝아졌고, 살아내느라 손익을 분간하는데 가슴보다 머리가 빠르다. 아린 기분이 구석진 마음 저변에서 인다. 우리의 가슴은 저곳에 머물러 있고, 우리의 발은 현실을 딛고 여기에 서 있다. 씁쓸한 내 기분은 아랑곳없이 둥글둥글한 들돌은 봄볕을 태평스럽게 쬐고 있었다. 느긋한 일광욕에 졸린 듯 나른하게 우리를 쳐다본다. 들돌은 일꾼들의 체력을 검정하는 용도였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저 돌을 들고 일감을 얻었을까? 그때 우리는 들돌을 들 수 있을 만큼 젊고 튼실했다. 이제는 저 돌을 감히 테스트해 볼 엄두가 나지 않는 나이에 서 있다. 다음 언제쯤은 들돌 위에 꼿꼿이 허리 펴고 앉기도 힘들 즈음일 것 같다. 평생을 함께할 자리에서 빗겨 간 사람이지만 강처럼 쉼 없이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드문드문 만나지는 건 또 다른 인연의 갈래인가. 강이 쉼 없이 흐르며 물굽이를 만들듯, 우리도 시간을 따라 쫓았더니 세월이 굽이진 곳에서 만나지기도 한다. 젊은 날이 머물러 있는 곳은 언제 가더라도 아련한 추억이 재현되어 애잔하다. 그곳에 스며있는 시간은 늙지도 않고 기억을 소생시킨다.
주막 옆 회화나무가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며 돌아갈 시간을 일깨운다. 500년 노거수는 품격을 지닌 채 나이 들고 다듬어주지 않아도 스스로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하는 지혜가 있다. 노스승은 그저 바람결에 잎을 맡기고 시간과 환경에 순응하며 오늘을 살고 있다. 오랜 시간 보아온 삶이 얼마이겠는가. 답답한 물음의 답은 잘 알듯도 한데 우리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기만 한다. 이제 나란히 모았던 발을 뗀다. 그는 자기의 물길을 따라 올라가야 하고, 나는 나의 물길을 따라 걸음을 옮겨야 한다. 언제가 다시 이곳에 온다면 들돌도 할머니의 주막도 더 늙어 있을 것이다. 그때는 지금의 우리가 또 한없이 젊어 보이겠구나 싶다. 각자의 터를 지키느라 옛 기억은 깡그리 잊은 듯 살겠지만, 현실의 분주함 속에서 때때로 생각이 날 것 같다. 우리는 인생이 엮어 가는 시간 속에 두어 번 만남이 있었다. 강은 그 만남을 주선해 줬다. 술 석 잔을 받는 중매쟁이가 되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우리의 옛 기억을 이어 준다.
낙동강은 긴 여정이다. 그 강에는 우리의 젊은 시간이 여울져 흐른다. 휘돌아 만들어진 물돌이는 멀리서 볼 때 더 유려하다. 우리도 삶의 가장자리에서 조용한 응원자가 되길 바라며 멀리서라도 손갓을 하고 바라볼 것이다. 낙동강 물이 굽이도는 회룡포 다리 위에서든 강이 바다로 이어지는 여정의 끝에서든 조우(遭遇)를 소망한다.
회룡포 모래밭에 사금처럼 빛나는 추억이 내 눈에 오래도록 반짝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