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라는 한 폭의 추상화 읽기 (2)
- 겨울의 아포리즘
겨울은 모든 생물이 지난 시간을 곱씹어 보며 새로운 해를 준비하는 기간이다. 어떤 사람은 한 해의 끝을 아쉬워하며 허무를 노래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며 기다리는 설렘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상상력과 창의성이 풍부하게 주어진 예술가들이 겨울을 읽는 눈은 다양할 수밖에 없다.
1. 신규호 「싸락눈」 읽기
눈 감고 앉으면
하늘로부터
가위질 소리가 들린다
귓가에 사각거리는 차가운
금속성
세상이 한 손 아래
빗어지고, 잘려
떨어지고
하얗게 부서져 내리는
오후
눈 감고 앉으면
싸늘한 목덜미
잎 진 낙엽송 빈 가지
떨어지는 것들을 받으며
온 몸으로 살아도
손가락 사이로 삶의
분말이
쏟아져 내린다
뺨을 스쳐 미끄러지며
달리는 시간
겨울이 와서, 흰 까운을 입고
인간의 성한 수염을 깎는
십이월 늦저녁
누가 두런두런 골목을 지나
사라지고,
아득한 마음 한 끝에서
문 닫히는 소리
어둠과 집념의 뼈가 부서져
지상에 흩어져 쌓이고 있다
- 신규호 「싸락눈」 전문
문덕수를 비롯한 138명 시인의 등단작과 본인이 선정한 대표작을 담고 있는 『한국 문학의 100년을 열다』에서 신규호 시인은 자신의 대표작으로 「싸락눈」을 제시하고 있다.
시인은 “십이월 늦저녁”에 싸락눈 소리를 들으며, “어둠과 집념의 뼈가 부서져 지상에 흩어져 쌓이고 있”는 것을 보며, 죽음의 그림자와 허무를 은유하고 있다. 소리(가위질 소리, 사각거리는 금속성, 두런두런, 문 닫히는 소리)와 색깔(하얗게 부서지는 오후, 흰 까운)그리고 촉각(차가운 금속성, 싸늘한 목덜미)이 함께 리듬을 타고 독자에게 삶의 마지막 ‘문 닫히는 소리’를 들려준다.
이태동은, 이 시가 실린 신규호 시인의 시집 『立秋以後』(신라출판사, 1976)의 평설에서, “흰 싸락눈이 내리는 것처럼, 죽음이 오고 있음을 독자들에게 입체적으로 볼 수 있게 하고 있다. (⸱⸱⸱⸱⸱⸱) 그의 詩는 싱싱한 생명에 넘쳐 움직이는 繪畵이며, 처절하고 밀도 짙은 人生 風景畵임에 틀림이 없다.”고 읽고 있다.
노유섭은 한국시문학아카데미에서 발표한 신규호 시인론에서 “존재에 대한 의문, 허무의식, 언어를 통하여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시 쓰기 작업의 고통과 몸짓”(「사명의식에 바탕한 인간존재의 탐구」, 『예술 융복합 시대 문학의 좌표』, 시문학사, 2020)을 발견했다.
2. 김철교 「겨울 산」 읽기
수식어는 다 지고 주어 동사만 남았다
길고 지루한 시간들은
소설 속에서 한두줄 삶으로 요약되듯
온 겨울이 한줄기 바람으로 피어올라
나무들을 간지리고 있다
아직은 꽁꽁 언 가슴파기지만
한 해를 아우른 씨앗 한 톨
품어 넣고 생명을 풀무질한다
버려진 깡통 위에도
보이지 않는 생명들이 스멀거리고
다 삭아버린 뼈에도 핏줄이 돈다
새로운 수식어를 준비하고 있다
- 김철교 「겨울산」 전문
대부분 나무의 잎이 지고 풀들이 시들어 누워버린 겨울 산은 생의 필수적인 요소(주어와 동사)들만 지니고 있다. 다음 해에 새로운 잎(수식어)으로 단장하기 위해 부산한 명상의 시간을 연출하고 있다. 봄 여름 가을의 시간을 부지런히 살아온 흔적은 사라지고 오직 바람만이 산등성이로 흘러, 새로운 봄을 준비하는 겨울 산을 격려하고 있다.
겨울 산에 들면 모든 것이 죽은듯해도 땅속에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 다 삭아버린 나뭇등걸에서도 무언가 생명이 숨 쉬고 있고, 굴러다니는 빈 깡통 속에도 심안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생명들이 스멀거리고 있다.
이 시에서는 겨울 산에서, 죽음 대신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각오를 다잡는 숨소리에 집중하고 있다. 죽음을 극복하고 부활을 꿈꾸는 화자의 희망이 얼어버린 땅속에서도 스멀거린다. 지난 시간들도 괘념치 않고 허무의 굴레를 벗어나 희망을 꿈꾸고 있는 탱탱한 산의 기운을 느낀다.
3. 시를 읽는 짧은 생각
어떤 원로 시인이 자기의 대표작을 소개하며 말하기를, “어떤 평자가 자기가 전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자신의 시를 읽고 있는데, 그로 인해 유명해진 작품”이라고 소개하며, 자신도 자기 처음 의도와는 상관없이 대표작으로 내세우게 되었다는 것이다.
힘주어 썼던 작품은 독자에게 외면을 받아 잊히고, 생각지도 않았던 작품이 독자의 영혼을 뒤흔들어 대표작으로 삼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바이런이 ‘어느 날 일어나보니 유명해졌다’고 하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예술가는 그저 최선을 다해 작품을 세상에 내놓을 뿐이다. 독자/평자/관람자의 심금을 울리는 것은 창작자의 몫이 아니라 작품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