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Vladimir Vladimirovich Putin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 푸틴
출생직업국가
1952. 10. 7, 소련 레닌그라드(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 |
정치가 |
러시아 |
요약 러시아의 정치가. 소련 정보기관인 국가보안위원회 출신으로 제3대 대통령에 선출된 이후 강력한 정치력으로 20년 가까운 국가 수반의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대학 졸업 후 15년간 KGB(국가보안위원회)에서 외국 정보 담당관으로 일했으며,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첫 민선시장의 보좌관으로 정계에 진출, 1998년 7월 보리스 옐친에 의해 연방보안국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옐친의 총애로 1999년에는 총리로 지명되었으며, 체첸 반군에 대한 강력한 작전 수행으로 대중의 지지도가 급상승하자 1999년 12월 31일 옐친의 사임에 이어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었다. 2000년 선거에서 당선되어 제3대 대통령이 된 이후, 부패를 없애고 강력하게 통제된 시장경제 체제를 구축하여 2004년 재선에 성공했고, 2008년 헌법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났으나 메드베데프 행정부에서 총리로 재임, 권력을 유지했으며, 2012년 대선에 다시 출마하여 제6대 대통령이 되었고, 내정과 외치에서 러시아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강력한 정책을 펼쳤다. 2018년 대선에도 출마, 76.7%%의 득표율로 4선에 성공했고, 2024년까지 집권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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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Vladimir Vladimirovich Putin)
제3대, 제4대, 제6대 러시아 대통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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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러시아의 대통령. 소련 레닌그라드에서 출생, 레닌그라드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국가보안위원회(KGB)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소련 붕괴와 러시아연방 성립 후 정계에 진출, 1996년에는 대통령 비서진이 되었다. 옐친 대통령의 총애를 받아 총리로 발탁되었으며, 옐친의 사임 후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었고, 2000년의 대통령 선거에서 제3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이후 강력한 지도력을 바탕으로 재선에 성공하고, 헌법의 연임 금지 조항을 우회하여 후계자인 메드베데프 대통령 집권 동안 총리로 재임하다가 2012년 제 6대 대통령에 출마, 당선되었다. 이후 강력한 통치력으로 내정과 외교에서 러시아의 위상을 높이는 데 힘썼다.
초기 생애
블라디미르 푸틴은 1952년 소련 레닌그라드(지금의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그)에서 아버지 블라디미르 스피리도노비치 푸틴(Vladimir Spiridonovich Putin)과 어머니 마리아 이바노브나 푸티나(Maria Ivanovna Putina)의 아들로 태어났다. 레닌그라드국립대학교(지금의 국립상트페테르부르그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했는데, 그때 스승이 훗날 페레스트로이카 시기의 지도적인 개혁 정치가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아나톨리 소프차크였다. 푸틴은 1975년 대학을 졸업한 후에 소련의 정보기관이었던 국가보안위원회(KGB)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공직 진출
푸틴은 15년간 KGB(국가보안위원회)에서 외국 정보 담당관으로 일했는데, 그 가운데 6년은 독일민주공화국 드레스덴에서 근무했다. 1983년 류드밀라 푸티나와 결혼했다. 푸틴은 중령으로 진급하면서 KGB 현역에서 물러났고, 1990년 소련으로 돌아와 레닌그라드국립대학교의 총장 보좌역이 되어 대학의 대외업무를 책임졌다. 1991년 소련이 붕괴되고 러시아연방이 성립된 후, 민주적 선거에 의한 첫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장이 된 소프차크의 보좌관이 되었고, 1994년에는 수석 부시장 자리에 올랐다.
1996년에는 모스크바의 대통령 비서진에 합류해, 크렘린 행정 책임자인 파벨 보로딘의 보좌관이 되었다. 1998년 7월 러시아의 옐친 대통령은 KGB가 맡았던 국내 업무를 담당하는 연방보안국 책임자로 푸틴을 임명했으며, 푸틴은 그 직후 막강한 권력을 가진 보안회의 비서가 되었다. 자신의 후계자를 찾던 옐친은 1999년 푸틴을 총리로 지명했다. 푸틴이 체체니아 분리주의 반군에 맞서 정교하게 조직된 군사 작전을 추진하면서 총리로서 그에 대한 대중적 지지도는 급상승했다. 오랜 기간 옐친의 변덕스러운 행동에 지친 러시아 국민은 푸틴이 위기 상황에서도 냉정하고 결단력 있는 태도를 보이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러시아 제3대 대통령 취임과 연임
1999년 12월 31일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건강의 악화를 이유로 사임을 발표하고, 2000년 3월 26일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까지 대통령직을 대리할 사람으로 블라디미르 푸틴을 지명했다. 2000년 선거에서 푸틴은 약해진 러시아를 재건하겠다는 공약으로 53%의 지지를 얻어 쉽게 승리하고 러시아의 제3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취임 후 그는 부패를 없애고 강력하게 통제된 시장경제를 만들어나가려 했다. 푸틴의 강력한 통치력에 대한 국민의 지지와 1990년대 장기적인 경기침체 이후의 경제 회복으로 푸틴은 2004년 3월 선거에서 71%의 득표율로 쉽게 재선에 성공, 제4대 대통령이 되었다.
2007년 12월 의회선거에서도 푸틴의 러시아 통합당(United Russia)은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비록 선거의 공정성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었지만 그 결과는 푸틴의 권력을 확인시켜 주었다. 2008년 푸틴은 헌법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면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를 후계자로 지명했다. 메드베데프는 2008년 3월 선거에서 러시아의 제5대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푸틴은 러시아 통합당의 의장직을 맡았다. 대통령의 3선 연임을 금지한 헌법을 우회하기 위하여 그가 총리가 되려 한다는 것은 거의 공개적인 비밀이었다. 예상한 대로 2008년 5월 7일 푸틴은 총리로 지명되었고, 러시아의 의회는 그 다음날 총리 지명을 승인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2008년 11월 대통령의 임기를 6년으로 늘리는 헌법개정안을 제안했고, 12월 상원에서 이를 승인했다.
러시아 최초의 4선 대통령
제5대 대통령인 메드베데프의 임기가 끝나는 2012년 3월4일 시행된 제6대 대통령 선거에 푸틴은 다시 출마했다. 푸틴의 장기집권에 반대하는 야당과 시민들의 반대와 시위가 이어졌으나, 푸틴은 63.6%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2013년 푸틴은 사이에 두 딸을 두었던 류드밀라 푸티나와 발레 공연 감상 후 돌연 방송사 카메라 앞에서 이혼을 발표하는 돌출 행동을 보였다. 하지만 내정에서는 여전히 강력한 통치력을 이어갔고, 2014년 우크라이나 혁명이 일어나자 크림 반도를 점령, 병합시키는 등 대외적으로도 러시아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려고 힘썼다.
2018년 3월 18일, 푸틴을 견제할 만한 강력한 경쟁자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제7대 대통령 선거가 약 1억 900만 명의 유권자들에 의해 실시되었다. 푸틴은 76.7%의 압도적 지지를 얻어 4선에 성공, 제7대 대통령으로 선출되면서, 총리 시절까지 포함해 사실상 24년간의 장기집권이 가능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