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제께서는 서가여래를 서쪽에 새로 세우시고
대제군의 존귀한 자리로서 서방칠성이니 언제나 상제님을 옆에 모시고 다스린다 말씀하셨다.
여기서 언제나는 "영원히", "항상" 등과 같은 말이다.
이중성이 기록한 천지개벽경을 살펴보자.
형렬이 세상에 내려와 기쁨을 말로 다하지 못하며 상제께 여쭈기를,
옥좌 아래 자리에 흰 옷에 붓을 쥔 분은 어떤 분이나이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석가불이니라 하시니라.
석가불이 천조(天朝)에 무슨 직분을 맡았나이까 하고 여쭈니,
대제군의 존귀한 자리로서 서방칠성이니, 언제나 내 옆에 모시면서 모든 것을 다스리노라 말씀하시니라.
또 여쭈기를 동방칠성은 어찌하여 자리에 없나이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동방칠성이 신명계의 주벽인데, 내 명을 받들어 이미 세상에 내려왔노라 하시니라.
여쭈기를 동방칠성이 인간세상에 있으면 만나볼 수 없나이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지금 초립동년(草笠童年)이니 인연이 있으므로 만날 것이요, 앞으로 한 집 사람이 되리라 하시니라.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한마디 말이 없으니 어째서 입니까 하고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나와 지척에 있으니 삼감이 이와 같고, 혹 망령되이 말하여 천기를 누설하면 죄가 되기 때문이라 하시니라. (이중성 천지개벽경3편7장)
<참고> 상제님을 바라볼때 서방은 왼편이고 동방은 오른편을 말한다. 이는 대순진리회 당시 영대의 모습이다.
* 조정산 옥황상제님께서는 1895년(을미생) 탄강하셨으므로 당시 1903년에는 9세 초립동년으로 동방칠성을 가리키고 있다.
주벽(主壁): 여러 사람을 양쪽에 앉혔을 때 가운데 주장되는 자리.
사당에서 여러 위패 가운데 주장이 되는 위패
[원문] 亨烈(형렬)이 下世(하세)에 喜不可言(희불가언)하야
問曰(문왈), 床下別榻(상하별탑)에 白衣執筆之位(백의집필지위)난 何人乎(하인호)잇가. 曰(왈), 釋迦佛也(석가불야)니라.
問曰(문왈), 釋迦佛(석가불)이 在天朝(재천조)에 何職乎(하직호)잇가.
曰(왈), 大帝君之尊位(대제군지존위)오, 西方七星也(서방칠성야)니 常侍我側(상시아측)하야 攝理萬相(섭리만상)하노라.
問曰(문왈), 東方七星(동방칠성)은 何不在職乎(하불재직호)잇가.
曰(왈), 東方七星(동방칠성)이 神界之主擘(신계지주벽)이니 奉我命(봉아명)하야 已降世也(이강세야)니라.
問曰(문왈), 東方七星(동방칠성)이 若在人間(약재인간)하면 不可得逢乎(불가득봉호)잇가.
曰(왈), 今(금)에 草笠童年(초립동년)이니 有緣則逢(유연즉봉)이라, 將爲一室之人也(장위일실지인야)니라.
누가 초립동년인가?
하루는 대흥리에 계시더니, 제자가 명을 받고 삿갓을 사와서 비치하니라.
말씀하시기를, 내 덕을 펼 사람은 지금 초립동년(草笠童年)이니라.
하루는 말씀하시기를, 공우야. 비록 나이가 적은 사람이라도 지위가 너보다 높고, 덕이 너보다 높거든 만날 적에 반드시 공경하라.
어떤 날은 말씀하시기를, 공우야. 때가 와서 한 사람이 허락하지 않으면, 너희들은 내가 있는 곳에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노라.(이중성 천지개벽경7편8장)
* 초립동(草笠童)은 초립(草笠)을 쓴 사내아이로 1907년 당시 도주님은 13세 이셨다.
1907년 주요 인물들의 행적을 살려보자.
선도교 고수부 : 본명은 고판례로 1907년 당시 28세
천지개벽경 저자 이중성은 1907년 당시 11세
대순전경 저자 이상호 선생은 1888년 생으로 1907년 당시 20세
증산도 안운산(본명-안세찬)은 1922년생으로 1907년엔 태어나지도 못했다.
위의 인물들 중에서 강증산으로 부터 종통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은 고수부와 조정산이다.
그러나 고수부는 여자로써 초립동이 아니였고,
조정산께서 증산상제 님으로 부터 종통을 받아 덕을 펼칠 그 초립동이 맞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천지개벽경 구절에서 다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첫째, 서가여래께서는 구천상제님 곁에서 상제님을 도와 큰 임무를 맡아 수행하고 계시다는 점이다.
이는 진법주(眞法呪)가 밝혀주고 또한 영대(靈臺)에 모셔진 15신위(神位) 가운데
서가여래께서는 원위(元位)중 한 분으로서 구천상제님의 좌측편에 자리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둘째, 구천상제님께서 神界之主擘(신계지주벽) 신명계의 주벽 즉 으뜸(진법주의 옥황상제)이라고 표현하신 동방칠성께서 이미 구천상제님 재세(在世)시에 인간으로 화신(化身)하여 계시며, 지금 초립동(나이가 어린 남자아이) 이라고 표현하셨는데, 그 때(계묘년 즉 1903년)에 조정산 옥황상제께서 9세이셨으니 나이로도 일치하고 있으며, 장차 구천상제님과 한 집 사람이 되리라 하신 것이다.
이와 같이 상제님의 말씀을 볼 때
서가여래를 단지 불교적 차원으로만 보는 것은 매우 잘못된 인식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상제님께서는 서가여래를 그동안 불교라는 틀에 한정 시켜 낮게 두셨던 것을 종장을 진묵으로 바꾸시어
불교의 틀에서 벗어나게 해주시고 이제 더 높은 차원의 위치에 계시도록 하신 것임을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상제님의 명에 따라 과거 불교의 종장 위치보다 더 높은 곳으로 세우셨다는 것으로
현대말로 하자면 좌천되신 것이 아니라 영전되신 것이다.
그리고 잠시 임시직이 아니라 언제나 상제님을 옆에 모시고 다스린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석가불은 대제군의 존귀한 서방칠성이시다.
동곡비서의 표현은 매우 흥미롭다.
선생이 종도들을 다 모아놓고 「천지공사를 다 처결하고 내가 떠나리라」 하시기로 다 모이니 풍우가 대작하니라.
「속발한다」 하시고 허공을 보고 「꼼짝마라. 오늘은 참 성인을 판단하리라」 하시고,
무슨 기를 만들어 문 앞에 세웠다가 소화하시니 뜻밖에 벽력이 일어나니 종도들을 큰소리로 부르사
「공자 부르라」.
종도들이 주저하니
선생이 크게 소리하사 「공자를 못 부를까?」
종도들이 놀래어 엉겁결에 「공자 잡아왔읍니다」하니,
선생님이 가라사대 「불러오라 하였지 잡아오라 안했는데 너무했다」 하시고
마루에 좌를 정하시고 공사를 보시고 꾸짖으시되,
「그대가 무슨 성인인가? 말로는 삼강오륜(三綱五倫)을 밝히고 예의범절을 밝히는 도덕군자라 해놓고, 삼대에 그대가 먼저 출처(出妻)를 하였으니 그러면 그 중생의 원억을 어찌할까?
그러고도 성인이라 할까? 저리 물리쳐라」하시고,
또 「노자(老子)를 부르라.」
「대령했습니다.」 하니
또 꾸짖어 가라사대 「어머니가 방문을 열고 산실에 들어가실 적에 내가 이 신을 또 신을지 그렇게 산모의 고가 무섭거든, 너는 어미 뱃속에서 머리가 희도록 들어앉았으니 그 어미가 어찌될까? 그래도 네가 신선(神仙)인가? 천하에 그런 죄인이 다시 없다.
네가 신선의 법을 안다고 자랑을 하느냐? 당장 물리쳐라.」 하시고
또 석가를 부르사,
「그대가 성인인가? 종자 없이 하는 성인이냐? 부모를 배반하고 일찌기 입산수도 한다고 부모를 영영 잊은 죄가 말할 수 없거든, 나중에는 사람의 음양을 영영 없앨 생각을 하니, 너의 도가 천하에 펴인다면 사람의 종자가 남겠느냐?
네가 중생을 위하여 공부했다 하나 무슨 중생을 제도했느냐? 저자도 물리쳐라.」 하신 후에,
공자 노자 석가를 다시 부르라 하시더니
「들어라. 너희들이 인간으로서의 대우는 상대우를 받을만하나,
자네들 도덕을 가지고는 포덕천하와 광제창생 할 수 있는 가치는 못 된다는 말일세.
앞으로 나의 도덕이 세상에 나오거든 모두 자네들이 그 도덕 안에서 잘 살도록 하소.
자네들의 도덕이 전혀 못 쓴다는 말은 아니로세.
나의 말이 옳은가? 옳으면 옳다고 대답하소.」
크게 소리하시니 천지가 진동하야 문지방이 떨떨하는지라.
그제야 일어서시며 「수천 년 미래에 오는 공사를 금일에 판결하니, 일체 원억이 오늘로부터 고가 풀리리라.」 하시니라.(동곡비서146절)
이처럼 동곡비서에 있는 이 내용은 다른 경전보다도 훨씬 더 사실적이다.
말씀 중 끝 부분에는 「자네들의 도덕이 전혀 못 쓴다는 말은 아니로세.」라고 하시며 내 말이 옳은지 아닌지도 다시 확인하시는 대목도 나온다.
상제님께서는 해원 상생하러 오신 분이시며, 공덕에 따라 복을 주러 오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석가에 대한 상제님의 다양한 말씀들을 살펴본다면 상제님께서 석가를 얼마나 인정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으며 또한 백성을 사랑한다고 말씀하신다.
위 내용 중 특이한 것은 상제께서 공자, 노자, 석가를 물리쳐라 라고 말씀하신 후 다시 이들을 부르며 달래시는 대목이 나온다.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대우는 상대우를 받을만하다고 하신다.
다만 그 도덕(가르침)을 가지고는 포덕천하와 광제창생 할 수 없다는 말씀이시다.
다시 말하자면 공자 노자 석가를 향해 다른 세상으로 떠나라는 말씀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 다른 세상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모든 것이 상제님의 세상인 것을.
동곡비서의 말씀처럼 상제님께서는 성현들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갖고 계시며 그 공로에 대해 훌륭하였음을 인정하고 해원해주셨으며 석가에 대해서는 큰 공을 세우신 분으로 인정하여 서방칠성으로 세워주셨다.
이외에도 상제님과 도주님께서는 석가불에 대해 그 공로를 인정하고 칭찬하는 대목이 각 경전에 많이 나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석가를 영대에서 내린 각 집단들은 이 부분을 잘 인식해야 할것이다.
상제께서 석가를 칭찬하시다.
매양 옛사람을 평론(評論)하실 때 강태공(姜太公) 석가모니(釋迦牟尼) 관운장(關雲長) 이마두(利瑪竇)를 칭찬하시니라(대순전경3장49)
제자가 여쭈기를, 석가불이 제자에게 널리 공덕을 쌓아 오는 세상에 용화세계에 태어나라고 가르쳤으니, 그때 사람들이 앞으로 오는 선경에 참가할 수 있나이까?
말씀하시기를, 삼생의 인연이 있는 사람이라야 나를 따르느니라.(이중성 천지개벽경2편7장)
상제께서 말씀하시기를, 석가불이 나의 세상을 용화세계라 부르고, 천하 사람들이 병이 없다 하였으니, 나는 백성을 사랑하노라.(이중성 천지개벽경9편8장)
도주님께서도 태극도 취지서에서 석가를 스승으로 밝히시다
이제왕이내자(以帝王而來者)는 복희 단군 문왕(伏羲 檀君 文王也)요
이사도이내자(以師道而來者)는 공자 서가 노자(孔子 釋迦 老子也)며
(스승으로 오신 분은 공자, 석가, 노자이시며)라고 하시며 석가를 스승이라 하셨다.
용봉 독존석가불 - 천상계는 서방칠성인 석가불이 홀로 지키고 계셨다
계묘년(1903) 사월에 증산상제님이 청련암에서 박금곡에게 써 주신 「龍鳳(용봉)독존석가불」을 갑술년(1934) 구월에 이중성에게 전하여 지금까지 보전하여 왔다고 한다.(대순전경속지)
상제님께서 '龍鳳(용봉)'을 쓰신 계묘년(1903)년 당시에는 「상제님과 동방칠성인 도주님께서 모두 인간 세상에 내려오셔서 천상계는 서방칠성인 석가불이 홀로 지키고 계셨다.」라고 한다.
용봉 독존석가불
용은 구천상제님을
봉은 옥황상제님을
독존석가불은 홀로 천상계를 지키고 계신 석가를 의미한다.
석가를 서방칠성의 자리로 옮겨 앉히시다
석가는 그 불교의 종장으로 가르침을 주신 분이시다.
그러나 불교의 3000년 운이 다하여 끝날 무렵 상제께서는 불교의 종장을 석가에서 진묵으로 바꾸셨다.
그리고 상제께서는 석가를 서방칠성의 자리로 옮겨 앉히시어 후천 50000년 미륵시대에 참여토록 하셨다.
그러므로 불교의 3000년 운과 서가여래는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어졌다.
이로써 영대에서 석가를 퇴위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영대에서 서가여래를 퇴위시키고 도전님을 모신 것이 큰 죄가 되는 이유 1,2,3,4,5 통합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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