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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김씨 사천공파(사천공 김련 후손)
서악동 464에 있는 정려각(경순왕 넷째아들 대안군김련(조선시대 영해군수이며 곽재우장군과 함께 의병의 장으로 할동한 그의 처(아내)) 열부훈도김련처김씨지각)
서악동 장산에 있는 김련(조선시대 영해군수, 현재 묘는 서악동 장매 장산(경주장산 토우총 옆) 끝자락에 위치함)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 장군과 함께 화왕산 전투에 참여할 당시
부인(정려각 당사자, 현재 묘는 충효동 옥녀봉 남쪽에 위치함))이 왜군의 치욕을 피해 자진함으로써 절개를 지키고 열부로서의 기개와 정신을 후대에 본보기로 펼침..
요즘 사회에 절개와 기개가 다시 설 수 있고 또한, 소중한 우리의 문화 유산들을 스토리텔링 하여 미래에 전해서 사회의 순기능 역할을 하고,
또한 작은 비각들이라도 지방문화유산으로 등재하여 체계적인 보존을 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참고할 문헌>
경주풍물지리지 186쪽 보우문화재단
경주유교문화유적 588쪽 경주향교
<경주김씨 연원>
경주 김씨의 시조는 신라의 추존왕 김알지이다. '김'(金)이라는 성씨는 그가 제4대 탈해 이사금 시절에 금궤에서 나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설화적 성격이 짙으므로 많은 학자들로부터 신뢰받지 못하고 있으며, 대신 실제로 김씨를 사용한 것이 확인되는 첫 국왕은 제24대 진흥왕이다.[3] 한편 최초의 김씨 국왕은 제13대 미추 이사금이며, 제17대 내물 마립간 때에 김씨 왕조 지배의 기틀이 잡혔다.
신라인들은 (경주) 김씨의 시조를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로 여겼으며, 이는 《삼국사기》와 <김인문 묘비>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신라고사(新羅古事)에 금궤(金櫃)가 하늘에서 내려와서 김씨로 성을 삼았다는 말은 믿기 어렵다. '''신라인은 스스로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의 후손(後孫)이라고 하였다.
<경주김씨 사천공파>
시조 김알지(경주김씨) - 경순왕의 4남 파조 김은열(金殷說)(대안군파)- 27대손 파조 김련(사천공파)(부인은 경주시 서악동 정려각)의 13대손이 현재 김두식(차남 김인식, 김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