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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 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나는 이제 진짜 교인이다>의 줄거리 :
창세기는 믿음의 이야기이고 출애굽기는 교회의 이야기입니다. 창세기는 창조주요 주권자 하나님에 대해서 인간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알려주시는 책입니다. 그런 목적을 위해 신앙의 선조들이 개별적으로 등장합니다. 그에 비해 출애굽기는 이제 12지파에서 시작하여 거대한 수효에 이른 이스라엘이라는 집단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렇게 집단이 된 이스라엘이 선민이자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출애굽기를 알려면 먼저 이렇게 등장하는 교회를 알아야만 합니다.
나는 이제 진짜 교인이다
(출애굽기 1:15~22)
15.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라 하는 사람과 부아라 하는 사람에게 말하여
16. 이르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17.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린지라
18. 애굽 왕이 산파를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같이 남자 아기들을 살렸느냐
19. 산파가 바로에게 대답하되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 하매
20.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 그 백성은 번성하고 매우 강해지니라
21. 그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신지라
22. 그러므로 바로가 그의 모든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아들이 태어나거든 너희는 그를 나일강에 던지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하였더라
말씀드린 대로 창세기는 믿음의 이야기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과 주권자 하나님을 계시하고 그 하나님에 대하여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과 유다 등 개별적인 인물들의 영적인 측면을 그림 그리듯 보여주며 믿음의 완성을 입체적으로 제시해 주었습니다. 한편 출애굽기는 교회의 이야기입니다. 출애굽기는 개인이 아닌 폭발적으로 늘어난 수효의 집단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우리는 창세기를 근거로 출애굽기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1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효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집단이 되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에 입각하여 교회에 대해 생각할 수 없다면 출애굽기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지난 시간에 1장 전체를 본문으로 택해 교회와 연관된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출애굽기 1장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교회의 의미를 총정리 해보고자 합니다. 이러한 내용은 앞으로 출애굽기를 이해해 나가는 데 결정적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나는 이제 진짜 교인이다’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합니다. 교회를 알아야 진짜 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창세기를 근거로 하여 출애굽기 1장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교회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살펴보고, 지금 교회가 놓인 영적인 상황과 똑같음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바로는 이스라엘 민족을 탄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산파가 선민의 출생을 이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은 지금도 똑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공중의 권세 잡은 마귀는 선민들이 본연의 정체성을 획득하여 나타나는 것을 막으려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목사님들이나 복음을 먼저 받아들여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생활 속에서 표현하는 자들이라면 산파의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로의 탄압과 박해로 상징된 공중의 권세 잡은 마귀의 방해를 뚫고 선민이 자기의 정체성을 드러내도록 도울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지금도 일어나는 일입니다. 출애굽기의 시대에나 예수님의 시대에나 중세 시대에나 지금이나 교회가 놓인 상황은 본문 15~22절에서 언급되는 상황과 똑같습니다. 바로의 박해가 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산파가 있어서 선민은 출생하여 선민다움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염두에 두고 우리는 창세기의 내용을 근거로 하여 출애굽기 1장이 제시하는 교회를 일곱 가지 관점에서 이해해 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교회는 약속에 근거 됩니다. 야곱의 가문은 사백 년을 지나는 동안 폭발적으로 수효가 늘어 거대한 민족을 이루었습니다. 출애굽기는 이렇게 민족을 이룬 이스라엘을 전면에 내세워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우리는 창세기에서 살펴보았던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유다에 대한 이야기는 개별적 인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이제 출애굽기에서는 장정만 육십만 명이고 전체 인구는 이백만 명에서 이백오십만 명으로 추정되는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집단을 주인공으로 삼습니다. 출애굽기의 주인공은 모세가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이 집단은 결국 교회가 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자손의 번성을 거듭 약속하셨습니다. 교회는 바로 이 약속에 근거 된 집단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단지 아브라함의 혈육이 불어나리라는 것이 아니라 약속에 근거 된 집단을 이루리라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대로 아브라함의 혈육이 다 선민이 아닙니다. 많은 인물들과 그들의 후손이 제외되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약속에 포함된 이름들에 의해 선민의 가계는 이어집니다. 결과적으로 야곱에게서 열두 아들이 태어났고 이들에 의해 폭발적인 수효가 불어나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집단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시작 또한 아브라함이 받은 약속에 근거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되리라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알 같은 수효는 하나님의 약속에 있었고, 이 수효의 집단이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이로부터 교회의 정의를 내려봅니다. 신약 성경에서는 에클레시아(ἐκκλησία)라는 단어를 씁니다. 에클레시아는 ‘밖으로 부름을 받은 존재들, 구분된 존재들’이라는 뜻입니다. 쉽게 말해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는 다른 존재라는 뜻입니다.
두 번째로 교회는 우주에 단 하나뿐입니다. 창세기에 근거하여 출애굽기 1장에서 제시하는 교회의 정의란 ‘우주에 단 하나뿐인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설명하기에 앞서 우리 마음의 의식과 인식을 지배하고 있는 종래의 교회의 개념을 떠올려 봅니다. 우리는 교회라고 하면 흔히 건물을 떠올립니다. 미국의 수정 교회나 갈보리 교회, 우리나라의 영락 교회나 사랑의 교회 같은 유명한 예배당 건물을 쉽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단 예배당 건물로서의 교회의 개념은 옆에 잠시 내려놓기를 바랍니다.
말씀드렸듯이 교회는 우주에 단 하나뿐입니다. 그리고 이 교회를 이루는 교인들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에 포함된 예정자 명단 전체입니다. 다시 말해 교회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해 주신 번성하는 자손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상속하는 자손들로서 이 세상에 태어날 자들을 다 예정하셔서 명단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교회는 이 세상에 왔다가 떠난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여, 약속 이후에 태어난 이삭과 야곱과 야곱의 열두 아들들로부터 시작된 열두 지파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닌 다말과 라합과 룻도 있습니다. 신약 시대에는 베드로, 요한, 야고보, 스데반, 빌립 등의 사도들이 있으며, 그 이후로는 어거스틴, 루터, 칼빈, 요한 웨슬리와 같은 인물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이미 태어나서 살다 죽은 사람들과 지금 태어나서 살고 있는 사람들과 예수님이 다시 오실 직전에 태어날 선민까지 다 포함한 개념이 우주에 하나뿐인 교회입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교회라고 하면 무의식적으로 땅에 있는 예배당 건물을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한 개념은 아직도 우리 속에 살아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에 들어있는 예정자 명단에는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직전에 태어날 마지막 사람의 이름까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전체가 교회입니다. 이미 세상에 왔다가 간 사람, 지금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 앞으로 세상에 태어날 사람 중에서 이 명단에 포함된 자들 전체가 교회입니다. 이러한 개념을 확고히 하기 위해서 기존에 지역 예배당을 교회라 불렀던 개념을 지우시기를 바랍니다. 물론 신약 성경을 보면 고린도 교회, 에베소 교회, 갈라디아 교회 등 다양한 교회의 이름이 언급됩니다. 다만 이러한 이름들은 전체 교회 중에서 특정 지역에 사는 교인들을 일컫기 위한 것입니다.
세 번째로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교회는 우리 인간들의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앞서 교회의 특징에 대해 말씀드리기를 첫 번째로 약속에 근거 되었으며, 두 번째로 우주에 단 하나뿐인 교회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처럼 교회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예정된 자 전체를 가리키는 개념입니다. 4,000년 전의 아브라함도 교회에 속한 자이며, 지금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자들도 교회에 속한 자들이며, 앞으로 태어날 자들도 약속의 명단에 있다면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흔히 ‘교회에 등록을 한다.’라는 말을 하는데 본래 교회의 개념을 떠올려 보면 무척 이상합니다.
에베소서 1장 4~5절을 보면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도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 이후에 택함을 받게 된 사람들도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시기 위해 명단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라는 말씀은 내가 우주에 하나뿐인 교회에 등록된 자라면 지역 예배당에 가입하여 등록카드를 작성했기 때문은 아닙니다. 내가 등록카드를 내서 교회의 교인이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우주에 하나뿐인 교회의 교인이 되는 것은 이미 하나님이 창세 전에 계획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명단 안에 내 이름을 등록해 두셨기 때문에 나는 교인이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내가 교인이 되는 것은 지역 예배당에 등록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약속의 명단에 등록해 두셨기에 교인이 된 것입니다.
이러한 세 가지 사실이 창세기를 근거로 하여 출애굽기 1장을 통해 제시되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야곱의 자손들은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집단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선민의 집단은 교회가 됩니다. 이 교회는 이미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자손 번성의 약속에 근거가 되고 토대가 된 것입니다. 자손 번성의 약속에는 하나님이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하시고 선택하신 자들의 명단이 다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우주적으로 하나만 있을 뿐이고, 그 교회에 등록한 것은 내가 원해서 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셔서 나를 예정자의 명단에 등록하심으로 이루어진 일입니다.
네 번째로 교회는 하나님의 명단에 등록해 놓으신 자들을 찾아내서 하나님을 인식시키고 하나님 경외의 마음가짐을 갖도록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 중에서 교회의 명단에 등록된 자들과 누락 된 자들에게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본질적으로 하나님이 등록하셨다는 점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약속에 근거 된 교회이고, 우주에 하나뿐인 교회입니다. 그런데 창세 전에 계획하시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해 주신 자손의 명단에 하필이면 나를 기록해 두셨다는 점이 너무나 놀랍습니다. 앞집에 사는 박 씨 아저씨는 그 명단에 등록되지 않았는데, 내 이름이 명단에 등록되었다니 잘 생각해 보면 이건 보통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교회를 옮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 마음에 안들면 다른 교회로 가면 된다.’라고 생각하고 ‘나는 이제 여기에 등록했으니 이 교회의 교인이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교회의 의미는 그런 것이 아님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제가 만들어 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창세기와 출애굽기에 근거 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에게 자손의 번성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전제로 출애굽기는 시작됩니다. 요한계시록 7장을 보면 이마에 인치심을 받은 자들로서 열두 지파가 언급됩니다. 이들이 교회에 속한 교인입니다. 그리고 그 열두 지파가 민족을 이루었음을 이야기하는 출애굽기 1장은 교회의 시작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에 근거 되며, 그 약속의 명단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직전까지 태어날 모든 선민을 포함합니다. 그 명단에 있다가 태어나서 죽은 자와 지금 살고 있는 자와 앞으로 태어날 자 전체가 교회입니다. 교회 등록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세 전에 등록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교회에 대해 알았고 나의 뿌리에 대해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로부터 전도나 선교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명단에 있는 사람이 세상에 태어난다고 해서 태어나자마자 하나님의 이름을 알고 하나님의 이름을 붙잡고 하나님 경외의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서 전도나 선교의 필요성이 생겨납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하나님 경외의 의미를 살펴보았습니다. 경외란 공포의 감정이 아닌 잃어버림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경외란 하나님을 잃어버렸을 때 내 마음에서 가장 큰 두려움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서 잃어버렸을 때 가장 큰 두려움을 주는 대상이 돈이라면 돈을 경외하는 것이고, 건강이라면 건강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마음에서 하늘에 계신 영광의 하나님을 지켜내지 못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합니다.
다만 이 하나님 경외는 태어날 때부터 저절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아무리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약속의 명단에 포함되었을지라도 하나님 경외는 저절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전도와 선교와 말씀 전파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려주는 일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창조주요 주권자이시며 유일한 좋음이자 유일한 있음임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잃어버림을 가장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는 하나님 경외의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하여 전도와 선교와 말씀 사역이 이 세상에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기존에 갖고 있던 전도에 대한 생각도 바뀌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을 보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미지의 세계에 있는 불특정 다수에게 하나님과 예수님을 전해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교회 밖에 있는 자들을 교회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에는 예배당 건물과 기독교 종교 조직이 내부와 외부를 가르는 기준으로 작용합니다. 다시 말해 비기독교인을 기독교인으로 만드는 것, 기독교 종교 바깥에 있는 자들을 기독교 종교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전도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지구를 총망라하여 어디에서 태어나든지 하나님이 약속의 명단에 등록하신 자들이 있습니다. 전도란 그들을 찾아내는 일입니다. 따라서 전도는 교회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약속의 명단에 있는 자들이 교회의 경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명단 밖에 있으면 교회 바깥에 있는 것입니다. 종교 조직이나 예배당 조직 바깥에 있어서 교회 바깥에 있는 자가 아닙니다. 약속의 명단에 등록되지 않은 자들이 교회 바깥에 있는 자들입니다. 한편 약속의 명단에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모르고 사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자들을 찾아내는 전도나 선교는 근본적으로 약속의 명단이 이루는 교회 경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다시 말해 전도란 교회 경계 바깥에 있는 사람을 교회 경계 안으로 끌어들이는 일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명단에 있는 자들은 이미 교회의 테두리 안에 있습니다. 따라서 전도란 교회의 테두리 안에 있는 자들을 찾아서 하나님을 인식하게 하고 하나님 경외의 마음을 갖도록 하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교회를 약속의 명단 안에 있는 자들 전체라고 이해한다면 전도라는 개념 자체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말씀드렸듯이 전도란 교회 안에 있으면서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을 찾아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전도를 열심히 하면 교인이 늘어나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전도란 이미 하나님의 명단에 등록해 놓으신 자들을 찾아내서 하나님을 인식시키고 하나님 경외의 마음가짐을 갖도록 하는 일입니다. 교회를 약속의 명단 안에 있는 자들 전체로 이해하게 되면 전도라는 개념 자체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다섯 번째는 교회를 세움입니다. 마태복음 16장 18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의미에서 이러한 말씀을 하신 것일까요? 교회의 경계는 온 지구 위에 퍼져 있습니다. 약속의 명단 안에 있는 사람들이 한국에서 태어날 수도 있고 미국에서 태어날 수도 있습니다. 일본이나 중국 혹은 아프리카나 북한에서도 태어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약속의 명단 안에 있는 자들이 교회의 경계를 이룹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배경을 염두에 두고 교회를 세운다는 말씀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의 경계 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경외하는 자들 틈바구니에서 살아갑니다. 이들은 세상 것이 없어질 것을 두려워하는 세상 경외의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들과 똑같은 삶의 현장을 공유하며 살아가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생각과 감정과 의지와 말과 행동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럴 때 세상 사람들과 구분되는 선민의 정체성이 드러나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 경외를 삶의 현장에서 생각과 감정과 의지와 말과 행동으로 드러내며 사는 것이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상황을 그림으로 그려봅니다. 세상을 경외하는 자들의 틈바구니에서 하나님 한 분 없어지면 두려워합니다. 그러한 마음을 갖고 사는 자들은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지정의(知情意)에서 나오는 말과 행동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세상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동기와 계기와 색깔과 결을 따라 말과 행동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삶의 현장에서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이미 교회는 있습니다. 꼭 여러 명이 모여야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있음과 하나님의 좋음을 말과 행동을 통해 세상에 드러낼 때 교회는 세워집니다. 약속의 명단에 있는 사람들은 세계 각처에 흩어져 있습니다. 각자가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 경외를 이루어 나갈 때, 지구 전체를 보면 곳곳에서 교회가 세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 경외를 하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교회가 세워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로부터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제까지의 유대인들은 종교화 된 하나님 신앙을 갖고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통째로 버리십니다. 마태복음 15장 7~9절에서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 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라고 말씀하셨던 것과 같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 것을 경외하였습니다. 세상 것이 좋아서 세상 것이 없어지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있었습니다. 이들의 마음에서 하나님은 있거나 없거나 상관없는 존재였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교리로만 알고 있었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유대 종교를 통째로 버리십니다.
여섯 번째는 교회의 교인으로서 어떻게 지속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약속의 명단에 있는 사람이지만 세상에 태어나서 살고 있는 동안에 하나님 경외의 마음가짐으로 살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만이 유일한 있음이고 좋음이라는 믿음이 말과 행동에서 표현되지 않으면 교회를 탈퇴한 것입니다.
약속의 명단 가운데 있어서 폭발적으로 증가한 야곱의 후손들은 장정만 육십만 명이었습니다. 이들은 남녀노소를 합해 이백만 명에서 이백오십만 명으로 추정되는 엄청난 숫자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출애굽 후 광야에 들어가서 사십 년을 사는 동안 하나님 경외를 잃어버린 자들은 모두 죽습니다. 그 세대에서 가나안 땅에 들어간 사람은 여호수아와 갈렙뿐입니다. 하나님 경외를 잃고 죽은 자들은 약속의 명단에 있었음에도 결과적으로 교회를 탈퇴한 것입니다. 이들은 광야라는 삶의 현장에서 물이 없음을 두려워하고, 고기가 없음을 두려워했습니다. 정작 하나님 없음을 두려워하는 경외를 드러내지 못했기에 한 세대가 광야에서 모조리 죽고 맙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서 약속의 명단에 있음이 틀림없더라도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 경외를 잃고 교회를 탈퇴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명단에 있는 자들이 태어나서 이스라엘을 이루었지만, 이들은 광야에서 하나님 경외를 보이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모두 쓸어버리시고 가나안 진입 자체를 막아버리십니다. 내가 어느 예배당의 등록을 해지한다고 해서 교인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내가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 경외의 삶을 살지 않을 때 교회에서 탈퇴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직장에 있을 때 하나님 경외를 하고 있다면 직장에서 교회 안에 있는 자입니다. 출석할 예배당이 없더라도 지금 놓인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 경외를 통하여 교회를 세우면 교인입니다. 교회는 유지되고 있으며 하나님의 아들로 유지되고 구원을 받고 이루는 삶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일곱 번째로 교회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될 기회를 제공합니다. 여기서 질문이 하나 생길 수 있습니다. 도대체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약속의 명단에 있는 자들을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것일까요? 어차피 약속의 명단에 있는 자들이니 처음부터 천국에 태어나게 하셨다면 좋았을 것입니다. 대체 무엇을 위해 번거롭게 세상에 태어나게 하시고 우여곡절을 겪게 하실까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천사들과 같이 천국에 태어나게 하셨다면 힘든 일은 없을 것입니다.
천사들은 우리와 같은 피조물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천국에 태어나서 하나님을 직접 보고 있습니다. 변화산에서의 베드로의 경험을 기억해 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일체 되어 계십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빛이 예수님을 통해 발산되는 모습을 보고 황홀경에 빠져서 세상일을 다 잊었습니다. 이제까지는 세상에서 갖고 싶고 구하고 싶은 것들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빛을 보자마자 그러한 마음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천사들에게는 하나님을 선택하고 사랑할 기회가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좋음에 빠져버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그 좋음의 모습이 가려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좋음이 육체의 오감으로는 포착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섯 번째 감각이라 부를 수 있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붙잡아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이 믿음을 원하셔서 우리를 세상에서 살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통해 육체를 입고 사는 동안에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냄새도 없고, 맛도 느낄 수 없는 하나님을 마음으로 붙잡을 수 있고 하나님 경외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영원히 아들의 자격으로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천국에 지음 받은 천사들은 하나님의 심부름꾼이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육체를 입고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유일한 좋음이자 유일한 있음으로 붙잡을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이 내 의식 속에서 사라지고 잊히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는 마음가짐으로 세상에서 말하고 행동하며 삶의 현장을 살아갑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너는 내 영원한 아들이다.’라고 말씀하시며 인을 쳐주십니다. 이것을 위해 우리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일곱 가지 관점에서 교회가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의 신앙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하실 때 그 내용을 떠올려 봅니다. 마태복음 16장 16절을 보면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육체를 입고 오셨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육체를 벗고 그리스도의 몸을 입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몸을 모든 사람이 입을 몸으로 제공하셨기에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몸을 입는 방법은 십자가의 죽음과 연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아들의 자리로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의 몸을 입은 우리 마음 또한 하나님 아들의 자리로 따라갑니다. 우리의 마음은 예수님의 몸을 입음으로써만 하나님을 직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직면해야만 하나님을 경외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경외란 마음에서 하나님이 사라지고 잊히는 것을 가장 큰 두려움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창세기는 믿음의 책입니다. 출애굽기는 그 믿음을 개별적으로 갖고 있는 사람들 전체를 지칭하는 교회에 관한 책입니다. 우리는 이제 진짜 교회의 진짜 교인이 되어야 합니다. 앞으로 출애굽기 말씀을 나누는 중에 여러분 각자가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 경외의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럼으로써 여러분을 통하여 삶의 현장 속에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명단으로 이루어진 교회가 형체와 윤곽을 드러내면서 온전히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이 창세 전에 나의 이름을 등록시켜 놓으신 교회 안에서 우리가 살고 있음을 잊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있음과 하나님의 좋음을 알았사오니 하나님 경외가 삶에서 나타남으로써 교회가 세워지게 하시며,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또한 아직 하나님을 모르는 명단에 있는 자들에게 산파들이 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