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되고 왜소화된
세계 불교의 실상을 안타까워하며
무량겁 전에 우주 법계 최초로 불과를 이루시고, 다시 2600여 년 전에 사바세계에 몸 받아오셔서 위없는가르침을 주시고 대열반에 드신 후, 무아 속 절대계에빛의 인격체로 여여히 살아계신 거룩하신 우리 교주불세존께 백천만 번의 오체투지로 예경 드리옵니다.
부처님께서 가르쳐주신 우주적 진리의 불교가 2600여 년의 오랜 세월을 거쳐 오면서 너무도 많이 왜곡되고 왜소화 되어 위대한 불교 본래의 진면목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그래서 지금은 이 왜곡된 우리 불교의 실상을 반성적 차원에서 냉철하게 파악하고 왜곡의 원인을 정확히밝혀, 진정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토대로 새로운 불교의 방향을 정립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위대한 우리 불교의 진면목을 드러내어 정법을 세상에 널리 알려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불교는환골탈태해야 합니다.그러기 위해선 먼저 우리 불교도들이 깨어나야 합니다. 긴긴 잠에서 깨어나, 훌훌 털고 일어나야 합니다.눈을 똑바로 뜨고 귀를 크게 벌리고 마음을 활짝 열고진리의 말씀 - 정법의 사자후를 드러야 합니다.
한구절 진리의 게송을 듣기 위해 흉악한 나찰에게 한 몸을 기꺼이 던지는 설산동자와 같이 진리를 갈구하는간절한 마음으로 귀 기울여야 합니다.수천 년 간 많은 훌륭한 학자들이 해설하고 주석을해놓은, 그래서 불교의 정설로 굳어진 교설조차도 때로는 과감하게 버릴 줄 아는 용기와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이제까지 나의 분신처럼 가지고 있던 불교에 대한 지식도 버릴 줄 아는 아픔도 감수해야 합니다.지금 세계불교는 남방불교, 북방불교, 티베트불교라는 세 갈래의 큰 흐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중 어느 불교도 부처님의 법통을 이어받지 못하고, 왜곡되거나 왜소화되어 있습니다. 정법불교의 위대한 면면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불교의 실상을 아주 포괄적으로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불자로서 현행 불교를 비판할 목적은 추호도 없음을 미리 밝혀 드립니다.
오로지 우리 불교의 앞날을 위해서라는 것이 유일한 이유입니다.고대 인도의 마가다국 아쇼카왕 때 스리랑카로 전해져 꽃을 피운 동남아시아 중심의 남방 상좌부불교는스스로의 틀에 갇혀 감히 그 틀을 깨고 밖으로 나올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계율을 엄격히 지키는것은 높이 사줄만합니다. 위빠사나 수행법도 불교 경론에 있는 수행법입니다.그러나 그 수행법에만 집착하다 보니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는, 보다 수승한 수행법을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아라한이 수행 목표이고 해탈신을 갖는 보살이나불신을 두는 붓다의 경지는 감히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어마어마한 위신력과 심원한 적멸의 해탈세계를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남방불교는 이런 한계가 있지만 그래도 크게 왜곡되지 않은 것만이라도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북방으로 전해진 중국불교와 한국불교는 소위 선불교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으나, 태동 초기부터외도사상과 혼합되어 불교의 본질에서 많이 벗어나 있습니다.
심즉시불이니 견성성불이니 하면서 그럴듯한 교설을 내세우고 있지만, 부처님의 참 경계를 이해하지못해 결과적으로 불교를 왜소화시키고 부처님을 격하시키고 있습니다.한국의 간화선도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화두를 들려면 부처님의 성호가 가장 좋은 화두가 되어 밤낮으로 불러야지, 왜 경전에도 없는 조사 스님의 말씀을 화두로 들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큰 성과도 없고 본격적인 수행의 시작단계인 견성,즉 공을 깨치는 수준에 이르는 것이 고작입니다. 그것을 위해 고생스럽게 오랜 기간 수행을 해야 하는지 이제 한번쯤은 되돌아볼 시점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그래도 최후의 보루로서 티베트불교가 있지 않느냐고 말씀하시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랬으면 참 좋겠습니다.
티베트불교는 수행체계가 잘 갖추어져 있긴합니다. 그러나 수행의 어는 단계에서 하고 있는, 힌두교 요가 수행이 가미된 밀교 수행법은 정법이 아닙니다. 또한 티베트불교의 지도자는 신통을 사용하여 환생을 함으로써 정법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티베트불교를 위한다고 하지만 정법에 반하는 것은 하면 안 됩니다. 티베트불교의 우수성으로 주장하고 있는 즉신성불의 교설은 불자들의 안목을 흐리게 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불신보신불이 얼마나 거룩하고 위대하고 차원 높은 존재인지도 모른 채, 중음계에서 우주 본성의 빛인 정광명을 받은 의생신을 보신불이라 여기는 어처구니없는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세계 불교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몇 가지로 요약해서 정리해봅니다.
1. 세계 불교는 부처님의 실존과 위신력을 믿지 않는 부처님 없는 불교가 되어버렸습니다.
2. 세계 불교는 인간의 실체인 영혼체을 부정하고 윤회주체마저 없다고 하는 주인공 없는 불교가 되어버렸습니다.
3. 우리 불교는 붓다가 되고 보살이 되는 완전한 생사해탈을 이루는 수행법이 없는 불교가 되어버렸습니다.
4. 우리 불교는 해탈법위와 해탈의 적멸세계에 대해제대로 알려주지 못하는 차원 낮은 불교가 되어버렸습니다.
불교는 우주 법계의 법왕이신 부처님을 교주로 모시고 있으며 완벽한 교리체계와 구원사상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신도 수로 보면 기독교 천주교 포함, 이슬람교, 힌두교 다음으로 겨우 네 번째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신도 수가 종교 평가의절대적인 지표가 되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이것은 오늘날 불교의 위상을 보여주는 단적인 하나의 지표가 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그리고 불교의 고향 인도에서는 불교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불교가 세계로 뻗어나가 널리 정착되지 못하고, 아시아 일원에서 생명을 유지하고 있을 정도로 쇠퇴했습니다.불교 교리의 위대함과 우주 법계영역의 절반 이상을차지하고 있는 불교의 위상을 감안한다면 이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성적표인 것입니다.
그럼 불교가 왜 이런모습이 되었을까요? 이제 그 이유를 한 번 찾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