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창작이 되는 예술작품의 차용
김철교(시인, 평론가, 국제PEN한국본부 부이사장)
최근 음악계에서 유명 가수가 다른 사람의 작품을 표절했다는 시비가 일고 있다. 그동안 잘 나가던 작가의 작품이 표절로 밝혀지면서 하루아침에 웃음거리가 되고, 정치인의 장식품으로 유행하던 학위논문이 표절로 밝혀져 국회가 시끌시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 세상에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다’는 피카소의 말이 떠 오른다. 예술작품이든 논문이든 기존 것에 기대어 수정과 보완을 거치면서 발전하는 것이다. 아무리 새로운 논문이라 하더라도, 많은 부분은 기존 것을 섭렵하여 정리하고, 거기에 연구자가 발견한 새로운 사실을 첨가하여 완성한다.
미술작품도 마찬가지다. 고흐도 밀레의 많은 작품을 나름의 기법으로 해석하여 그렸다. 듀샹은 <모나리자> 그림엽서에 수염을 그려 넣고 L.H.O.O.Q.라는 제목을 붙여 자신의 작품을 만들었다. 엘리엇의 장시 <황무지>에도 많은 인용과 각주가 붙어있다.
우선 차용과 관련된 용어를 사전을 참고하여 정리해보자. 위작(僞作) 또는 위조(僞造)는 원작자의 승낙 없이, 똑같이 만들어 놓고 철저히 숨기는 짝퉁을 말한다. 표절(剽竊)은 '저작권법상 보호되는 타인의 저작, 연구 착상 및 아이디어나 가설, 이론 등 연구 결과 등을 정당한 승인 혹은 인용 없이 사용하는 행위'다.
레플리카(replica)는 원작자가 자기 작품을 복제하여 보존하려는 뜻에서 손수 만든 사본이다. 모작(模作), 모사(模寫), 모각(模刻)은 남의 작품을 본떠서 제작하는 것이다. 동양화를 배울 때에 제자들은 스승이 그려준 그림을 보고 그리면서 배운다. 대작(代作)은 다른 사람에게 간단한 스케치나 제작 방법 설명을 해 준 후 나머지를 완성하게 하는 것이다. 대가들이 흔히 조수들을 두고 대작하게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패러디(parody)는 원작이 무엇인지 분명히 밝히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첨가하여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반면에 패스티시(pastiche)는 ‘풍자나 희극적인 요소 등 나름의 목적의식이 없이 단순히 다른 작품의 요소들을 나열하는 것’이며, 특히 소설에서는 원작의 설정과 인물들을 활용하여, 다른 소설가가 새로운 이야기를 쓰는 경우도 있다.
용인되는 차용은 패러디, 패스티시, 대작을, 허락되지 않는 차용은 위조, 위작, 표절을 들 수 있다. 일반적으로 누가 봐도 다른 사람의 그림을 보고 응용하여 그린 것이라고 인정된다면 특별한 각주없이 허용될 수 있을 것이다. 출처를 분명히 밝히고 그것을 모작, 모사, 모각했다면 그것 또한 용인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남의 창작물을 마치 자기 것인 양할 때가 문제가 된다.
스페인 출신 벨라스케스(Diego Rodríguez de Silva y Velázquez, 1599~1660)의 <시녀들(Las Meninas, 1656, 318x276cm, 유화, 프라도미술관)>은 많은 예술가가 나름대로 다양한 방법으로 해석하여 그렸다. 피카소는 수십 차례 피카소 고유 스타일로 <시녀들>을 그렸고 그중에 대표적인 것은 1957년에 그린 것으로 피카소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다. 고야, 마네, 달리 등의 화가들도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재해석해서 그렸다. 특히 달리가 그린 <시녀들>을 보면, 구성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과 유사하나, 사람들 대신 큰 숫자를 그려 넣었다. 예를 들면 마르가리타 공주는 8이라는 숫자로 대체되었고, 개도 2라는 숫자로 표시했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차용하여 그림을 그린 화가들뿐만 아니라, 이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작품을 제작한 음악가와 소설가도 있다. 박민규의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못생긴 여자와 잘생긴 남자의 사랑 이야기다. 벨라스케스의 그림 <시녀들>을 보고 영감을 얻어 작곡했다는 모리스 라벨의 피아노곡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라는 춤곡(파반느)을 들으면서, 벨라스케스의 그림에 있는 못생긴 난쟁이 하녀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이처럼 좋은 작품은, 후세에도 오랫동안 또 다른 명작의 원천이 된다.
글을 쓰다 보면 어디선가 읽은 것 같은데 출처를 찾을 수 없어 원고 마감일이 다가와 급한 김에 어물쩍 넘어가 버리는 경우가 있다. 대학원생들을 지도하다 보면 성격상 꼼꼼하게 챙기는 학생은 그런 실수를 하지 않으나 덤벙대는 성격의 경우 그런 사례를 종종 발견하게 된다. 요즘은 논문의 경우 ‘카피킬러’ 같은 표절 검사 프로그램으로 표절률과 인용률을 검사하게 되어 있어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우리가 죽는 그 날까지 배움을 그칠 수 없는 것은, 선진 들의 우수한 것을 배우고 이를 응용하여 자신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남의 것을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자기 것인 양 차용했다면, 제작자 본인도 마음이 개운치만은 않을 것이다. 어차피 나중에는 밝혀질 사실이 아니겠는가. 남의 잘못을 찾는 데 혈안이 되기보다 더 좋은 자신의 작품을 내놓기 위해 혈안이 되었으면 좋겠다. 예술계나 정치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