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의 도전 끝에 가는 카라코람 실크로드 여행이 시작되는 날이다. 밤새 잠을 설치고 새벽 4시에 일어나 간단히 요기를 하고 5시 10분 아내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떠난다. 그런데 공항버스 승차장에 도착해 보니 여권을 책상 위에 놓고 온 것이다. 황급히 아내에게 전화를 해 여권을 가지고 나오라고 부탁하고 집으로 뛰어 간다. 다행히도 공항버스 승차장이 집에서 7~8분 거리로 가까워 중간에서 아내를 만나 여권을 건네받은 후 다시 범계공항 승차장으로 가 5시 30분 인천공항으로 출발하는 공항버스에 오른다.
휴일인 토요일 새벽이라 도로가 막히지 않아 6시 20분 경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에 도착한다. 길잡이와 약속한 곳으로 가니 이미 두 번이나 만나 얼굴이 익숙한 길잡이(타타)와 여러 동행자들이 타이항공 데스크 앞에 줄서서 탑승수속을 기다리고 있다. 나도 줄을 서서 기다리며 길잡이에게 손을 흔들어 공항 도착신고를 하니 파키스탄 비자와 항공 스케줄이 인쇄된 종이를 건넨다. 탑승수속을 마치고 보딩패스를 받아 든 뒤 부치는 짐에 대한 보안검색을 위해 잠시 데스크 옆 의자에 앉아 대기하는데 누군가 내 옆으로 와 인사를 한다. 파키스탄에서 비슈케크까지 방을 함께 쓸 룸메이트라며 이번 여행 단톡 방에서 얼굴을 보고 알았다고 한다. 울산에서 온 김 여행(가명)씨는 나보다 5살이 적은 분으로 함께 여행하는 동안 형님으로 부르겠다고 한다. 이번 여행은 원래 계획에 없었으나 당초 1월에 계획했던 중남미여행은 본인 건강문제로 취소하고 이번 여행을 대신 신청해 가게 되었는데 키르기스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은 몇년전 이미 가 봤기에 비슈케크에서 귀국한다고 한다.
보안검사와 출국신고를 마치고 130번 탑승구로 가니 7시 20분. 아직도 두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늘 겪는 일이지만 쇼핑을 즐기지 않는 나는 탑승구 앞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제일 지루하다. 사전 모임 때 쿤자랍 패스에서 중국 국경을 넘을 때 책에 대한 검색, 특히 지도가 들어 있는 책 등에 대한 검색이 심해 지도가 들어 있을 경우 모든 짐 검색을 하니 사전모임 때 배포한 책을 비롯해 가급적 책은 가져오지 말라는 주의사항을 들어 여행 전 준비했던 각 여행지마다 지도와 참고자료들을 모두 집에 두고 와 탑승구 주위를 배회한 일 외에는 따로 할 일이 없다.
09시 5분 방콕 행 타이항공 TG657 탑승을 시작으로 30일 간의 카라코람 실크로드 여행의 막이 오른다. 9시 35분에 출발 예정이던 항공기는 무슨 사정인지 30분 정도 늦게 활주로를 이륙한다. 승객 중 절반 이상이 한국인인데도 한국인 승무원도 없고 한국어 안내방송도 없다. 작년에 북유럽여행 시 터키항공을 이용할 땐 한국인 승무원과 한국어 안내방송이 있어 나름대로 편리했었는데. 이륙한지 한 시간 쯤 지나자 기내식을 주는데 국적기에서 주는 기내식 보단 좀 질이 떨어지는 느낌이나 아침을 제대로 못 먹은 탓에 그런대로 맛있게 모두 먹었다. 기내에서 기내식 한 번 먹고 손바닥만한 크기의 액정화면에서 영화 2편을 보고 나니 5시간30분 비행 끝에 현지시간 오후 1시40분 경 방콕 수완나폼 공항에 도착한다. 2025년 확장공사를 마친 수완나폼공항은 과거보다 훨씬 복잡해 보인다. 길잡이를 따라 환승 탑승구를 찾아가는데 라호르행 비행기 탑승시간이 19시50분으로 아직 6시간 전이라 공항 보딩 안내판에는 탑승구조차 뜨지 않는다. 예상되는 탑승구 앞으로 가니 넓직한 대기실에 편안한 소파와 의자들의 많은데 대기 승객들은 별로 보이지 않고 탑승구 앞 면세점도 한가하다. 소파에 앉아 쉬는 것도 한 두 시간이지 정말 지루해 배낭을 일행들에게 맡겨 놓고 탑승구 주변을 배회한다. 난 정말이지 환승을 위해 장시간 기다리는 일이 여행에서 제일 싫어 개인적으로 여행 할 땐 좀 비싸더라도 직항을 이용한다. 우리나라에서 파키스탄 라호르로 가는 비행편이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두 세 시간도 아니고 6시간을 탑승구 앞에서 낭비하는 것은 참기 어려운 고통이다.
길고 지루한 기다림 끝에 현지시간 19시 20분(한국시간 21시 20분) 라호르 행 타이항공 TG345 탑승을 시작, 30분 후인 19시 50분 정시에 수와나폼 공항을 이륙한다. 방콕에서 라호르까지는 약 4시간 40분이 소요되는데 역시 이륙한지 한 시간이 좀 지나자 승무원들이 저녁식사로 기내식을 나눠준다. 기내식을 먹고 나니 졸리다. 한국에서 늘 10시반~11시면 잠들던 내 오랜 습관은 여지없이 여기서도 그대로인가 보다. 잠시 눈을 붙인 것 같은데 라호르공항에 착륙한다고 옆 좌석 일행이 날 깨운다. 한국보다 3시간이 늦은 22시 30분(한국시간 새벽 1시 30분) 경 라호르 공항에 착륙한다. 라호르의 공항 이름은 알라마 이크발 국제공항(Allama Iqbal International Airport, IATA 코드: LHE)이다. 이 공항은 국내선과 국제선 항공편을 모두 편리하게 제공하는 주요 관문으로, 라호르시 도심 동쪽 약 15km 떨어진 곳에 있는 국제공항인데 파키스탄 건국에 큰 역할을 한 시인이자 사상가인 알라마 무하마드 이크발(Allama. Muhammad Iqbal)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캐리어를 찾아 공항 밖으로 나오니 국제공항이라고는 하지만 규모나 시설면에서 우리나라 청주국제공항보다 열악한 것 같다. 공항 밖으로 나오니 파키스탄 현지 여행사 직원이 피켓을 들고 우리를 맞이한다. 그들을 따라 15인승 벤츠 소형버스 두 대에 11명씩 나눠 타고 20여 분을 달려 호텔에 도착하니 현지시간 밤 12시가 넘었다. 이 소형버스는 이곳 라호르에서 파키스탄과 중국 국경지역인 소스트(Sost)까지 이용할 차량이라고 길잡이는 소개한다. 방을 배정받아 씻자마자 침대에 눕는다. 집에서 나와 이곳까지 10시간이 넘는 비행과 지루한 기다림, 정말 길고 긴 하루 여정이었다.(Luxus Grand Hotel)
<파키스탄 개요>
다른 -스탄 계열의 나라들은 모두 민족명에서 딴 것인 데 반해 파키스탄이란 이름은 파키스탄 지역들의 이니셜에서 따온 합성어로 파키스탄의 독립운동가 초드리 라흐마트 알리가 옥스퍼드대학교 재학 중 고안한 것이다. 인도 서쪽에 무슬림이 다수 거주하는 인더스 강 유역 5개 지역 펀자브(Punjab), 아프가니아(Afghania), 카슈미르(Kashmir), 신드(Sindh), 발루치스탄(Baluchistan)에서 글자를 따와 PAKSTAN을 만들고, 발음의 용이성을 위해 중간에 i를 추가한 것이다. pak(پاک)는 우르두어로 '신성한', '청정한'이란 뜻으로 페르시아어로 같은 뜻인 pāk(پاک)에서 온 차용어이다. 또한 stan(ستان)은 페르시아어로 땅을 뜻하는 접미사이다. 따라서 Pakistan(پاکستان)이라고 하면 '정결한 땅', '신성한 나라', '청정한 나라'라는 뜻도 된다. 'Pakistan'이라는 단어가 통째로 페르시아어 단어인 셈이다. 라흐마트 알리는 이것을 노리고 절묘하게 이름을 지은 것으로 보인다. 근대 이전의 페르시아의 막강한 영향력으로 서남아시아, 중앙아시아에서 쓰이는 언어에는 동아시아의 한문이나 동남아시아의 팔리어처럼 페르시아어에서 차용한 단어가 많다.
지리적으로 파키스탄은 크게 동부 인더스강 유역 평야지대, 서부 발루치스탄고원, 북부 고산지대로 나눌 수 있다. 신드와 펀자브주가 속하는 동부 인더스강 유역은 지대가 낮으며, 파키스탄 인구의 2/3 정도가 살고 있어 파키스탄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높은 곳이다. 인더스강 동쪽으로 인도 라자스탄과의 접경지역은 타르 사막에 속한다. 발루치스탄과 카이베르파크툰크와 지역의 발루치스탄 고원지대는 술레이만 산맥, 브라후이 산맥, 키르타르 산맥 등으로 동부 인더스강 평원과 분리되어 있으며, 평균고도가 높고 매우 건조한 기후를 띈다. 아자드 카슈미르, 길기트 발티스탄, 카이베르파크툰크와의 북쪽 일부에 해당하는 북부 고산지대는 카라코룸산맥, 힌두쿠시산맥, 히말라야산맥이 모여 있는 곳으로, K2와 같은 매우 높은 산들이 즐비하며 기후가 서늘하고 일부 고산지대에는 빙하가 형성되어 있다. 이렇듯 파키스탄이 인더스강 유역과 나머지 지역이 뚜렷하게 분리된 지리적 특성을 가지는 이유는 인도 판에 속하는 인더스 강 유역 지대와 유라시아 판에 속하는 나머지 지역들이 충돌하여 판의 경계에 산맥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파키스탄은 지진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기후는 라호르부터 남쪽으로 대부분이 건조기후에 속하며 특히 동남부의 타르 사막과 발루치스탄의 카란(Kharan) 사막 지역은 연 평균 강수량 250mm 미만의 사막지대이다. 다만 인더스 강 유역은 6월부터 9월까지 몬순이 발생하여 때때로 홍수가 나기도 한다.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통틀어 치안이 두 번째로 나쁘다. 심지어 치안수준이 상당히 나쁜 편인 인도나 필리핀보다도 더 좋지 않다. 각종 인종, 민족, 종교 갈등으로 인한 테러가 빈발하고 있으며 파키스탄 마피아들이 아프가니스탄 군벌과 손을 잡고 황금의 초승달 지역에서 각종 마약을 밀수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 이어 그 흉악한 탈레반의 근거지가 되는 나라이기도 하다. 또한 발루치스탄은 독립운동으로 인한 테러로 아주 악명 높다.
2023년 기준 인구 2억 4000만 중 97%가 무슬림이다. 인도네시아에 이어 세계에서 2번째로 무슬림이 많은 국가이며, 원래 인도에 이어 3위였지만 파키스탄의 인구증가율이 워낙 무시무시해서 최근 인도를 추월했다. 거기다 곧 인도네시아도 제치고 세계 최대 이슬람국가가 될 것이 확실한 상황. 국민 대부분이 이슬람 내에서도 하나피 법학파에 속한 수니파(자세힌 데오반드파)이며(80~95%) 시아파도 일부 존재한다(5~20%). 수피즘도 널리 퍼져있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것과 별도로 이슬람 근본주의와 남존여비적인 악습이 곳곳에 만연하고 있다.
파키스탄은 중앙집권이나 지방자치제도가 모두 미약하고 토지개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 현대에 이르렀기 때문에 “카지(Qazi)”라고 불리는 지방 지주들의 힘이 아직까지도 강한 편이다. 법 체계 또한 비효율적인 데다가 부패 문제도 있어서 간단한 재판조차 몇 년씩 걸리는 경우가 파다해 주민들은 멀리 있는 법보다는 가까이 있는 샤리아 율법으로 분쟁을 해결하는 일이 훨씬 편리하기 때문에 이를 뿌리 뽑기가 힘들다. 파키스탄 내에서도 이슬람 광신의 문제가 심각한 곳이 대개 시골 지역이나 북부 지역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럴 듯하다.
파키스탄의 사법부는 종교적으로 이슬람에 편향적이고 민주주의는 갖다버린 극도의 불공정한 판결을 내리기로 악명높다. 무엇보다 파키스탄은 신성모독법을 여전히 유지하며 이슬람에 대한 비판이나 비난 자체를 금지하고 처벌하고 있다. 2011년에는 '동생이 지은 죄를 대신 갚는다'는 명목으로 14명에게 강간을 당한 여성이 법원에 고소했지만 끝내 무죄 판결이 나기도 했다. 참고로 한국에도 번역되어 나온 무크타르 마이란 여성이 쓴 <무크타르 마이의 고백>이란 책에서 보면 지방관습에 따르면 성폭행 피해자는 자살하는 것이 불문율이며, 이 여성의 행동은 파격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으나 끝내 범인들이 처벌을 받지 않아 이 여성은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