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타락과 우리의 죄로부터 구하기 위해 희생양이 되겠다고 자청하셨다.
아담의 범법은 두 가지 사망, 즉 영적 사망과 육체적 사망을 가져왔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하나님 면전에서 쫓겨났으며, 필멸의 상태에 놓이게 되어 육체의 모든 질병을 앓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다시 하나님 면전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깨뜨린 율법에 대한 보상이 있어야만 했습니다. 공의는 그 보상을 요구했습니다.
잘못한 사람이 대가를 치르는 것, 즉 자신의 잘못에 대한 죗값을 치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공평합니다. 따라서 아담이 율법을 범했을 때, 공의는 다른 누군가가 아닌 그가 죄를 보상하고 목숨으로 대가를 치르기를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아담은 율법을 깨뜨리면서 저주를 받았으며, 저주에 놓였기 때문에 자신이 한 일을 속죄할 수도 되돌릴 수도 없었습니다. 그의 자녀도 그 저주에 놓였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저주를 받지 않은 사람이 이 원죄를 속죄해야 했습니다. 더욱이 우리 모두가 이 저주를 받았기 때문에 우리도 우리 죄를 속죄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무죄한 그분의 독생자를 보내어 아담의 범법뿐만 아니라 우리 죄를 속죄하여 공의가 요구하는 바를 충족하셔야만 했습니다. 이에 따라 구주께서는 죄에 대한 희생양이 되겠다고 자청하셨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써 아담의 범법과 우리 죄를 스스로 짊어지셨으며, 그리하여 우리가 회개한다는 조건으로 우리를 타락에서뿐 아니라 우리 죄에서도 구속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을 가르치는 것은 우리의 의무입니다. 그분은 왜 오셨습니까? 그분은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습니까? 우리는 어떻게 유익을 얻습니까? 그렇게 하기 위해 그분은 어떤 대가를 치르셨습니까? 이를 위해 그분은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의 목숨 이상을 내어놓으셨습니다! 그분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것 외에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그분은 왜 그곳에서 못 박히셨습니까? 그분은 피를 흘림으로써, 우리가 받을 수 있는 가장 끔찍한 형벌인 하나님 면전에서 추방되는 일에서 우리를 구속하시려고, 십자가에서 못 박히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다시 데려오고 우리의 몸과 영이 재결합하도록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그러한 특권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믿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기만 한다면 죄를 사함받고 그 대가를 치르지 않도록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습니다. 그분이 그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
그분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분은 돌아가시지 않아도 되었고 거절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분은 자청해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계명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분은 그 고통이 어떨지 아셨지만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기꺼이 그러고자 하셨습니다. ……
구주의 손과 발에 못을 박은 것은 그분이 겪으신 고통의 극히 일부에 불과했습니다. 우리는 그분이 십자가에 못 박혀 계실 때 가장 큰 고통을 겪으셨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십자가에서 그와 같은 고통을 겪은 사람들은 매우 많았습니다. 따라서 그 점만 생각한다면 그분이 겪으신 고통은 십자가에 달린 다른 사람들이 겪은 고통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분이 겪으신 큰 고통은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이 교회의 모든 회원이 다음 사실을 명심했으면 합니다. 그분은 십자가에 가시기 훨씬 전에 이미 큰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경전에 나오는 것처럼, 그분 몸의 모든 땀구멍에서 피가 나왔습니다. 그분이 극심한 영혼의 고뇌 가운데 아버지께 부르짖으신 것은 겟세마네 동산에서였습니다. 그 큰 고통은 그분의 손과 발에 박힌 못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이 일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제게 묻지는 마십시오. 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그분이 어떤 식으로든 그 엄청난 형벌을 스스로 짊어지셨다는 것뿐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범법을 짊어지셨고 고통으로 그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제가 헤아릴 수 없다고 말씀드린 방식으로 구주께서 모든 사람의 짐, 즉 고통을 한꺼번에 짊어지시는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저는 손과 발에 못이 박힌 그분의 고통은 그분께 고통의 고뇌를 안겨 준 원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분은 고뇌하며 아버지께 이렇게 부르짖으셨습니다.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그 잔은 물릴 수 없었습니다.[마태복음 26:42, 마가복음 14:36, 누가복음 22:42 참조] 이 점에 관해 주님이 하신 말씀을 한두 소절만 읽어 드리겠습니다.
“이는 보라, 만일 그들이 회개하면, 고난을 겪지 않게 하려고 나 하나님이 모두를 위하여 이러한 일을 겪었음이니라.
그러나 만일 그들이 회개하지 아니할진대, 그들은 나처럼 고난을 겪어야만 하나니,
그 고난은 만유 가운데 가장 큰 자 곧 하나님인 나 자신을 고통으로 말미암아 떨게 하였고 모든 구멍에서 피를 쏟게 하였으며, 육체와 영이 모두 고난을 겪게 하여 - 내가 그 쓴 잔을 마시지 않고 물러서려 하게 하였느니라 -
그러할지라도 아버지께 영광이 있을지어다. 나는 마셨고 사람의 자녀들을 위한 나의 준비를 마쳤느니라.”[교리와 성약 19:16~19]
이 구절을 읽을 때 저는 겸손해집니다. 주님은 인류와 세상을 너무나도 사랑하셨기 때문에 어떠한 인간도 짊어질 수 없는 짐을 대신 지시고 누구도 치를 수 없는 끔찍한 대가를 기꺼이 치르셨고, 그리하여 우리가 그 고통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하셨습니다.11
하나님의 아들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내려가서 그 대가를 치르겠습니다. 제가 구속주가 되어 인간을 아담의 범법으로부터 구속하겠습니다. 제가 세상의 죄를 짊어지겠습니다. 또 회개하는 자를 모두 그의 죄로부터 구속하거나 구원하겠습니다.”12
이렇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길을 따라 걷던 어떤 사람이 우연히 아주 깊고 어두운 구덩이에 빠졌지만 기어올라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이 곤경에서 어떻게 스스로 빠져나올 수 있을까요? 아무리 혼자 애를 쓰더라도 그는 스스로 빠져나올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 구덩이 속에는 탈출할 방도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그가 소리를 질러 도움을 청하자 어떤 친절한 사람이 그의 구조 요청을 듣고 서둘러 도와주러 와서 사다리를 내려 구덩이 속에 빠진 사람이 다시 지면으로 올라올 수 있게 해 줍니다. 이것은 아담이 금단의 열매를 먹었을 때 그와 그의 후손이 처하게 된 상황과 똑같은 것이었습니다. 모두가 함께 구덩이에 빠졌기 때문에 누구도 지면으로 올라가 다른 사람을 구할 수가 없습니다. 그 구덩이는 주님 면전에서 추방되는 것이자 육체적 사망, 곧 육체적 소멸을 의미했습니다. 모두가 사망을 겪어야 했으며 아무도 빠져나올 방편을 마련해 줄 수가 없었습니다.13
그 구덩이 밖에 계신 구주께서 오셔서 사다리를 내려 주십니다. 그분은 구덩이 안으로 내려오셔서 우리가 그 사다리를 이용해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게 도와주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무한한 자비로 그분 자녀의 외침을 듣고 빠져나올 방편을 마련해 주시려고 사망을 겪지 않아도 되고 죄도 없으신 그분의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 독생자께서는 무한한 속죄와 영원한 복음을 통해 이 일을 행하셨습니다.
우리는 사랑과 순종으로 우리 마음속에 [구주]의 크고 온화한 자비에 대해 감사하는 느낌이 가득 차게 해야 합니다. 그분이 하신 일을 생각해서라도 우리는 결코 그분을 실망시켜서는 안 됩니다. 그분은 값을 치르고 우리를 사셨습니다. 그분은 그분이 받으신 크나큰 고통과 십자가에서 희생 제물로 흘리신 피로 대가를 치름으로써 우리를 사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