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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난 시간에 예수님의 새언약의 시작을 알리는 마태복음을 기록한 마태의 이름에 관해 살펴보았습니다. 마태라는 이름은 "여호와가 선물을 주다" 또는 "여호와를 선물로 준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것이 마태의 이름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그래서 영생하는 음료와 영생하는 떡의 실체이신 예수님이 갑자기 툭 튀어 나온것이 아니고 구약에서부터 말해오던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인것을 연결해주고 있는 위치가 마태복음이라고 했습니다.
오늘부터는 마태복음의 본문으로 들어가겠습니다. ( 1장 1절 읽고 )
마태복음 1장 1절에 보시면 아브라함이 나오고 다윗이 나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등장합니다. 영생하는 음료와 영생하는 떡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이야기하면서 왜? 아브라함의 이름과 다윗의 이름이 등장하는지 궁금하지 않을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에 대해 먼저 들어가기전에 1장 1절을 간단히 원문으로 설명하고 아브라함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비블로스 게네시스 예수스 크리스도 / 휘오스 다비드 휘오스 아브라함
책 탄생 예수 그리스도 / 아들 다윗 아들 아브라함
라 세계 예수 그리스도 / 아들 다윗 ( ) 아브라함
주격
자손이라고 번역해 놓은 것은 정확한 번역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4장에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라.. 아들과 같은 단어입니다. 자손이라고 번역한것은 아들은 직계이지만 자손은 직계는 아니지만 혈통 속에 있기 때문에 그렇게 번역을 한것 같은데요. 먼저 이 단어의 의미를 알려면 히브리어로 정확히 알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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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28: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시 127: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왕상 8:19 그러나 너는 그 [성전을] 건축하지 못할 것이요 네 몸에서 낳을 네 아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리라 하시더니
@Be(1121, 벤) 아들, 아이, 손자 - 외적인 아들
창 3: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창 4:25 아담이 다시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창 16:11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잉태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rB"(1247, 바르) 아들 - 내적인 아들
단 3:25 왕이 또 말하여 가로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네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
그러니까 여기서 자손이라고 번역한 휘오스라는 단어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물리적인 혈통의 아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을 짓기 위해서 필요한 외적인 아들과 내적인 아들 이 세가지의 의미를 함께 지니고 있는것이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 성전,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먼저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외적 아들입니다. 그 눈에 보이는 외적아들을 통해 내 안에 내적인 아들을 만들어 가시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내 안에 내적인 아들이 만들어지면 눈에 보이는 외적인 아들은 어떻게 해야하는가? 죽이는것이다. 그래서 이삭, 예수, 성경 이 모든 눈에 보이는 외적인 아들은 반드시 죽어야만 하는것이다.
그래서 1장 1절을 먼저 정리하자면 아브라함의 아들은 혈통적인 이삭을 말하는것이 아니고 눈에 보이는 외적아들 이삭을 통해 아브라함안에 내적인 아들을 말하는것이고, 다윗도 다윗안에 가졌던 아들. 그 내면의 그 아들을 가리켜 "그리스도 예수"라고 말한다.
1078 gevnesi" 1074와 동일어에서 유래;‘출생’, 상징적으로 ‘본성’, 세대, 계보
1096 givnomai 기본동사의 연장형과 중간태;(‘발생하게’)‘되는 원인이 되다’, 즉 (재귀형)‘되다’(‘
이 단어의 원래 뿌리는 "되다, 되어지다, 원인이 되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뒤에 나오는 단어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영어의 바이블과 같은 뜻인 비블로스입니다.
976 bivblo" 본래적 의미로는 파피루스 식물의 내부 ‘껍질’, 즉 (함축적으로)‘종이’ 또는 ‘책’의 ‘두루마리’,
이 비블로스 책이라는 단어는 요한계시록으로 가면 어떤 책을 의미하냐면 "생명책"을 의미합니다.
1장 1절을 원문그대로 다시 번역을 하면 이렇습니다.
아브라함이 내면에 낳은 아들, 다윗의 내면에 낳은 아들, 그리스도 예수가 되어지는 책이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내면으로 낳은 아들, 다윗의 내면으로 낳은 아들. 그 아들의 이름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입니다. 그 자신들의 내면에 낳아진 그 아들 그리스도예수가 되어진것 처럼 이제 우리들도 아브라함과 다윗에 그들안에 가졌던 그리스도 예수를 가져야하는 것입니다. 그럴때 그 책이 생명책이 되는것입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를 낳는 것, 여호와를 선물로 주는 책이 마태복음이니까 그리스도, 여호와, 성령 이 모든것이 다 같은 의미인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내 안에 있으면 나는 성령이 거하는 성전이 되는 것이며, 그 여호와가 내 안에 있는 그 상태를 가리켜서 임마누엘이라고 말하는 것이며, 다 같은 의미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내면에 낳은 아들, 그리스도 예수, 다윗이 내면에 낳은 아들 그리스도 예수를 이제 너희들 안에서도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내 안에 그리스도예수가 어떻게 태어 나는가를 설명해 놓은것이 바로 14대 14대 14대 족보의 이름으로 해서 16절에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이렇게 설명하고 있는것입니다. 이것이 마태복음 1장 1절의 핵심입니다.
자 그러면 아브라함은 어떤 사람인가요?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언약을 위해서 하나님이 부르신 사람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언약의 시작입니다. 창세기 1장부터 11장의 결론은 결국은 하나님이 인간들을 흩어버릴수 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이 누구에서부터 시작되는가 하면 바로 아브라함부터 시작되는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한 인간, 아브라함에게 무엇으로 개입을 하는고보니 “언약”이라는 것으로 개입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언약을 통해 하나님이 인간역사에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창세기때 설명을 하겠지만 인간들이 모여서 무엇을 지었습니까? 바벨탑을 지었습니다. 그 바벨탑을 무엇으로 지었나요? 벽돌. 그 벽돌은 어떤 벽돌이지요? 흙으로 구어서 만든 벽돌.. 흙은 먼지, 티끌, 그래서 이 흙을 양식으로 하면 사는 자가 누구입니까? 뱀의 양식입니다.
창세기 2장에서 뱀이 저주받을때 흙을 먹고 살것이라고 저주받았습니다. 인간들이 바벨탑을 흙에서 나온 벽돌로 만든것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이 쌓은 그 바벨탑이 바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먼지가 되는것입니다. 먼지는 아무리 많이 모이고 태산을 이룬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무가치하다는 것입니다. 클수록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작지만 가치있는 것이 얼마나 많나요? 다이아몬드, 금, 진주, . 그러나 사람의 생각은 항상, 크다, 작다, 좋다, 나쁘다. 눈에 보이는 외형으로 가치를 결정하기 때문에 모여지면 좋은 것 같지만 아파르는, 먼지는, 흙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세가지를 약속합니다. 씨, 땅, 복. 하지만 오늘은 씨에 관해서만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창세기 15장에 보시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네 몸에서 날 자가 큰 민족을 이루겠다는 씨의 언약입니다. 그게 누구입니까? 이삭입니다. 사람의 몸에서는 많은 것들이 나옵니다. 자신의 업적도 나오고, 눈에 보이는 명성과 건강, 여러가지가 나오지만 가장 소중한 것은 자기 몸에서 씨가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지막을 항상 무엇으로 결론내리나요? 자식을 통해서 결론짓습니다. 회사나 건물, 소유보다는 자식을 통해 결정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인간에게 있어서 나타나는 하나의 비유적인 현상을 통해 하나님 자기 자신의 소중한 진리를 인간적인 비유를 통해 설명하고 있는것입니다
창18:10 그가 가라사대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정녕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문에서 들었더라 18:11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이 많아 늙었고 사라의 경수는 끊어졌는지라
그래서 이삭이라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이 사실로 나타났을 때 보여진 것이 육신의 아들 이삭이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엄밀한 말로 하면 이삭은 아브라함의 씨가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께 아브람과 사라의 출산의 가능성을 완전히 끊어 버리셨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몸에서 이삭이 태어난 것은 구약의 의미로 따지만 하나님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하신 씨가 단순히 이삭으로 보면 안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창15: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15: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하나님이 여기에서는 별과 같이 수많은 자손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창22:16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22: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처음 15장에서는 별처럼 셀수없는 수많은 자손을 주신다고 약속했는데 22장에서는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같이 씨를 준다고 하셨습니다. 왜 이렇게 달라졌을까요? 우리의 관점으로 이 말씀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당연히 눈에 보이는 육신의 자녀, 혈통의 자녀들이 수없이 많아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가문을 이어 갈수 있는 육신의 자녀가 많아 질것이라고 이야기 할수있지만 성경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성경에서 별의 의미는 진리를 깨달은 자들을 의미하며, 모래의 의미는 비진리를 의미합니다.
마7: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7: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7: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반석위에 집을 지은 사람과 모래위에 집을 지은 사람이 등장하는데요 모래 위에 세운 사람의 집은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모래는 비진리를 의미합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처음에는 별처럼 수많은 자손을 준다고 약속하시고, 왜 또 22장에서는 별처럼 수많은 자손과 바다의 모래 같은 자손들이 많아 질것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그 답은 15장과 22장 사이에 어떤 일이 생겨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16장입니다. 거기에서 바로 이스마엘이 태어납니다. 성경에서 이스마엘은 율법을 의미하며, 이삭은 진리를 의미합니다.
쉽게 이야기 하자면 진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말하지만 비진리의 사람들, 진리를 모르는 사람들도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그들중에는 별처럼 진리를 말하는 자손이 있는가 하면, 모래처럼 비 진리의 상태에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말하는 자손들이 생겨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진리를 모르더라도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엄청 많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진리를 말할수 있는 별이 될 것이냐? 아니면 진리는 알지 못하면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말하고 있는 모래들이 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하신 그 언약의 모형으로 구약에서 보여주신 것이 누구입니까? 이삭입니다. 이삭은 신약에서 예수를 상징하는 모형입니다. 이삭 대신 수풀에 걸린 양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양은 예수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시작이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 되었다면 다윗은 그 언약의 성취를 의미합니다. 다윗은 성취입니다. 그러나 완전한 성취가 아니고 외형적인 성취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과 언약을 세우실때 그의 집을 영원히 견고하게 하시겠다고 약속을 하십니다.
삼하 7:11 전에 내가 사사를 명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않게 하고 너를 모든 대적에게서 벗어나 평안케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이루고 7:12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7:13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언약은 집을 견고하게 하는 것입니다. 집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거주하는것을 의미합니다. 다윗이 사는 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하는 집을 의미합니다. 그것을 외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솔로몬이 완성한 건물성전 인것입니다. 비록 눈에 보이는 성전을 완성하는 것은 솔로몬이지만 이 눈에 보이는 건물성전도 내적인 성전의 완성을 설명하기 위해 우리의 눈으로 완성되어지는 외형적인 성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통해 약속하신 그 씨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 육체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의 시작이며, 다윗은 그 언약의 성취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으로 완성되어지는 것입니다.
구약으로 말하자면 아브라함으로 시작해서 다윗으로 완성하는 것이고 신약으로 말하자면 예수로 시작해서 그리스도로 완성하는 의미입니다. 구약의 아브라함과 다윗이 그들의 내면에 내적인 아들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허상입니다. 그 허상의 실체가 바로 신약에 그리스도 예수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가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본 받을수 있도록 외적인 아들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고, 그 외적인 아들을 통해 내적인 아들 그리스도 예수를 잉태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상태를 가리켜 생명책에 기록되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고전 3:2 너희가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3:3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
계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