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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TV 수사 드라마 ‘형사 25시’ 단막 극본
(1989년 8월 1일 방송)
목사님의 증언 (50분)
[극본] 이봉원 / [연출] 이민홍
유튜브에서 보기 → https://youtu.be/yojA4r_NsvE
(작품 개요)
노상강도의 살인 현장을 우연히 목격한 최 목사의 결정적인 증언에 따라서, 형사반은 전과자 한 명을 붙잡아 조사하는 중에 진짜 범인이 다른 경찰서에 체포됐음을 알게 된다.
이 일로 인해, 개척교회를 맡아 목회 활동을 하고 있던 최 목사는 신자들한테서 불신의 눈총을 받게 되고, 그가 한 증언으로 피해를 입은 전과자는 목사를 찾아가 행패를 부린다. 이런 사실을 안 형사반장은 저명한 범죄심리학자를 찾아가 자문하고, 그가 일러 준 대로 하나의 실험을 하게 된다. 그것은 교회 신자들 앞에서 느닷없이 공포스런 장면을 연출한 뒤, 신자들이 목격한 것들을 증언 형식으로 진술 받는 것이다.
증언을 분석한 결과,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아주 짧은 시간 목격한 내용은 나중에 그 일을 떠올릴 때 본의 아니게 많은 부분들이 왜곡된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마침내 최 목사는 거짓 증언자의 오명을 씻게 된다.
(출연자들)
젊은 형사반장, 이 형사, 장 형사, 한 형사, 오 순경 (여), 정 순경, 최 목사 (168Cm쯤), 장 교수, 윤희, 배종일 (177Cm쯤), 범인 (165Cm쯤), 민 대리, 할머니, 부인네, 공사장 감독, 미용사, 경관, 주인여자, 간호사, 청년신자1, 청년신자2, 청년신자3, 부녀신자1, 부녀신자2, 미스 홍, 목사 부인, 배종일 처, 순경, 밤범대원, 청소원, 그밖에 교회 신자 다수.
S# 1 (F.I) ㅇㅇ 교회 외경
(주택가에 있는 작은 개척교회. 최 목사의 설교 소리 들린다.)
(소리-목사): 오늘의 하나님 말씀은 신명기 19장 15절부터 21절까지입니다.
S# 2 교회 안 예배실
(평일 저녁 예배가 최 목사의 집전으로 거행되고 있다. 목사, 자신의 잘못에 대한 통회의 심정으로 성경을 낭독하고 있다.)
목사: 어떤 나쁜 짓이든 어떤 잘못이든 한 사람의 증언만으로는 증언이 성립되지 않는다. 어떤 잘못을 저질렀든지 두세 사람의 증언이 있어야 고소할 수 있다. 남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해로운 증언을 하는 자가 나타날 경우에는, 소송 중인 두 당사자는 야훼께로 나와 사제들과 그때에 일보는 재판관들에게 재판을 받아야 한다. 재판관들은 잘 조사해 보고 그 증인이 동족에게 거짓 증언을 한 것이 드러나면···, (잠시 멈췄다가) 그가 동족에게 하려고 마음먹었던 대로 그에게 갚아 주어야 한다. 그런 자는 애처롭게 여기지 말라. 목숨은 목숨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갚아라.
(순간 문을 박차고 들어서는 험악한 얼굴의 남자, 배종일이다. 오십여 명의 신자들, 놀라서 일제히 뒤돌아본다. 최 목사, 그가 누군지 이내 알고는 표정 굳는다.)
배종일: 목사님, 말씀 참 잘 하시는군요! 거짓 증언을 한 것이 드러나면 그대로 갚아라···?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소리치며, 다시 발로 문을 찬다.)
목사: (알아보고) 아니, 저 사람이···!
(한 청년 신자가 나선다.)
청년1: 이보세요! 여긴 신성한 성전이오! 무슨 일인진 몰라도 지금은 예배 중이니···
배종일: 오라, 그러고 보니 과연 신성한 성전이로구만! 죄인들이 와서 회개를 하면 모두 용서를 받는다는 그런 곳이지요? 하, 그래서 지금 목사님께서도 회개를 하고 계시던 중인가요?
(다혈질 청년 신자가 나서서 그를 제지한다.)
청년2: 이 사람이! 당신 누구요? 뭐 하는 사람이요? 당장 여길 나가지 않으면 경찰을 부르겠소!
배종일: 뭐, 경찰? (청년의 멱살을 잡고) 이봐, 형씨! 당신 똑똑히 들어! 저기 서 있는 너희 대장이 어떤 죄를 지셨는 줄 알아? 멀쩡한 사람을 살인자로 만들어 감옥에 처넣으려고 했던 자야! 사탄이라구! 알기나 해?
(창백한 낯으로 가까스로 서 있던 목사, 한 손으로 이마를 짚더니, 비틀 쓰러진다.)
(신자들 놀라 소리친다.)
신자들: 앗, 목사님!
(수 명의 신자들, 목사 곁으로 달려가고···. 아수라장 속에서 고통으로 신음하는 목사의 얼굴 <스톱모션>되고, 그 위에 제목이 <수퍼>된다. 여기에 목사의 독백 깔린다.)
(독백-목사): 전혀 예기치 못한 수난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저지른 엄청난 실수에 비하면 그 날 그 청년의 행동은 참으로 절제된 것이었지요.
S# 3 교회 앞마당
(놀란 부녀 신자들이 밖으로 우왕좌왕 뛰쳐나오는 데서 다시 <스톱모션>되고···)
(독백-목사): (계속) 목회자로서 신자들의 존경을 상실한다는 것은 생명을 잃는 것 이상의 고통입니다.
S# 4 (인서트) 교회 지붕 십자가 (밤)
(어둠 속에 빨간 십자가의 불빛)
(독백-목사): (계속) 그것은 지난 주 어느 날 밤, 제가 어떤 불행한 사건을 우연히 목격하면서부터 시작됐지요.
S# 5 주택가 골목 어귀 (심야)
(택시 한 대 와 서고, 최 목사 내린다. 이어 차 떠나고, 목사, 손목시계를 흘끔 본 뒤 한적한 골목길로 서둘러 들어선다. 저만큼 앞에 보이는 개척교회의 십자가 불빛을 향해 목사 걸어가면, 그의 진술이 얹힌다.)
(독백-목사) 저희 교회의 열심 교우 한 분이 급환으로 돌아가셔서, 그 임종을 지켜 드리고 돌아오던 길이었습니다. 그때 시간은 새벽 한시 이십분쯤 됐죠. 전 그 골목에 들어설 때면 늘 시계를 보는 버릇이 있거든요.
S# 6 골목 안 (심야)
(후미진 골목을 최 목사 막 돌아서려는데, 남자의 외마디 비명이 밤 공기를 찢는다. 목사, 불길한 공포에 휩싸이며 그 자리에 우뚝 선다. 이어 한 사내가 후다닥 모퉁이에서 돌진해 나타나는데, 그는 얼굴에 흰 입마개를 썼고, 등산용 칼을 쥔 오른손은 붉은 피로 물들어 있다. 괴한도 느닷없이 맞닥뜨린 목사에게 놀란 듯 주춤하더니, 이내 칼을 휘둘러 길을 트고는 그대로 어둠 속으로 달아난다. 아주 순간적인 일이다. 얼이 빠져 서 있던 최 목사,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비명이 난 쪽으로 뛰어간다.)
S# 7 현장 (심야)
(어두운 길 가에 한 남자(민 대리)가 쓰러져 있다. 목사, 달려가 그를 일으켜 품에 안는다.)
목사: 여보시오! 정신 차려요!
(남자는 공허한 눈길로 목사를 한 차례 쳐다보고는 그대로 숨을 거둔다. 그의 상의엔 이미 피가 흥건히 젖어 있다. 최 목사, 자기 손에까지 빨갛게 묻은 선혈을 보고 새삼 공포에 젖는다.)
목사: 오, 하나님···!
<DIS>
S# 8 같은 곳 (아침)
(형사팀과 관계자들이 현장을 조사하고 있는 가운데, 초췌한 모습의 최 목사가 간밤의 목격담을 반장에게 진술하고 있다.)
목사: 범인의 몸집은 컸던 것 같습니다. 제가 168센치인데, 적어도 저보다 십 센치는 더 크고 체격도 매우 건장해 보였습니다. 얼굴엔 하얀 입마개를 하고 있어서, 무서운 눈빛밖에는 기억이 없고···, 참, 칼을 든 손··· (시늉을 해 보이며) 오른손이겠군요, 그 손엔··· 하얀 붕대가 감겨 있는 것 같았습니다.
반장: 붕대라고요?
목사: 왜, 그··· 건달기 있는 사람들이 멋으로인지 위협적으로 과시하려는 건지, 흔히 하고 다니는 거 있지 않습니까? 뭐 그런 게 아닌가 합니다만······.
반장: 옷은 어떤 걸 입었던가요?
목사: 양복은 아닌 게 분명한데···, 아, 작업복 같기도 하고··· 어둔 색깔의 옷···, 확실치가 않아요. 그럴 수밖에요. 범인과 마주친 시간이 실제 5초도 안 됐을 테니까요. 그리고 그가 저쪽으로 달아나는 뒷모습을 볼 수 있었던 시간도 아주 순간적인 것이었고요. 그러니 더욱 그런 상황에서 제가 뭘 더 관찰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반장: 아, 좋습니다, 목사님. 그 정도면 많이 보시고 잘 기억해 주신 겁니다. 범인 수사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목사: 아, 예···.
(이 형사가 무얼 들고 와서 내민다.)
이형사: 반장님, 이게 떨어져 있습니다.
(근처에 있던 장 형사가 다가서며)
장형사: 여자 귀걸이 아냐?
S# 9 형사반실
(<클로즈업>된 한 짝의 특색 있는 귀걸이가 여자의 귀에 달리고 있다. 그 여자, 오 순경이다. 주변에 반장과 반원들이 둘러서서 보고 있다. 오 순경이 귀걸이를 다 달자, 반장이 손등으로 툭 쳐 본다. 안 떨어진다.)
오순경: 그렇게 쉽게 떨어지는 게 아녜요.
반장: 하긴 일부러 떼기 전에는 그렇겠구먼.
이형사: 전 이 귀걸일 이 사건과 연관시켜서 몇 가지 상황을 가정해 봤습니다. 첫째는···
반장: 피해자와 귀걸이 여인은 동행 중이었거나 적어도 서로 아는 사이다···?
이형사: 네. 그리고 둘째 가정은 범인이 이 귀걸이 주인을 협박하고 있는 현장을 마침 지나가던 의협심 많은 피해자가 범인에게 달려들었고, 그 틈에 여자는 달아났으리라는 겁니다.
한형사: 그리고 셋째 가정은, 이 귀걸이와 이번 사건은 전혀 관련이 없다는 거겠지요?
장형사: 그렇담 그 여잔 지금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예요? 자기를 구해 준 남자가 죽었는데, 코빼기도 내 놓지 않는 비정한 여자는···
이형사: 아직 소식을 못 듣고 있을 수도 있지.
반장: 아니면, 알고도 귀찮아서 모른 척하고 있거나, 신분 노출을 꺼리는 여자인지도 모르지. 아무튼 좋아요. 그 여잘 찾으면 사건은 쉽게 풀릴 것 같군요.
S# 10 그 경찰서 앞
(세 형사, 정문을 나온다.)
(소리-반장): 이제 정리를 해 봅시다. 피해자가 죽었으니 현재로썬 유일한 현장 목격자인 최 목사의 진술을 신뢰할 수밖에 별 도리가 없습니다.
(거리에 택시가 한 대 오자, 이 형사가 손을 들어 세운다.)
(소리-이형사): 그렇습니다. 목사님의 증언에 따르면 인근 우범자 소행일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이 형사와 장 형사만 차에 타고, 한 형사는 다른 택시를 기다린다. 장 형사, 한 형사에게 건투하라는 손짓하고 떠난다.)
(소리-반장): 장 형사님은 그와 비슷한 인상착의를 한 자가 있는지 탐문해 보세요. 특히 오른손을 다쳤거나, 붕대를 감고 다니는 자가 있는지 말이에요.
(이어 다른 빈 택시가 오자, 한 형사, 차에 오른다. 혼자서 택시를 타고 가는 한 형사 얼굴에, 계속 반장 소리 얹힌다.)
(소리-반장): 그리고 한 형산 피해자 주변을 조사해서, 그가 단순 강도 피해자에 불과한 건지, 아니면 계획된 살인의 희생자인지를 밝혀요.
S# 11 주택가 골목
(구멍가게 앞. 할머니 두 분이 나무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데, 성경책을 손에 든 최 목사가 그들을 열심히 전도하고 있다.)
목사: 할머니, 교회에 나오시면 외롭지가 않고요, 심심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신 뒤엔 이 세상보다 훨씬 평화로운 천국에서 영생하실 수 있어요.
할머니: 우린 연보돈이 없어서 교회에 가고 싶어도 못 가.
목사: 할머니, 그런 걱정은 마시고요, 일단 교회에 한번 나와 보세요.
(그 때 가게에 물건 사러 온 한 부인네가 끼여든다.)
부인네: 목사님, 목사님께서 간밤에 일어난 살인 사건의 범인을 잡으셨다지요?
목사: (당혹감에) 아, 무슨 그런 말씀을···, 자매님···!
부인네: 벌써 소문이 쫙 퍼졌어요. 목사님은 용하기도 하시지. 정말 모르시는 게 없다니까.
(목사, 난감하다.)
S# 12 주택가 미용실 앞
(이 형사가 미용실 아가씨와 함께 나온다.)
미용사: 밤늦게 다닐 여잔 그 여자뿐이에요. 그런 귀걸일 달고 다닐 사람도 그렇구요. 저녁때 출근하니까 지금 가면 만나실 수 있을 거예요.
이형사: 그 여잔 아가씨네 고객이 아닌가 보죠?
미용사: 흥, 주제에 동네 미장원은 우습다 이거죠.
S# 13 인근 골목
미용사: 저 방이에요. 전 가도 되죠?
이형사: (끄덕이며) 고마워요, 아가씨.
(미용사, 길 가에 있는 한 집의 창문을 손으로 가리키고는 사라진다. 이 형사, 창 앞으로 다가가 노크한다. 잠시 후 창문 열리고, 젊은 여자가 고개를 내 민다.)
윤희: (졸린 눈으로) 뭐예요?
이형사: 경찰입니다.
윤희: (놀라며) 경찰···요?
이형사: 잠깐 얘기 좀 했으면 하는데요.
윤희: (당황하다가) 좀 기다리세요.
(창문 닫히고, 이어 골목으로 난 간이부엌 쪽문 열리며, 겉옷을 대충 걸친 윤희가 모습을 드러낸다.)
윤희: 무슨 일이에요?
이형사: 아가씨, 어젯밤 아니 뭐 오늘 새벽이라도 좋아요. 몇 시에 들어오셨는지···? 귀가 시간 말입니다.
윤희: (뭔지 잠시 생각하고는) 두세시쯤 됐을 거예요. 늘 그래요, 전······.
이형사: 그게 확실해요?
윤희: 네에.
이형사: (조금 실망) 좋아요. 그때 오시면서 이 앞 골목길에서 뭐 이상한 거 본 건 없고요?
윤희: (단호하게) 없어요, 아무것도···!
이형사: (귀걸이를 꺼내 보이며) 이거 혹시 아가씨 것 아녜요?
윤희: (내심 찔끔 하지만) 아, 아녜요.
이형사: 그래요···?
윤희: 무슨 일이 있었나요, 간밤에?
이형사: 사람이 죽었어요. 강도를 당한 거죠.
윤희: (진정 놀라) 주, 죽었다고요?
이형사: 아가씨도 밤길 조심하셔야겠어요.
윤희: ···!···
이형사: 실례했습니다. (가려다가) 참, 성냥 있으면 하나만 얻읍시다. 라이터를 빠뜨려서······.
윤희: 아, 녜···.
(윤희, 제 정신이 돌아온 듯, 얼른 부엌에 있는 유흥업소 성냥곽을 집어다 준다.)
이형사: (받으며) 고맙습니다.
S# 14 윤희 방
(이 형사를 보내고 허겁지겁 방으로 들어오는 윤희, 경대 앞으로 가더니, 그 위에 놓인 똑같은 외짝 귀걸이를 얼른 움켜쥔다.)
S# 15 건축 공사장
(건축물 위에서 배종일이 막일을 하고 있다. 오른손에 붕대가 감겨 있다. 좀 떨어져서 그를 은밀히 살피고 있는 공사장 감독, 다급히 현장사무소로 가서, 전화 수화기를 집어 든다.)
현장감독: (다이알한 뒤) 아, 파출소죠? 손목에 붕대를 감고 있는 사람을 찾는다고 하셨죠?
S# 16 파출소 앞
(장 형사가 순경과 방범대원을 데리고 급히 밖으로 나온다.)
S# 17 그 공사장 앞
(장 형사 일행 도착하자, 그 감독자가 이들을 맞는다. 그리고 손으로 배종일 쪽을 가리켜 알려 주고···, 경찰들은 민첩하게 그쪽으로 접근한다.)
S# 18 형사반실
(반장이 통화하고 있다.)
반장: 아, 아, 그렇게 하지. 거래처 사람들도 만나 보고···. 음, 그럼 계속 수고해, 한 형사.
(반장, 수화기 내려 놓는데 문 쪽이 떠들썩하며 몹시 화가 난 배종일이 장 형사에게 연행돼 들어온다.)
배종일: 이래도 되는 겁니까? 맘 잡고 열심히 살아 보려는 나 배종일이 이제 선량한 시민입니다! 무슨 증거로 날 살인범으로 모는 거요?
반장: (알아보고) 자네··· 배종일이 아냐?
배종일: 네, 반장님, 전 아닙니다. 장 형사님이 크게 실수하시는 거라구요!
장형사: 보십시오, 반장님. 키 177센치미터, 오른손에 붕대···! 인근 건축 공사장에서 데려왔습니다.
배종일: 아니, 다친 손에 붕대도 못 맵니까? 나 참···!
반장: 이번 사건의 범인도 오른손에 붕대를 감고 있었어.
배종일: 허! 그렇담 범인은 다친 손으로 사람을 죽였군요!
반장: (종일의 붕대 감은 손을 만져 보며) 새 붕대로군!
배종일: 네에, 더러워져서 오늘 아침에 갈아 맸습니다.
장형사: 피가 묻어서겠지?
배종일: 넘겨짚지 말아요. 나도 별이 셋입니다.
반장: 그럼 헌 붕대는 어디다 버렸어?
장형사: 집 앞 쓰레기통에 버렸다는데 이미 청소차가 수거한 뒤라서 찾지를 못했습니다. 파출소에서 추적하고 있습니다.
반장: 칼도 함께 버렸나?
배종일: (어이없다는 듯) 칼요? 정말 왜들 이러십니까? 전 어젯밤 열시쯤 들어와 아침까지 잠을 잤다고요. 보세요! 이게 어디 밤샘한 놈의··· 아니, 사람 죽인 놈의 눈깔인가···?
장형사: 알리바이를 입증해 줄 사람이 없습니다. 이 친구가 출입하는 걸 집주인이 인지할 수 없는 가옥 구조에 살고 있는 데다가, 마침 부인은 출산을 위해 친정집에 가 있답니다.
반장: 그새 결혼을 했구먼!
배종일: 네, 전 새 사람이 됐습니다. 곧 아기도 태어날 거고···, 이제 저는 세 식구의 가장으로서 행복한 가정을 꾸릴 겁니다.
반장: 음···!
S# 19 그 경찰서 앞
(택시 한 대 와 서고, 최 목사 내린다. 그리고 잠시 섰다가 내키지 않는 발길을 정문으로 향한다.)
S# 20 형사반실
(형사반실 안쪽에 있는 조사실의 작은 창문 앞에서, 반장과 최 목사가 서서 조사실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반장: 보세요. 그 날 밤 목사님께서 목격하신 범인··· 저 사람 맞지요?
(긴장된 목사가 본 눈에, 조사실 안에선, 잔뜩 부어 있는 배종일에게 정 순경이 입마개를 씌우고 있다. 그러고 나서 그를 의자에서 일으켜세운다.)
반장: 목사님이 증언해 주신 것과 거의 같은, 신장 177센치에 체중 72킬로··· 게다가 오른손에 흰 붕대를 감고 있습니다.
목사: (자신 없이) 비슷하기도 하구······.
반장: 저 잔 일 년 전에 출감한 전과자예요. 강도에 폭력까지··· 흉악범이었죠.
목사: (근처에 있는 의자로 가 앉으며) 그렇다고 저 사람이 꼭 범인이랄 순 없는 일 아닌가요?
반장: (따라가서) 물론 확실한 증거품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분명한 것은, 현장에서 범인을 목격한 목사님께서 저 자가 그때 그 범인이 아니란 걸 밝힐 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목사: (땀을 닦으며) 저··· 물 한 잔 먹을 수 있을까요?
반장: 아, 네. 오 순경, 휴게실에 전화해서 차 좀 시키지. 시원한 보리차하고······.
오순경: 네, 반장님.
(오 순경이 송수화길 들려고 하는데 전화 벨 울린다.)
오순경: (송수화기 들고) 네, 형사반입니다. ······ 아, 장 형사님! 잠깐만요. (송수화기 귀에서 떼고) 반장님, 장 형사님이신데요!
(반장, 전화기 앞으로 가서 송수화기를 건네 받는다.)
반장: 반장입니다. ······ 뭐, 뭐라구요? ··· 아, 알았어요!
(반장, 송수화기를 내려 놓기 무섭게 조사실로 달려간다.)
S# 21 조사실
(들어서자마자 배종일을 윽박지르는 반장)
반장: 배종일, 자네 어젯밤 어디서 잤어? 집엔 들어가지 않았지?
배종일: (움칫 놀라며) 네에?
반장: 장 형사가 자네 집에 가서 지금 막 확인을 한 건데, 매일 새벽에 배달되는 자네 집 우유가 아직껏 자네 집 방문 앞에 놓여 있다는 거야! 어디 설명해 보실까?
(배종일, 안색이 확 변한다.)
S# 22 현장
(이 형사가 성냥곽을 손에 쥔 채 깊은 생각에 빠져 있다. 귀가 시간이 맞진 않지만, 아무래도 윤희가 의심스럽다. 그러다 갑자기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이 형사,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S# 23 윤희 방
(외출 차림의 윤희가 경대 앞에서 화장을 하고 있는데, 부엌 쪽 방문이 왈칵 열리며 이 형사가 불쑥 들어선다. 그리고는 놀라 일어서는 윤희를 우악스럽게 안쪽으로 밀어 붙인다. 새파랗게 질리는 윤희.)
윤희: 아니, 왜 왜 이러시는 거예요?
이형사: 왜 이러냐구? 이것 봐, 아가씨! 왜 거짓말을 했어?
윤희: 거, 거짓말이라뇨? 제가 무슨···!
이형사: 아까 아가씬 나한테 새벽 두시쯤 집에 왔다고 했어. 사실이 그렇다면 사건 현장에서 아무것도 못 봤다는 말은 거짓말이야!
윤희: 네에?
이형사: 그 시간엔 파출소에서 근무자들이 나와 조사를 하고 현장을 보전하느라 한창 시끄러울 시간이었어. 그런데도 아무것도 본 게 없어?
윤희: (말문이 막힌다.)
이형사: (성냥곽을 여자 앞으로 던지며) 여기 적혀 있는 아가씨 직장 전화번호로 이미 확인했어. 요즘은 경기가 안 좋아 새벽 한시면 문을 닫는다는구먼. 그리고 간밤엔 손님과 함께 나간 아가씨도 없었다는 거야.
(윤희, 이미 기가 꺾여 눈길을 돌린다. 이 형사, 경대 앞으로 가서 서랍을 열어 나머지 외짝 귀걸이를 찾아 낸다. 이 형사, 만족스런 낯으로 윤희를 쏘아보고, 윤희는 고개를 떨군다.)
S# 24 거리
(달리는 형사반 차 안에, 반장과 장 형사가 탔다.)
장형사: 걱정 마십시오, 반장님. 제까짓 놈이 아무리 묵비권 행사를 한다 해도 증거품만 찾아 내면 다 불게 돼 있습니다.
반장: 그렇긴 한데요. 제 기분은··· 비록 배종일의 간밤 행적이 불분명하긴 해도 살인자들이 보이는 일반적인 정서 상태는 아니잖습니까?
장형사: 아니, 반장님! 저희 노장들의 육감 수사를 곧잘 꼬집으시더니, 이젠 오히려 반장님께서 육감에 의존하시는 거 아녜요?
반장: 아, 그래요? 하하하···!
(둘, 함께 웃는다.)
S# 25 마을 빈터
(중간 쓰레기하치장으로 이용되는 빈터에, 경찰, 방범대원, 청소원들이 쓰레기를 뒤지고 있다. 그 때 형사반 차 도착하고, 반장과 장 형사 내린다.)
장형사: 찾았다고요?
(책임자로 보이는 정복 경관이 한 명 앞으로 나선다.)
경관: 네, 난지도로 가기 전에 다행히 찾기는 했습니다만······.
장형사: 그런데요?
경관: (손으로 한쪽을 가리키며) 보시는 바처럼, 헌 붕대 쪼가리들이 어디 한두 개라야지요.
(반장과 장 형사, 보니, 과연 한쪽에 헌 붕대 뭉치가 잔뜩 쌓여 있다.)
경관: 인근에 복싱 도장이 있는데 거기서 나온 쓰레기까지 한 데 섞이는 바람에······.
(반장과 장 형사, 어이가 없어 서로 쳐다본다.)
S# 26 형사반실
(만삭이 된 배종일 처가 혼자 있는 오 순경한테 울며불며 하소연한다.)
종일처: 뭔지 착오가 있는 거예요. 그이는 아녜요. 정말 이번엔 절대 그럴 리가 없어요. 여 순경님, 그이를 한 번만 만나게 해 주세요. 제발···!
오순경: (난처해서) 아주머니, 지금은 안 돼요. 집에 가 계시면···
(정 순경이 들어오다가 보고, 다가오며,)
정순경: 오늘은 안 된다는데 왜 자꾸 이러세요? 그만 돌아가세요. 자꾸 이러시면 뱃속 아기한테도 안 좋아요.
(아기란 말에 주춤 하는 종일 처, 갑자기 기가 꺾인다.)
종일처: 알겠어요. 돌아가겠습니다. 뱃속 아기한테 살인자 아빠를 만나게 해선 안 되겠지요···!
(그리고 발길을 돌린다. 엄숙할 정도로 조용히 방을 나가는 여인의 뒷모습을, 같은 여자로서 아프게 바라보는 오 순경. 그 때 전화 벨이 울리고, 오 순경이 전화를 받는다.)
오순경: 네, 형사반입니다. (반갑게) 안녕하세요, 강 반장님! ······ (크게 놀라며) 네에?
S# 27 다시 빈터
(반장이 입맛 쓴 표정으로 붕대 뭉치들을 보고 있는데, 형사반 차에서 카폰이 울린다. 장 형사 달려가 송수화기를 집어 든다.)
장형사: (경악) 뭐라구, 오 순경? 진범이 잡혔어?
(반장, 고개를 휙 돌려 장 형사 쪽을 본다.)
장형사: 응, 응, 응··· 알았어. 반장님께 보고 드리지. 음···!
(침통한 낯으로 송수화기를 내려 놓는 장 형사. 반장이 다가온다.)
반장: 무슨 얘깁니까?
장형사: 노량진서에서 진범을 잡았답니다!
반장: 뭐요?
장형사: 방값으로 여자 손목시계를 맡긴 단신 투숙객이 있다는 여관 주인의 제보가 있어서 출동했는데, 그 자의 소지품에서···
반장: 이, 이런···!
(낭패감에 젖는 두 사람, 급히 차에 올라 떠난다. 그 뒤에 대고, 정복 경관 소리친다.)
경관: 이것들은 어떡합니까?
S# 28 형사반실
(오 순경이 침통한 얼굴로 혼자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때 의기양양한 이 형사가 윤희를 데리고 들어온다.)
이형사: 반장님 안 계셔? 이런··· 결정적인 순간에 어딜 가셨누? 오 순경, 빨리 연락 드려. 현장 인물을 찾았다구!
(오 순경이 시큰둥하니 별 반응을 보이지 않자,)
이형사: 아니, 오 순경! 사건 현장에 있었던 귀걸이 주인을 데려왔다니까···!
오순경: (그제야) 이 형사님! 범인이 잡혔어요! 진짜 범인이요!
이형사: 뭐야?!
(놀란 이 형사, 어리둥절하여 윤희를 쳐다본다. 윤희도 관심을 보인다.)
S# 29 (회상) 현장 골목 (밤)
(사건이 나던 날 밤, 그 시간에, 윤희가 혼자 귀가하고 있다.)
(소리-윤희): 전 언제나 그런 시간에 퇴근을 하니까 특별히 밤늦은 골목길이 무섭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물론 민 대리님이 그 시간에 제 집 앞에서 절 기다리고 있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고요.
(윤희, 현장을 막 지나는데, 길 가에 숨어 있던 괴한이 등 뒤로 달려들어, 한 손으로 윤희의 입을 틀어막고 다른 손으로는 목에 등산용 칼을 들이댄다.)
범인: 꼼짝 마! 시키는 대로만 하면 해치진 않겠어. 자, 우선 그 핸드백부터 이리 주고···! 시계도 풀어!
(윤희, 하라는 대로 한다.)
범인: 반지도···!
(범인, 차례로 받아 주머니에 넣는다.)
범인: 귀걸이도 떼!
(윤희, 한쪽 귀걸이를 뗀다. 그 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민 대리가 소리친다.)
민대리: 이 나쁜 놈! 그 여자를 당장 놔 주지 못해!
(깜짝 놀란 범인, 주춤하는데···, 그 틈에 윤희, 범인 손에 있던 핸드백을 낚아채어 후다닥 달아난다.)
민대리: (소리친다.) 윤희 씨! 집 앞에서 기다려요! 곧 갈 테니까···!
(하더니, 어정쩡 서 있는 범인에게 양발차기로 일격을 가한다. 범인 고꾸라진다. 달아나던 윤희, 흘낏 뒤돌아보고는 다시 뛴다. 엎어진 범인 입에서 피가 난다. 범인, 피를 손등으로 쓱 닦더니, 떨어뜨린 칼을 집는다. 의기양양해진 민 대리, 쓰러진 범인에게 달려들려고 허리를 굽히는 순간, 범인, 벌떡 일어서며 민 대리 가슴을 향해 칼을 깊게 꽂는다. 민 대리,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는 순간, 범인, 잽싸게 달아난다.)
S# 30 형사반실
(진범이 수갑을 차고 포승에 묶여서 한쪽 소파에 앉아 있고, 다른 한쪽에선 형사반원들에 둘러싸인 윤희가 보자기 위에 펼쳐 놓은 자신의 손목시계와 반지 등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 옆에는 등산용 칼과 입마개도 있다. 윤희가 고개를 끄덕여 확인을 하자, 반장, 가는 한숨을 내쉰다.)
이형사: (아직도 못 믿겠다는 듯 범인을 노려보며) 저 자가 범인이라니···, 내 참···! 정말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입니다.
한형사: 그래요. 저 친구 키가 165센치나 될까요? 그리고 손엔 붕대는커녕 다친 흔적도 없잖아요?
(장 형사는 계속 쓴 얼굴로 식식댈 뿐 말이 없다.)
반장: (노량진 경찰이 작성한 조서를 보면서) 초범이야. 취직하러 무작정 상경했다가 돈이 떨어지자 범행을 했다고 했군.
이형사: 그래서 초범이 더 무섭다고 하잖습니까?
반장: 아무튼 진범이 빨리 잡혔으니 다행이지 뭡니까? 다들 수고하셨어요. 조서 빨리 작성하고 나가서 저녁이나 함께 합시다.
(잔뜩 겁에 질려 있는 윤희가 끼여든다.)
윤희: 전 이제 어떻게 되는 거예요?
이형사: (퉁명스럽게) 어떻게 되긴···! 저 자와 공범 관계에 있진 않은지 조사해 봐야지.
윤희: (정말인 줄 알고 기겁하여) 네에, 공범이라고요? 아녜요, 전···! 민 대리는 절 귀찮게 쫓아다니는 남자이긴 했지만, 죽일 이유는 하나도 없다고요!
반장: 그래, 아가씬 아가씨 때문에 사람이 죽었는데도 그렇게 태평할 수 있어요? 아무리 저밖에 모르는 각박한 사회라지만···!
윤희: (기어드는 소리로) 죄송해요···.
(침묵하고 있던 장 형사가 불쑥 한 마디를 내뱉는다.)
장형사: (자조적으로) 성직자도 거짓말을 하는 세상에 속세의 여인이 거짓말 좀 했기로서니 그게 뭐 그리 대수겠습니까?
(반장, 장 형사 말이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S# 31 배종일 집 (단칸방)
(초라한 살림방에 핼쓱한 배종일이 들어와 앉은뱅이 경대 앞에 앉는다. 그리고 그 위에 놓인 사진(아내와 함께 찍은 행복한 모습)을 집어서 본다. 그 눈에 물기 어린다. 그 때 주인집 마루와 연결된 방문에서 노크소리 나자, 배종일, 눈시울 훔치고 문 연다.)
주인여자: 배씨 들어오셨구먼?
배종일: 네. 범인이 잡혔다나 봐요.
주인여자: 저런! 난 그것도 모르고···! 배씨, 어서 병원으로 가 봐요! 새댁이 그만 약을···!
배종일: (크게 놀라며) 예에?
S# 32 달리는 택시 안
(차 안에, 안절부절못하는 배종일이 타고 있다.)
(소리-주인여자): 형사가 다녀가자마자, 마침 새댁이 친정에서 전활 해 왔지 뭐유. 내일이 곗돈 날인데 내 통장으로 돈을 보내겠다구···. 그래서 그러라고 하고는 마악 전화를 끊으려다가···, 그래도 새댁이 알아야 할 것 같아서, 그만 배씨가 잡혀갔단 얘길 했지 않았겠수. 일러 주는 게 도리일 듯해서 말이우···.
(배종일,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다.)
S# 33 변두리 작은 병원 앞
(택시에서 황황히 내리는 배종일, 병원 현관으로 뛰어든다.)
S# 34 그 병원 대기실
(배종일, 눈에 띄는 간호사에게 묻는다.)
배종일: 여기 애 밴 여자 어디 있어요?
간호사: 여긴 산부인과가 아닌데요. 아, 저··· 혹시 음독한 부인을 찾으시는 건가요?
배종일: 아, 예···!
간호사: 이층으로 올라가 보세요. 203호실이에요.
(배종일, 계단으로 몇 걸음 뛰어 올라가다가 문득 멈춰서서는, 묻는다.)
배종일: 환자는 괜찮은가요?
간호사: (옆 방으로 쏙 들어가며) 아긴 죽었어요.
(사색이 되는 배종일, 망연자실에 빠진다.)
<F.O>
S# 35 <F.I> 형사반실
(비교적 한가한 낮 시간. 오 순경이 신문을 정리하다가 한 곳을 뚫어지게 본다. 그 때 문 열리며, 결재판을 손에 든 반장이 들어온다.)
반장: 오 순경, 검찰청에 간 장 형사 아직 안 들어왔나?
(울상이 된 오 순경, 신문을 내밀며,)
오순경: 반장님, 이걸 보세요. 그 사람 부인이··· 글쎄 음독을 했대요!
반장: 그 사람이라니···?
오순경: 그 배종일 씨 말이에요. 무혐의로 풀려난······.
반장: 뭐야?!
(반장, 급히 신문을 받아 읽는다. 그 얼굴 위에- )
(소리-오순경): 뱃속에 든 아기일망정 살인자 아빠와 대면시킬 수 없다며, 쓸쓸히 돌아서 가던 부인의 모습이 눈에 선해요. 다시는 죄짓지 않겠다고 한 남편의 굳은 약속이 깨진 데 따른 충격과 실망 때문이었겠지요.
(반장, 안타까움과 죄책감에 어쩔 줄 몰라 한다.)
반장: 이런! 배종일···! 그 날 밤 미아리 술집에서 외박만 안 했어도, 혐의는 좀더 일찍 벗을 수가 있었는데···!
S# 36 교회 예배실 (씬2와 연결)
(배종일의 행패가 극에 달해 있다.)
배종일: 이 살인자 목사야! 내 자식을 살려 내라, 살려 내!
(청년 여럿이서 그를 떠메다시피하여 옆 사무실로 끌고 간다. 부녀신자 대부분은 예배실에서 나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최 목사는 한 청년의 품에 안긴 채 거의 실신 상태에 빠져 있다.)
목사: (헛소리처럼) 오, 하나님···! 용서하소서···!
S# 37 교회 앞마당
(뛰쳐 나온 여신도들이 곳곳에서 쑥덕거리고 있다.)
부녀1: 아니, 그럼 우리 목사님이 멀쩡한 사람을 살인범으로 고발해서 그 부인이 자살을 기도했단 말이에요? 그것도 만삭인 부인이···!
부녀2: 그러게 말이에요, 신문마다 대문짝만하게 났대요!
부녀1: 아이고, 이 무슨 해괴한 일이고! 하나님의 저주가 우리들한테까지 내리시기 전에 어서 이 곳을 떠납시다.
(그 때 다시 악을 쓰는 배종일의 목소리가 밖에까지 들린다.)
(소리-배종일): 이놈아, 이 엉터리 목사야! 내 자식을 살려 내라, 우리 애길 살려 놔!
(부인들, 두 손으로 귀를 막으며 총총 사라진다.)
S# 38 (환상) 예배실
(최 목사가 단상에서 열정적으로 설교를 하고 있는데, 입구 문 열리고, 배종일과 그의 처가 들어와서, 손으로 목사를 가리키며 소리친다. - 이 때까지는 사일런트)
배종일: (에코) 거짓 증언자!
종일처: (에코) 살인자!
배종일: (에코) 거짓 증언자!
종일처: (에코) 살인자!
(그러자, 신자석을 꽉 메운 신자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목사를 향해 똑같이 손가락질을 하며 소리친다.)
신자들: (에코) 거짓 증언자! 살인자! 거짓 증언언자! 살인자!
(공포와 수치심에, 최 목사, 까부라진다.)
목사: 아, 아냐! 난 거짓 증언을 하지 않았어···! 살인을 하지 않았어···!
S# 39 목사 침실 (밤)
(악몽에 신음하는 최 목사, 중얼이다가 소리치며 벌떡 일어난다.)
목사: 난 죄가 없어···! 죄인이 아냐!
(부인이 잠이 깨 놀란다.)
부인: 여보, 정신 차려요! 여보오!
(겨우 정신이 든 목사, 퀭한 눈으로 허공을 본다.)
S# 40 예배실 (밤)
(최 목사가 혼자서 제단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목사: (간혹 흐느끼며) 주님, 이 죄인을 어떻게 책하시렵니까? 벌을 주소서. 저는 너무도 엄청난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저의 거짓 증언이 한 생명을 빼앗고, 한 가정을 파괴했습니다. 결코 용서 받을 수 없는 대죄를··· 하나님을 섬긴다는 목사라는 자가··· 그만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오, 주님···!
<F.O>
S# 41 <F.I> 대학 구내
(형사반장과 최 목사가 건물 쪽으로 걸어간다. 그 위에 소리 얹힌다.)
(소리-목사): 매일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도대체 제 몸 속에 악마가 들어 있지 않다면 어떻게 그런 거짓말이 제 입에서 나올 수가 있었겠습니까? 저희 교회는 개척교회로서 역사가 짧습니다. 신자수도 얼마 안 되고요. 그런데 이런 일이 터졌으니···! 저로선 더는 이 동네서 목회활동을 할 수가 없게 됐습니다.
S# 42 교수 연구실 복도
(반장과 최 목사 걸어오는 가운데, 소리 계속된다.)
(소리-목사): 반장님, 저를 좀 도와 주십시오. 전 결단코 거짓 증언을 했다고 생각하질 않습니다.
(소리 끝날 때, 두 사람은 한 연구실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작은 문패에 ‘심리학과 교수 장하림’이라고 적혀 있다. 반장, 노크한다.)
S# 43 교회 외경 (밤)
(최 목사의 강론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온다.)
(소리-목사): 우리는 가끔 왜 세상에 악이 있는가? 어찌하여 죄가 있고, 고통이 있으며, 우리에게 죽음이 있는지를 반문합니다.
S# 44 예배실 (밤)
(젊은 남녀 신자 13명이 최 목사를 중심으로 둘러앉아 성경 공부를 하고 있다.)
목사: (계속) 나아가 이러한 나쁜 상황을 인간에게 허락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우리는 의아하게 생각하는 때가 없지 않아 있습니다. 바로 이런 의문에 대해 예수님은 가라지의 비유로써 우리에게 설명해 주십니다. 그럼 다같이 마태오 복음 13장 24절부터 30절까지를 소리내어 읽어 볼까요.
S# 45 교회 사무실 (밤)
(한 청년이 비디오카메라에 테이프를 넣고 있는 것을, 미스 홍이 곁에서 보고 있다.)
S# 46 교회 앞마당 (밤)
(남녀 신자들이 성경을 합송하는 소리 들린다.)
(소리-신자들): 종들이 주인에게 와서, “주인님, 밭에 뿌리신 것은 좋은 씨가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가라지는 어디서 생겼습니까?” 하고 묻자, 주인의 대답이, “원수가 그랬구나.” 하였다.
(소리가 끝날 때쯤 자동차 바퀴가 카메라 앞에서 멈춘다. 자동차 뒷좌석에 앉아 있는 배종일의 얼굴이 몹시 심란하다.)
S# 47 다시 사무실 (밤)
(청년이 비디오카메라를 쳐들고 촬영 자세를 취해 보는데, 노크소리가 난다. 미스 홍이 문 쪽으로 간다.)
S# 48 다시 예배실 (밤)
(신자들이 성경을 읽고 있다.)
신자들: (낭독) 가만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밀까지 뽑으면 어떻게 하겠느냐?
(최 목사, 시계를 흘낏 본다.)
신자들: (계속) 추수 때까지 둘 다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순간 사무실 쪽에서 여자의 칼날 같은 비명과 남자의 외마디 비명 그리고 커다란 소음이 잇따라 터진다. 놀란 신자들, 낭독을 멈추고 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본다. 이어, 사무실 쪽 문이 부서질 듯 열리며 피투성이가 된 여인이 예배실 안으로 고꾸라지고, 뒤따라 피 묻은 칼을 손에 든 괴한이 허겁지겁 나타난다. 신자들, 일제히 비명을 지르며 바깥문 쪽으로 달아난다. 보통 키의 남자··· 머리엔 찌그러진 군작업모를 쓰고, 검은 안경에, 상의는 붉은 색 긴 팔 남방셔츠를 소매를 걷어 입었고, 하의는 칙칙한 녹색의 군복바지를 입은··· 괴한은 잠시 당황해하다가 들어왔던 문으로 다시 뛰어나간다. 그런데 그 쪽 방, 사무실에선 아까 그 청년이 이러한 사태를 태연히 비디오카메라로 촬영하고 있는 모습이 얼핏 눈에 띈다.)
S# 49 교회 앞마당 (밤)
(교회 밖으로 우왕좌왕 뛰쳐나오는 신자들···, 갑자기 자신들을 향해 비치는 강한 자동차 전조등 불빛에 놀라 우뚝 선다. 이내 불빛 꺼지고, 형사반 차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차 옆에는 반장과 장 교수가 웃음을 지며 서 있다. 어리둥절해 서 있는 신자들 등 뒤로, 최 목사가 나타나 두 사람을 맞는다.)
목사: 어서 오십시오, 반장님 그리고 교수님···!
S# 50 예배실 (밤)
(신자들, 놀란 가슴이 아직도 진정이 덜 된 듯 어수선한 모습으로 앉아 있다. 장 교수가 말을 하고, 최 목사와 반장은 한쪽에서 신자들과 함께 듣고 있다.)
교수: 여러분, 대단히 죄송합니다. 방금 여러분이 본의 아니게 피험자로서 참여한 실험은 범죄심리학에서 증언실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최 목사님의 결백을 입증하고 또한 우리 인간이 얼마나 불완전한 존재인지를 다같이 함께 생각해 보잔 뜻에서 마련했습니다.
(미스 홍이 들어와 백지와 볼펜을 신자들에게 나눠 준다.)
교수: 이제 여러분께선 두 번째 협조를 해 주셔야 하는데 지금 나눠 드리는 백지에다가 방금 여러분이 목격한 내용을, 특히 남자 침입자의 인상착의와 행동을 중심으로 자세히 적어 주시기 바랍니다.
(최 목사, 뭔지 수긍이 가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DIS>
S# 51 같은 장소 (20여 분 뒤)
(이동식 칠판에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다.
- 군복 착용··· 5명 / 손에 붕대··· 3명 / 머리에 피 묻은 붕대··· 1명 / 위아래 군복··· 1명 / 수염··· 1명 / 키 165센치 이하··· 1명 / 키 180센치··· 1명 / 목 부위에 흰 것··· 1명 -
칠판 앞에는 신자들이 제출한 진술지들을 손에 든 장 교수가 서 있고, 그 옆엔 침입자 역을 한 한 형사와 피해자 역을 한 오 순경이 깨끗한 복장을 하고서, 이 형사와 나란히 앉아 있다.)
교수: 여러분의 진술지들을 검토한 결과 사실과 다른 내용들··· 그러니까 의미가 있는 거짓 증언의 내용들이 보시는 바처럼 여기에 적혀 있습니다. 가장 많은 것은 침입자가 군복을 입고 있었다는 것이고, 그 다음이 손에 하얀 붕대를 감고 있었다는 거군요. 그렇다면 과연 실제 침입자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 촬영 테이프를 보기로 합시다. 자···.
(교수의 신호를 받은 청년은, 미리 설치해 놓은 텔레비전으로 조금 전에 촬영한 비디오테이프를 재생시킨 뒤, 침입자의 모습이 가장 선명한 장면에서 화면을 정지시킨다. 신자들, 자신들의 기억과 많은 차이가 발견되자 놀라고 어이없어한다.)
교수: 보세요, 여러분의 기억이 얼마나 믿을 수 없는 것인지를···! 침입자는 분명히 손에다가 붕대를 감지 않았지요? 그리고 막연하게 군복을 입고 있었다고, 다섯 분이나 증언했지만, 그 중 아무도 빤간색 상의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침입자의 머리에도 피 묻은 붕대가 매어 있는 걸 봤다고 하신 분이 한 분 있고, 또 키에 대해서도 165센치 이하라고 진술하신 분이 있는가 하면, 180센치의 장신이라고 기억하신 분이 계시다는 겁니다. 정말 종잡을 수가 없는 거짓 증언자들이십니다. (한 형사와 오 순경에게) 두 분 잠깐 일어나 주시겠어요?
(두 사람, 멋쩍어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교수: 이미 눈치채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이 분들의 실감 나는 연기를 여러분이 보셨습니다. 다른 경찰관님께서도 뒤에서 효과음을 내 주시느라 수고하셨고요.
(신자들, 웃으며 손뼉을 친다.)
교수: 남자분만 그대로 서 계셔 주세요. (오 순경이 앉자) 저분의 실제 키가 얼마인지 알아봅시다. 몇입니까, 형사님?
한형사: 171센치미터입니다.
(신자들, 정말 어이없다는 표정들을 짓는다. 한 청년이 일어나 질문을 한다.)
청년3: 교수님, 과연 지금까지 잘 모르고 있던 놀라운 사실을 이제 알았고, 또 체험했습니다. 그러면 어째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겁니까?
교수: 좋은 질문을 하셨습니다. 말씀 드리죠. 아, 그런데 그 전에 먼저 이 교회의 훌륭한 목회자이신 최상기 목사님의 결백부터 인정해 드리는 게 순서가 아닐까요?
(신자들, 일제히 목사를 향해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형사반원들도 함께 박수하고···. 상기된 목사는 고개를 깊이 숙여 답례한다. 반장이 그 앞으로 가서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한다. 목사, 감격하여 그 손을 잡는다. 이 장면에서- 화면 <스톱모션>되고, 그 위에 교수의 소리가 얹힌다.)
(소리-교수): 급박한 상황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잘못 지각할 수 있으며, 그것을 기억해 내는 과정에서도 또한 많은 사실들이 변질되거나 왜곡되는 경우가 흔히 있습니다. ‘붉은 피’ 하면 누구나 쉽게 ‘하얀 붕대’를 연상하는 고정관념···, 이러한 정신현상도 고의가 아니게 거짓 증언을 하게 만드는 여러 요인들 가운데 하나가 아닌가, 나는 생각합니다.
(스톱모션 풀리고, 다시금 흐뭇한 장면 계속되는데, 최 목사가 누굴 보았는지 눈길이 한 곳에 멎는다. 입구 쪽에 배종일이 보이지 않던 장 형사와 함께 서 있다. 배종일, 모든 것이 다 이해가 된다는 표정이다. 그런 배종일을 바라보는 최 목사, 얼굴이 밝아진다.)
<DIS>
S# 52 교회 앞마당 (밤)
(텅 빈 마당에, 최 목사가 마지막으로 혼자 교회를 나오고 있다. 상쾌한 기분으로 귀가하는데, 문득 누군지가 그의 앞을 가로막는다. 주춤 걸음을 멈추는 목사. 찬찬히 보니, 배종일이다. 배종일, 몇 걸음 다가와 목사 앞에 서서 목사의 두 손을 움켜잡는다. 목사, 그윽히 그를 보다가 가슴을 열어 그를 따뜻하게 포옹한다. 진정 화해의 순간이다.)
<F.O>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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