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핀 꽃
윤금옥
성숙한 봄은 우리 집 마당에 여러 가지 꽃을 피워 놓았다. 살구 빛 철쭉. 진분홍 작약. 분홍색 해당화. 노란꽃창포. 빨간 장미. 진노랑 원추리 꽃이 합창을 하고 또 돌림노래를 부르듯 피고지고 피고진다. 그러나 만년 소녀가 아니듯, 예쁜 꽃과 성숙한 봄도 세월에게는 어쩌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산과 들엔 초록바다가 물결치는 6월이 되었다. 메마른 날은 가속도가 붙어서 질주하는 여름을 더 덥고 뜨겁게 만들었다. 장마라도 지면 좋으련만 쾌청한 하늘에선 비 올 기미가 전혀 없다. 하는 수 없이 호스를 끌고 다니며 화단에 물을 뿌려 주었다. 가뭄에 허덕이는 화초와 나무들에게 비를 대신할 수는 없겠지만 목이라도 축여 줘야지 그러지 않으면 다 타버릴 것 같다. 꽃이 지고 잎이 무성한 철쭉나무는 건너뛰려고 미안한 마음에 흘깃했는데 초록 이파리 사이에서 배시시 웃는 동그란 꽃봉오리가 눈에 띈다. “어머! 이제서.”이미 꽃이 진 자리는 이파리들의 보호를 받으며 긴 눈썹을 내리깔고 새침한데 느지막이 맺은 작은 꽃봉오리는 의기소침해 있다. 그래서 더 눈에 띄지 않았나 보다. 동그란 꽃봉오리는 점점 부풀어지다가 벌어지며 꽃봉오리가 또 나뉜다. 인형 속에 인형이 들어있는 마트로시카처럼 꽃봉오리 속에 꽃봉오리가 또 들어 있는 셈이다. 한 송이에서 나뉜 꽃송이가 열 개도 더 되어 다 피면 부케 다발만 하다. 꽃잎은 잘 익은 살구 빛이 나기도 하고, 발그레한 복숭아 빛이 돈다. 꽃 색이 진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너무 옅지도 않다. 내가 자주 바르는 립스틱 색이다. 때가 한참 지났는데 늦게라도 자기 몫을 하고 싶었는지 꽃봉오리를 맺고 꽃송이를 키우고 있었다. 제때에 핀 꽃들은 꽃봉오리도 크고 탐스러웠는데 이파리에 치어서 그런지 꽃봉오리가 작다. 무성한 이파리들을 비집고 있는 작은 꽃망울이 애련(哀憐)하다. 이파리들 속을 살펴보니 그런 꽃봉오리가 네댓 개 더 있다. 그나마 혼자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때가 있다는 것이 그런 게 아닐까.
공부할 때,
결혼할 때,
일 할 때...
때를 놓치고 세월이 지난 후 다시 하려고 하면 힘이 곱절로 더 든다. 어떤 이유로든 때를 놓치는 것이 꽃뿐만 아니라 사람도 종종 있다. 시기를 놓쳐 제대로 크지 못한 꽃봉오리를 보노라니 작은 꽃봉오리처럼 배시시 웃는 아이가 있다. 중 2때 어머니를 여의고 겨우 중학교를 마쳤다. 일 하면서 공부를 하기가 쉽지가 않았다. 언젠가 읽었던 ‘꽃들에게 희망을’ 이란 책속의 호랑애벌레처럼 당차고 야무졌으면 좋으련만 마냥 순하고 여린 아이는 노랑 애벌레를 닮았다. 어려운 역경을 이겨내며 꿈을 찾으려는 호랑애벌레가 되지 못했고 그저 현재의 처지에 순응하며 착실히 사는 노랑 애벌레였다. 하고 싶은 공부를 더 할 수 없었지만 그 아이는 가난한 부모를 원망하지 않았다. 어디서든지 묵묵히 일하고 자리를 지켜 나갔다. 신문이나 책을 자주 읽고 노트에 옮겨 적으며 나름 그렇게 공부를 했다. 글쓰기를 좋아해 방송국에 원고를 투고해서 상품도 여러 번 탔다. 성인이 되어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자신보다는 가족이 우선인 엄마가 되었다. 이젠 아이들이 자라서 출가도 했고 가족에 매어있던 그녀도 흐른 세월만큼 중년이 되었다.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여유가 있지만 그녀에겐 특별히 새로운 것도 새로운 날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직 늦지 않았다고 꿈을 이뤄보라고 조언해 주는 노랑 애벌레를 우연히 만났다. 생각에 생각을 하다 보니 '나도 이룰 수 있을까' 라는 꿈이 꼬무락거렸다. 그 틈을 타, 올 봄 그 여인은 때를 놓쳐도 너무 한참 놓친, 그때로 돌아갔다. 이제서? 이제서......
젊은 친구들을 따라가기가 버겁지만 나와 같은 친구들이 여럿 있어서 위안이 되고 의지가 된다. 서로서로 용기를 주고 위로하며 힘을 얻는다. 꽃송이들도 늦게 맺힌 만큼 예쁘게 꽃 피우자고 서로 격려하며 응원 하는 것 같다. 혼자가 아니고 함께여서 애잔했던 마음이 사라졌다.며칠 후 꽃 한 송이가 활짝 피었다. 늦게 맺혀 이파들 속에서 힘겨웠지만 무사히 꽃봉오리를 피워낸 것이다. 기특했다. 늦게라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자기 몫을 해 내는 모습에서 그녀도 용기를 얻는다. 가지 하나에 대여섯 꽃송이가 달렸지만 한꺼번에 다 같이 피지 않았다. 빠른 아이도 있고 좀 더디고 느린 아이도 있듯이 저 꽃송이도 그렇다. 잘 하는 학생과 좀 못하는 학생들 틈에 있는 그녀와 같다.활짝 핀 꽃 옆에서 작지만 두 주먹 불끈 쥔 작은 꽃송이가 보인다. 또 초록 이파리 틈 사이로 아직 덜 자란 꽃송이가 고개를 삐죽 내밀었다. 하나라도 더 듣고 배우려는 그녀처럼.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기로 결심하고 실을 뽑아 고치를 만드는 무섭고 외로운 고행을 한 노랑 애벌레가 아름다운 노랑나비가 됐듯이 나도 늦은 나이지만 꿈의 나래를 열심히 펼치고 있다. 언젠가 훨훨 날고 꽃피울 그날을 위해서. 작은 꽃봉오리와 나는 파이팅을 외쳤다. 늦게 필 우리에게 날아 올 노랑나비와 호랑나비를 기다리며, 그리고 노랑나비와 호랑나비처럼 늦게 필 꽃을 위해서.
첫댓글 오늘이 입춘이듯
후배님에게도
꿈 꾸는 일들이 여기에서 활짝 피어나기를 기원합니다.
작품을 읽는 내내 짠 했습니다.
우리가 조금 늦었을 뿐이지 꿈이 얼마나 성대 한가 해서요...
후배님! 졸업과 동시에 입주하신 서재, 활발하게 장식 하시기 바랍니다.
작품 잘 읽었습니다.
선배님~~ 저도 늦게 꽃 피울 수 있겠지요~~
다른 꽃들은 이미 지고 이파리들의 보호를 받는데 늦어도 한참 늦게 핀 꽃송이가
늦었지만 열심히 제 몫을 해내는 꽃이 안쓰럽기도 하고 이쁘고 멋지기도 해서
저를 닮았다고 우겨 봅니다. 으히
꿈꾸는 자는 아름답다고 하는데 저도 아직 꿈을 꾸고 있습니다.
열심히 꾸겠습니다.
선배님의 응원과 용기에 고래처럼 춤도 추고 있답니다.
감사합니다.
잘 짜여진 글을 읽고
한 참 생각해 봤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후배님들이
자리하고 있는데
우리가 참 무책임했구나,
마음 뿐이었구나,
나 혼자 홀홀 단신 등단을 위해
길도 모르고 서울 길에 올랐던 그 때가
생각났습니다.
좀 더 쉽고 빠른 길도 있을텐데.
당황했을 후배님들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아주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선배님께서는
우리 후배들 양성을 위해 늘 수고하셨습니다
그 점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만학 방 지키려고 애를 쓰는데
아직은 큰 도움이 되지 않아서 안타깝습니다.
다행인 것은 저의 후배님들을 아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선배님~~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이많이 배우고픈 마음만 가득한 부족함 투성이랍니다.
든든한 선배님들이 계시다는게 얼마나 든든한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