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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347쪽: 비평문 제목 한자 수정
편집급사, “(編輯室)스켓취”, 『少年朝鮮』, 1929년 1월호.
34쪽: 각주 10번 내용 수정
10 브라네스(Brandes, Georg Morris Cohen: 1842∼1927)를 가리킨다. 덴마크의 문예비평가로 대표적 저술로 『19세기 문학 주조(主潮)(전6권)』(1871∼1890)가 있다.
37쪽: 각주 13번 내용 수정
13 노르웨이의 극작가이자 소설가 겸 시인인 비에른손(Bjørnson, Bjørnstjerne Martinius: 1832∼1910)을 가리킨다.
39-40쪽: 인용문 부분 수정 및 한자 수정
延星欽, “안더−슨 先生의 童話 創作上 態度(四)”, 『조선일보』, 1927.8.14.
怜悧한 버레가 纖細한 실(絲)을 여러 ᄶᅩᆨ으로 얼기설기 감아서 那終에 一個의 網을 맨들어 가지고 보금자리를 삼는 것과 가티 詩人의 想像은 바람 부는 대로 훨훨 날으는 胡蝶과 가티 아모 類似도 업는 듯한 點에서부터 날아가서 事物과 聯絡한다.
참말로 成人의 因襲的 推理 慣性으로 보면 이 가튼 連結은 異常하리라. 그러나 小兒에게 잇서서는 그것이 自然이다. 안더슨은 오즉 이 自然에 ᄶᅩ첫슬 ᄲᅮᆫ이다. 이 異常과 突飛는 兩物間의 結合推移에서 나아가면 異常한 이약이의 結果에 일은다. 因果關係에 잇서서도 所謂 “定規”에 벗어진다. 그의 이약이에 往往히 通常 道德律에ᄭᅡ지 버서지는 結末로써 ᄭᅳᆺ을 막는 것이 잇슴은 이 ᄭᅡ닭이다. 그럼으로 童話 속에서 期節의 “月”이 郵便物과 함ᄭᅦ 다름질을 하야 怱怱히 都市의 이 門 저 門으로 돌아다니며 人影은 主人과 作別을 告하고 王女의 男便도 되며 宮殿 門은 會議를 열기도 한다. 薔薇는 當時 固定된 觀念인 花中王이 아니고 美에 奉仕하는 犧牲者의 象徵이요 醜한 家鴨은 不遇의 天才의 모양이요 白鳥는 偉大한 思想家의 孤獨한 形狀이다. 幸福을 내려준 魔女의 恩惠를 닛고 魔女의 목을 베인 一兵卒이 아모 才操 업시 오직 魔法의 힘으로 王女와 結婚하야 幸福스럽게 餘生을 보낼 수가 잇기도 하며 약고 적은 크라우스는 善良한 큰 크라우스를 맘대로 利用하야 酷毒한 일을 當하게도 한다. 그럼으로 넘우 悲慘하기 ᄭᅳᆺ업는 루-ᄶᅵ와 ᄲᅡ벳트의 永別을 「氷의 處女」에서 읽은 ᄲᅩ른손은 안더-슨에게 넘우 過酷지 아니하냐고ᄭᅡ지 忠告하엿다.
이가튼 안더-슨의 傍若無人의 態度가 그의 鄕土의 사람들 그 時代의 偏狹과 因襲에 굿게 된 사람들 마음속에 엇더케 容認될 수가 잇섯스랴? 果然 그는 無理解한 俗衆과 當時 文藝批評家들의 怒念에 接觸되엇다. 攻擊의 화살은 그의 몸을 에웟싸고 四方으로부터 날러 들어왓다. 그러나 이 國民의 一部의 怒念은 오래 계속되엇슴으로 그는 이 ᄯᅢ문에 몃 번이나 붓을 던지고 嘆息하엿고 엇던 ᄯᅢ는 童話創作에 暫時 손을 ᄭᅳᆫ코 小說創作에 專心하려고ᄭᅡ지 하엿다.
이제는 世俗 及 批評家 對 詩人의 抗爭을 이약이하고 此稿를 마치겟다.
一八三五年 先生이 三十歲 되엇슬 ᄯᅢ 先生은 비로소 童話 第一集을 내어 노앗다. 『兒童들을 爲하야 이약이한 童話』라는 標題를 부친 六十一 페이지밧게 안 되는 小冊子엿다.
「부싯돌 箱子」 以外에 네 가지 童話를 모와 논 것이지마는 兒童의 읽을 만한 優秀한 作品ᄲᅮᆫ이엇다. 本是부터 作法이 從來의 兒童 根本禮儀의 憲法을 眼中에 두지 안흔 것이기 ᄯᅢ문에 批評家들은 적지 안케 憤慨하엿다. 엇던 사람은 正面으로 攻擊도 하엿고 엇던 사람은 今後로는 그 가튼 것을 쓰지 말라고 忠告하엿고 ᄯᅩ 怜悧한 사람들은 沈默을 직히고 形勢만 窺視하엿다. 그것도 그럴 것이다. 正直하고 無心한 第三者에게는 이 童話가 아모래도 滋味 잇슴으로 冊은 날개나 도친 것가티 잘 팔리는 ᄯᅢ문에 批評家 中에서는 自然히 沈默을 직히는 무리가 생기게 된 것이다. 깁흔 自信으로 糧食을 삼고 살어가면서도 한편으로는 樂園의 胡蝶과 가티 조곰 거츠른 바람에라도 싸호랴는 생각이 稀薄한 안더-슨은 이 攻擊의 第一矢에 압흐게 靈의 深底에ᄭᅡ지 傷處를 바닷다. 그러나 世上의 冷却은 그것만에 그치지 안코 그의 旅行 해가 잇는 巴里 宿所에ᄭᅡ지 그의 惡評을 記載한 新聞을 크게 뭉텅이로 싸서 郵稅 先拂로 보낸 者ᄭᅡ지 잇섯다.
世上의 사랑하는 어린이들을 爲하야 그의 全 精神을 집어너흔 선물이 된다 할 만한 童話에 對하야 얼마間 조흔 批評이 잇스리라고 豫期하고 잇든 詩人은 돌이어 ᄲᅡᆼ 代身에 돌을 바든 것이 되고 말엇다. 그는 一時는 失望의 구렁에 ᄲᅡ저 잇섯스나 이ᄯᅢ 오즉 그에게 잇서서 沙漠의 沃土가 된 것은 亦是 兒童의 世界이엇다. 그는 이 憂鬱의 구름을 벗기기 爲하야 兒孩들 틈에 들어가서 그들에게 自作 童話를 이약이도 하고 ᄯᅩ 朗讀도 하야 들려주고 엇던 ᄯᅢ에는 작난감을 접어서 주기도 하엿다. 最近에 伯林에서 開催된 안-더슨祭(아마 再昨年 五十年祭인 것 갓다.) ᄯᅢ의 陳列品 中에는 조희로 접은 작난감 寫眞이 陳列되어 잇섯다는데 그 작난감에는 무엇이라 말할 수 업는 表現의 創意가 들이차 잇서서 안더-슨 그 사람의 面影을 對하는 듯한 맛이 잇섯다 한다.
그러면 안더-슨은 이가티 理解 업고 情趣 업는 사람들을 엇더한 態度로 對하엿슬가?
안더-슨은 그들 攻擊者에 對하야 一一히 議論으로써 應酬치 안코 亦是 童話를 가지고 間接으로 싸홧든 것이다.
그의 童話는 이와 가튼 消息을 背景으로 하야 觀察할 것 가트면 可成的 痛烈한 諷刺로 充滿한 一種의 寓話라고도 볼 수 잇다. 이가티 그가 正面으로 一矢를 가지고 應酬치 아니한데 對하야 ᄲᅮ란데스는 男子다웁지 못하다고 퍽 嘲笑하얏스나 안더-슨과 가튼 平和熱愛者로서는 到底히 될 수 업섯든 일임으로 그를 指摘하야 一種의 卑劣漢이라고도 할 수 업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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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이제는 童話의 힘을 빌어 自己를 批評하는 批評家를 諷刺한 것을 觀察해 보자. 「사람이 發見할 수 업는 것」이라는 童話를 보면
젊은 男子 하나가 熱心히 工夫하고 잇다. 그는 復活祭가 오기 前에 詩人이 되어 詩로 젊은 妻를 먹이어 가랴 하엿다. 그러나 可惜하게도 그 男子가 지을 만한 詩의 題目은 모도 다− 읇허진 뒤엿다. 할 일 업시 怜悧한 妻의 智慧를 빌러 갓다. 妻는 自己 男便으로서는 到底히 새로운 詩의 題目을 發見할 만한 能力이 업슬 줄 알고 男便에게 이가티 말하엿다. “當身은 復活祭는 새뢰 五十日 後 聖靈降臨祭에도 詩人이 되지 못할 터이나 그러나 當身이 當身의 無能에 愛憎心을 부티지 말고 맘 노코 지내는 一方 참 詩人을 容恕 업시 罵倒하는 일ᄭᅡ지라도 붓그러히 생각지 아니하면 구태여 復活祭ᄭᅡ지 기다릴 必要가 업고 그보다 훨신 以前인 懺悔節의 檢閱者는 되리라.
하엿다.
延星欽, “안더−슨 先生의 童話 創作上 態度(五)”, 『조선일보』, 1927.8.16.
그래서 詩人은 되지 못할 사람임으로 그 남자는 檢閱者가 되엇다. 이 檢閱者라는 것은 안더-슨이 엇더한 사람을 意味하야 말한 것인 것은 呶呶할 必要도 업는 것이다.
「무엇이냐」라는 童話의 槪要는 이러하다.
五人의 兄弟가 잇섯다. 各其 “무엇무엇”이 되리라고 말하엿다. 長男은 기와쟁이 次男은 미쟁이 三男은 建築師 四男은 新樣式의 工夫子者가 되겟다고 合議하엿다.
그러니ᄭᅡ 五男은 憤然히 兄들을 蔑視하는 눈초리로 둘러 본 뒤에 말하기를 “나는 그러한 쓸데업는 사람이 되기는 실고 批評家가 되겟다.” 하엿다. 五人은 다 各其 立志한 대로 되어 世上에 알리게ᄭᅡ지 되엇다. 드듸어 五人은 다− 이 世上에서 하직을 告한다. 五男이 第一 長壽하야 最後로 天國을 向하야 길을 ᄯᅥ낫다. 天國 門 압헤 일으러 그는 들어가랴 하지마는 許諾을 엇지 못하엿다. 웬 ᄭᅡ닭인고 하니 그는 무엇 하나 天國 門으로 들어갈 資格을 어들 만한 일을 하지 안엇다는 ᄭᅡ닭이다. 넘우 可憐히 녁이어 그를 爲하야 한 女人이 그를 入門토록 해 달라고 嘆願하엿다. 이 女人은 남을 救하기 爲하야 放火를 한 사람이지마는 이 女子가 오히려 批評家보다 天國에 들어갈 資格을 具有하엿다고 한다. 天國에서는 이 嘆願에 依하야 長兄 기와쟁이의 功績의 一部를 算入해 주고 겨우 그는 門 入口 一室에ᄭᅡ지만 들어오라는 許諾을 批評家에게 주고 今後 善行을 보아 안에ᄭᅡ지 들이기로 하엿다.
이 批評家와 가티 안더-슨은 倨傲頑迷한 衆俗에게 數업시 冷待를 바덧다.
ᄯᅡᆯ아서 이러케 衆俗을 痛烈히 諷刺한 童話도 퍽 만타. 一例를 들어 말하자면 「한울에서 ᄯᅥᆯ어진 一葉」에는 이가티 말하엿다.
원문은 ‘「人が發見しえられるもの」’로 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이 발견할 수 있는 것’, 또는 ‘사람에게 발견되는 것’으로 번역해야 옳다. 「Hvad man kan hitte paa; 영어 What One Can Invent」(1869)를 가리킨다.
75쪽: 내용, 표기 방식 수정, 각주 부여
「척척학교」는 무슨 必要로 두는지 貴한 紙面이 앗가웁기 測量 업다. 이것을 읽는 少年은 무슨 有益을 바들 것이랴? 못된 말성이나 辱 배호는 것이 有益이라면 몰으거니와 그러치 안타면 무엇하러 이런 짓을 하는지 編輯者의 心思를 알 수 업다. 少年들은 이런 것을 滋味잇게 녁일는지는 몰은다. 그러나 철업는 어린애가 작구 졸으고 ᄯᅩ 조와한다고 번연히 滯해서 病이 날 줄 알면서도 飮食을 작구 먹여야만 할가? 남이 하는 대로 日本 『少年俱樂部』의 滑稽大學이란 것을 本ᄯᅳᆫ 것인 모양인데 그런 것을 模倣치 아니해도 조치 안을가?
『쇼넨구라부(少年俱樂部)』는 일본 어린이 종합 잡지이다. 1914년 11월에 창간하여 1962년 12월에 종간하였다. 발행소는 다이니혼유벤카이고단샤(大日本雄弁会講談社)이다.
79쪽: 오탈자 수정
◇ 어린이 ◇
지난번에 「九月號 少年雜誌 讀後感」을 쓴 분이 말하기를 “마음 노코 少年에게 닑힐 雜誌는 『어린이』”라고 말한 일이 잇섯다. 事實로 『어린이』는 少年雜誌 中에서 第一 첫 손가락을 ᄭᅩᆸ을 수밧게 업다.
表紙는 三色刷로 맨든 만치 곱게 되엇다. 懸賞問題 意案도 퍽 滋味잇게 되엇다. 더구나 目次는 鮮明히 눈에 ᄯᅴ이게 잘 ᄶᅡ앗다.
「가을은 왓다」(편지글) 가을을 當하야 고향을 그리워하며 아우를 생각하는 마음에 넘치어서 쓴 고흔 글이다. 「朝鮮의 자랑」은 지나간 옛 朝鮮을 아조 쉽게 환하게 그려 논 글 참말로 작구작구 되풀이하야 읽을 만한 글이다. 「파선(破船)」(名話)은 方定煥 氏 童話 譯編 『사랑의 선물』 첫 頭目에도 잇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여긔 실린 것은
飜譯을 잘햇다고는 할 수 업다. 「이건 참 자미잇고나」는 그 題目과 가티 참 滋味나는 短行 常識庫라 할 수 잇다. 「鄭夢周 先生 이야기」도 有益한 글이다.
‘少年討論’欄은 퍽 滋味잇다. ᄯᅩ 만흔 有益이 잇슬 줄 안다. 「닛지 못하는 少年少女들」은 눈물 나는 感想文이다. 繼續 揭載 되는 長篇은 다음 機會로 밀을 수밧게 업다.
「어린이 世上」은 趣味와 實益이 兼全하다. 더구나 十一月號부터는 紙面을 刷新한다 하니 刮目하야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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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上의 여러 가지 雜誌의 十月 總收穫을 보면 말 아니다. 十一月에는 이보다 몃 倍 더 큰 收穫이 잇기를 바라며 이 拙稿나마도 編輯하시는 여러분에게 參考나 된다면 幸일 줄 알고 이만 擱筆한다.
二七年 十月 三十日
81-88쪽: 오탈자 수정
金漢, “(學藝)轉換期에 선 少年文藝運動(一)”, 『중외일보』, 1927.11.19.
現下 우리 少年文藝運動이 어ᄯᅥ한 過程을 밟아 왓스며 일로부터는 어ᄯᅥ한 使命을 遂行하기 爲하야 어ᄯᅥ한 方向으로 展開할 것이며 아니 해야 할 것인가? 하자면 이 運動의 發生的 條件을 推究하는 同時에 이 運動의 過程해 온 歷史的 考察을 비롯함으로 이것을 究明하게 되리라 생각한다.
하나 이 少年文藝運動을 말하기 前에 먼저 少年運動 그것부터 考察하지 안흐면 안 되겟다.
朝鮮에 少年運動이 닐어나기는 일로부터 六七年 前이다. 그러면 이 運動이 닐어나지 안흐면 안 될 그 原因이 어대 잇섯는가──當時 우리 少年의 現實이 어ᄯᅥ하얏는가──를 무엇보다 먼저 探索하지 안흐면 안 되겟다. 當時 朝鮮의 封建的 思想의 殘滓는 全然히 어린이의 社會的 存在를 肯定치 안 햇다. 그들은 어른의 專用으로서 그들의 人格은 餘地업시 蹂躪되엇고 그들의 情緖는 無慘히도 殺戮되엇다. 그ᄲᅮᆫ이냐. 일즉이 侵入된 ××××主義의 暴風으로 그들로 하야금 都市에서나 農村에서나 過重한 勞役에 酷使되어 그들의 健康은 潰滅되고 그들의 慧明은 隱弊되엇다.
社會의 地位가 그러하얏고 家庭의 現實이 그러하얏다. 그들은 오즉 勞役과 苦痛에 呻吟하지 안흐면 아니 되엿섯다.
여긔에 어린이 自體의 現實이 切實하게 무슨 運動을 希求하게 되엇고 歷史的 理法은 이 運動이 必然的으로 釀成되게 하얏다.
一九三一年 봄은 왓다. 地殼 미테 準備되엇든 새싹은 터 나왓다. 時代 속에 胎胚되엇든 少年運動은 첫 울음을 ᄭᅢ치고 나오게 되엇다──그해 四月에 알에와 가튼 綱領을 내어 달고 외치고 <天道敎少年會>가 先頭로 나오게 되엇다.
(一) 어대ᄭᅡ지 少年 人格을 擁護하야 在來의 倫理的 壓迫을 물리칠 것
(二) 어대ᄭᅡ지 少年의 情緖를 涵養하야 在來의 沙漠 가튼 쓸쓸한 生活을 업시 할 것
(三) 어대ᄭᅡ지 少年의 聲明을 發揮하야 在來의 不學에서 생긴 無知를 업시 할 것
(四) 어대ᄭᅡ지 少年의 健康을 維持하야 在來의 不當勞働에서 생긴 過勞를 防止할 것
(五) 어대ᄭᅡ지 少年의 社會性을 길러서 새 世上에 새 主人 되기를 準備할 것
여긔에 이 運動의 意味를 잘 把握 任한 人士는 ᄯᅩ는 少年指導의 責을 痛感한 人士들은 都鄙를 勿論하고 이에 符應하야 爭先하야 少年運動을 닐으키엇다. 各地에 少年會가 組織되엇고 無産兒童 敎養機關이 設立되엿다. 그 翌年에는 全朝鮮少年指導者大會가 열리며 <少年運動協會>가 組織되엇다. 其後 接踵하야 <五月會>가 組織되어 各各 少年運動에 全力해 왓다. 이에 人格的 蹂躪과 壓迫에 어둠 속에서 苦痛하든 어린이들은 비롯오 光明을 向하야 自己의 社會的 地位를 意識하게 되엇고 墮地되엇든 人格을 回復하게 되엇다. 하나 그 運動 거의가 敎養運動에 置重하니만치 消極的이엇슴은 避치 못할 事實이엇다. 그러나 時代는 變動한다. 轉換의 機運이 이미 닉엇다.
近者에 全朝鮮少年運動聯合大會가 열리엇다 한다. 어ᄯᅥ튼 나는 그것이 第二期的 活躍에 잇스리라고 밋는다.
한데 少年文藝運動은 어ᄯᅥ하얏나. 이 運動도 亦是 一九二一年 少年運動의 勃興에 ᄯᅡᆯ하서 必須的 條件 알에서 엇개를 견우고 나오게 되엇다. 이ᄯᅢ에 産婆役의 苦勞를 앗기지 안흔 이는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가티 小波 方定煥 氏엿다. 此外에 몃몃 분도 게시지마는 初期에 잇서서는 專혀 氏의 活動이 만햇든 것이 事實이다.
그해 四月(?)에 氏의 손으로 『어린이』가 世上에 나왓다.
이 『어린이』야말로 氏가 항상 말한 바와 가티 “학대 밧고 집밟히고 차고 어두운 속에서 잘아는 어린이의 靈”을 거룩히 慰勞할 수 잇섯다.
어두운 속에서 허덕이는 그들에게 비롯오 밝은 빗츨 비처주엇다. ᄭᅢᄭᅳᆺ한 理想을 그려 주엇다. ᄯᅡᄯᅳᆺ한 人情味를 불어 주엇다. 아름다운 藝術의 感激을 주엇다.
無智한 ○○의 酷毒한 罰責을 當해 가며 억지로라도 집어 생키지 안흐면 안 될 奴隸的 ○○ 課程에다 比할 ᄯᅢ 그야말로 그들은 慈母의 품에 안킴과 다름업섯다. 天使의 呼吸을 늣겻다.
그리해서 『어린이』를 土臺로 하야 小波 <색동會> 諸氏가 아름다운 童謠, 재미잇는 童話, 史譚, 笑話 等으로 만흔 少年을 웃기고 울리고 興奮시키고 沈思시키고 하야 어린이에게 잇는 모든 情緖를 잇는 대로 자아내어 涵養助長하는데 큰 功績을 나타내엇다.
金漢, “(學藝)轉換期에 선 少年文藝運動(二)”, 『중외일보』, 1927.11.20.
이 밧게 鄭烈模, 鄭芝鎔, 韓晶東, 高長煥, 延星欽, 丁洪敎 等 諸氏가 『新少年』, 『새벗』, 『별나라』, 其他 少年雜誌를 通하야 한갈가튼 功績을 만흔 少年에게 주엇다.
그리해서 누구 할 것 업시 모다 情緖運動 敎化運動에 全力을 傾注하야 왓다. 하나 一時 絶頂에 達하얏든 이 運動도 今年에 잡아들자 方向轉換을 부르는 소리가 놉하젓다. 우리는 벌서 過去의 形式 內容으로서 不滿을 늣기게 되엇다.
왜? 朝鮮의 情勢는 날로날로 變遷한다. 階級과 階級의 戰線은 刻刻으로 急迫해 온다. 이ᄯᅢ에 우리가 다만 情緖運動에만 安住할 수가 잇슬가. 아니다. 過去의 運動은 일로써 淸算해 버리고 다시금 新方向을 展開하지 안흐면 안 되겟다.
하나 나는 이것을 論究하기 前에 오늘날 普遍的으로 把持되어 있는 誤謬된 觀念을 檢討하야써 現階段의 少年文藝를 究明코자 한다. 그러면 그 普遍的 觀念이란 어ᄯᅥ한 것인가. 나는 便宜上 이것을 大槪 二種으로 分類하랴 한다.
그 하나로는 어린이의 世界는 斷然 不可侵할 獨立性을 가젓다──그들은 想像이 豊富하고 神秘的이다──그들의 想像의 世界 神秘의 世界를 ᄭᅢ털임은 그들의 成長發達을 沮害함이다 함으로 그들에게 現實的 知識은 禁物이다. ᄯᅩ 하나는 純潔無垢한 어린이에게 現實의 醜惡을 알림은 넘우나 悲慘하다. ᄲᅮᆫ만 아니라 아름다운 理想(?) 世界에 그들의 靈을 遊離시켜 주어 그들이 成長하야서 그와 ᄯᅩᆨ가튼 理想世界를 建設할 수 잇스리라고──하는 생각이다. 이 얼마나 虛妄한 생각이냐. 얼마나 非辨證法的 考察이냐. 나는 順序를 ᄯᅡᆯ하 먼저 前者를 討究하랴 한다.
그러타. 그들은 神秘의 世界에 살앗다.
그러나 이 現實이 그들에게 神秘 그대로를 간즉하게 하느냐 말이다.
“부자ㅅ집 아이들은 지난 밤 크리스마쓰에 보고 십든 예수를 맛나서 그들이 가지고 십든 幸福을 어덧다고 소근거린다. 그들은 神秘의 王國에를 다녀왓다고 盛大한 宴會가 열린다. 北國의 女王이 白色 手巾을 詵物로 그들에게 보냇다고 그들은 서로 웃는다. 그러나 잠을 자기는 하얏스나 北國의 女王의 詵物도 엇지 못하고 工場에도 가지 안코 神을 爲하야 禮拜하얏스나 도모지 幸福을 엇지 못하얏다.”(朴英熙) 그들은 幸福도 업고 神秘도 업고 다만 악착한 現實이 그들 압헤 걸려 잇슬 ᄲᅮᆫ이다. 한데도 不拘하고 그의 靈을 形而上學的 所謂 神秘世界에 遊離 痲醉시키어 억지로라도 現實을 掩避하고 魔女와 狐狸를 主人公으로 한 巧邪 鈍智的 讀物이 아니면 王子 王女를 讚美하는 奴隸的 讀物을 提供하야써 그들의 熱烈한 創造性(××的)을 沮害함은 確實히 反動運動에 지내지 안는 것이다.
金漢, “(學藝)轉換期에 선 少年文藝運動(三)”, 『중외일보』, 1927.11.21.
그러면 다시 後者를 생각해 보자. 이 現實을 純潔無垢한 그들에게 알림은 넘우나 無慘하다고, 그러타. 天眞爛漫한 그들에게 이러케도 慘酷한 現實을 알리자면 아니 되게 된 것은 眞實로 悲痛한 일이다.
그러나 악착한 現實은 누가 알랴서 알려지는 것이냐. 現實 그것이 달려드는 것이다. 보아라. 朝鮮의 어린이 八九割은 無産者이다──그들은 農村의 오막집에서 都會의 工場 안에서 過重한 勞役과 酷毒한 楚痛 알에 울고 부르짓고 잇지 안흔가. 하면서도 그날의 조쌀 알이나마 변변히 어더먹지 못하는 이 現實을 어ᄶᅵ 알리랴 알려지는 것인가.
다음에 理想世界를 그려 줌으로 그들에게 理想世界를 建設하리라고 하는 생각이다. 아즉 그 말대로 是認한다손 치자.
여긔에 現實 속에서 자라나는 어린이의 空想 속에서, 아니 理想 속에서 자라나는 두 어린이를 假定하고 보자. 前者는 强烈한 日光 알에 자라나는 풀과 가타서 現實에 시달리면 시달리니만치 그는 頑强히 抵抗해 가며 悲壯한 싸움 가운대에 完然히 成長할 수가 잇슬 것이다. 그와 反對로 後者는 그늘에서 자라난 풀과 가티 現實이 暴風이 한번 불면 纖細軟弱한 그 가지는 그만 挫折되어 그는 落魄과 敗殘의 길을 밟지 아니치 못하게 될 것이다. 萬若 그런 어린이가 잇다면 以上 더 不幸이 업스리라.
‘플라톤’ 以後로 만흔 理想家들이 여러 가지로 理想을 그려 보앗다. 그러나 그런 理想鄕이 存在해 잇지 안흔 데야 어ᄶᅵ하랴. 보아라 ‘로바-트・오헨’의 『協和共力村』이 ‘모리쓰’의 『유토피아』가 이 地球 어느 모퉁이에 存在해 잇는가.
나는 以上으로 粗略하나마 誤謬된 觀念을 檢討하얏다. 그러면 現階段에 잇서서 少年文藝는 어ᄯᅥ해야 할 것인가. 나는 支離하게 됨을 避하기 爲하야 朴英熙 氏의 말을 빌어 簡單히 이에 대답하고 말랴고 한다.
“自己는 社會의 富를 맨드는 사람이다. 自己는 社會의 모든 文化를 맨드는 사람이다. 그런데 自己에게는 富도 업고 文化도 업다. 그 原因이 어대 잇는가를 探索하는(十七字 削) 科學이다.”
그러타.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 ×××民族의 어린이에게 우리 푸로레타리아 어린이에게 科學的 智識으로써 우리의 現實을 如實히 보여주어서 自己階級의 ‘이데오로기’를 把握시키고 ᄯᅡᆯ하서 ××的 思想을 興起시키는 文藝가 아니면 안 되겟다.
그들의 現實的 生活이 누구보다 苦惱와 悲痛에 복개느니 만치 그들은 누구보다 自由를 憧憬하고 解放을 欲求하느니만치 그들은 이에 興味 感激을 늣기게 되고 ᄯᅡᆯ하서 이 解決의 秘策을 차즈랴 한다.
이에 이 解決의 秘策을 차저 주는 것이 轉換期에 잇는 少年文藝의 任務가 아닌가 한다.
一九二七年 十一月 十二日
89~93쪽: 탈자 보완
金泰午, “(學藝)心理學上 見地에서 兒童讀物 選擇(一)”, 『중외일보』, 1927.11.22.
現下 朝鮮에 잇서 兒童讀物이라 하면 最近ᄭᅡ지 續刊하고 잇는 十餘種의 少年少女 雜誌와 其外 七八種의 童話集과 若干의 科學書類일 것이다. 朝鮮兒童의 讀物이 外國에 比하면 퍽으나 貧弱하다는 것은 이제 새삼스럽게 늣기는 바는 아니겟지만 넘우나 뒤ᄯᅥᆯ어젓슴을 말하지 안흘 수 업다.
從來 朝鮮에 少年讀物이 잇섯다 하면 大部分이 童話와 童謠일 것이다. 童話와 童謠가 少年讀物에 잇서서 가장 重要한 要素를 占領하고 잇다 하면 從來에 말할 수 업는 混沌狀態에 ᄲᅡ저 잇섯든 것은 事實이다. 勿論 우리의 立場과 周圍의 環境이 許諾지 안흘 만큼 避할 수 업는 形便이엇다. 그러나 넘우나 內容이 不徹底하고 그것의 骨子를 차저볼 수 업섯다는 것이다. 讀物 選擇이라 하면 過去에 잇섯든 것을 選擇하고 評한다 하는 것은 甚히 錯□할 일이다. 그럼으로 압날의 讀物 選擇에 對하야 생각하고 取할 것은 取하고 버릴 것은 □然히 除去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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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今年 夏期에 平安道, 黃海道, 京畿 一部의 各 重要한 都市로만 一個月餘를 두고 童話巡廻를 하든 中 當地의 少年運動者 몃 동무들이 兒童讀物에 對한 質問과 今後 朝鮮兒童에 잇서서 어ᄯᅥ한 讀物을 選擇해야 되겟느냐는 討議가 잇섯다. 그래 그네들의 參考와 童話 童謠作家와 ᄯᅩ는 글 쓰는 이들과 父兄 諸氏에게 한갓 參考로 提供하려 한다.
그리고 所謂 <朝鮮少年聯合會> 敎養部라는 重且大한 責任을 마튼 筆者로써는 이 問題에 對하야 愼重히 考慮하고 생각하기 ᄯᅢ문에 여러 번 躊躇하얏다가 心理學的 考察로 본 나의 斷想을 少年雜誌 執筆者와 一般 父兄에게 公認하고 朝鮮에 아즉것 讀物 選擇에 對한 具體的 批判이 업는 只今에 잇서서 이것이 問題의 焦點이 되어 嚴正한 批判으로써 朝鮮少年運動과 兼하야 等閑視할 수 업는 兒童敎養問題에 圓滿한 解決이 잇기를 바라며 만흔 評論으로 압날의 向上 發展을 빈다.
그런데 日前 『朝鮮日報』에 記載된 申孤松 님의 少年雜誌 讀後感이라든가 果木洞人의 어느 小評 그것도 조흔 것이다. 나는 여긔에 對해서 말하지 안흐려 한다. 그러나 이 압흐로 評을 한다면──어느 形式과 派閥主義에 拘泥되지 말고 그리고 評者는 公正한 眼目과 冷靜한 頭腦로 觀察하야 그 作品에 對한 內容을 大凡하게 具體的으로 嚴正한 意識으로써의 批評과 論爭이 잇슴에 ᄯᅡᆯ하 압날의 發展을 企待할 수 잇스며 모든 것이 理想대로 展開되리라고 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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讀物이라고 하면 精神의 糧食이다. 身體를 養育하는데 食物이 絶對的으로 必要한 것과 마찬가지로 精神을 養育하는데는 讀物이 업서서는 안 된다. 그래도 身體의 適當한 食物만이 身體를 잘 기르는 것과 가티 精神의 要求에 適當한 讀物 그것이 精神을 잘 기르는 것이다. 萬若 그러치 못하면 畢竟에는 害惡이 잇슬 ᄲᅮᆫ이요 有益은 全無할 것이다. 그럼으로 兒童讀物選擇의 問題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金泰午, “(學藝)心理學上 見地에서 兒童讀物 選擇(二)”, 『중외일보』, 1927.11.23.
一般이 成長하는 兒童의 身體는 成長 그 時期에 依하야 要求하는 食物을 變更하게 되는 것이라 個人的에는 그 體質에 適當한 食物을 選擇한다 하면 發展하고 잇는 兒童의 精神도 亦 發達의 時期에 要求하는 讀物도 다를 것이다. ᄯᅩ 그 個性에 依하야 讀物을 定하는 것이다.
精神上 動作과 生命度量을 心理學上으로 考察하야 본다면 一歲 乃至 六歲에 一時期를 짓고 七歲 乃至 十一歲가 ᄯᅩ 다른 一時期를 造成하야 動作과 生命의 度數가 此期는 顯著히 發達 向上한다. 그리하야 前者를 幼稚期라 하고 後者를 兒童期라고 稱한다. 그리고 十二歲 乃至 十九歲ᄭᅡ지는 ᄯᅩ 心理의 活動이 兒童期로부터 一段 向上하는 것이다.
이것을 靑年期의 準備라고 한다. 只今 問題가 되어 잇는 讀者에 關하야 少年少女라고 하면 卽 兒童後期의 十歲로부터 十四五歲ᄭᅡ지의 年齡者를 包含한 것이라고 본다. 그러면 此期間에서 이러한 讀物을 選擇하여야 될 것인가를 心理的으로 考察한다면 第一은 少年期의 心身活動에 잇서서 心身에 正當한 發達을 誘導하고 充實生活을 持續할 適用物을 選擇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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兒童精神發達의 時期로부터 吟味하야 보면 幼少한 ᄯᅢ는 아즉ᄭᅥᆺ 幻想世界에서 사는 것이다. 그럼으로 少年少女의 讀物은 한편으로만 치우처서는 안 된다. 各種多樣의 것을 닑혀주어야만 되는 것을 父兄들은 注意해야 될 것이다. 少年에게는 勇敢스런 것과 自然科學의 風이 잇는 것 ─ 少女에게는 ‘센티맨탈’한 구슯흔 이약이, 少女小說 風이 잇는 그것으로만 制限을 하고 兒童讀物上 男女의 差別을 부친다거나 하는 것은 滋味스럽지 못한 것으로 思惟한다. 願컨대 雜誌나 무엇이든지 十四五歲ᄭᅡ지 少年讀物은 구지 少年少女 區別을 하면 兒童에게 滋味업는 印象을 너허주는 것이니 될 수 잇는 대로 避하자는 것이다.
身體의 營養은 雜多의 混食이 必要한 것과 가티 精神上 營養에도 男女의 差別을 될 수 잇는 대로 無視하고 여러 가지 讀物을 平等으로 닑혀 주어야 할 것이다.
神話, 傳說, 童話, 童謠 들도 勿論 조흐나 八九歲의 幻想의 ᄭᅮᆷ 世界를 ᄭᅢ우치는 男子에게는 英雄談, 冒險談, 歷史談, 事實談 가튼 것을 질겨 한다. 女子에게는 可憐하고 少年少女에 關한 섧고 애닯은 이약이 가튼 것에 趣味를 부치게 된다. 다음 十二, 三歲ᄶᅳᆷ 되어 性的 傾向이 눈ᄯᅳ게 되면 趣味가 ᄯᅩ 一層 넓고 깁허저서 後代의 小說과 詩나 劇 가튼 것을 要求하게 된다.
그리고 이 方面을 大槪 말하기를 感情的 要求에 關한 것으로써 所謂 文藝讀物이라고 한다. 이것은 兒童讀物의 一部面일다. 그것이 滲透하야 活動하면 空想에 갓갑고 感傷的 傾向으로 기울어진다. 精密히 事物을 觀察한다거나 正確히 理路를 追求하야 判斷하거나 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좀 强硬한 讀物로 나아가면 精確히 닑을 만한 勇氣를 일허버리고 現階段에 선 兒童은 재미를 부치지 안케 된다.
金泰午, “(學藝)心理學上 見地에서 兒童讀物 選擇(三)”, 『중외일보』, 1927.11.24.
이처럼 興味를 못 엇는데 對해서는 自然界에 對한 好奇心에 應하야 觀察力이 鍊磨되는 것이다. 汽車, 汽船, 飛行機 等에 對한 興味를 부치고 工夫 考察力을 기르기 爲하야 理科的 讀物을 提供하는 것도 조흘 것이다. 이것은 늣드라도 八九歲ᄶᅳᆷ 되어 鮮明한 그 힘을 보고 ᄭᅢ닷기 始作하야 普通學校를 卒業하고 中學校에 入學하야 理科敎育을 適當하게 遂行할 것도 한 가지 條件이라고 생각한다. 이 方面의 重要한 것은 理智的 要求에 應하야 所謂 科學讀物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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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ᄶᅢᆺ든 少年期에 가장 顯著하게 發展하는 機能은 運動과 知覺일다. 外部動作이 急速히 敏捷하게 되고 巧妙한 可能性을 크게 가지고 잇는 時期이다. 外界에 對한 感覺, 味, 臭의 知覺이 銳利 精細하게 되는 可能性을 크게 發揮하는 것은 此 時期에 하는 것이다. 卽 精神의 外向的 方面은 ᄯᅩ 靑年期程에 盛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야 感情은 可及的 强硬히 發動하나 그것은 外部 動機가 大體로 □□하는 種類의 感情이고 內部 動機로부터 潤色하는 일이 淺薄하다. 그리고 少年의 心理는 靑年에 比하야 客觀相을 ᄯᅴ고 잇는 것이다.
上述한 바와 如히 少年의 心理는 禽獸, 虫魚, 樹木, 砂石, 日月星辰 等 自然界의 事例에 크게 好奇心과 興味를 늣기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ᄯᅩ 그것을 相對로 하야 種類의 動作 遊戱를 始作한다.
그럼으로 自然의 事變 事物을 少年의 好奇心과 興味에 適當한 것, 그리고 自然에 相當한 理路를 알려주며 ‘이솝프’ 物語 가튼 것은 敎訓에 不過하는 가장 ᄶᅥᆯ은 寓話이다. 어느 程度ᄭᅡ지는 禽獸가 相談하고 ᄭᅩᆺ과 열매가 서로 이약이를 하며 별님이 이약이를 하는 想像化한 것도 조타. 그러나 넘우 唐荒無稽한 것은 少年에게 오히려 虛僞에 ᄲᅡ지게 하는 害가 될 念慮가 잇스니 이 點에 特히 注意하지 안흐면 안 된다.
ᄯᅩ 少年은 活力이 增進하는 時期인 만큼 活潑, 勇敢 그러한 動作을 조하 한다. 그러나 單只 少年의 興味만으로써 지은 冒險談은 돌이어 害가 적지 안타. 少年 自體가 理解할 만한 어느 程度ᄭᅡ지는 正義를 目標 삼고 勇敢活潑하게 지은 作品은 少年讀物로써 가장 適當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少年文藝는 少年의 正當한 心理의 欲求에 糧食이 됨으로써 少年의 마음을 正善으로 指導하지 안흐면 안 될 것이다.
‘ᄭᅵᆸ푸링’의 『ᄶᅡᆫᄭᅦᆯᄲᅮᆨ』 中의 이약이는 如上의 見地로써 보아 推薦할 만한 天空快調의 讀物이다. 或은 英雄史談이나 ‘스마일스’의 自助談 가튼 것은 少年精神上 保健的 讀物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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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下 朝鮮에 잇서 特히 白衣少年에게 適當한 讀物을 選擇함에 그에 對한 管見과 注意는 各人의 意思 別論으로 主義主張이 다르겟지만 나의 가장 重大하게 생각하는 것은 左와 如히 三種目으로 例擧하랴 한다.
一. 衛生上 障碍가 업는 것으로 그리고 文字의 大小, 地質, 眼의 衛生上 害되지 안는 것으로 選擇할 것을 第一 注意할 것이다.
二. 近來 多種의 少年雜誌가 뒤를 니어 出刊되는 이ᄯᅢ에 그 雜誌를 모도 다 맘 노코 닑힐 것이냐. 그러치 안타. 여러 子弟들에게 닑히는 父兄들은 雜誌의 選擇에 만흔 注意를 가지지 안흐면 안 될 것이다.
104쪽: 각주 42번 오식 수정
42 ‘金雪崗’은 김태오(金泰午)의 필명이다.
김태오는 아이생활사의 파견으로 1927년 8월부터 서북 지방으로 순회동화의 길을 떠난 바 있는데 그에 관한 기록이다. 아래는 이와 관련된 기사다.
조선소년련합회창립준비위원 김태오(金泰午) 씨는 시내에 잇는 월간 소년잡지 '아희생활社'의 파견으로 금 십일부터 서북 디방(西北地方)을 순회동화(巡廻童話)의 길을 ᄯᅥ나게 되엇는대 그 일정(日程)은 아래와 갓다 하며 일반사회 단톄의 도음을 바란다고.
日 程
十一日 新義州, 十三日 義州, 十五日 安東縣, 十六日 宣川, 十七日 定州, 十八日 安州, 十九日 平壤, 二十二日 黃州, 二十三日 沙里院, 二十四日 信川, 二十六日 載寧, 二十七日 海州, 二十九日 仁川, 卅日 歸京. (「金 氏 巡廻童話」, 『동아일보』, 1927.8.10)
(하략)
124쪽: 위에서 8째 줄 오자 수정 수정
少年雜誌 批評에 例外의 얼토당토안흔 말이 들어 잇다면 排擊할 만하지마는 그것이 그 雜誌批評에 關連이 잇는지 업는지도 모르고 이러니저러니 하는 것은 早斷이오 妄斷이라 할 것이다.
128쪽: 한자 수정
赤兒, “十一月號 少年雜誌總評(三)”, 『중외일보』, 1927.12.5.
(전략)
이것은 外國童話를 譯한 것이다. 外國童話도 조흔 것이면야 이것을 朝鮮化하야 닑힐 必要가 잇다. 돈 잇고 勢力 잇다는 有産家輩가 自己慾心을 채우기 爲하야 다− 가튼 사람임에도 不拘하고 종이라는 恥辱의 굴레를 들씨워서 악착한 채ᄶᅮᆨ질과 暴虐한 발길질한 것이 外國에만 그러햇스랴? 羅馬에만 그러햇는가? 朝鮮은 더욱 甚하얏다. 班常의 區別이 그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런 童話는 純然히 朝鮮化시키어 隱然한 가운대 徹底한 階級意識을 讀者에게 너허줄 必要가 잇지 안흔가? 그리고 無産者는 盜賊이 아니다. 배곱흠과 치움을 못 니겨서 銀그릇을 훔치는 것이 無産者의 할 짓이 아니다. 有産家輩에게 蹂躪을 當할스록 오로지 正義를 目標로 하고 銀그릇을 훔첫다는 것은 無産者를 盜賊으로 녀긴 것이 分明치 아니한가? 이 童話를 譯한 毛允淑 氏여? 外國童話라고 그대로 옴겨다 놋는 것은 잘못이다. 朝鮮과 沒交涉한 懸隔한 差異가 잇는 배부른 者의 생각한 世界가 朝鮮兒童과 무슨 關連이 잇슬 것인가?
129쪽: 한자 수정, 약물 표시 수정
赤兒, “十一月號 少年雜誌總評(四)”, 『중외일보』, 1927.12.6.
「외로운 少女」(童話) 이것은 童話라고 햇스나 小說이라고 해야 조흘 것이다. (어ᄯᅥᆫ 사람은 童話니 傳說이니 그ᄭᅡ짓 것은 區別해 무엇하느냐는 어리석은 말을 한 일이 잇스니ᄭᅡ 그런 사람의 눈으로 보면 別다를 게 업겟스나) 譯이라니ᄭᅡ 길게 말 안하고 무엇을 取하야 ᄶᅡᆲ지도 안흔 것을 실엇느냐고 編輯者에게 뭇고 십다. 譯이 서투르니 讀者에게는 別로 有益을 줄 수 업슬 것이오. 取할 點은 航海 後에 돌아오지 안는 아버지를 기다리는 마음, 돌아간 어머니의 무덤을 永永 ᄯᅥ나지 안키로 決心하얏다는 그것이라 할가? 이것은 戀愛小說을 억지로 고치어 논 것이 틀림업는 것 갓다. 이ᄯᅡ위 것을 실르니 압길이 有望한 朝鮮의 압잡이 될 少年少女에게 업지 못할 科學的 記事를 만히 실른 것이 조켓다고 編輯者에게 勸한다.
「가난한 동무」(少女劇) 이것은 繼續이라니ᄭᅡ 더− 말하지 안흐랴 하거니와 이것을 假令 上演한다면 서로 마주 서서 “그랫늬” “그랫다” 하는 對話(?)에 지내지 안흘 것이다. 이것은 劇이 못 된다. 劇은 다른 것과 달라 直接 눈으로 보는 사람에게 感動을 주는 것이기 ᄯᅢ문에 그만한 劇的 興味가 잇슬 만한 것이라야 한다. 다른 것도 그러켓스나 더구나 劇 가튼 것은 아모나 다− 못 쓰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朴世赫 氏의 「아버지를 업구서」(少女哀話)는 고은 글이다. 그러나 아버지 어머니가 다− 업는 少女 곱단이의 落心한 點은 取할 것이 못 된다. 어ᄯᅥᆫ 困難, 어ᄯᅥᆫ 波瀾, 어ᄯᅥᆫ 障碍가 잇드라도 그것을 참고 박차고 나아갈 만한 勇氣를 少年少女에게 부어주어야 할 것이다.
‘少女文藝’ 欄은 ᄭᅫ 整頓되엇스나 눈에 ᄯᅴ우는 作品은 업다. 「英雄 모세」는 埃及王 비로의 暴虐한 손아귀에 걸려서 慘酷히 죽는 數만흔 ‘이스라엘’의 어린 生靈 가운대에서 홀로 살아나 壓迫, 殺戮, 橫暴, 侮辱에서 울고 부르짓는 ‘이스라엘’ 百姓을 救해낸 ‘모세’의 事蹟이다.
172쪽: 내용 보유
洪銀星, “「少年雜誌送年號」 總評(五)”, 『조선일보』, 1927.12.23.
『少年界』
◀ 馬春曙 氏의 「鈴蘭花」는 얌전히 된 童謠이다. 더욱이 그 ᄭᅳᆺ 節이 妙하다.
곱다란 밤바람이
정답게 불어오면
조그만 은방울들
일제히 흔듬니다
얼마나 ᄭᅢᄭᅳᆺ하냐. ᄯᅩ 同氏의 童謠 「별 아씨」는 좀 덜 되엇다. 童謠되기 어렵다. 七五節로 써 보앗스나 詩想이 덜 되고 句節이 억으러진 곳이 만타.
◀ 김려순 氏의 探偵小說 「무서운 밤의 墓地」는 아즉 第一回임으로 엇ᄯᅥ케 發展될 것인지 미리 斷言할 수는 업스나 이 第一回만 놋코 보드래도 戀愛物語이다. 김 氏여! 당신은 지난 달 『少女界』에도 「白骨의 무덤」이라는 戀愛小說을 쓰고 이번도 戀愛로 먼저 展開를 시키니 무슨 心事인지 알고 십다. 넘우 販賣政策만 쓰지 말고 좀 더 考慮할 必要가 잇지 안흔가. 글세 “何必 鰒 생선이 맛이냐.”는 말과도 가티 당신은 戀愛小說 아니면 쓸 것이 업소. 그러케 『少年界』를 못 보는지. 그들이 靑年에도 不良靑年에게 조흔 글이라고 나는 評합니다. 내내 이러한 것을 쓰기를 主張한다면 우리는 嚴酷한 筆誅를 使用할 것이다. 반드시 謹愼이 잇기를 바란다. 우리가 그런 것을 筆誅를 못한다면 評할 價値도 업는 것이다. 後日로 보기로 하고 이곳은 이만한다.
◀ 崔相鉉 氏의 말삼 「少年의 立志」는 그 思想은 조타. 그러나 넘우 平凡하고 俗學的이다. 이러한 問題를 取扱할 ᄯᅢ에는 좀 더 考慮해 쓸 必要가 잇다.
다시 쉬운 例를 하나 든다면 ‘오케스트라’ ─ 管絃樂 ─ 를 演奏할 ᄯᅢ에 萬一 남의 命令을 服從하기가 실타고 指揮하는 사람의 命令을 듯지 안허 보고 십지요. 그 管絃樂은 演奏를 할 수가 잇겟는지!
이와 마찬가지 理由로 한 個의 兒童劇을 演出하게 될 ᄯᅢ에도 萬一 出演하는 사람이 다 各其 이러한 생각을 갓는다면 이 兒童劇을 엇더케 演出하겟습니까? 그런 까닭에 이 兒童劇을 演出하는 中에 各自가 스사로 主務者의 命令을 듯는다던지 劇中 主要人物의 命令을 잘 듯는 習慣과 規律을 自然히 重하게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비로소 한 가지 일을 할 ᄯᅢ 반드시 그 일을 서로 도읍고 서로 分擔하야 努力할 줄 아는 조흔 習慣 한 가지를 겹처 배호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을 좀 더 자서하게 말하면 즉 自己 스사로 배홀 自己 스사로 다스릴(治)고 自己 스사로 努力한다는 자랑 必要한 德性을 기르게 되는 것입니다.
◀ 琴徹 氏의 童話 「福得이와 피리」는 滋味잇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ᄭᅳᆺ이 조금 싱겁다. 大體로 童話로는 過히 險 잡을 것은 아니다.
◀ 金泰午 氏의 傳說 「寳玉世界」는 傳說 되기에는 너무 根據가 업다. 傳說은 ᄭᅩᆨ 어느 地方에 局限되엇든지 그러치 안흐면 어느 나라에서 나왓는 것이 잇서야 할 것이다. 이것은 童話라고 하는 편이 낫겠다. 그저 平凡한 勸善懲惡的의 것이다. 過히 남으랠 곳도 업고 稱讚할 것도 못 된다. 그러나 文章의 洗練과 伏線의 調密은 氏 一流의 手法인가 한다.
194-198쪽: 판독불가 글자 복원 및 수정
宋完淳, “空想的 理論의 克服−洪銀星 氏에게 與함(二)”, 『중외일보』, 1928.1.30.
少幼年을 混同視하야서는 못쓴다고 하든 氏는 文學上 乃至 作品上에서는 何等 問題가 되지 안는다고 하다가 다시 섭섭하든지 幼年에게는 글로 닑히는이보다 口頭로 들려주는 것이 낫다고 햇다 ── 이 어ᄶᅥᆫ지 觀念的 妄論이며 粗雜한 認識錯誤이냐? 果然 少幼年을 混同視하는 것은 質로 量으로 어는 모로 보든지 조치 못한 일임은 再言할 必要도 업다. 그러나 文學上 乃至 作品上에는 無關하다고 하엿스니 氏여! 少年이나 幼年 兒童이 文學上 乃至 作品上에서 어ᄯᅥ한 感化를 밧는지 아는가? 어른도 詩나 小說 가튼 데에서 적지 안흔 感化를 밧거든 況 心志가 弱하고 模倣性이 만흔 少年과 幼年의게 果然 文學上 乃至 作品上으로는 모든 것을 混同해 닑혀도 되겟는가? 나는 心理學에는 門外漢이라 以上에 한 말이 錯誤된 말인지는 모르겟다. 그러나 그 어느 程度═勿論 나로서는 以上의 나의 한 말이 올타고 생각한다 ── 지는 나의 한 말이 그의 錯誤된 意見은 안일 것이다.
그러고 幼年에게는 글로 닑히느니보다 口頭로 들려주고 가르켜 주는 것이 올타고 햇스니 그래 果然 그럴 것인가? 勿論 口頭로 하는 것이 效果는 더 잇슬 것이다.
그러나 全然 글로는 닑히지 말고 말로만 해서 될 것일 것인가? 안이다. 口頭로도 만히 일러주는 同時에 ᄯᅩ한 글로도 알리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 氏의 말에 依하면 幼年兒童에게는 日本 兒童의 繪畵本 가튼 것이 ᄭᅩᆨ 必要하다 하얏다. 그런데 그 繪畵本으로 말하면 西洋 것도 못쓰고 朝鮮 것──업기는 하지만──도 못쓰고 반듯이 日本의 그것과 ᄭᅩᆨ 가타야 한다고 하얏다.
ᄯᅩ 다시 氏는 “少年雜誌만을 經營하지 말고 幼年雜誌──讀本(?) 가튼 것──을 發行하고 그다음 現今 少年雜誌 編輯者는 幼年 닑히기에 갓가운 것은 실지 안는 것이 조캣다” 하얏다.
우리는 다시 以上의 氏의 말에서 氏는 模倣性이 만코 現下 우리 朝鮮의 經濟的 窮乏에 沒理解한 空想論者임을 可知할 수 잇다.
우리는 幼年에 鑑賞식힐 繪畵本을 맨들드란대도 반듯이 우리의 客觀的 情勢와 周圍의 環境을 보아서 여긔에 合當한 것을 맨들어야 할 것이다. 보라! 日本 兒童의 繪畵本이 그 어는 것이 우리 朝鮮 幼年兒童에게 的合한 것이 잇는가? 그들의 畵本은 거의가 우리의 ×××××××××× 呻吟하는 朝鮮의 幼年兒童에게는 想像치 못할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不拘하고 盲目的으로 이러한 愚論을 大膽(?)하게도 吐한 氏야말로 果然 偉大(?)한 理論家이다(!) 그리고 現今의 少年雜誌에는 幼年讀物을 揭載하는 것이 不可하다 하얏다. 咄! 果然 이 얼마나 忘論妄說이냐. 만일 少毫라도 氏가 朝鮮의 經濟現狀을 理解 乃至 分析 考察하야 보앗다면 이러한 空想的 妄說은 하지 안흘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웨? 그러냐? 하면 勿論 現今의 少年雜誌에는 인저 幼年讀物 揭載는 不可하다 하얏스니 다시 現存한 少年雜誌 以外에 다시 幼年雜誌 刊行을 希望한 것은 말치 안하도 氏의 말을 綜合하야 보면 能知하리라. 그러면 우리는 여긔에서 다시 생각해 보자. 果然 다시 現存한 少年雜誌 外에 幼年雜誌를 刊行할 힘이 우리에게 잇는가? 아니 힘이야 잇겟지만 經濟的 條件이 그를 許諾을 할 것인가? 否.
우리에게는 아즉도 그러한 餘裕가 업다. 차라리 少年雜誌中의 二三 가지는 幼年雜誌로 맨들라든지 或은 少年雜誌에다 特別히 幼年欄을 設置하라든지 햇든들 當分間 氏의 人身保護는 되엇슬른지 몰른다. 그러나 直接 이와 가튼 愚論을 吐하야써 氏의 自體를 氏 스스로가 餘地업시 暴露식히고 말앗다.
於是乎 우리는 盲目的으로 理論이니 ‘이데오로기’이니 들 것이 아니다. 空然히 되지 못한 粗雜한 文句만 늘어노코 理論인 척하다가는 自己自身만 民衆 압헤 暴露식킬 것이며 惑은 理論을 爲한 理論을 吐하기 쉬운 것이다. 그러니 무엇보다도 모든 것을 愼重히 考察하야 어ᄯᅥ한 意識을 確實히 把握한 後에 말하란 말이다.
氏의 本 論文 亦是 粗雜 散漫한 文句만 羅列하여 노앗기 ᄯᅢ문에 理論을 爲한 理論이 되고 아서 實踐과 背馳밧게는 더− 나아가지 못하엿다.
宋完淳, “空想的 理論의 克服−洪銀星 氏에게 與함(三)”, 『중외일보』, 1928.1.31.
三. 文藝運動의 作品 行動
少年運動이 方向轉換을 함에 ᄯᅡᆯ아 少年文藝運動에도 漸次로 그의 方向轉換을 하지 안흐면 안히 되게 되얏다. 안히하여야 한다. 웨냐? 하면 少年運動과 少年文藝運動과는──其他 一切의 少年에 對한 모든 運動도 그러치만은──分離할 수 업는 必然的 形勢에 잇슴으로 卽 少年文藝運動은 少年運動의 一部門── 一翼 ──에 不過한 것이다. 萬一 少年文藝運動이 獨立的 價値가 잇고 特殊性이 잇다 하면 그야말로 空言妄說이다. 그럼으로 一切의 少年文藝運動은 少年運動과 가티 이에 아서 動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少年運動으로 하야곰 文藝運動의 行動도 規範 되어야 할 것이다. 文藝運動에 구태여 特殊性을 말하게 된다면 文藝運動은 文藝運動임으로 特殊性이 잇는 것이다.
그러면 方向轉換을 한 우리의 少年運動은 如何히 理論을 展開할 것이며 如何히 作品行動을 할 것히냐? 그런데 나는 理論의 展開는 勿論 무엇보다도 必要하다고 생각함으로 다시 어ᄯᅥ한 理論이 必要할? 하는 것은 讀者 諸君의 思考 材料로 미루어 두고 時間과 紙面關係도 잇스니 爲先 作品行動에 對하야만 말해 두겟다.(具體的 論議는 追後 다시 말하기로 約束해 둔다.) 作品行動에 對하야 우리는 어ᄯᅥ한 作品을 써야 할ᄭᅡ? 毋論 ×××××의 兒童인 만큼 ── 우리의 少年運動이 無産階級 兒童의 運動인 만큼 글을 쓰는 데에도 반듯이 實踐的 條件下에서 ‘푸로레・이데오로기’를 抱含한 作品을 써야 할 것이다.
우리의 少年文藝라 할 것 가트면 大槪 童話 少年少女小說 童謠 童詩 等으로 大別할 수가 잇다. 그러면 在來의 是等 文藝는 우리의게 무엇을 선물로 주엇든가? 어린이들은 그 文藝作品을 보고 어든 바 무엇이 잇든가?──나는 이 質問이 나온다면 一言으로써 答하겟다──在來 一切의 少年文藝作品에서 어린이들이 어든 利益은 하나도 업다.
잇다면 虛構한 空想과 封建的 奴隸觀念과 忠君的 帝國主義 觀念밧게 업다──고. 보라! 童話 한 가지를 써도 第一 出發點은 나라의 宮城이요 ‘요술할멈’의 집이요 ‘한우님’의 뒤ㅅ간 等이다. 그리하야 이약이도 ‘님금님’, ‘요술할멈’, ‘王子, 王女’, ‘한우님’ 等 列擧하면 不知其數이며 돌이 말하고 귀신이 작란하고 龍이 비를 주고 어ᄶᅥ고 어ᄶᅥᆫ다는 虛無孟浪한 글을 그리지 안허도 虛榮心 만코 順直한 어린이들을 보이며 읽히여 오지 안핫는가? 或者는 天眞爛漫한 어린이에게 生活現實을 科學的으로 分析하야 들려준다는 것은 넘우나 愚識한 無賴漢이라고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 所謂 天眞爛漫이란 大體 우리의 ××××××××××으로서는 알지도 못하는 말이다. 우리 朝鮮 兒童은 어머니 胎內에서 나올 ᄯᅢ부터 粗惡한 現實味 ── 卽 衣食住 ── 에 저젓슬 것임에도 不拘하고 天眞爛漫이란 무슨 稚兒의 藝言이냐? 朝鮮 兒童은 空想보다도 現實味를 虛榮보다도 實踐性을 더욱더욱 感深하게 된다. 그럼에도 不拘하고 在來의 空想的 虛僞滿滿한 封建的 觀念을 注入식히려는 者는 우리의 敵이 아니고 무엇이랴? 이 後부터는 이 모든 一切의 空想的 觀念을 버리고 오로지 現實과 背馳되지 안는 作品을 써야 하며 닑혀 주어야 할 것이다. 아니 ᄭᅩᆨ 그러케 하여야 한다.
그런데 洪銀星 氏는 말하기를 甚한 例로는 鑑賞小說 ᄯᅩ는 이와 類似한 種類를 것침업시 실코도 泰然自若하얏다. 그러든 것들을 지난해부터 우리의 運動이 組織期에 들어온 이만치 “이런 것들을 等閒이 볼 수 업게 되엇다.” “우리는 戀愛라든가 그 우의 戀愛에 類似한 讀物을 排擊하자는 議論이라도 ‘集團的 大團의 名義로’ 制約해 노아야 한다.”(傍点은 宋)하얏다. 果然 初聞의 喜消息이다. 그러나 氏여! 戀愛小說만 排斥하고 其他는 在來 그대로 두어야 할ᄭᅡ? 아니다. 우리는 戀愛小說類도 排斥하는 同時에 먼저 나의 말한 一切의 것도 徹底히 排擊하여야 한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해상도가 높은 지면을 제공해 주어 수정할 수 있었다.)
218쪽: 글자 수정
李貞求, “童謠와 그 評釋(二)”, 『중외일보』, 1928.3.25.
이 童謠을 쓰게 된 筆者의 動機는 이러하다. 當時의 文壇에 是非ᄭᅥ리가 되든 韓晶東 氏의 童謠
장포밧못가운데 소굼쟁이는
305-319쪽: 글자 수정
牛耳洞人, “童謠硏究(九)”, 『중외일보』, 1928.11.28.
日本 사람들은 우리 朝鮮 童, 民謠, 童話 等 諸般 文藝를 根本的으로 硏究 批評하며 ᄯᅩ는 그 硏究의 結晶이라고도 할 朝鮮童話 等 朝鮮民謠硏究, 朝鮮童謠集 等 書冊을 自己나라 말로 飜譯 論述하야 世上에 公布하얏다. 그러나 朝鮮서 所謂 文學 云云 藝術 云云하는 사람들은 西洋의 文學藝術은 잘 안다고 ‘톨스토이’를 말하고 ‘유코’를 말하고 ‘쉐쓰피어’를 말하면서도 朝鮮文學藝術에 關하야서는 盲目이여서 아즉ᄭᅡ지 朝鮮童話集 民謠集 하나를 못 ᄭᅮᆷ이여 노왓다. 이런 것을 遺憾으로 생각하든 筆者는 嚴弼鎭 氏의 努力에 感謝를 表하는 바다. 그러나 『朝鮮童謠集』을 全部 훌터보면 誤錯된 것과 缺陷된 部分이 적지 안타. 무엇이냐 하면 童謠와 民謠를 確實하게 區別하야 노치 못한 失手이다. 卽 『朝鮮童謠集』이면은 童謠만 모엿서야 될 터인데 朝鮮民謠가 間間이 석기여 잇다는 것이다. 「榮華롭게」 「원 아이들」 「ᄯᅡᆯ 나커든」 「편지오네」 「ᄲᅩᆼ」 「주머니」 「ᄭᅩᆺ놀애」 「밤」 「싀집살이」 等은 全部 純全한 民謠다. 만약에 이 『朝鮮童謠集』을 鄕土文學 硏究者의 硏究 材料를 收集한 것이면 모르지만 兒童들에게 읽킬려고 한 것이면 너머나 不注意하지 안엇나 한다. 筆者는 現在 『朝鮮民謠集』을 刊行할려고 計劃 中에 잇지만 童謠는 童謠, 民謠는 民謠란 것을 明白하게 區別하지 안으면 안 된다. 그러지 안코 童謠集에다가 民謠를 석거노으면은 單純한 兒童들의 머리에 民謠도 童謠로 認識하게 되면 그에서 더 큰 誤錯이 업다고 생각한다. 嚴弼鎭 氏에게 바라는 것은 『朝鮮童謠集』을 或時 再刊하게 되면 上記한 民謠 等 “安貧樂道歌는 朝鮮民謠라고 表名햇스니가 關係치 안타고 생각한다”을 ᄲᅢ버리고 그 代身으로 童謠를 記入하면 이 『朝鮮童謠集』은 퍽 完全하게 될 줄 안다. 以上 『世界一週童話集』 『童謠作法』 『朝鮮童謠集』에 對하여 一言하여 둔 것은 너머나 無價値한 말가치 보기 쉽겟스나 童謠硏究에 注意하지 안으면 안 될 點이여서 지나가는 말로 한마듸씩 한 배다. 絶對로 그 三種 書籍을 評하기 위하여 이 붓을 잡지 안엇다는 것을 理解하여 주면 多幸이겟다.
牛耳洞人, “童謠硏究(13)”, 『중외일보』 , 1928.12.5.
너머 짓거린 感이 잇스나 民衆的 意思가 包含된 點을 보아서 代表的 「자장歌」라고 안이 할 수 업다. 그리고 엇ᄯᅥᆫ 어버이든지 어린 아기를 對하야 이러한 希望과 期待를 가질 것은 말할 것도 업겟지만 어린 애기에게는 이러한 功利的 意味를 가진 「자장가」보다는 自然과 神秘를 意味한 「자장가」가 더 조흘 줄 안다. 웨 그러냐 하면 어린 애기에게 功利的 意味가 包含된 「자장가」를 제아모리 불러도 意味도 모를 것이다. 하나 自然과 神秘는 어린애기가 直接 體驗하고 잇다고 해도 過言이 안이다. 그러니가 될 수 잇는 대로는 이 方面에 置重하고 가장 아름다운 曲調가 必要할 줄 안다. 月前 『中外日報』 紙上에 金思燁 氏 「자장가」란 것이 한편 記載되엇는데 퍽 곱게 되엇기에 여긔에 적어 놋슴니다.
자장가 (金思燁 作)
압산절에 종이울여 해다저믈면
참새참새 ᄭᅮᆷ나라로 춤추며가고
나무나무 나무닙도 잠을잔단다
우리애기 착한애기 잠을자면은
ᄭᅮᆷ동산에 어엿븐 착한아씨가
압집닭이 울ᄯᅢᄭᅡ지 춤을춘단다
ᄭᅮᆷ동산의 금바다에 온배가ᄯᅳ고
수정궁속 황금탑이 화려하단다
우리애기 착한애기 어서자거라
이 「자장가」를 作曲만 해서 부르면 퍽 조흘 줄 압니다. 「자장가」에는 意味가 좃턴 낫부던 不關하고 曲調가 아름다워야 할 줄 압니다. 웨 그러냐 하면 울던 어린 애기라도 「자장가」의 意味에 잠드는 것이 아니요 自然스럽게 곱게 울니여 나오는 그 멜로디에 취하야 不安을 니저버리고 노래 곡조의 方向을 ᄯᅡ라 ᄭᅮᆷ의 나라로 가게 되는 ᄭᅡ닭이외다. 英國 「자장歌」에는
애기야울지말고 잘도자거라
울지말고자면은 점점큰단다
오래잇지안어서 색씨가된다
아름다운세계에 잇는것들은
무엇이든지모다 네것이란다
란 것이 잇는데 이것은 日譯에서 重譯하고 意譯하야서 本 意味는 半分도 表現되지 못하얏슬 줄 암니다. 한데 이 「자장가」의 意味는 別로 神奇하지 못하지만 曲調가 아름다워서 英國의 代表的 「자장가」라고 함니다. 다시 말하거니와 (20여 자 해독불가) 하고 曲調가 第一 重要한 問題임니다. 內容에 들어가서 말하면 必然的으로 民族主義者는 「자장歌」에다가 民族主義를 表現할 것이며 社會主義는 宗敎家는 自然主義者는 다− 各各 自己의 主義를 表現하기 되는 것이외다. 『新人間』 十一月號에 나는 天道敎의 主義主張의 意味를 取하야 이러한 「자장가」를 지여 낸 일이 잇습니다.
자장가 (牛耳洞人 作)
자장자장우리애기 잘두나잔다
동무들과놀ᄯᅢ에는 성내지말고
한우님벗을섬기여 공경하면서
의표케소곤소곤 노러야한다
자장자장우리애기 잘두나잔다
울지말고얼른자라 어른이되여
대신사의본ᄯᅳᆺ대로 마음을먹고
ᄯᅡᆷ흘리며피흘리며 일을하여라
자장자장우리애기 잘두나잔다
이세상에사람들은 바다에ᄲᅡ저
건저달라소리치며 애원하는데
목숨바처건질사람 한사람업다
자장자장우리애기 잘두나잔다
아가야울지말고 어서자라서
궁을기단매를저어 힘을다하야
가련한세상사람들 건저주어라
天道敎人으로써는 全體가 어린애들에게 期待하는 것이 이 밧게는 아모것도 업다고 해도 可하다. 이제 基督敎의 「자장가」 二篇을 紹介해 볼가 한다.
牛耳洞人, “童謠硏究(14)”, 『중외일보』 , 1928.12.6.
자장가
자장자장 워리자장
텬사너화 자리보와
무수한복 너희머리
예수ᄭᅦ서 세상으로
내려오시사새아희ᄯᅢ
후렴 | 너와가티보호함은 |
밧지못하엿도다 |
너희자리 평안하나
주의자리 가련해
마구의 그 어린예수
강보싸하 뉘엇네
너는친구 무수해도
예수원수만어서
십자가에죽인것을
참아생각못하리
자장자장 워리자장
너를아는 사람은
사랑하는 어머니니
가만이서 자거라
너는예수주로알고
평생잇고섬기라
종시주와영원토록
동거동셔 바라네
자장가
옥반같이 잘난애기
울지말고 잘자거라
수박같이 부른네젓
량것먹고 잘자거라
우리애기 잠잘ᄯᅢ에
예수너를 품으시사
모든원수 물니치니
념려말고 잘자거라
우리애기 수복동아
(한 줄가량 해독불가)
너의목숨 강과갓고
너의복은 산과같이
사랑하는 예수ᄭᅦ서
네게주실 것이니
우리애기 수복동아
ᄭᅢ지말고 잘자거라
부모님게 화목동아
ᄭᅢ지말고 잘자거라
유순하기 양과갓고
여엽부기 고추가테
여호와의 허락한복
네가누릴 지로다
부모님게 화목동아
ᄭᅢ지말고 잘자거라
이것을 보아도 基督敎人은 어린아이에게 이런 마음을 안 가질 수 업는 것이다.
자장가
자장자장착한애기 잠잘자거라
뒷동산엔눈이와서 희기도하다
한울에서내려온 눈님의애기
소리업시누어서 잠도잘잔다
자장자장착한애기 잠잘자거라
이것은 開闢社에서 年前에 發行하던 『婦人』 第八號에 ‘外國童謠’란 題目ᄭᅡ지 붓처서 記載하얏던 것인데 우리는 이 作品에서 自然을 엇ᄯᅥ케 곱게 描寫하얏는지 알 수가 잇다. 다시 말하거니와 「자장가」의 內容에는 엇ᄯᅥᆫ 意味를 表現시켯던지 關係할 것 업시 曲調가 가장 아름다워야 한다. 암만 몸이 압흔 어린 아기일지라도 가만히 잠을 일우게 할 그러한 고흔 보드라운 曲調를 選擇하지 안으면 안 된다.
童謠는 어ᄯᅥᆫ 사람이 지어야 될가.
童謠는 兒童의 歌謠이니ᄭᅡ 勿論 兒童이 지어야 될 것이다. 하나 童謠에는 녯날부터 지금ᄭᅡ지 遺傳하여온 口傳童謠와 兒童 自身이 지은 童謠와 詩人이 지은 童謠와 三部門이 잇는 以上 兒童 自身이 지은 것이야만 童謠라고 말하기도 困難하다. 그럿치만 嚴密히 말하면 童謠 그 어대ᄭᅡ지던지 兒童이 지어야 된다고 나는 斷言한다.
“왜 그러냐 하면 兒童은 엇던 兒童이던지 詩人이다. 兒童의 言語行動은 곳 律語的이 되며 律動的이 되여서 藝術的 氣稟을 表示한다.” 卽 쉽게 말하면 어린이들이 된 말이고 안 된 말이고 중얼거리며 ᄯᅩ는
“어머니, 흥, 나 눈ᄭᅡᆯ사탕 사줘 응− 어머니”
“아버지, 뒤집 복남이가 날 ᄯᅢ려.”
라던가,
日常生活의 말이 모다 詩語로 된다.
그리고 몸짓 손짓이 모다 舞踊에 가갑게 되기 ᄯᅢ문에 그들의 말은 詩요 그들의 몸짓은 舞踊이다. 더구나 그들은 自然觀照에 對해서 直覺的, 直感的 內面生活을 詩에다가 表現하기 ᄯᅢ문에 兒童作品은 自然의 流露다. 成人의 童謠는 노래할려는 創作意識으로부터 지은 創作의 技巧이지만 兒童의 童謠는 內容으로부터 發하야 스사로 歌謠의 形式이 되고 成人의 것은 形式에 依하야 內容을 統一할려고 하기 ᄯᅢ문에 아모리 苦心하야 지여도 兒童 自身의 것만큼 지을 수 없다. (한 줄가량 해독불가)
童謠는 어대ᄭᅡ지던지 兒童自身의 歌謠인데 成人으로써 童心 童語의 歌謠를 짓는다는 것은 참으로 容易한 일이 안이다.
잠자는 애기
밧머리에 콜콜콜 잠자는애기
잠자는 애기겻헤 개가한마리
작심이로 ᄲᅥᆺ처논 누역우에는
날느든 잠자리도 쉬여간다네
엄마압바 김매어 세상산다고
한종일 잠자는 귀여운애기
335쪽: 글자 확인
洪銀星, “少年文藝 一家言”, 『조선일보』, 1929.1.1.
一. 序 言
少年文藝가 朝鮮에 存在하기는 벌서 二十餘年 前 六堂의 『少年』 雜誌로 비롯된 것은 이제 다시 論할 必要도 업슬 줄 안다.
그런데 六堂의 『少年』 雜誌 創刊時代에 잇서서는 實로 보잘것업는 混沌型의 靑少年雜誌이엇든 것이다. ᄯᅡᆯ아서 오늘의 少年雜誌와는 넘우나 距離가 먼 것이다. 그것은 그 時代에만 가졋든 少年雜誌라고 할 수밧게 업다. 그러나 좃튼 글튼 少年雜誌가 비롯됨이 二十餘年 前 일인 것만은 否定할 수가 업는 것이다.
이제 내가 말하고저 하는 것은 少年雜誌가 비롯된 지 二十有餘年 前이라든가 或은 그보담 더 먼저이엿다는 것을 말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新年을 마지하야 우리는 過去 少年에게 엇더한 作品을 닑켜 왓는가. ᄯᅩ는 今後에 엇더한 作品을 닑켜야 하겟는가. 아울러는 昨年 以來로 囂囂히 ᄯᅥ들어 오든 方向轉換이 가장 올흔 것인가 엇던 것인가에 對하여 數言코자 하는 바이다.
多幸히 이 一文이 우리 同志라든지 少年文藝 同好者間에 도움이 된다면 그마만큼 깃분 일이며 설사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少年文藝에 對하야 엇더한 觀照, 思想, 方針을 가지고 잇는가를 알 수 잇리랴고 생각한다.
337쪽: 글자 수정 및 각주 부여
ᄯᅡᆯ아서 世界的으로도 ‘만더슨’童話라든지, ‘ᄭᅳ릴’童話, ‘홉’童話 等으로부터 ‘톨스토이’童話, ‘켈오센코’童話, ‘뮤렌’童話, 이럿케 階段을 밟지 안흐면 안 된다. 卽 朝鮮의 文化 標準을 가장 잘 表現하고 ᄯᅩ한 가장 最低的의 標準을 세우고저 함에 이 等의 少年讀物이 가장 必要하고 가장 實際的인 것이다.
각주: 안데르센(Andersen, Hans Christian), 그림(Grimm Brüder), 하우프(Hauff, Wilhelm), 톨스토이(Tolstoy, Lev Nikolaevich), 예로센코(Eroshenko, Vasilli Yakovlevich), 뮤흐렌(Zur Mühlen, Hermynia)을 가리킨다.
367쪽: 글자 수정
金石淵, “童話의 起原과 心理學的 硏究(二)”, 『조선일보』, 1929.2.14.
例를 들면 西洋에서는 獨逸의 ‘야곱 그림’(1785∼1863), 同 ‘윌헤롬 그림’(1786∼1859) 이 두 사람은 兄弟이다. 이 두 兄弟가 모은 童話集 『킨더-, 운드, 화우스매헨』(只今은 『크림童話集』으로써 英譯 日譯 朝鮮譯이 되어 잇다.), 佛蘭西에서는 有名한 촬-스 페롤트(1628∼1708)가 著作한 『히스토리스, 오우, 콘테스, ᄯᅮ, 텔스, 파쩬』(卽 『過去時代의 歷史 及 이야기』), 그리고 露西亞 ‘알렉산터, 니콜라이, 에빗취, 아바나, 쎄엡’(1826∼1871)의 『포풀라, 텔스』, 東洋에서는 日本의 『今昔物語』, 朝鮮의 『三國史記』, 이러한 책 속에 印度童話가 만히 包含되어 잇다.
一例를 들어 印度童話가 얼마나 널리 世界에 擴布되어 잇는가를 立證하야 보자. 우리 朝鮮에 『별주부전』이란 이야기가 잇다. 이 이야기는 여러분이 잘 아실 줄로 알고 畧하야 둔다. 이 이야기는 中國의 『祖庭事苑』이란 冊에도 잇고 日本에도 잇다. 그리고 西藏에도 阿弗利加의 土人 스와히리族 사이에도 傳播되어 잇다.
391쪽: 글자 수정
洪銀星, “少年雜誌에 對하야−少年文藝 整理運動(二)”, 『중외일보』, 1929.4.8.
最近 數年來로 어린이 雜誌들은 만히 發展하야 온 것은 前項에서도 暫間 말하엿거니와 各 어린이 雜誌에 잇서서 所謂 「어린이讀本」이라는 것이 揭載되게 된다. 말하자면 이것은 分明코 學校의 그것과 가티 科外讀本으로 읽키려는 意圖에서 나온 것이다. 더 이것을 具體的으로 分析해 본다면 各 少年雜誌에 실니는 童話 童謠 少年小說 等보다 좀 더 效果를 내이자는 意圖일 것이다. 말하자면 이 「어린이讀本」이라는 것은 그들이 雜誌 初頭에 실는이만치 가장 重要히 取扱하고 잇는 것은 自他가 共認하는 바이다.
그런데 이 「어린이讀本」이라는 것이 果然 學科的 科外讀物에 適合하냐? 適合치 아니하냐?하는 問題에 일으게 된다.
나는 말한다. 이 「어린이讀本」이란 實로 닑힐 價値도 업는 것이라고 하고 십다. 그것은 웨 그러냐 하면 「어린이讀本」 될 만한 內容과 形式을 具備치 못하얏다.
勿論 그것을 上程하는 筆者들로서는 多少 滿足을 늣기는지 몰으지만 나로서는 그것을 볼 ᄯᅢ 그들의 頭腦의 低劣한 것을 말하지 안을 수 업다.
392쪽: 글자 수정
洪銀星, “少年雜誌에 對하야−少年文藝 整理運動(二)”, 『중외일보』, 1929.4.8.
(전략)
그다음 『어린이』에 실리는 方定煥 君의 「어린이」라든지 『별나라』에 실린 「별나라讀本」에 잇서서는 다들 힘을 쓰는 것은 顯著하다. ᄯᅡᆯ하서 그들의 少年運動과 文藝運動에 對하야 隘쓰는 것을 잘 알 수 잇스나 方 君의 「어린이讀本」에 잇서서는 飜譯風의 日本臭가 나고 「별나라讀本」에 잇서서는 文章의 低劣과 粗雜함을 늣기게 된 前者에 잇서서는 多少 組織的 思想的 指導的임에 對하야 後者에 잇서서는 非組織的 無主義的이라고 볼 수 잇다.
399쪽: 빠진 부분 보완 및 수정
方定煥, “어린 동모들ᄭᅦ”, 皓堂 延星欽 編著, 『世界名作童話寶玉集』, 以文堂, 1929.5.
皓堂 延星欽 氏라 하면 지금 내가 ᄯᅡ로 소개하지 안트래도 어린 동모들은 잘 알고 잇슬 것임니다. 그이는 소년회로 애를 쓰실 ᄲᅮᆫ 안이라 가난한 어린 사람들을 위하야 자긔가 가난한 형세인 것도 불구하고 손소 강습소를 세우고 ᄯᅩ 학교를 맨들어 밤과 낫으로 고생하면서 그래도 ᄯᅩ 그 밧분 틈을 타서 여러 가지의 조흔 동화를 써서 널니 왼 조선의 어린 사람들에게 밧처 오신 이임니다. 이제 그 귀한 살림 중에서 생겨난 금가티 옥가티 귀여운 동화를 한데 모아 이 책이 ᄶᅡ여젓스니 책은 비록 조고만 책이로되 여긔에 들어 잇는 정성과 힘을 생각하면 말할 수 업시 고귀하고 빗싼 갑이 잇는 것임니다.
동화는 쓰는 사람 자긔의 비위만 맛치면 어린 사람에게는 소용 못 되는 것인대 延 先生은 어린 사람들ᄭᅦ 충실하게 친절하게 쓰기를 힘쓰는 이인 고로 더욱 이 책은 고대로 솔솔 닑는 이의 가슴에 숨여드러서 만흔 효과가 잇슬 것을 밋고 나는 깃분 마음으로 이 책을 마지하는 것임니다.
己巳年 四月 ᄭᅩᆺ 우에 비 오는 날
『어린이』 印刷 校正室 方定煥
412쪽: 빠진 글자 보완
兒童의 知識은 퍽 幼稚한 것입니다.
413쪽: 한글을 한자로 수정
三. 西洋童話를 骨子로 하야 飜案 或은 改作된 童話 새로 創作된 文學的 趣味가 包含된 創作童話
429-430쪽: 9회분 수정
延星欽, “童話口演方法의 그 理論과 實際(9)”, 『중외일보』, 1929.10.12.
演卓 압헤 서서 머리를 숙여서 하면 聽衆은 저절로 머리를 압흐로 숙이게 되는데 이ᄯᅢ야말로 演士의 態度나 顔色이나 눈이 向하는 곳에나 兒童의 注意를 把握할 千載一遇의 조흔 機會입니다.
이 機會를 노치고 雜談이나 私語를 始作하게 만들어 노흐면 場內가 靜肅해지기 퍽 어렵습니다.
엇던이는 壇上에 올라서 人事가 ᄭᅳᆺ난 뒤에 휴지를 ᄭᅳ내 들고 긔탄업시 코를 푸는 것을 보앗는데 이것은 좃치 못한 짓입니다. 이런 일은 각금 어른들을 相對로 하는 講演會에서 잇는 일이지마는 어린 사람 會合에서는 크게 삼가야 할 것입니다.
물(水)은 될 수 잇는 대로 자조 마시지 안는 것이 좃습니다. 부득이 물을 먹게 되면 컵에다 조금 ᄯᅡᆯ어서 한 목음에 마셔버리는 것이 조을 줄 압니다. 넘우 자조 먹거나 넘우 여러 목음을 마시게 되면 어린사람들 눈에 좃치 안어 보이는 것은 勿論 威信에도 關係가 됩니다.
經驗者의 말을 들으면 물은 發聲에 그리 큰 효과가 업다 합니다.
물은 冷水보다 微溫水가 조흔데 ᄭᅳ린 물이 더욱 좃슴니다. 이 ᄭᅳᆯ은 물을 드리마시는 게 아니라 吸入器로 藥氣運을 吸入하듯키 컵에서 올러오는 水蒸氣를 드리마시는 것이 좃탄 말입니다.
그리고 演卓 압헤 조금 ᄯᅥ러저서 右手로 卓上을 若干 집고 左手를 허리에다 대이는 것이 演說中 一般 姿勢인 모양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넘우 故意로 ᄭᅮ미는 것가티 보이닛가 좃치 못한 줄 압니다. 兩手에다 힘을 주지 말고 極히 自然스럽게 泰然히 兩手를 演卓에 대이고 섯는 게 조흘 줄 압니다. 그리고 얼골 모양은 눈을 부릅ᄯᅳ고 니를 악물어서는 무서워 보힙니다. 그럿타고 넘우 지내치게 웃는 얼골을 지여서도 안 되고 그저 빙그레 웃는 態度를 짓는 게 조흔데 이것이 所謂 笑顔입니다. 눈은 自然히 얼골에 ᄯᅡ라서 부드러워 보히겟지만은 그 着眼點은 演壇 우에서 聽衆의 七分可量 되는 곳이라야 할 것이니 會場이 十間ᄶᅳᆷ 된다면 七間ᄶᅳᆷ 되는 곳이라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약이하는 동안에 처음부터 ᄭᅳᆺᄭᅡ지 압ᄶᅩᆨ만 바라보면 視線이 돌아오지 안는 ᄶᅩᆨ에 잇는 兒童들은 속으로
“웨 우리 잇는 ᄶᅩᆨ은 보질 안어” 하고 不平을 吐하다. 그러닛가 會場의 四方은 勿論 二層이나 三層ᄭᅡ지 둘러보면서 이약이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약이를 ᄭᅳ내는 맨 처음에는 얏고 적은 목소리래야 합니다. 가늘고 적은 목소리로 口演하게 된 關係나 演題의 說明 가튼 것을 먼저 몃 마듸 해 노읍니다. 그러면 兒童들은
“얘− 始作이다. 이약이 始作이다. 그런데 목소리가 넘우 적어서 어듸 들녀야지. ᄯᅥ들지 말고 저 이약이 좀 들어−”
하고 서로 ᄯᅥ들지 말라고 일러 가면서 귀를 기우리게 될 것입니다.
처음부터 큰 목소리를 내여서는 안 됩니다. 以上은 登壇한 뒤 一瞬間 童話口演하는 이의 注意할 點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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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4쪽: 글자 복원
이러한 情勢 미테서 자라 나오든 朝鮮의 少年은 왼 社會가 물ᄭᅳᆯ 틋하고 三千里 半島江山이 울든 己未運動을 지내 朝鮮民族 各層의 解放運動은 猛烈하얏섯다. 이에 ᄯᅡᆯ하 少年運動 先驅者 同志 方定煥 君의 다만 少年을 한 人間으로 存生를 認識해 주는 同時에 未來社會의 國民──第二世 國民──의 人間다운 人間이 되기 爲한 漠然한 運動이 닐어낫다.
'存在를 認識해'의 오식으로 보인다.
514쪽: 글자 수정
이곳에 족음 더 말할 것은 赤兒 君과 果木洞人의 小評이니 이것은 近者 少年運動 方向轉換 以後(나는 <朝鮮聯合會> 創立을 整理期에 入한 ᄯᅩ한 目的意識期에 入한 方向轉換으로 본다.)의 申孤松, 果木洞人, 赤兒 君 等의 비록 짧은 短文의 序說이 나와 理論을 展開한 것임으로 보아 少年文藝運動의 理論 確立의 만흔 □음이라고 말하지 아니할 수 업다.
533쪽: 글자 복원
그러기 ᄯᅢ문에 우리는 한 問題에 對하야 얼마든지 싸워야 한다. 지난번 나의 發表한 論文이 決코 完全한 論文이 아니라는 것을 認識把握하야 가지고 果敢히 鬪爭하는 곳에 우리의 少年運動의 對한 確平한 理論이 잇스며 ᄯᅩ한 進展이 잇다고 하는 말이다.
이에 ᄯᅡᆯ하 이 論文이 ᄯᅩ한 確平한 指導理論이 되기를 나는 企待하야 마지안흐나 나 個人으로는 그러나 이것도 正鵠이 아니라는 反撥의 理論이 잇서 鬪爭할 時는 우리의 그만큼 硏究力이 클ㅅ지며 彼此의 把持하고 잇는 바 各自의 見解가 누가 올코 누가 그른 것이 나올ㅅ지며 ᄯᅡᆯ하서 主體의 理論이 잇을 줄 안다.
573쪽: 글자 수정
金泰午, “少年運動의 當面問題−崔靑谷 君의 所論을 駁함(四)”, 『조선일보』, 1928.2.14.
그러타고 傳統的 思想이나 過去의 盲目的 少年運動者를 擁護한다는 意味로 解釋해서는 誤謬이다. 君이 千萬번 모든 일에 着實히 하고 責任 履行을 遺憾업시 하엿드라도 좀 더 沈重한 態度로 붓을 들엇드라면 한다. 그러나 多幸히 理論 展開만큼은 반가운 일이다.
(중략)
그리고 <朝鮮少年聯合會>는 複雜하고 混沌된 그 가온대에서 멧 同志의 獨斷的 專橫 밋테서 會議를 마첫기 ᄯᅢ문에 이러한 結果를 보게 되엇든 것이다. ᄯᅡᆯ아서 創立大會 席上에서 地方代議員의 京城 在籍委員에 對한 不滿을 품고 내려왓섯기 ᄯᅢ문에 지금 中央機關을 相對로 信任을 못 밧을 것은 豫想할 일일 것이다. ᄯᅡᆯ아서 地方團體에서 常務機關에 問議가 잇섯슴에도 아모 解決의 通知조차 업슴으로 더욱 疑心하길 마지안헛다.
601-602쪽: 판독 불가 글자 복원
金泰午, “認識 錯亂者의 排擊−曹文煥 君에게 與함−(一)”, 『중외일보』, 1928.3.20.
緖 論
全 無産階級 藝術運動의 一翼的 部門運動인 少年運動 陣營 內에 잇서서 運動을 整理하기 爲하야는 먼저 自己 陣營 內에 潛在하야 잇는 不純分子를 無慈悲하게 排擊치 안흘 수 업다. 그것은 運動의 發展上 急務의 하나이기 ᄯᅢ문이다.
그럼으로 우리 運動線上에 展開된 諸 問題를 正當히 分析 認識 把握하야 새로운 階段으로 規定치 아니하면 아니 되게 되엇다. ᄯᅡ라서 小市民性的──自然生長期 意識의 把持者를 克服하여야 하며 反動分子를 徹底히 排擊하여야 한다.
그런데 이제 가튼 陣營內에서 反動的 錯亂을 새로히 비롯하는 同志가 생기엇슴을 우리는 보게 되엇다. 그것은 日前 『朝鮮日報』를 通하야 「特殊 朝鮮 少年運動의 過去運動과 今後問題」이라는 論文을 쓴 曹文煥 君의 行動이 卽 그것이다.
나는 일즉 曹 君에게 對한 企待가 만헛는이만큼 그의 論文을 熟讀하얏섯다. 그러나 筆者는 落心치 안흘 수 업섯다. 그 論文은 混沌, 反動 그리고 無體系的, 小市民性的, 認識錯亂者임을 暴露하얏다. ᄯᅡᆯ하서 우리 少年運動線을 퍽으나 混沌케 하얏스며 그리고 朝鮮의 特殊性을 認識하는 듯하면서 小ᄲᅮ르조아 乃至 折衷主義者임을 暴露하고 말엇다. ᄯᅡᆯ하서 그는 主觀的 觀念論者인 同時에 純全히 客觀的 情勢를 沒覺한 認識 錯亂者임이 틀림업다.
우리는 如此한 反動分子는 果敢한 理論鬪爭에 依하야 淸算해야 할 것은 勿論이다. 그런 가튼 陣營 內에도 意識的이던 無意識的이던 數多한 誤謬를 犯하고 잇는 同志를 發見할 수 잇다.
그럼으로 우리는 이 錯亂한 誤謬를 嚴酷한 科學的 立場에서 批判하야 그 誤謬를 矯正하여주지 안흐면 안 된다는 意識下에서 理論鬪爭이 가장 必要하다.
그리고 아즉 우리 運動 自體의 自體的 理論이 確立되지 못하고 ᄯᅡᆯ하서 運動者로써도 植民地的 特殊事情인 朝鮮少年運動 自體에 對한 確乎한 ‘이데올로기’를 認識把握하지 못하고 다시 말하면 運動의 自體를 沒理解하고 運動의 方式과 方法을 全然 沒覺한 主觀的 觀念論者만을 辯護한 理論은 餘地업시 克服하여야 한다.
넘우나 말이 나의 쓰려고 생각한 바와 線 박그로 흐르는 것 갓다. 그러나 나의 생각한 主見을 提議하랴면 먼저 以上의 要領을 말해 두는 것도 無意味한 일은 안일 것이다.
628-629쪽: 글자 수정
丁洪敎, “少年指導者에게−어린이날을 當하야”, 『중외일보』, 1928.5.6.
五月 第一 日曜日은 少年運動으로써 가장 질거운 “날”이다. 어ᄶᅢ서 가장 질거운 날이 될가. 그리고 우리는 이 질거운 날을 어ᄯᅥ하게 지내야 할가 함에 關하야서 少年指導者 諸賢에게 簡單하게 “어린이날”을 마지하는 ᄯᅳᆺ을 述하고저 한다.
우리 朝鮮少年運動은 벌서 一千九百二十年代에 胎生하기 始作하야 以來 八九年間을 ᄭᅮ준히 일하야 온 것은 어느 ᄯᅢ는 異常한 色眼鏡 밋헤서 至極히 危險視하게 된 ᄯᅢ도 잇섯고 어ᄯᅥ한 ᄯᅢ에는 同志와 同志 사이에 感情的 軋轢으로 因하야 別個의 運動을 한 일도 잇섯다.
勿論 언제든지 眞理는 ᄭᅮ준히 繼續的으로 努力하는 곳에 잇는 것임으로 우리의 少年運動도 반드시 世間에 誤解를 풀 날은 ᄭᅮ준히 努力하야 마지안는 곳에서 나오리라고 미덧다. 그 信賴는 果然 우리 少年運動으로 하야금 今日이라는 곳 一千九百二十八年의 첫 어린이날을 맛게 된 것이다.
ᄯᅡ라서 少年運動 自體로서도 內的 發展을 ᄭᅳᆫ임업시 해 왓지마는 모든 客觀的 情勢는 우리 少年運動으로 하야금 今日의 組織體를 낫케ᄭᅡ지 된 것이다. 곳 말하자면 在來의 封建 黨習에 저저 頑固하기 ᄶᅡᆨ이 업는 도령님으로부터 帽子 쓰고 가방 민 學生이 되기ᄭᅡ지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決코 이것은 形式으로의 變動이지 思想으로의 變動은 아니다.
적어도 少年運動으로서 方向轉換 云云하게 된 것은 昨年 以來의 事이다. 우리 少年運動도 在來의 封建 黨習을 버슨 ‘리알리슴’에 立脚한 少年運動은 社會思想을 ᄯᅴ인 少年運動으로 進展하지 안흐면 아니 되엇든 것이다.
그리고 “어린이날”에 잇서서도 在來에는 “五月 一日”을 직혀 왓다. 그것은 萬國 勞働祭日과도 상치될 ᄲᅮᆫ 아니라 少年運動으로도 五月 一日은 너무나 不便을 늣기는 感이 잇서서 <朝鮮少年聯合會> 昨年 定期大會에서는 適然히 五月 第一 日曜日로 곳치게 된 것이다.
이곳에서 다시 <朝鮮少年聯合會>로서 <朝鮮少年總聯盟>으로 轉換되기ᄭᅡ지에 過程을 一瞥할 것 가트면 一. 社會民主的 中央集權制 年齡制限! 이러한 透徹한 變換이 잇게 된 것이다. 그리고 當面鬪爭으로서 最先務로 一. 少年健康保護, 一. 義務敎育 實施, 一. 早婚의 徹底的 廢地, 一. 少年虐待 絶對防止, 一. 少年早起運動 獎勵, 一. 少年喫煙 絶對禁止 等 여섯 가지의 ‘스로간’을 우리가 實行할 수 잇는 範圍 안에서 決議를 하얏다.
어제 ‘어린이날’을 當함에 우리는 이 모든 것을 集中的 表現을 하지 안으면 아니 될 時期에 到達하고 만 것이다.
이에 少年指導者 諸賢이 반드시 알어야 할 것은 우리의 當面 鬪爭의 役割은 急激한 ××主義도 아니요 ᄯᅩ한 極軟한 現實主義도 아니다. 우리는 반드시 鬪爭하야 어들 수 잇는 條件만을 提出한 것이다. 그러나 一部 少年指導者間에도 往往히 左翼小兒病的 ××主義에 拘泥되어 極左的으로 흐르는 傾向을 가지고 잇스나 이것은 運動을 모르는 ‘書齋派’의 隱遁的 遊戱이다. ᄯᅡ라서 그들은 입과 붓이오 안방구석이다.
그러하나 非大衆的이오 非全體的인 것은 再言을 要치 안는다. ᄯᅩ 一方 軟派가 有하야 在來의 ‘리알리슴’을 固執하는 一派가 잇스나 그것은 必然으로 沒落을 스사로 告하고 잇는 것이다.
우리는 이 點에 잇서서 簡單히 생각하야써 우리 少年運動으로 하야금 非合法的 ᄯᅩ는 脫線的 運動이 되지 안케 하야 주기를 바라며 當面 ‘슬로간’에 對하야 만흔 努力이 잇기를 바란다.
어린이는 當來할 社會의 主人公이다!! 모든 힘은 <朝鮮少年總聯盟>으로──
633-635쪽: 판독불가 글자 복원 및 수정
社說, “어린이날을 보고”, 『중외일보』, 1928.5.7.
昨六日 卽 五月의 첫재 日曜日은 全朝鮮 어린이 五百萬名의 將來를 祝福하며 現在를 擁護하기를 宣傳하는 날이었다. 그내들이 昨日을 期하야 同一한 場所에 集合하야 ᄯᅡᄯᅳᆺ한 情을 相通하며 다시 街路上에 活潑하게 行列 지어가며 어린이的 氣象을 高揚함을 보고 吾人은 그내들과 그내들의 父兄에게 一言함이 업지 아니치 못하겟다. 언제나 어린이들은 朝鮮 全部의 繼承者이다. 二千萬 民族의 씨를 永遠한 時間으로 傳하여 줄 이도 어린이들이오 八萬 二千 方哩의 朝鮮 ᄯᅡᆼ덩어리를 지키며 사랑할 이도 어린이들이오 朝鮮 歷史流의 過去와 將來를 善察하며 그 流를 올은 方向으로 引導할 이도 어린이들이오 現代의 吾人이 하는 事業을 繼承하야 그 結果를 지어줄 이도 ᄯᅩ한 어린이들이다. 이와 가티 어린이들의 責任이 重大하며 우리가 그들에게 期待함이 만타 하면 그러면 그들의 父母 되시는 이가 그들로 하야금 이 무겁고 큰 責任을 다하게 하기 爲하야 어ᄯᅥ한 擁護가 잇서야 하겟스며 어ᄯᅥ케 함이 그들의 將來를 祝福하는 所以가 될가 몃 가지를 들어 全朝鮮 父母에게 한 마듸 부탁코자 한다.
(一) 飮食이다. 어린들은 發育期에 잇서 養分을 攝取하는 比率이 大人보다 매우 크다. 그럼으로 그들에게 充分한 養分을 攝取시키며 안 시킴에 依하야 그들의 長成한 以後의 健康이 決定된다. □□ 朝鮮 사람의 家庭에 들어가 보면 家長이나 어른은 比較的 조흔 養分을 攝取하면서도 어린이에게 주는 飮食이라면 말할 수 업스리만큼 貧弱하다. 日本人 家庭을 보라. 西洋人 家庭을 보아라. 大人 小兒를 勿論하고 飮食의 內容은 同一하지 아니한가? 호올로 朝鮮人 家庭에서만 大人과 小兒 間에 飮食 差別이 잇다. 그러면 어ᄶᅵ 이와 가튼 貧弱한 飮食을 그들에게 먹이고 그들의 完全한 成長과 長成한 後의 健康을 바랄 것이며 健康한 身體의 所有主를 맨듬이 업시 어ᄶᅵ 朝鮮의 全部를 繼承하는 責任을 그들에게 맷긴다고 할 것인가. 어린이의 健康 保護는 곳 朝鮮의 全部의 保護와 發展을 意味함이다.
(二) 어린이 劇場이다. 西洋社會에는 어린이 劇場이 잇다. 말하면 一種의 ᄭᅩᆨ두ᄭᅡᆨ시 놀음이다. 三四歲로부터 十歲가량 된 서로 얼골도 모르는 어린이들이 各其 자리에 안저 平和스럽게 조용하게 劇을 구경하다가 喜劇에는 손벽치며 웃으며 活劇에는 痛快한 소리를 지르는 그 모도가 벌서 觀劇客의 態度를 가젓고 劇場道德ᄭᅡ지도 훌륭하게 지킨다. 그러면 이 어린이 劇場이 어ᄯᅥ한 價値가 잇는가? 朝鮮 사람가티 社會 道德心이 薄弱하고 朝鮮 사람가티 同族 間 싸움에 長한 民族은 어린 時代부터 社會的 生活을 練習시켜 社會道德을 尊重하는 習慣을 養成하는 同時에 ᄯᅩ한 社會的 習慣으로써 어린 時代부터 그 偏僻性을 除去하여 派爭性을 退治케 하는 一 方法으로 함이 어ᄯᅥ할넌지 어린이를 引導하는 이에게 이 方面의 充分한 考慮가 잇기를 바라는 바이다.
(三) 어린이의 意思를 너무 强制하지 말라. 어린이들은 智的 道德的으로 判斷力이 薄弱하다. 그릇되기 쉽다. 그럼으로 그들의 意思를 强制 안하면 안 된다──이것이 朝鮮의 父母가 그들의 子女에게 對한 態度이다. 勿論 어린이들이 그릇되는 일을 할 ᄯᅢ에 父母가 强制함은 一理 업는 것은 아니나 大體로 强制는 不可하다. 어린이들의 要求가 어대 잇느냐 하는 그 心理的 動機를 차저 가지고 科學的으로 指導함이 理想的이다. 그 要求가 善하면 扶助하여 주고 惡하면 무슨 理由로 惡하다는 것을 理智的으로 가르킬 것이다. 더퍼 노코 强制는 어린이들을 合理的으로 引導하는 方法이 아니다. ᄲᅮᆫ만 아니라 어린이의 意思도 意思인 以上 父母는 그들의 意思를 尊重할 理由가 잇다. 何故오 하면 自由意思를 抑壓함은 大人에게나 어린이에게나 한가지로 苦痛이다. 더욱이 어린이의 自由意思를 한부로 强制함은 人格的 觀念을 低下케 하는 同時에 特히 創作力을 鈍濁하게 하는 念慮가 잇다──이 點에 對하야 어린이들을 指導하는 者가 特別한 主義를 加할 必要가 잇다.
要컨대 어린이날을 當하야 우리는 입으로만 그들을 擁護하자 祝福하자 하지 말고 遠慮 잇는 計劃下에 그들을 爲하야 實際로 부슨 하염이 잇서야 한다.
657쪽: 글자 수정
丁洪敎, “朝鮮少年運動 槪觀−壹週年 紀念日을 當하야(一)”, 『조선일보』, 1928.10.16.
═ 序言 ═
過去 一年間 우리들의 少年運動은 엇더한 發展을 보왓는가? (중략)
∥少年運動으로 劃時代的 集中∥
昨年 十月 十六日은 朝鮮少年運動의 劃時期的 慶賀日이외다──이날로써 朝鮮의 少年團體는 全國的으로 陣營을 完結케 되어 <朝鮮少年聯合會>의 旗-ㅅ발이 날니게 되엇습니다──少總이 創立되기 前에는 우리의 少年運動은 分散的으로 個體的으로 指導層을 가지고 잇게 되엇습이다. 其中에도 <五月會>와 <少年運動協會>는 兩大 勢力을 鼎立시키여 全 朝鮮的으로 派別의 氣運은 濃厚하야 잇게 되얏슴니다. 그리하야 一年에 一大事業으로 擧行되는 ‘어린이날’ 少年 데− 이ᄯᅢ에는 餘地업시 過去 五百年來에 因襲的 態度를 現底히 一般에게 露出시키여 團體를 爲한 派爭的 行動은 全 朝鮮的으로 坊坊谷谷에 흘으게 되엇섯습니다. 더욱이나 昨年 五月 一日은 그중에서도 가장 猛烈한 兩 團體 對立에 鬪爭이엇섯습니다──이에 一九二七年度 ‘어린이날’을 經過한 <五月會>에서는 五月 十五日에 深刻한 考慮下에 <朝鮮少年聯合會>의 發起準備會를 組織하야 이에 對한 宣言을 各地에 配布하야 비로소 七月 三十日에 <少年運動協會>와 <五月會>의 구든 握手로써 發起大會는 京城에서 開催케 되엇습니다. 그에 對한 宣言과 綱領은 일어압니다.
753-755쪽: 글자 수정
“(少年會巡訪記)七十萬 宣傳紙 全鮮에 널니 配布−五月會의 過去 現在(下)”, 『매일신보』, 1927.9.7.
각 소년회 회원의 졍젹 방면에 교양을 도읍기 위하야 죠선서는 쳐음 되는 현상동화동요대회(懸賞童話童謠大會)를 열엇스며 오월 일일(五月一日) 어린이 데−를 당하야는 사회 각 계급에 유지를 망라하야 어린이 데− 준비하게 되엿슴니다. 그리하야 젼죠션젹으로 륙심여만쟝에 션젼지를 산포하고 한편으로 젼조선에 산재한 소년회 통게표를 작셩케 되엿슴니다. 그러다가 리왕에 국상을 당하야 만흔 경비를 들인 어린이 데− 수포로 도라가고 망곡반을 죠직하랴다가 조션소년운동션상에서 졔일차로 文秉讚 李元珪 丁洪敎 閔丙熙 劉時鎔 등 오씨는 경찰 당국에 희ᄉᆡᆼ되고 말엇슴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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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가을 졍긔춍회에 당션된 崔奎善 崔英潤 李元珪 韓榮憲 高長煥 文秉讚 劉時鎔 丁洪敎 등 졔씨는 젼죠션소년지도자대회(全朝鮮少年指導者大會)를 열냐다가 사졍으로 연긔된 후 순쳔(順川) 사형 사건에 허시모 문졔에 대하야 리원규 졍홍교 량씨를 자젼거로 순쳔에 파송하야 조사한 후 그 보고연셜회를 열고자 하다가 금지로 도라가고 만 후 경성 시내에 이곳져곳을 순회하며 동화회를 열엇슴니다. 그리하야 봄에 준비하엿든 어린이 데−는 가을 추석을 리용하야 ᄅᆡ쳥각(來靑閣)에서 셩대히 개최하고 말엇슴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