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천현감 휘 사율의 발자취
비문해석 : 공의 13세손 나연
(금천공 휘 사율 할아버지와 할머니 묘소)
공의 휘는 사율이고 자(字)는 중은(仲殷)이며 정재(整齋)는 그 자호(自號)이다.
우리 나씨는 나주가 본관인데 중국의 예장으로부터 우리 나라에 오셔서 고려에서 정의대부 감문위 상장군을 지내신 휘 부(富)가 나주나씨의 원조가 되신다.
그 이후로 충효와 훈업, 벼슬, 문장으로 이름난것 등이 역사책에 뚜렷이 나타나 있다. 그 중에 휘 원은 사온서 직장을 지내셨고 원께서는 휘 진을 낳으셨는데 공민왕때에 1)좌리공신에 책훈되고 궁부상서를 지내셨다. 조선조에 들어와서 호조판서에 제수되었으나 고려에 대한 의리를 지켜서 벼슬에 나오지 않았다.
휘 진께서는 휘 공언을 낳으셨는데 공훈이 있어서 나성군에 봉해지셨고,
휘 공언께서는 휘 집을 낳으셨는데 식목도감 녹사를 지내셨다. 이 어른들은 공에게는 5대조 이상의 조상님들이시다.
휘 집께서는 휘 자강을 낳으셨는데 무안현감을 지내셨고
휘 자강께서는 계조를 낳으셨는데 휘 계조는 장사랑을 지내셨으며 휘 계조께서는 일손을 낳으셨고 휘 일손께서는 좌승지 겸 참찬관(左承旨겸參贊官)을 지녀셨고 기묘명현(己卯名賢)에 이름이 올라 있다,
휘 일손께서는 휘 고를 낳으셨으며 휘고께서는 생원과 진사를 지내셨는데 위 어른들은 공에게 고조(휘 자강), 증조( 휘 계조), 할아버지(휘 일손), 아버지(휘 暠)가 되신다. 어머니는 의인(宜人) 안동김씨(安東金氏) 이시고 진사를 지내신 안동김씨 적의 따님이시다. 어머니께서는 훌륭한 부덕(婦德)이 있으셨는데 중종 계미년(1,523년)에 공을 낳으셨다. 공은 성품이 엄정하였고 진실한 효성을 타고 났다.
부모님을 모심에 얼굴 색을 부드럽게 하여 부모님이 안심하도록 봉양하고 부보자전에 능통하여 통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이었던 건재(健齋) 김천일(金千鎰)과 함께 일재(一齋) 이항(李恒) 선생의 문하에서 학문을 같이 하면서 도의로 사귀었다. 또 소재(蘇齋) 노수신(盧守愼) 선생 문화에서 경론을 연구하면서 인심과 도심을 분별하여 하늘과 사람이 가지고 있는 천부의 성품을 판별하는 경지에까지 이르렀고 서로 시를 주고 받는 사이가 되었다.
이항(李恒) 선생이 조정에 현인을 천거할 때 공도 함께 아뢰어져서 가선대부(嘉善大夫) 금천현감(衿川縣監)에 제수되어 재임시 덕으로 현민들을 다스리다 백성들이 감복하여 물망철비(勿忘鐵碑)를 세웠는데 그 사실은 현지(縣誌)에 실려 있다.
( 고즈넉한 보산리 장동 안산기슭에 잠들어 계신 휘사율할아버지와 할머니 前에 한잔의 술과 따르고 인사를 올립니다. )
공은 임진(1,592년)년 삼월에 집에서 세상을 떠났고 묘는 나주의 보산리 장동의 동쪽 기슭 갑좌에 모셔져 있다. 배위는 숙부인 영광정씨이시고 진사를 지내신 세린(世麟)의 따님인데 성품이 현명하고 부덕(婦德)이 있어서 능히 집안에서 아름다운 모범을 보였다. 돌아가시자 공의 묘와 쌍분으로 장례를 치렀다. 공은 슬하에 2남 2녀를 두셨는데 큰아들은 덕의이고 둘째 아들은 덕무인데 둘째아들 덕무는 통덕랑을 지내셨다.
(공의 차자 휘 덕무의 묘와 묘비 : 공의 묘뒤에 모심)
큰딸은 중추 박언상에게 시집갔고 둘째 딸은 정척에게 시집갔다. 손자는 승소, 홍소, 돈소이다. 나머지도 번성하였지만 다 기록하지 못한다.
아! 공의 아름다운 행실과 꿋꿋한 자취는 여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지만 세월이 오래되고 여러 차례의 병란으로 많은 문헌들을 잃어버려 증거할 수 없으니 이것이 한스런 일이다.
(공의 손자 휘홍소 묘)
(공의 증손 휘 임의 묘비)
이번에 그 후손인 재균(저의 아버지)이 다만 보책에 기록된 내용만을 간추려 가지고 와서 장덕의 글을 청하였다. 나는 문장이 졸렬하고 학식이 많지 않아 감히 이 일을 감당할 수 없지만 일가의 정의를 중하게 생각하니 끝까지 사양하지 못하고 세록을 참고하여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기록하니 후대 군자들이 다시 지어서 하나를 택하기 바란다.
광복 삼팔년(1982년) 청화절 (음력 4월 초하루)에
족후손 갑균이 이 글을 짓다.
주1) 좌리공신 : 왕을 잘 보필하여 정치를 잘 하였다는 공으로 내린 훈명
첫댓글 금천공 사율은 한림공 창할아버지의 아드님이신 사항, 사순, 사음과 질할아버지의 아드님이시 금호공 사침과는 사촌형제관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