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에 보탬이 되려고
지난 1월 초에 쿠팡 이츠 앱을 다운로드 받아 깔았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인가 뭔가 때문에 안전 교육 받아야 한다고해서
거의 3시간 정도 동영상 시청을 한거 같습니다. 이걸 하면 교육비를 준다고 하더군요.
(실제 나중에 1콜 배차해서 배달 완료하니 정산일에 추가로 2만원 정도 교육비로 지급된거 같더라구요.)
암튼 안전교육은 실제 배달 일에서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이었는데, 자주 마주치는 교통 사고 관련한 부분과 쿠팡앱의 실제 사용법 정도만 쓸만한 것이었습니다.
근데, 정작 일을 해보려고 하니 쿠팡 배달 파트너를 처음 해보는 입장에서 겁이 나더라구요.
유투브 동영상 쿠팡 광고를 보면 처음 한건을 해보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고 수없이 얘기들을 하던데
실제로 픽업할 음식점이 어디 있고 그 음식은 언제쯤 조리 완료가 되는지 그리고 고객의 배달 도착지는 어디이고 어떻게 완료하면 되는지 그리고 고객 요청사항은 어떻게 확인하고 이행할 수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무작정 배차를 받는다는게 사실 너무 겁이 났습니다. 음식 배달업은 업주의 입장에서는 생계가 걸린 일이고 고객의 입장에서는 자기 돈주고 한끼 식사를 해결하는 것인데 이걸 단순히 내가 돈을 벌겠다는 것으로 달려들어 해를 입히거나 또는 망칠까봐하는 그런 생각이 드는거죠. 아마 대전을 비롯해 전국의 모든 신입 쿠팡 이츠 배달 파트너들이 무려 3시간에 걸쳐 봐야 하는 동영상 교육에서는 실제 배달 과정에서 부딪치게 될 사항들을 거의 다루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쿠팡 이츠앱 깔고 며칠 동안 겁나서 켜보기만 하고 실제 일을 해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기왕 앱도 깔고 3시간 넘게 강제로 동영상까지 시청했는데
뭐라도 한번 해보기는 해야할거 같아서 일단 부딪쳐보자하는 심정으로 일하기 모드로 설정해 봤습니다.
1분 정도 지났나? 앱이 깜빡 거리면서 배차를 수락할건지 말건지를 묻는 팜업창이 뜨더라구요. 일단 수락해 봤습니다.
수락하고 보니 음식을 픽업해야 할 음식점으로 향하는 경로와 거기에서 고객 도착지로 이동하는 경로가 다른 색깔로 표시되더군요. 근데 그것 뿐이었습니다. 배달 파트너에게 주어지는 정보라고는 픽업지, 음식메뉴와 가격, 도착지가 전부였습니다. 가장 중요한 음식의 픽업 예정시간과 고객의 정확한 주소 그리고 요청사항은 알수 없었고 심지어 배달비도 표시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역시나 제가 두려워 하던대로 가장 단순한 정보만 주어졌습니다.
암튼 최대한 빨리 픽업지로 이동해 봤습니다.
해당 음식점에서 조리와 포장이 완료될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몇 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언제 될지 모르는 기다림 속에 드디어 포장이 완료된 비닐 봉지가 주어졌습니다.
이제 실제 배달이 시작되었습니다. 픽업 버튼을 누르니 그 때서야 정확한 고객의 집과 동호수 그리고 요청사항이 보였습니다. 출발 직전에서야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습니다. 그걸 확인함과 동시에 저의 위치가 주문을 한 고객과 (주)쿠팡 고객센터 측에서 실시간 GPS로 확인되기 때문에 가능한 빠르게 이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심리적 압박감 속에서 안전하게 일할 수 있다고 광고하는건 좀 모순이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한편 고객의 세부 주소와 최종 배달 상황에서 이행해야 하는 고객 요청 사항을 휴대폰 디바이스로 표시하는 방식이 마치 20년전 대리운전 PDA 시스템에서나 볼 수 있는 낙후한 형태라서 적지않게 놀랐습니다. 최첨단 인공지능 AI 시스템을 이용한다고 하던데 실제로 제 눈에서 확인되는 배달 정보 표기 수준은 불명확한 글자와 숫자들의 조합이라 과연 이걸 보고 정상적으로 배달하는게 가능한건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암튼...
고객의 집근처에 빠르게 도착했고, 다시 확인했습니다.
제가 정말 고객의 기다리고 있는 정확한 집주소로 도착한 것인지 (낙후해 보이는 글자들을 살펴보며) 또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고객 요청 사항이 있었는데 현관문 앞에 그냥 놓고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근데 그냥 놓고 가기만 했을 때 만약 고객이 수령하기 전에 제가 배달한 음식이 다른 어떤 요인들에 의해 문제가 생기거나 파손이 되면 내가 책임져야 하나 불안함이 엄습했습니다. 물론 고객이 실시간으로 배달원의 위치도 확인할 수 있고 쿠팡 이츠 측에서 음식 배달이 완료됐다고 알림을 해주기도 할테지만 제 경험상 배달 현장에서는 수백가지 변수가 발생할 수 있는지라 제가 정확히 배달을 완료했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습니다. 그냥 고객이 알림 받고 음식 가져가면 최종 정리되는 그런 방식인거 같았습니다.
암튼 최초 배달은 이렇게
끝났습니다.
나중에 정리해보니...
첫째 제가 음식점까지 이동한 시간과 실제 배달할 때 이동한 시간을 합산한 시간의 길이는
제가 음식점에 도착해 조리와 포장이 완료될 때까지 기다린 시간과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애초에 음식점에 대한 정보도 모르고 메뉴 조리시간도 모르고 포장 상황도 모르고 전혀 아는게 없는 상태로 가서 그냥 포장이 완료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시스템이니까요. 다른 분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냥 무턱대고 기다리기만해서 까먹은 시간까지 합쳐서 4000원쯤 벌은 것인데 이를 시급으로 따지면 2022년 기준 최저임금 수준 이하이거나 (실제로 이동에 소요된 연료비 등의 경비를 상계하면) 또는 최저 임금을 약간 상회하는 정도라는 판단에 도달했습니다.
둘째 이렇게 일을 해보니...
일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커지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정확한 배달비도 모르고 내가 배달할 수 있는 상태인지도 모르고 내가 음식 포장될 때까지 얼마나 시간을 까먹을지도 모르고 고객의 요청사항도 모르고 정확한 집주소도 모르고 (이게 지하인지 아파트인지 몇 층인지 고층인지 대학교인지 주택인지 알 수 없는 상태) 그저 아는거라곤 계속 배달 요청을 수락할건지 말건지만 묻는 무식한 시스템이고 거기에 한술 더떠 실제로 픽업을 해야만 보이는 세부 주소와 고객 요청 사항을 픽업과 함께 이동하면서 동시에 머리 속으로 정리를 하다보니 심리적으로 더 위험한 상태에 놓이게 되더라는 것이죠. 물론 이런 후기는 전적으로 저의 개인적인 경험에 의한 것이니 다른 분들은 참고만 하시면 될거 같습니다.
그래서...
쿠팡 이츠 배달앱은
꺼버리고 벌써 몇 주째 그냥 놓고 있습니다...ㅎㅎㅎ
돈 몇 푼 벌려고 이 낙후한 시스템 속에서 일하다가 골로 갈까 두려움이 앞서는데
그게 좀 가시게 되면
그 때 하죠...
ㅋ
첫댓글 헐~
ㅋㅋ 쿠팡 요즘 배차가 빛의 속도라고 하던디. 아까 치킨집 픽업하러 같더니 사장님이 요즘 쿠팡 장난 아니라고 ㅋㅋㅋ